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불을 켜지 않으면 밤잠을 이루지 못할 때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 말고 지금 보고 있는 또 다른 것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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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스위치를 켠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새롭게 들리고 새롭게 보이는 것 덕분에 지금까지와 다른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소년은 이제 날마다 밤을 켜고, 어둠 속에서 또래 아이들과 함께 달린다.

누구나 한두 가지는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소문난 웅변가 데모스테네스는 계단을 두려워해서 손을 잡아야 내려갈 수 있었고 셰익스피어는 고양이를 두려워했다. 전장을 누비던 카이사르는 어둠 공포증을 갖고 있었다. 물론 ‘겁이 많은 편이에요.’라는 말로 넘길 수 있는 가벼운 두려움이 대부분이지만 생활에 지장을 주는 심각한 두려움일 경우에는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이겨내야 한다.

 

언젠가 항공승무원 취업 학원 옆 건물에 비행공포증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신경정신과가 개업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비행기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비행을 두려워한다면 그건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두려움의 원인을 찾아서 잘 넘어선 다음 마침내 승무원의 꿈을 이루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양면 거울과 같아서 가장 두려워한다고 믿던 것을 결국 사랑하거나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레 두려워하기도 한다. 마음속의 공포를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상담과 진료를 통해서 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두려움과 동행하는 삶이 가능하다. 무작정 피하고 도망가는 것이 방법은 아닌 것이다.


어린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밤과 어둠이다. 잘 놀던 아이도 캄캄해지면 무릎에 달라붙어 칭얼댄다. 어른 중에도 어둠을 유난히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다. 어둠에 대해 공포를 호소하는 사람은 특히 첨단 과학이 발달한 지역에 두드러지게 많다고 한다. 밤에도 낮처럼 조명이 흔한 공간에서 살다보니 상대적으로 어두운 공간을 더욱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달빛도 은은하지만 분명히 빛은 빛이고 불 꺼진 어스름한 방도 내 집이면 정답다.

 

하지만 이 암전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부자리에 누워서도 손닿는 위치에 전등 스위치가 없으면 잠을 못 이루기도 한다. 심한 경우 저녁 내내 집안에 불을 켜놓아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밤새 가로등을 켜두면 나무가 자라지 못하듯이 어둠과 자연스럽게 친해지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편안히 쉴 수 없다. 어린이들의 경우에는 부모가 어둠은 위험하다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바람에 밤을 두려워하게 되기도 한다. ‘어두운 곳에는 절대 가지 마라’던 부모의 말이 아이를 붙잡아 가슴 속에 큰 불안의 덩어리를 만드는 것이다.

 

밤을켜는아이


『밤을 켜는 아이』는 어둠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산뜻한 전회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그림책이다. 이 책에도 밤을 무서워해서 어둑어둑해지면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불을 켜는 남자아이가 나온다. 어느날 밤 다락방 꼭대기까지 불을 켜고 계단을 내려오던 그 아이는 낯선 소녀와 마주친다. 이 소녀는 자신을 ‘어둠’이라고 소개하면서 가녀린 손으로 남자아이의 손목을 친근하게 잡아끈다. 밤의 뒷마당에서는 동네 아이들의 신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남자아이는 머뭇거린다.
 
"밖에 나가서 동네 아이들이랑 뛰놀고 싶어.“
그러면서 아이는 말했지요.
“하지만 난 밤을 안 좋아해."
“내가 밤한테 인사시켜 줄게. 그러면 너도 밤하고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어둠'은 현관 불을 껐어요. 그러면서 계속 말했어요.


“잘 봐, 스위치를 내린다고 꼭 불이 꺼지는 건 아냐! 스위치로 밤을 켜는 거야. 불을 켜고 끌 수 있는 것처럼, 네 마음대로 밤을 켜고 끌 수 있는 거란다. 똑같은 스위치로 말야!”

