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수사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 각종 심리의 보물창고
나는 왜 범죄물을 보는가
드라마는 참으로 다양한 장르를 가지고 있으며 그만큼 다양한 캐릭터들의 집합소다. 드라마 속 캐릭터의 다양성이나 소재의 다양성을 고려해 본다면 이런 드라마 중 심리를 읽기에 가장 적합한 드라마는 ‘범죄 수사 드라마’다. 에피소드마다 다양한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을 쫓는 쪽과 쫓기는 범인 사이의 팽팽한 심리 대결이 있기 때문이다.
범죄 수사 드라마로는 널리 알려진 CSI 시리즈가 있고 <크리미널 마인드>, <Law & Order 성범죄 전담반>, <NCIS>, <멘탈리스트>, <라이 투 미>, <본즈>, <클로저>, <캐슬>, <넘버스>, 일본 드라마로는 <레이디> 등 아주 많은 드라마가 있다. 이런 대결구도 이외에도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인 동시에 법의학자인 캐릭터가 주인공인 <덱스터>가 시즌8까지 방영되었다가 시즌9와 스핀 오프에 대한 기대를 남겨두고 막을 내리기도 했다. 미국 드라마 뿐 아니라 일본 드라마, 영국 드라마, 우리나라에서도 범죄 수사 드라마는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그만큼 인기가 있는 장르다.
같은 범죄 수사 드라마로 분류되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의 심리에 조금 더 무게를 실은 드라마가 있다. <크리미널 마인드>, <멘탈리스트>, <라이 투 미> 등이 그런 드라마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드라마의 공통점은 사람의 행동을 아주 세밀하게 분석해서 의미를 읽어 낸다는 데 있다. 작게는 저 사람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부터 크게는 대면하지 않은 한 사람의 구체적인 특징을 정확하게 맞히는 것까지 모두 위에 언급한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비언어적 요소, 바디 랭귀지를 분석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멘탈리스트>, <라이 투 미>도 무척 흥미롭지만 필자가 조금 더 끌리는 드라마는 <크리미널 마인드>다. 이 드라마는 미국 CBS방송에서 2005년부터 방영되어 현재 시즌9이 방영중이며 스핀 오프로 <크리미널 마인드 워싱턴 D. C>도 제작되어 오리지널 시리즈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인기를 얻었다.
<크리미널 마인드>는 미 연방 수사국의 프로파일링 팀 BAU(Behavioral Analysis Unit,인간행동 분석 팀) 소속의 요원들이 주인공이다. 요원들은 제트기를 타고 미 전역을 이동하며 이상심리와 인격 장애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연쇄살인 범죄현장을 찾아간다. 프로파일링을 완성해 나가며 범죄자를 압박하고 심리를 분석해 범인을 검거한다. 이후 범인에게 자백을 받거나 시체를 유기한 장소를 알아내기도 하며 이 과정에서 범죄자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다. 요원들은 범죄의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 되어 희생자가 될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앞에서 살인을 목격한다. 목숨을 걸고 한 팀의 동료를 구하는 끈끈한 팀워크도 발휘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범죄를 벌이는 범죄자들을 상대하며 그들의 심리를 분석해 검거하는 것이 직업인 <크리미널 마인드>의 요원들은 각자의 상처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극복해냈거나 극복하는 과정에 있으며 매일 치열한 현장에서 몸과 마음을 내던지며 팽팽한 긴장감을 견딘다.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다루는 범죄자의 잔혹한 범죄 행위를 통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악마성에 치를 떨거나 피해자의 지독한 고통에 마음이 아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 <크리미널 마인드>의 요원들이 사건을 해결하면서 겪고 느끼는 심리 상태를 들여다보는 것 또한 이 드라마의 흥미 요소다.
<크리미널 마인드>는 에피소드가 끝나면서 책의 어느 한 구절이나 명언을 인용해서 마무리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 중에서 하나를 인용하면
He who fights with monsters should look to it that he himself does not become a monster. And when you gaze long into an abyss the abyss also gazes into you.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래 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크리미널 마인드>를 연이어 보다 보면 악을 들여다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가진 잔인하고 추악한 면에 대해 익숙해지거나 분노하게 되어 사람에 대해 냉담해질지도 모른다. 괴물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것은 괴물을 더 이상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의 하나다. 누군가 필자에게 왜 끔찍한 범죄 이야기를 줄기차게 다루는 드라마 시리즈를 그렇게 열심히 보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사실 그 질문에는 날이 선 비난이 섞여 있었다. 혹시 그런 잔인한 범죄 장면을 보며 악을 간접적으로 맛보며 즐기는 게 아니냐는 추궁이 질문자의 표정 속에 묻어 있었다.
이렇게 답했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신창원의 한 마디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이 돈도 안 가져 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지라고 하는 소리를 들은 뒤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였다고. 그것이 자기 합리화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나 사람의 이상행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대체로 그것은 성장기의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내가 잔혹한 범죄를 다루는 <크리미널 마인드>를 열심히 챙겨 보는 것은 인간의 추악함에 대한 관음증적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함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기 위함이고, 나아가 사람을 치유하기 위함이라고 답했다.
타인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은 그만큼의 고통을 겪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 행복한 경험이 가득하고 사랑을 넘치게 받으며 안정적으로 성장한 사람이 잔인한 범죄를 태연하게 즐기며 쉬지 않고 일삼는 연쇄 살인범이 될 수 있을까? 물론,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 모두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잘 달래어 누르고 평범한 삶을 그런대로 꾸려 나갈 수도 있고 범죄자가 되거나, 범죄자를 검거하는 사람이 되거나 양 극단에 서는 경우도 있다. 이를 근거로 환경을 탓하지 말고 개인의 노력을 탓하라고 말해봐야 범죄자를 줄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괴물이 가급적 덜 생기도록, 아직 괴물이 되지 않은 사람들을 괴물이 되지 않게 돕는 것이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악으로만 가득한, 차마 저 존재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런 범죄자도 결국은 사람이며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種)이다. 앞에 어떤 비난의 수식어를 붙여도 그가 사람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고, 증오와 무관심을 선택하기보다 사랑과 관심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 회에는 <크리미널 마인드>의 에피소드와 캐릭터를 통해 범죄자의 심리와 요원들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크리미널 마인드>는 현재 시즌9까지 방영중이니 혹시 한 편도 못 봤지만 관심이 있다면 몇 편 정도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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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 누구를 만나도 늘 그 생각을 먼저 하는, 심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TV, 영화, 책, 음악, 여행, 와인, 고양이, 무엇보다 ‘사람’에 기대어 살며 ‘사람’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채워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