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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의 숨은 보석 - 부산 해운대 미포

미포에서 사라진 것, 사라지지 않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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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해운대 백사장으로 걸어 나온다. 뒤돌아서서, 걸어온 길을 바라보면 풍경 속에 녹아든 오래된 포구를 마주할 수 있다. 미포를 언제 알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곳에 포구가 있다는 것, 새벽 3시에 배를 이끌고 어업을 나가는 어부들이 있다는 것, 작은 배들이 추위를 피하는 아기 새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포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 새벽 5시면 포구에서 장이 서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래, 그곳에는 아직 바다 사람이 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백하건데, 나는 4년 전까지 미포를 잘 몰랐다. 모를 수도 있지, 무슨 고백까지 거창하게 들먹일까, 의문을 가질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미포에 와 본 이들은 어쩌면 나의 고백을 이해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는 까닭은 미포와 해운대 백사장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은, 미포를 다녀가지 않았다면 해운대를 완전히 정복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부산이 고향인 나에게 해운대라는 공간은 청춘의 순례지라 말할 만큼 신성한 곳이다. 해운대를 수십 번이나 다녀갔음에도 나는 미포를 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갈매기와 새우깡, 휴가와 바다, 동백섬과 동백꽃, 백사장과 청춘남녀 등의 연결고리처럼 해운대와 미포는 하나로 이어져 있음에도…….

미포를 알게 된 것은 기사를 통해서다. 그 기사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뒤풀이는 미포의 길바닥에서 신문지를 깔고 이뤄진다는 내용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신문지와 미포와 나뒹구는 술병들이라니. 상상할 수 없는 이미지의 파편들 속에서 나는 미포라는 이름을 슬쩍 지나쳤던 것이다. 이후로도 김동호 명예위원장과 줄리엣 비노쉬가 신문지를 깔아놓고 소주를 마시다가 일어나서 관광버스 춤을 췄다는 둥, 모니카 벨루치가 소주를 나발로 마신다는 둥, 탕웨이가 폭탄주를 섞고 있다는 둥 출처모를 소문을 자주 듣게 되었다. 모든 것은 미포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외국 배우들의 어설픈 젓가락질로 인해 슬쩍 슬쩍 미끄러지는 해삼의 슬라이딩을 떠올리며 무작정 미포의 술자리를 동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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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렌의 노래처럼 매혹적인 미포의 밤

내가 미포를 찾게 된 것은 소주 맛을 어느 정도 알게 되면서다. 정확히 말하자면 윤제균 감독의 영화 <해운대>가 개봉을 한 이후이다. 그렇다면 불과 3, 4년 전인데, 20대가 거의 끝날 무렵에야 미포를 찾게 된 셈이다. 쓰나미가 해운대를 덮치는 상황을 스펙터클하게 찍어놓은 이 영화의 주 무대는 미포의 횟집이다. <해운대>가 개봉한 이후에 미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이후로도 세이렌의 노래에 이끌려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뱃사람처럼 미포의 밤에 홀리곤 했다. 나는 돛대에 몸을 묶고 세이렌의 노래를 듣는 지적인 오디세우스가 아니다. 사람이 좋고 바다가 좋고 술맛이 좋은 그런 순간이 오면 그저 미포의 밤으로 뛰어들고 마는 것이다.

미포로 가는 또 다른 이유는 해운대 저편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취중에서도 기어이 그러고야 마는 건, 위로만 앞으로만 뻗어가는 해운대를 바다 쪽으로 간신히 부여잡는 게 미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미포의 밤이 깊을수록 해운대의 마천루가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높아지는 건물들 한구석에, 여전히 바다처럼 몸을 굽히며 그물을 거두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물론 그러한 상념은 빈 소주병처럼 허무하다. 제법 취해서 꾸벅꾸벅 졸다보면 이미 어제의 밤은 마칠 시간이 온다. 새벽에 불어오는 바람과 어슴푸레 붉어지는 동쪽의 하늘과 여전히 바위를 적시는 자그마한 파도는 서서히 시간을 되찾아 준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해운대 백사장으로 걸어 나온다. 뒤돌아서서, 걸어온 길을 바라보면 풍경 속에 녹아든 오래된 포구를 마주할 수 있다. 미포를 언제 알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곳에 포구가 있다는 것, 새벽 3시에 배를 이끌고 어업을 나가는 어부들이 있다는 것, 작은 배들이 추위를 피하는 아기 새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포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 새벽 5시면 포구에서 장이 서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래, 그곳에는 아직 바다 사람이 산다.


