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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살아갈 우리에게 - 연극 <1984>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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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1949년에 1984년이라는 미래를 상상하며 소설 『1984』를 써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30년 전, 현재로선 과거가 되어버린 1984년을 살았다. 즉 1984년은 과거이면서 한편으로는 미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14년을 살고 있는 우리의 현재는 어떠한가? 우리는 정말 1984를 살았다고 할 수 있는가? 오래 전 예견했던 미래를 이미 지나온 우리에게,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살아갈 우리에게 연극 <1984>는 말을 건네고 있다.

한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있다. 그는 채 몇 미터 가지도 못하고 이내 벽에 부딪힌다. 주섬주섬 떨어트린 물건들을 정리한 그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자전거를 끌고 처음 출발했던 지점으로 걸어 돌아온다. 다시 자전거를 돌려 페달을 밟는다. 또 다시 벽에 부딪히고 그는 처음 했던 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한다. 마치 처음 겪는 일이란 듯이, 이전의 것들은 모두 망각했다는 듯이 무표정으로 말이다. 혹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앞에 말한 저 남자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힘으로 인해 끊임없이 벽에 부딪히고 넘어지지만 그 행위 자체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이유도 찾으려 하지 않은 채 시체처럼 계속해서 자전거를 타고 넘어지길 반복하는 것. 존재의식이라든가 자유의지 같은 것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숨만 쉬며 흘러가는 것. 


연극1984 (4).jpg


이미 살아버린 미래


연극 <1984>는 제2회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인 윤한솔의 신작이다. 윤한솔은 현재 극단 ‘그린피그’의 대표로, 자유로우면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연출가이다. 그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모티브로 해, 20세기를 연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선언’ 이후 미래가 의미한 것들과 약속한 것들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조지 오웰은 1949년에 1984년이라는 미래를 상상하며 소설 『1984』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30년 전, 현재로선 과거가 되어버린 1984년을 살았다. 즉 1984년은 과거이면서 한편으로는 미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14년을 살고 있는 우리의 현재는 어떠한가? 우리는 정말 1984를 살았다고 할 수 있는가? 오래 전 예견했던 미래를 이미 지나온 우리에게,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살아갈 우리에게 연극 <1984>는 말을 건네고 있다. 


1984년 4월 4일 14시 이후 미래에게 혹은 과거에게, 사상이 자유롭고 인간의 생각이 서로 다를 수 있고 서로 고립되어 살지 않는 시대에게 ? 그리고 진실이 죽지 않고, 이루어진 것은 짓밟혀 없어질 수 없는 시대에게. 획일성의 시대로부터, 고독의 시대로부터, 빅 브라더의 시대로부터, 이중사고의 시대로부터 ? 축복이 있기를!” ?연극 <1984> 중


1984년엔 전체주의의 디스토피아가 도래하게 될 거라고 조지 오웰은 예언했고 정말로 1984년이 된 해, 백남준은 그의 예언은 절반만 맞았다고 반박하며 뉴욕과 파리를 실시간으로 연결한 위성 TV쇼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불이 꺼진 무대 위에서는 텔레비전 속 영상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텔레비전 안에서는 백남준의 바로 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반복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연극1984 (7).jpg


연극의 주된 흐름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동일했다. 전체주의가 개인의 삶 깊숙이 파고들어온 미래 사회,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은 텔레스크린으로 감시된다. “자유는 둘에 둘을 더하면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야.” 감시와 억압 속에서도 계속해서 일기를 썼던 주인공 윈스턴은 사랑하는 연인 줄리아와 함께 사회의 균열을 꿈꾸며 저항세력에 가담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내부당원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단지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정신까지 지배하려 한다. 결국 윈스턴은 진심으로 빅 브라더를 받아들이고 죽음을 맞이한다. 


연극은 한마디로 파격적이고 강렬했다. 무대 위 등장하는 배우들은 모두가 획일화된 모습으로 하나같이 머리를 민 채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무대 뒤편에는 10여 개의 텔레스크린이 나란히 놓여져 빅 브라더에 의해 감시 당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공연 중간중간의 실황은 카메라로 촬영돼 텔레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 중개됐다. 몇 가지 특이했던 부분들을 이야기하자면 일단 기타리스트가 무대 왼쪽 뒷부분에 앉아 중간중간 라이브로 기타를 치며 노래했다는 점이다. 그는 때로는 기타를 치며 혼자 노래를 부르고, 다른 배우들이 노래할 때 배경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또 한가지 특이했던 점은 공장의 컨베이어벨트를 연상시키는 무빙워크가 무대 전면에 깔려있었다는 것이다. 공연 내내 이 무빙워크는 배우들에 의해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되며 연극의 분위기를 더했다. 


연극 <1984>는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관통하고 있다. 마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이리저리 뒤섞여있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과거이고 현재인지, 무엇이 우리의 미래인지, 그것들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기타리스트가 마지막 부분에서 기타를 치며 불렀던 구슬픈 노랫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미래가 아프게 하나요. 많이 지내봤잖아요. 과거가 아프게 하나요. 남은 건 없잖아요……” 연극 <1984>는 이번 달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된다. 전석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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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지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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