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요즘 무슨 책 읽어?
당분간 마지막 ‘솔직히 말해서’ 훗날 사춘기를 겪을 내 아들에게 책을 권한다면
출산 휴가를 앞두고 있다. 만화가 난다의 말대로 “한 아이를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짐승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요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인터뷰 장소에 나가면, 한결같이 나를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제 곧 한 달 후, 나의 2세가 태어난다.
언젠가 한 인터뷰이가 이런 말을 했다. “가장 좋은 서재는 아이가 읽는 책과 부모가 읽는 책, 조부가 읽는 책이 함께 있는 서재”라고. 그래야 아이가 물어본다고. “요즘, 엄마는 뭐 읽어?”라고. 이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를 쳤다. 초등학생 필독서, 중학생 필독서, 고등학생 필독서만 읽는 아이는 과연 커서 뭐가 될까? 정답 있는 인생밖에 꿈꾸지 않는 건 아닐까? 책을 읽다 보면, 추천 욕구가 샘솟을 때가 있다. ‘먼 훗날, 내 아이가 이런 책을 읽으면 참 좋을 텐데’하고. 하지만 누군가 권하는 (그것이 부모일 때는 더더욱) 책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상대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추천이란, 쓰잘데없는 헛수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참 좋은데. 언젠가 내 아들이 읽어보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을 때가 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 10년, 20년이 흘러야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텐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깨끗이 책을 보고 책장에 꽂아 놓는다. 남편은 옆에서 웃는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좋은 책은 때를 타지 않는 법이야.’
훗날 사춘기를 겪을 내 아들에게 책을 권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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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인생』은 ‘고박과 남쌤이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인생론’이란 타이틀을 가진 책이다. 전작 『덤벼라, 인생』의 후속작으로 우정, 자유, 관용, 직업, 행복 등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한 정치학자 고성국과 인문학자 남경태의 대담집. 내 아이가 사춘기를 겪고 있다면, 슬쩍 건네고 싶은 책. 이 책을 읽고 더 고민이 많아진다면? ‘그건 네가 풀어갈 건강한 숙제’라고 토닥이고 싶다. 2003년에 출간된 전인권 교수의 『남자의 탄생』은 ‘남자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었다. 대학생 때 이 책을 읽고 ‘한국 남자가 이 책을 읽는다면 참 위로가 되겠구나, 아빠와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하면서 내 책장 속에서는 사라졌는데, 부디 절판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부모로서 소망은 진지한 사람보다는 밝은 사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럴 가능성이 많지 않지만) 일찍부터 세계문학, 철학책을 파고드는 피곤한(?) 인생이 되지 않기를 원한다. 유쾌한 만화책을 낄낄거리며 읽다가 “엄마, 밥 줘”라고 재촉했으면 좋겠다. 인생은 자고로 단순하고 명쾌하게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니까. 순정만화도 스포츠만화도 역사만화도 풍자만화도 즐겁게 읽었으면 좋겠다. 만화는 자신만의 취향이 확고할 테니 선뜻 추천하긴 어렵겠다. “엄마 어릴 적에는 어떤 만화가 유행했어?”라고 물으면, 『광수생각』? 만화는 트렌드를 많이 타니, 10년 후 20년 후에도 흥미로울 만화로는 최근에 읽은 『맛있는 철학』을 꼽는다. 철학과 요리를 융합한 만화인데 스토리에 더 끌렸다.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나 할까.
다른 사람의 인생이 궁금해진다면, 인터뷰집을 많이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강의를 많이 듣는 것보단 책 한 권이 훨씬 깊이 있게 다가오는 법이다. 김두식 교수가 만난 30인의 인생 이야기 『다른 길이 있다』와 『김규항의 좌판』을 읽는다면, 사회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한편,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기보다는 에세이를 읽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다. 축구선수 이영표의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는 한 대학생이 이영표를 만나 인터뷰한 에세이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침대 머리맡에 놓아주고 싶다.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문학도 즐기면 좋겠다. 네 감수성은 네가 감당했으면 좋겠지만, 혹여 감당 못할 감수성에 질척인다면 시집을 권해주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최영미의 『도착하지 않은 삶』, 고은의 『무제시편』에 작은 메모를 담아 선물하고 싶다. 소설은 아마 쉽게 추천할 수 없을 듯하다. 취향도 취향이거나 무궁무진한 세계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꼽으라면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 한국 소설을 꼽자면 이승우 작가의 『생의 이면』.
인생의 기쁨은 언제나 관계 속에 있다. 연애를 잘하는, 여자를 잘 이해하는 남자로 성장하면 기쁘지 않을까. 남성과 여성을 이해할 수 있는 책 생물학자 최재천의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소설가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를 읽는다면 분명 찬란한 연애사를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엄마에게 연애담을 털어놓는 아들은 희귀하겠지만, 여자를 아껴주는 남자로 자랐으면 한다. 엄마로서 질투하지 않으려 노력할 테니.
부모들의 독서 교육, 참 치열하다고 들었다. 오죽하면 자식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 책을 읽는 척을 하고 있는 엄마들이 많단다. 책보단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 분명 세상살이만으로 경험할 수 없는 세계가 분명 책에 있다. 언젠가 내 아들이 “엄마, 요즘 무슨 책 읽어?”라고 물었을 때, 할 말이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나저나, 순순아! 언제 나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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