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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이라 불리는 남해의 매력

바다소년의 언제나 여행, 바다, 사랑 경상남도 남해 남면 선구 포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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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이라 불리는 남해인 만큼 섬도 바다도 고유의 색을 뽐냈다. 지난밤에 미리 던져두었던 그물을 건져 올리자 처음 보는 생물이 올라왔다. 진한 보라색에 미끈미끈한 표피를 가진 연체동물이었다. 바다 달팽이라 불리는 기멍(군소)이라 했다. 그렇게나 바닷가를 쏘다녔지만 군소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기멍은 삶아서 제사상에 올리기도 하고, 신부 예단에도 쓸 수 있다고 선장님이 덧붙였다. 얕은 해안가에서 자주 발견된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무척 생소했다. 바다는 과연 나에게 얼마만큼을 보여준 것일까. 살면서 나는 또 얼마나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을까.

언제나, 여행

길을 걷다 문득, 들려오는 참새의 지저귐에 화들짝 놀란 적이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니 가로수 아래서 몇 마리가 노닐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지저귀지 않았다. 아니, 도로 위를 질주하는 차량 때문에 더 이상 참새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건물 숲에 덮여 살다보니 그늘에 더 익숙하고, 시야가 좁아진 것만 같다. 신호등 아래 서 있거나, 길을 걸으면서도 스마트 폰에 시선을 뺏기는 날들이 늘어났다. 그럴 때마다 여행이 간절해진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때론 일상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렌즈 역할을 한다. 아스팔트에서 벗어나 흙을 밟을 때면 이십여 년도 지난 기억의 파편들이 불현 듯 눈앞을 스친다. 엉덩이를 흙바닥에 깔고 앉아서 모래성을 쌓고, 개미굴을 만들고, 구슬치기를 하던 나의 어린 시절이. 그러고 보니, 흙을 밟아본 게 언제였던가. 나의 발자국을 바라본 적이 언제였던가.

여행은 공간의 이동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 답은 시간에 있다. 절대시간을 지연시키고, 되돌리고, 더디게 만드는 힘이 바로 여행에 있다. 그렇다면 일상에서도 시간을 상대적으로 만드는 법을 알게 되면 그것은 바로 여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여행. 이것이 내 삶의 목표다.




언제나, 바다

남해를 여행할 때였다. 정월대보름을 맞아서 선구 포구를 찾았다. 선구 줄끗기는 대풍년을 기원하는 연례행사였는데, 경남무형문화제로 지정될 만큼 역사와 전통이 깊었다. 더군다나 천의 자연을 가진 남해의 포구였기에 대보름이 오기 전에 미리 답사를 했다. 선구 포구의 특산물을 찾아보다가, 털게라는 것을 발견했다. 겨울 끝자락이 제철인 이 털게는 이름처럼 몸과 다리에 털이 난 게 특징이었다. 가시처럼 털이 난 모양이 마치 밤송이 같다고 왕밤송이 털게라고도 불렀다. 허물을 벗을수록 그 크기가 커져서 살이 꽉 찬 털게는 향도 맛도 일품이었다. 도심에서 사십여 년을 지내다가 비로소 귀향한 한 선장님이 털게 잡이를 구경시켜 주었다.

보물섬이라 불리는 남해인 만큼 섬도 바다도 고유의 색을 뽐냈다. 지난밤에 미리 던져두었던 그물을 건져 올리자 처음 보는 생물이 올라왔다. 진한 보라색에 미끈미끈한 표피를 가진 연체동물이었다. 바다 달팽이라 불리는 기멍(군소)이라 했다. 그렇게나 바닷가를 쏘다녔지만 군소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기멍은 삶아서 제사상에 올리기도 하고, 신부 예단에도 쓸 수 있다고 선장님이 덧붙였다. 얕은 해안가에서 자주 발견된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무척 생소했다. 바다는 과연 나에게 얼마만큼을 보여준 것일까. 살면서 나는 또 얼마나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을까.

