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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쉬고 싶은 사람들에게 - 『마지막 휴양지』

여기는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휴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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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상상력을 잃어버려 어찌해야할지 아득한 화가가 있다. 일은 해야 하니 불안해서 꾸역꾸역 책상 앞에는 앉아있는데 떠나간 ‘마음의 눈’은 돌아오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일하고 그림을 그리고 살아갈까?” 불안하다. 어떻게든 위기를 극복해보려고 처음에는 추억에 매달려 봤지만 어림도 없다. ‘상상력은 새 신발’이어서 ‘새 신발을 잃어버렸다면 가서 찾아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상상력을 찾으러 떠난 화가의 여행이야기를 담은 인노첸티의 『마지막 휴양지』 는 이렇게 시작한다.

“술이 떡이 됐구나!”라는 관용구(?)가 있는데 이 표현을 그대로 살린 광고를 보고 빵 터진 적이 있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 사람이 아닌 시루떡이 앉아있다니, 하지만 남 이야기가 아니다. 광란의 밤을 보내지 않았더라도 아침마다 일어나기 힘들어 하며 변기에 앉아 졸아, 걸어가며 졸아, 정신을 못 차리고 시루떡으로 빙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종종거리며 살다보니 어떤 때는 이러다 내가 나에게 잡혀 먹히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긴장했을 때는 모르다 긴장이 풀리면 영락없이 온 몸이 쑤시고 아프다. 늘 말썽을 부리는 어깨 근육은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려 손으로 뚝 떼어내도 될 성 싶다. 그럴 즈음이면 손가락 사이에서 소중한 게 빠져나가는 데도 꼼짝도 할 수 없어 그저 지켜본다. 머릿속에서 서걱서걱 모래바람 소리가 들리고, 귓속에는 초침이 짹짹거리고, 눈알이 하나씩 튕겨 나가버릴 듯 뻑뻑하고, 정신은 녹아버린 듯 희미해져 어디에 있는지 무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빈 육체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할 뿐이다. 그때, 간절히 쉬고 싶다.


풀기 어려운 숙제를 떠맡았을 때, 뭔가 결정해야 하는데 막막할 때,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여기 상상력을 잃어버려 어찌해야할지 아득한 화가가 있다. 일은 해야 하니 불안해서 꾸역꾸역 책상 앞에는 앉아있는데 떠나간 ‘마음의 눈’은 돌아오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일하고 그림을 그리고 살아갈까?” 불안하다. 어떻게든 위기를 극복해보려고 처음에는 추억에 매달려 봤지만 어림도 없다. ‘상상력은 새 신발’이어서 ‘새 신발을 잃어버렸다면 가서 찾아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상상력을 찾으러 떠난 화가의 여행이야기를 담은 인노첸티의 『마지막 휴양지』 는 이렇게 시작한다.


반표지와 속표지를 넘기면 인노첸티를 꼭 닮은 화가가 짐을 꾸려 떠난다. ‘외로움을 따라 망각 저편의 낭떠러지를 지나고 거미 번갯불이 치는 밤 한복판을 달려 마침내 정말로 특이하게 생긴 바닷가 호텔 아래쪽에 털털 소리를 내며’ 자동차가 멈추었다. ‘어딘지아무도몰라’ 마을에 있는 호텔에서 화가를 맞이하는 건 이름 모를 소년과 앵무새. 이들의 수수께끼 같은 환대를 받고 화가는 최고급 특실로 안내되어 왕의 만찬 같은 식사를 하고 책 한권을 들고 푹신한 침대에 누웠다가 이내 잠에 빠져든다.


