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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의 방식, 불륜의 이유
후지TV <메꽃, 평일 오후 3시의 연인들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다는 사전적 의미대로라면 불륜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럼에도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TV 드라마의 아침, 저녁을 채운다. 단지 자극적인 갈등의 요소라고만 보기엔 지나칠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마치 인간이란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어둘 수 없는 존재라는 듯이. 누구나 사랑에 빠지게 되듯 모두에게 불륜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인 듯이
일본드라마 <메꽃, 평일 오후 3시의 연인들>은 제목에서부터 불륜을 대놓고 드러낸다. 메꽃(히루가오)은 남편이 출근한 후 가사일도 완벽히 해내면서 평일 낮 동안 다른 남성과 사랑을 나누는 주부를 뜻하는 말이다. 그녀들에게 허락되어 있는 자유의 시간은 오후 3시부터 5시.
이 드라마는 불편하고 불쾌할 수 있는 소재를 전면에 드러내고 있지만 감각적인 영상과 그에 잘 어울리는 OST, 드라마 작법 면에서도 군더더기 없는 인물 설정과 관계성, 대사와 행동의 불일치라는 요소가 주는 재미로 인해 일본 현지에서도 호평과 동시에 시청률이 상승하고 있다. 특히 네 명의 연출가가 매회 각자의 스타일을 살려 드라마를 만들어내는데 톤이 흐트러지기 보다 개성이 표출되기에 그런 점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게다가 권태로 인한 낯선 여자에 대한 성적 욕망, 혹은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듯 일탈의 요소로 저지르는 충동적인 남편의 불륜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아내의 입장에서 불륜의 이유와 그에 따른 감정적 변화를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2013년 국민드라마로 높은 인기와 관심을 끌었던 <한자와 나오키>에서 내조를 잘하고 현명한 아내 역을 맡았던 우에토 아야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편과 섹스리스로 지내고 있지만 지금 생활에 만족하며 마트에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부로 등장한다. 맞은 편 주택 사는 누가 봐도 부유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리카코와 우연한 사건에 휘말려 엮이게 되면서 사와는 리카코의 불륜 사실에 대해 알게 되고 그것에 대해 혐오스러운 감정을 드러낸다.
뻔뻔하고 자신만의 룰이 분명한 리카코는 <노다메 칸타빌레>, <블러디 먼데이> 같은 드라마에서 단역이나 조연으로 등장하더라도 늘 묘한 분위기를 남기며 시선을 끌던 키치세 미치코가 연기한다. 여성 잡지 〈BONITO〉의 편집장인 남편의 경제력이라는 조건을 보고 결혼을 결심한 리카코는 남편이 바라는대로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의 엄마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다. 그러한 완벽의 비결은 남편이 주지 않는 애정을 다른 남자를 통해 충족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비난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와에게 불륜을 통해 자신이 얻는 것들에 대해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얼굴만 예쁠 뿐이지 세상 물정도 모른다는 듯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를 가진 남편에서 미소를 지으며 맛있는 요리를 내놓을 수 있는 것도 다 사랑 받는다는 감각을 유지하며 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리카코는 그동안 억누르고 살아온 사와의 욕망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사랑은 여자를 아름답게 만들지만 불륜은 여자를 강하게 만든다.”
사와의 남편은 결혼 후 자신을 꾸미고 아름다워지는 것에만 관심을 보이고 아이를 낳는 대신 햄스터를 기른다. 아내인 사와를 마마라고 부르고 자신을 파파하고 하며 ‘가족이 되었으니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과는 섹스 같은 건 생각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친다. 어린 나이에 여성으로서 사랑 받는 감각을 잊은 채 그럭저럭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사와에게는 리카코의 존재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특히 리카코와 엮이면서 알게 된 유이치로에게 자꾸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서 더욱 그러하다.