박민규의 단편소설 「깊」 은 2050여년 경,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에 도전하는 디퍼(해양탐사전문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많은 희생이 따르지만 그럼에도 끝끝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는 인간의 본능과 욕망과 허무가 묘하게 어우러진 수작이다. 서구 문학사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는 이오니아 해(海)의 작은 이타케 섬의 왕자 오뒷세우스의 10년간에 걸친 해상표류의 모험과 귀국에 관한 이야기다. 저 위대한 대서사시 이후로 거센 파도와 폭풍우가 가로막아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는 우리의 인생으로 비유되곤 한다. 세계문학의 걸작이라 평가되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 은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을 항해하며 거대한 흰 고래와 싸우는 여정을 그려냈다. 바다는 풍부한 서사를 만들어주고, 존재론적 물음을 던지게 한다.

과학의 발전에 따라 우리는 바다에 더욱 가까워 졌다. 어쩌면 바다는 근대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바다를 정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불어 살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거대 해일 같은 대재앙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공포에 대한 거절할 수 없는 탐닉은 인류를 더 깊은 바다로 이끌 것이다. 이는 우주의 신비를 풀어나가는 인류의 점진적 행보이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바다의 모습은 블랙홀 같은 미지의 세계이며 개인의 죽음 이후까지 포괄한 실재와 동일하다. 바다에 대한 탐구는 결국 이 세계에 대해 묻는 일이며, 이는 인간이란 무엇인지 묻는 인문학적 사유다. 그런 맥락으로 나에게 털게는 미지의 대상이었다.

“아니, 갑각류인 게에게 왜 이런 털이 나 있는 거죠?” 내가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을 던지자, 선장님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추워서 그런가봐.”

때론, 진리는 무엇보다 원초적이다.


언제나, 사랑

작년 11월, 여동생이 시집을 갔다. 처음 치러보는 큰 행사에 가족들 모두가 허둥대며 정신없이 보냈다. 결혼식을 마친 다음날, 어머니는 밥숟가락을 들고 우셨다. 아버지는 처음으로 여동생의 침대에서 주무셨다. 나는 여동생의 공백이 어색해서 부랴부랴 집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출가한 지 오년이나 되었기 때문일까, 이젠 혼자가 더 편해진 것이다. 미안한 마음은 그저 덮어두고, 자꾸만 집에 가야겠다는 말이 습관처럼 나왔다. 현관문을 나서면 곧장 후회할거면서도 나는 신발에 발을 욱여넣고 있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버선발로 나와서는 나의 등을 쓸었다.

“엄마. 은미 시집갔으니, 외로워서 어떡해요.”

내가 말했다. 나는 엄마의 눈물을 다시 끓어낼 작정은 없었지만 제법 감정적인 답을 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대답은 다행히 내 생각을 비켜갔다.

“괜찮아, 네 아빠가 있으니깐.”

그렇다, 엄마와 아빠는 사랑하는 사이다. 나는 그 사실을 간혹 깜빡할 때가 많았다.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나, 다정한 모습, 어떨 땐 불같이 열을 올리다가도 토라져 등 돌리는 모습, 그래도 정성스런 손맛으로 찬을 내오는 어머니와 더없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아버지의 모습들. 그것은 삶의 기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의 사랑이었다. 그 사랑의 증거가 바로 나인 것처럼.

포구를 여행할 때면, 부부가 한 팀이 된 배를 발견할 때가 있다. 선구 앞바다에서 만난 한 부부는 배 위에서 손낚시로 졸복을 잡고 있었다. 배가 고프면 라면 하나 끓여먹고, 쉬고 싶으면 바다 보며 눕고, 해가 저물면 뭍으로 돌아오는 부부의 모습에서 나는 우리 부모님을 떠올리고 말았다. 부부가 줄낚시를 하려고 앉아 있는 폼이 어찌나 똑같던지.

남해는 반농반어를 주업을 했기에 바다를 바라보며 농사짓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포구 가까이에서 만나 한 부부는 이제 처음 밭으로 나온 송아지에게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오래도록 익숙해져야지 스스로 밭을 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부부는 합을 맞춰가며 송아지를 길들였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길들여진 게 아니었던가. 육지는 바다에게, 바다는 육지에게.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문득 여우에게 묻는 어린왕자의 표정이 궁금하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지?”

나는 여행에서 사랑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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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오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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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필
문학청년
어쿠스틱 밴드 'Brujimao'의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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