요상한 호텔에 왔지만 화가는 하고 싶은 것도, 찾고 싶은 것도 없었다. 아마 그저 쉬고 싶었겠지. 하지만 호텔에 투숙한 손님들은 다르다, 뭔가 이상하다. 땅을 파고 또 파는 목발을 짚은 외다리 선원, 흰색 드레스를 입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책을 읽는 병약한 소녀, 특별한 글을 쓸 거라는 키가 작은 잿빛 사나이, 두루마리 지도를 든 키 큰 방랑자, 손님들을 예의 주시하는 작고 뚱뚱한 형사, 풍차기사를 기다리며 나무 위에서 식사하는 이상한 신사 등 손님들은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찾는 건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추어져 있다. 이 많은 사람들과 수수께끼는 대체 어떻게 풀리는 걸까. 화가는 ‘다리가 여덟 달린’ 손님들의 이상한 이야기를 짜 맞추느라 기진맥진하는 대신 이 방법을 택했다.
“나는 행복하게 잠들었다. 나의 떠돌이 상상력이 베개 아래서 이야기를 부드럽게 이끌어 갈 것이라는 희망에 위안을 얻고서,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이 매력적인 호텔의 효능은 그런 것이었다.”
휴양지에 온 손님들이 자신의 길을 찾는 과정을 지켜보며 화가 역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되찾고 짐을 싸서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가 쓴 한편의 코지 미스터리 같은 작품이다. 그림책은 처음 읽을 때는 정말 미스터리 처럼 읽힌다. 평온하지만 뭔가 비밀스러운 구석을 지닌 시골집이나 저택에 뜻하지 않은 방문자들이 모여들고 뭔가 석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난다. 과연 그 비밀은 무엇일까를 찾느라 성급하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결국 처음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화가가 찾는 것은 바로 휴식이자 상상력이었고, 그림책 속에 등장한 이상한 손님들의 이야기 역시 일종의 은유이기에 그림책은 천천히 읽기를 권한다. 이상한 손님들은 누구이고 찾는 것은 무언지를 알아맞히는 재미는 결국 화가의 상상력 찾기와 포개진다.

인노첸티는 볼로냐 라가치상 명예상,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브라티슬라바 황금사과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이다. 국내에도 『신데렐라』, 『백장미』, 『빨간 모자』 등 여러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주로 고전적인 동화를 그림책으로 다시 그리는 일을 주로 해왔다.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애니메이션과 포스터 작업을 하다가 그림책 작가로 데뷔했다. 그는 무척이나 디테일이 꼼꼼하며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정평이 높다. 『마지막 휴양지』의 호텔 식당이나 서재를 그린 장면은 거의 실사를 방불케 할 정도다. 한데 참으로 묘한 것이 무척이나 사실적인데 전체적인 느낌은 초현실주의의 그림을 보고 있는 것처럼 환상적 기운이 감돈다. 마치 밤길을 걷다 문뜩 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면 같은 풍경이지만 뭔가 달라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요상한 휴양지와 인노첸티의 그림은 그렇게 뭔가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내며 만난다.

잃어버린 마음이 있기에 그만 쉬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이곳을 권한다. 바닷가 모래 언덕 옆에 있는 외딴 호텔, 그 곳에서 그대는 왕처럼 먹고 푹신한 침대에서 실 수 있으리. “모든 것을 잊어버리세요. 여기는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휴양지예요.”


이 책과 함께 선물하면 좋을 것들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글렌 굴드(1981년 녹음), SonyMusic
바흐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천재적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죽기 일 년 전에 녹음했다. 미친 듯 휘몰아치며 치는 피아노와 글렌 굴드의 허밍 소리도 담긴, 마지막 휴양지에 챙겨야 할 음반!

『30년만의 휴식』 이무석 저 | 비전과리더십
휴식이 필요한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휴’라는 중년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마음의 짐을 덜어놓을 수 있도록 돕는 정신분석학자 이무석의 심리 에세이도 그 이유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것.


[관련 기사]

-프로포즈를 앞둔 커플에게 - 『토끼의 결혼식』
-혼내고 야단친 아이에게 - 『오늘은 좋은 날』
-이제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 『바람이 멈출 때』
-사랑한 사람과 이별한 뒤, 치유와 위로를 위한 그림책 - 『아모스와 보리스』
-엄마, 언제 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에게 - 『루와 린덴 언제나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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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미화

독일문학을 공부했고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는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출판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한미화의 서점가는 길’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에 어린이책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1-2』 등의 출판시평과 『잡스 사용법』, 『책 읽기는 게임이야』,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 등의 책을 썼다.

  • 30년만의 휴식 <이무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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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데렐라 <샤를 페로> 글/<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이다희>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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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휴양지 <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존 패트릭 루이스> 글/<안인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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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장미 <그리스토프 갈라즈> 저/<로베르트 인노첸티> 그림/<이수명>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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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간 모자 <에런 프리시> 글/<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서애경>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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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nn Gould>12,300원(19% + 1%)

바흐 전문 연주자로 알려진 글렌 굴드의 에디션.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연주도중 음악에 따라 흥얼거리는 모습이 그대로 담긴 1981년 녹음이다. 바흐의 생기발랄함과 웅장함을 그의 손끝에서 피아노의 건반을 통해 들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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