이 드라마는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세브린느 (Belle De Jour, 낮의 꽃)>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리카코가 호텔에서 만난 낯선 남자와 나눈 대화에서 이 드라마의 주제를 드러냈다. 리카코는 남자에게 메꽃(일본어로 낮의 꽃)라는 영화를 봤냐고 묻는다. 남자는 상류계층의 여자가 낮에 몸을 파는 영화이지 않느냐고 답한다. 리카코는 단호하게 말한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영화야.”
리카코는 분명하게 자신이 하는 행동이 죄라는 걸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사와에게도 신신당부를 한다. “불륜은 하는 게 죄가 아니라 들키는 순간 죄가 되는 거야.” 그래서 철저하게 악녀가 되고 능숙하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드라마 속 리카코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대사는 일종의 불륜교과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던 리카코가 현실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장난처럼 가볍게 저지르던 정사 대신 사랑에 빠지면서 모든 것이 흐트러지고 만다.
완벽하게 숨겨왔다고 믿었지만 딸아이는 엄마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고 그것이 행복을 유지해주는 동력이라면 모른 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리카코의 감정이 단순한 일탈을 넘어선 것을 알고 배신감에 치를 떤다. 자존심 강한 남편 역시 아내의 불륜을 인정할 수가 없다. 그녀의 경제적 자유를 빼앗고 감금하다시피하자 리카코는 모든 걸 버리고 집을 떠난다. 지켜내고 누리기 위해 시작했던 불륜으로 인해 모든 걸 잃어버리게 된다. 그럼에도 리카코는 오히려 후련해한다. 남편에게 종속되어 거짓된 삶을 살던 때보다 자유를 느낀다.
사와 역시 다시금 자신에게 사랑은 없고, 여자로서 사는 것의 기쁨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사랑의 감정에 빠져들고 만다. 그럼에도 죄악감을 느끼기 보단 그 순간의 행복감에 충만해 한다. 물론 유이치로가 자신이 아는 사람의 남편이라는 걸 알고 관계를 끝내려고도 해보지만 불륜에서 중요한 건 호적에 기재된 사항이 아니라 누가 더 사랑하느냐 사랑받느냐라는 걸 인지하고 얌전하고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오히려 누구보다 강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반격하기 시작한다.
물론 죄라는 인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속에 포진된 다른 인물들은 그녀들에게 죄의식을 느끼도록 포진되어 있다.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게 만들고 잘못을 되새김질 하게 만든다. 그녀들의 행동을 통해 상처받게 되는 사람들의 입장도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그럼에도 죄를 저지르고 마는 인간의 욕망. 즉 사랑을 갈구하는 욕망의 어리석음도 그대로 보여준다. 제도와 계약 안에 들어가더라도 멈출 수 없는 감정을 드러낸다.
<세브린느>에서도 "언젠간 이 모든걸 속죄할 날이 오겠죠. 하지만 지금은 이러지 않곤 살 수 없어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직 방영 중인 드라마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는 알 수 없다. 그녀들을 지탄하고 벌하는 것으로 사회는 안도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불륜을 옹호할 수는 없지만 영화 <세브린느>를 보고 있노라면 남편을 속이고 조신한 아내와 방종한 창녀 사이를 위태롭게 오간 그녀를 비판하기 보다는 그녀를 비정상적인 행위로 탐하며 변태적 욕구를 채우는 부르주아 남성들을 비판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끼게 되듯 이 드라마도 여성에게 있어서 사랑이 갖는 의미, 불륜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이끌리는 대로 눈먼 사랑에 빠져 흔들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며 사랑을 할 때 여자가 얼마나 생기 넘치고 아름다우며 설렐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준다.
그리하여 결혼을 통해 퇴색되는 사랑의 감정과 남편의 무관심 혹은 무시가 여성에게 어떤 선택을 하게 만들었는지 그 한 일면을 보여주고 공감을 불러일으킨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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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며 제법 깊은 내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현명해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걸 수줍어하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재생능력으로 사랑할 때마다 소녀의 마음이 되곤 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발견해내고 쉽게 두근거린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으며,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