미포에서 사라진 것, 사라지지 않을 것들

미포로 지인을 데려가면 나는 주로 바다를 등지고 앉았다. 부산을 찾은 손님에게 바다 쪽을 보게 하는 의도도 있지만 오히려 내 쪽에서는 달맞이 언덕으로 지나가는 열차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바위를 쓰다듬는 파도와 철로를 미끄러지는 열차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절묘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짧지만 강렬한 그 순간에는 누구라도 이야기를 멈추었다. 열차가 멀어지면 파도 소리가 이전보다 더 가깝게 들려왔다. 그제야 채워두었던 술잔에 손들이 가곤 했다.

2013년 12월 2일로 해운대와 송정을 잇는, 미포를 관통하던 동해남부선이 폐선 되었다. 더 이상 미포 앞바다에 앉아서 기차 지나가는 소리를 것은 불가능해졌다. 미포의 열차는 기억 속 저편에서 아득히 들려오는 소리로만 남았다.

처음부터 고백 운운했으니, 하나만 더 고백해보련다. 여행디자이너로 출연했던 ‘바다에세이 포구’라는 TV 프로그램의 다음 촬영지로 미포가 선정되었다. 도시 속 포구를 주제로 삼아, 어민들과 함께 해운대 앞바다에 나가서 조업을 하고, 높은 건물들 사이로 걸어가는 해녀를 촬영하는 게 주 컨셉이었다. 추운 겨울에도 미포는 새벽 3시만 되면 배들이 운항을 시작했다. 그물을 던지고 다양한 종류의 생선을 올려내는 건 성공적으로 잘 마쳤다. 그날따라 1m가 넘는 문어가 잡히기도 했다. 나는 방송을 아는 녀석이라며 기특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하지만 해녀 할머니들이 섭외요청을 거부하는 바람에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제작진의 삼고초려에도 해녀 할머니들은 단호히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촬영감독님과 나는 현장에서 직접 마음을 돌려볼 요량으로 긴급 투입되었다.

우리는 온종일 해녀 할머니들의 표정과 숨결과 말투를 신경써가며 인터뷰를 해보려고 애썼다. 할머니들은 다정하게 대해주면서도 촬영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날 역시 매서운 바람이 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할머니 두 분이 해녀복을 입고 물질을 나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따뜻한 차와 수건을 들고 할머니들을 마중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할머니들이 바다에서 올라왔다. 일본으로 수출을 한다는 귀한 돌 멍게를 한바구니 가득 담아왔다. 그때 우리는 무슨 정신이었을까. 카메라에 불이 켜졌고, 나는 인터뷰를 시작했다. 우리는 그 장면을 담아야겠다는 마음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건 마치 케빈 카터가 퓰리처상을 수상한 <수단의 굶주리는 소녀>를 찍었을 상황과 다를 바가 없었다. 카터는 사진을 찍은 이후에 곧장 독수리로부터 소녀를 보호했지만 작가의 윤리에 관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물론 이 에피소드는 그러한 역사적 사진에 비할 바도 아니다.) 다만 우린 어리석었고, 어떤 의미로는 잠시 정신이 나가있었다. 결과는 대참사였다. 할머니가 카메라를 향해서 물질용 칼을 휘둘렀다. 다행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할머니들의 입술은 파랗게 질렸고, 온몸은 식어 있었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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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소주와 미포

시퍼런 입술과 떨고 있던 손을 보며 옷을 벗어드리지 못할망정 카메라를 들이민 일은 어떤 이유에서건 명백한 폭력이다. 우린 사과를 하고 오해를 풀게 되었지만 나는 그 일을 오래도록 부끄러워하고 있다. 무심결에 뱉은 무지한 발언과 경솔한 행동들이 타인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미포의 바다는 뭔가 다 안다는 눈치다. 나는 미포에 가면 발가벗겨진 것만 같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미포에 간다. 해녀 할머니들에게 인사도 건네고, 가끔은 새벽 장에 나가서 이제 막 잡아온 생선을 구경하기도 한다. 장어를 굽고, 소주잔을 비우고, 바다를 향해 헛소리를 지껄이기도 한다. 여전히 나에게 미포는 새롭고 또한 낯설다. 서두에서 미포를 알게 된 지 4년 정도가 되었다고 고백했지만 이 글을 쓰는 동안에 생각이 바뀌었다. 누군가 나에게 미포를 아는 지 묻는다면 나는 모른다고 대답하련다.

잘 모르겠으니, 나 미포를 정말 모르니, 한번만 좀 데려가 주소. 해삼 한 접시에 소주 한 병만 마시고 헤어지는 겁니다.
미끈미끈한 해삼이 젓가락 사이를 잘도 빠져나간다. 당신과, 소주와, 미포가 그리운 그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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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오성은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
씨네필
문학청년
어쿠스틱 밴드 'Brujimao'의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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