 

그리고 상냥한 ‘어둠’은 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불을 켜놓고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아무도 못 들어. 불을 켜놓고 별을 볼 수 있을까? 아무도 못 봐. 지금까지 네가 몰랐던 걸 생각해봐. 스위치로 귀뚜라미 소리를 켜고, 개구리 소리를 켜고, 별을 켜고, 엄청나게 커다랗고 하얀 달을 켠다고 생각해 본 적 있니?”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화성연대기』『화씨 451』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과학소설의 거장이다. 그는 지난 2012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세계와 우주의 놀라운 국면을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체로 조명했다. 이 그림책이 출간되었을 때 처음 구입한 사람의 대부분은 성인인 레이 브래드버리의 팬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가 이 그림책을 통해서는 밤과 어둠에 관한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더불어 레오 딜런과 다이앤 딜런 부부의 그림은 우리가 왜 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를 시각적으로 탁월하게 설득한다. 두 사람은 50년 넘게 작품을 함께 하며 수많은 걸작을 남겼지만 이 작품은 특별히 에셔에게 헌정한다는 말을 붙여두고 있다. 우리를 수많은 착각으로 데려가는 혼돈과 모호함이 밤의 매력이라면 딜런 부부가 이 책을 위해서 에셔의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가져온 것은 정확하게 딱 맞는 선택이다. 우리는 에셔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끝없는 계단을 딜런 부부의 그림으로 다시 만난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어둠과 나의 친교가 거짓말처럼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선조들의 고향 아프리카를 그리워했던 레오 딜런은 검은 대륙의 감성이 충만한 『야산티족 대 줄루족: 아프리카 전설』과 『모기는 왜 귓가에서 앵앵거릴까』를 그렸고 이 작품들로 부인과 함께 두 번이나 칼데콧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도 ‘어둠’을 그릴 때 맑고 검은 피부의 소녀로 그렸다. 하얀 세계만 전부인 줄 알았던 소년이 ‘검은 세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이야기인 셈인데 빛에 대한 어둠의 우위를 입증했다는 점에서 레오 딜런에게는 이 책이 더없이 소중한 작업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보면 이 그림책은 어둠으로 대표되는 ‘검은 것’에 대한 두려움에 의문을 던지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은유다.


밤의 스위치를 켠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새롭게 들리고 새롭게 보이는 것 덕분에 지금까지와 다른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소년은 이제 날마다 밤을 켜고, 어둠 속에서 또래 아이들과 함께 달린다.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두려움은 어떤 계기를 만나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날아가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계기와 마주쳤을 때 용감한 전회를 선택하는 것은 누구도 아닌 나의 몫이다. 소년이 떨리는 손으로 밤을 켰던 것처럼 우리는 또 어떤 두려움 앞에서 나를 믿고 전환의 버튼을 누를 수 있을까.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 말고 지금 보고 있는 또 다른 것을 보세요’라는 에셔의 이미지들을 조언으로 기억하면서 이 책을 들여다본다면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그날, 어둠이 찾아왔어



레모니 스니켓 글/존 클라센 그림/김경연 역 | 문학동네어린이

레오 딜런과 다이앤 딜런이 어둠의 환상적인 매력에 호소한다면 존 클라센은 ‘어둠은 수줍음이 많아서 잘 안 보이는 것뿐, 우리랑 친하고 싶어 해.’라며 독자를 무장해제 시킨다. 이 책에서 어둠은 부끄러움이 많은 존재로 나온다. 주인공 라즐로는 어둠이 무섭다고 말하지만 속마음으로는 불러내어 놀고 싶다. 어느날 라즐로는 어둠이 부르는 소리를 따라서 캄캄한 지하실의 낡은 서랍장까지 내려간다. 한 번만 넘어서면 전보다 훨씬 괜찮아지는 심리적 공포의 원인들. 그 허들을 넘을 수 있게 용기를 주는 책이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꼬마박쥐



게르다 바게너 글/E.우르베루아가 그림 | 비룡소

꼬마 박쥐가 어찌나 앞장서서 어둠을 무서워하는지 독자들이 오히려 ‘박쥐야, 괜찮아, 괜찮아’하면서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꼬마 박쥐와 용감한 소녀 리자처럼 ‘용기를 내자!’라고 주문을 따라 외우고 있노라면 다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두려움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작아지게 만드는 것’이라는 명쾌한 진리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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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은 (동화작가)

김지은. 동화작가, 아동문학 평론가. 어린이 철학 교육을 공부했다. 『달려라, 그림책 버스』,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을 함께 썼고 EBS '라디오멘토 부모'에서 '꿈꾸는 도서관'을 진행했으며, 서울시립대, 한신대, 서울예대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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