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다는 말, 듣고 싶다
한국 사회를 뒤흔든 대자보들 『안녕들 하십니까?』를 읽고
언제부터 ‘안녕하다’는 말이 이렇게 듣기 힘들어졌을까. 너도 나도 “안녕하세요?”를 외치곤 했는데, 이제는 문장이 바뀌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문제적’물음으로.
슬픈 일이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책이 나온 현실이. 『안녕들 하십니까?』는 오월의봄 출판사가 펴내고 있는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시리즈 제15권이다. 책에는 지난해 12월부터 두 달간 대한민국의 곳곳에 붙었던 대자보들 가운데 200여 장이 소개되어 있다. 엮은이는 ‘안녕들 하십니까 출판팀’. 이들은 모두가 안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토론회, 집회 참가, 공연 관람, 총회 개최 등 여러 활동을 전개했다. 『안녕들 하십니까?』의 인세는 우리 사회의 안녕하지 못한 곳에 전달된다.
01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 대학 내 곳곳에 붙여진 대자보를 보았지만 빽빽한 글씨 탓인지 눈 여겨 읽은 기억이 없다. 예쁜 필체를 보고서 감탄을 한 적은 있어도, 마음을 끄는 대자보도 설득력 있는 대자보도 없었다. 다만, 여러 홍보물과 광고 포스터 사이에 끼여 있는 모습이 조금 초라해 보였을 뿐이다. 과 선배가 대자보를 쓴다며, “너 글씨 잘 쓰냐?”고 물어본 적은 있다. 나는 “아니요. 저는 큰 글씨는 잘 못 써요”하고 내뺐다. 대자보의 필체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글보다는 모양을 보았던 나는 얼치기 새내기였다.
그로부터 12년, 2013년 12월 10일 고려대학교에 ‘안녕’을 묻는 대자보가 붙었다. 고려대 경영학과 2008학번 주현우 씨가 쓴 글이었다.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철도 파업과 뒤이은 노동자들의 대량 직위해제, 당사자들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을 법한 한 대학생의 외침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다음 날, 고려대 대자보 옆에는 40여 장의 화답 대자보가 붙었고 이후 전국 곳곳, 외국까지도 ‘안녕하지 못함’을 고백하는 대자보가 붙게 됐다.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는 개설 1주일 만에 25만 명의 독자를 얻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우리가 인사로 하는 말, “안녕하세요.” 그러나 ‘들’이 붙고, ‘하십니까’가 붙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하수상한 세월이기 때문이다.
반 년이 지났다. 더 안녕하지 못한 지금이다. 불안한 사회 속에서, 이웃의 죽음 속에서 ‘안녕’을 말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안녕들 하십니까 출판팀’은 책을 준비하며 1천여 장의 대자보를 모았다. 지난해 12월 10일부터 붙여진 대한민국의 대자보 현황을 기록하며, 다양한 활동과 연대하며 대자보 이후의 움직임을 준비했다. 『안녕들 하십니까?』는 전국 각지에서 울려 퍼진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모은 결실이다. 책은 4개의 챕터로 묶였다. ‘안녕들 하십니까’, ‘아니요, 안녕하지 못합니다’, ‘우리도 안녕하지 못합니다’, ‘안녕하지 못하다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4개의 챕터 제목만 보더라도 세상이 읽힌다. 책에 실린 대자보의 마지막 말은 대부분 “여러분은 안녕하십니까”다. 내가 안녕하지 못한 이유만 말하지 않았다. 당신도 안녕하지 못하냐며 묻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에 실려 있는 수백 장의 대자보는 단지 수백 명의 생각이 아니라 수천, 수만의 안녕치 못한 이들의 고백이며 각각의 자신들로부터 출발한 살아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사슬은 그것의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강할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사슬의 가장 약한 고리는 우리가 느끼는 안녕치 못함이 나로부터 출발하여 사회와 공명한다는 것. 결코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과 희망이라는 생각입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27쪽)
“그러므로 안녕들 하냐는 질문에 대해 제가 삐딱하게 되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안녕들 하냐고 묻는 그 질문은, 정말 모두에게 묻는 것입니까? 모두가 물을 수 있는 것입니까? 정말로 괜찮은 것일까요?” (『안녕들 하십니까?』 493쪽)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자보 열풍이 일어난 시대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우울한 책이 나온 지금이. 4년째 방송되고 있는 TV 토크쇼 <안녕하세요>는 예능이지만, 안녕한 사람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언론에서는 여전히 ‘안녕들 하십니까?’를 인용한 기사와 칼럼이 쏟아진다. ‘안녕’이라는 말이 이처럼 무겁게 느껴질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첫 장을 열 때는 내가 아직 모르는 ‘안녕’하지 못한 사회와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셈이었다. 나의 안녕, 옆 사람의 안녕을 물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마지막 챕터, 청소년들이 쓴 대자보를 읽으며 생각을 고쳐 먹었다. 노원지역연합 청소년인권동아리 화야의 마지막 말 “언제까지 우리는 안녕한 척하며 살아야만 합니까”에서 뒤통수를 맞았다. 안녕하지 않아도 안녕한 척 살라는 학교, 마음대로 대자보를 떼어가고 부모를 소환하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이야기를 듣자 하니, ‘안녕’ 대자보는 지금 시대에서 끝이 날 것 같지 않다.
다만, 슬픈 일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고 싶다. 들을 귀, 보는 눈이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대자보도, 『안녕들 하십니까?』도 나왔을 테니. 안녕하지 못하다면, 끊임 없이 ‘안녕’을 묻자. 묻지 않는다면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을 테니.
안녕들 하십니까?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 저 | 오월의봄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5권. 2013년 12월부터 두 달간 곳곳에 나붙었던 대자보들 가운데 200여 장을 추려 묶음으로써 ‘안녕들 사건’을 증언하는 생생한 기록이자 사건을 일단락 짓는 매듭이다. 동시에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안녕들 대자보’ 이후 각자의 삶에서 어떠한 변화와 고민을 지속하고 있는지를 담아 ‘안녕들 사건’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갈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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