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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건 기껏, 유년기!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 발표한 합동 앨범 <96> 유년기의 끝을 맞이했음을 선언하는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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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까지 20년이 넘도록 생존한 음악 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했다. 간절히 원했지만 그 하나를 허락받지 못한 것이다. 그 점에서 「96」은 이 씬이 비로소 유년기의 끝을 맞이했음을 선언하는 낭독과 같다.

음악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가 쓴 『레트로 마니아』에는 ‘노스탤지어’에 대해 수차례 언급된다. 현재성을 대체하는 과거지향의 정서 물고 늘어지는 이 책은 21세기의 문화(적 실천과 태도)를 얘기하기 위해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이해된 ‘음악’의 처지를 헤집는다. 다시 말해 ‘레트로’에 대한 불만 섞인 뉘앙스가 지배하는 이 책은 ‘노스탤지어’를 지향하는 21세기의 팝을 겨냥해 콕콕 찍어댄다. “무엇보다 팝은 현재형이어야 하지 않나?

 

팝은 여전히 젊은이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젊은이는 노스탤지어를 느끼지 않아야 정상이다. 소중한 기억을 뒤로할 정도로 오래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팝의 본질은 ‘지금 여기’에 살라는, 즉 “내일은 없는 것 마냥” 살면서 동시에 “어제의 족쇄는 벗어던지라”는 충고에 있다.” 라고 (관점에 따라서는 시원하게) 써버린 것이다.

 

노브레인크라잉넛

 

 

한국 인디 씬의 ‘종말’을 선언하는 앨범


위에 인용한 글에 따르면, 적어도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 발표한 합동 앨범 <96>이야말로 한국 인디 씬의 ‘종말’을 선언하는 앨범일 것이다. 이 음반은 노브레인이 크라잉넛의 노래를, 크라잉넛은 노브레인의 노래를 재해석한 버전에 더해 두 밴드가 함께 만든 「96」을 배치한 스페셜 앨범이다. 짐작대로, 「96」은 크라잉넛이 컴필레이션 앨범 <Our Nation 1>으로 데뷔한 1996년을 뜻하면서, 뒤집어진 거울처럼 숫자 9와 6에 두 밴드를 빗대는 의미다.

96

 

그 뜻에 충실하듯 이 앨범에서는 노브레인 버전의 「말달리자」, 「룩셈부르크」, 「비둘기」를, 크라잉넛 버전의 「바다사나이」, 「아름다운 세상」, 「넌 내게 반했어」를 들을 수 있다. 특히 「96」은 애수어린 건반 솔로를 반주로 “수많은 별빛 밤하늘에 / 반짝 거리는 이 밤 / 초라해진 어깨 위에 달빛 / 나를 비추네 (워어)”라고 노래하며 시작된다. 이 곡을 지배하는 것은 명백히 노스탤지어다. 그런데 이 노스탤지어는 앞서 언급한 사이먼 레이놀즈의 글과는 다소 다른 맥락으로 보인다.

 

2015년이면 크라잉넛이 데뷔한 지 20년이 된다. ‘스트리트 펑크 쇼’로 시작된 한국 인디 씬의 역사가 벌써 20년이란 얘기다. 1974년생부터 1982년생까지 모인 밴드 멤버들의 나이도 벌써 30대와 40대를 가로지른다. 그래서 사이먼 레이놀즈가 염려한 ‘늙어버린 팝’이란 자기모순에 비해 이들의 노스탤지어는 오히려 자연스럽다. 과거를 회상할 만큼 실제로 나이를 꽤 먹은 것이다. 그렇다고 이 앨범과 음악을 마냥 칭송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 입장에선 재미있는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왜냐면 이 앨범이 환기하는 ‘인디 씬’의 경험은 특정 시공간에 대한 것일 뿐, 인디 씬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노브레인과 크라잉넛이 ‘한국 인디’의 대표성을 획득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상징적인 위치일 뿐이다. 20년 동안 이 씬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고, 깊어졌다. 음악가들의 양과 질, 형식과 장르, 산업과 공동체가 뒤섞였으면서도 나름의 경계를 유지하는 균형감도 유지하고 있는 드문 곳이기도 하다. 이들은 서로 경쟁하거나 다투면서 때로는 협력하고 긴장을 유지하며 상생하고 있다. 이 생물적 역동성이야말로 인디 씬의 기반이다. 중년을 앞두거나 중년의 삶에 진입한 밴드의 노스탤지어를 씬 전체의 것으로 환원하는 것이야말로 씬의 종말을 선언하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다.

 

한편 이 역사, 정확히는 ‘인디 씬 20년’이라는 레토릭이 던지는 감흥은 분명 남다르다. 왜일까. 아마도 ‘우리’는 한국에서 이토록 지속적으로 성장한 음악 공동체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불성실하게 보이리라는 것을 감수하고 다소 거칠게 구분하자면, 1960년대와 70년대에 만개한 ‘한국 록’의 유산은 군부독재로 소멸했다. 1980년대의 하드록, 메탈 공동체는 소수의 스타를 배출하고선 언더그라운드에 내내 머물렀다. 이런 단절을 현재로 불러온, ‘모던’하게 호명한 것은 90년대와 2000년대의 인디 씬이었다. 심지어 이 공동체는 장르적으로도 장소적으로도 다채롭게 분화되면서 20년 동안이나 ‘홍대 앞’이라는 공간을 점유하고 확장시켰다.

 

우리는 이제까지 20년이 넘도록 생존한 음악 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했다. 간절히 원했지만 그 하나를 허락받지 못한 것이다. 그 점에서 「96」은 이 씬이 비로소 유년기의 끝을 맞이했음을 선언하는 낭독과 같다. 하지만 끝난 건 기껏, 유년기다. 펑크 아저씨들의 귀여운 이벤트 후에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을 기반으로 삼은 음악 공동체’의 지속가능성, 이 씬을 젊은 상태로 유지하는 어떤 활력이다. 그리고 그 힘은, 당연하게도, 음악과 사람을 연결하는 관계성에 있을 것이다.

 

 

이 칼럼을 마지막으로 ‘차우진의 사운드 & 노이즈’ 연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힘들고 즐거웠어요. 모쪼록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길 바랍니다. 좋은 음악들, 사람들과 함께 좋은 하루를 보냅시다. 그러다보면 불현듯 좋은 삶을 살고 있겠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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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차우진

음악웹진 <weiv> 편집장. 『청춘의 사운드』를 썼다. 대체로 음악평론가로 불리지만, 사실은 지구멸망과 부동산에 더 관심이 많은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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