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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절절 혹은 일맥상통의 힘, <관상>

상상력과 사실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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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만 봐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본다는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은 기생 연홍(김혜수)의 제안으로 한양으로 향하고, 연홍의 기방에서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는 일을 하게 된다. 김종서(백윤식)는 내경이 용한 관상쟁이라고 한양 바닥에 소문이 돌게 되자 그에게 사헌부를 도와 인재를 등용하라는 명을 내리고, 그는 수양대군(이정재)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개봉 3일차에 봤지만,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관상>을 본지라 입소문도 충분히 떠돌고 있었다. 생각보다 별로다. 충분히 재미있다. 그리고 조정석이 조선시대의 납뜩이가 되어 돌아왔다는 것이 대부분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 참 구구절절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구구절절하다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만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는 가정 하에, <관상>이라는 영화가 보여주는 장점과 단점은 ‘구구절절’하다는 단어 안에 함께 녹아들어 있다. 생각보다 별로다, 라는 의견이야 영화에 대한 기대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충분히 재미있다는 의견이나, 조정석이 납뜩이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사실은 수긍할 수 있었다. 단 조정석이 동어반복을 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영화의 느슨해진 부분을 채워주고 윤기 나게 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본다는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은 기생 연홍(김혜수)의 제안으로 한양으로 향하고, 연홍의 기방에서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는 일을 하게 된다. 김종서(백윤식)는 내경이 용한 관상쟁이라고 한양 바닥에 소문이 돌게 되자 그에게 사헌부를 도와 인재를 등용하라는 명을 내리고, 그는 수양대군(이정재)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관상>의 시대적 배경인 계유정난은 문종의 이른 승하로 인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단종과 그를 보필하는 김종서, 그리고 조카인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해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까지 사건의 극적인 면은 물론, 김종서와 수양대군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인물간의 강한 대립까지 한 편의 완성된 이야기를 갖추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는 소재다. 그렇기에 일찍부터 계유정난은 대하사극으로도 여러 번 제작되어 관객들에게도 너무 익숙한 사건이기도 하다.



장점부터 말하자면 <관상>은 이미 기획단계에서부터, 흥행이 충분히 보장된, 혹은 예측 가능한 흥행 영화의 면모를 충실히 갖추고 있다. 당연하게도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여러 가지 장점들이 영화에 가득 차 있다는 얘기다.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관상’으로 나타나는 개인의 기질이 결코,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제 몫을 할 수 없다는, 또한 개인이 역사를 바꾸기 위해 아무리 노력하고 희생해도, 거대한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역사적 숙명 앞에서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주제어는 충분히 무겁지만,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이미 그 이름만으로 기대되는 배우들의 열연과 함께, 소소하게 녹아들어 있는 유머 코드, 눈물겨운 부성애라는 보편적이고 감성적인 정서까지도 유연하게 녹여내고 있다. 따라서 거대 배급사의 극장 싹쓸이와 홍보, 매력적인 배우들로만 주말의 놀라운 흥행성적을 이뤄낸 것은 아닐 것이다. 김종서와 수양대군 사이에 ‘관상쟁이’ 내경이 계유정난이라는 실제 역사에 깊이 관여되어 있다는 팩션의 상상력은 새로운 재미를 더한다. 절절한 부성애를 연기하는 송강호, 영화의 활력소 조정석, 카리스마 넘치는 백윤식, 홍일점 김혜수, 악랄한 악역 연기를 선보인 이정재, 가장 핫한 라이징 스타 이종석까지 배우들의 연기는 산으로 가려는 이야기를 잡고, 탄력을 잃는 순간 스매시를 쳐주며, 설득력 없는 이야기까지도 믿게 해주는 강한 힘으로 돌아오니 한재림 감독은 그저 배우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

<관상>의 단점 혹은 한계 역시 분명하다. 계유정난이라는 묵직하고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 자체가 이미 스포일러인데다, 추석 시즌에 찾아온 팩션 사극 <관상>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1,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해 보인다. 게다가 <왕의 남자> 이후 추석 시즌이면 어김없이 관객들에게 찾아오는 팩션 사극의 패턴에 관객들은 이미 너무 익숙해져 있다. 웃음 코드로 시작한 진지한 이야기로 귀결되는 패턴은 <왕의 남자><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충분히 반복된 흥행 코드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천대받던 하층민(<광해>의 광대, <왕의 남자>의 남사당패, <관상>의 관상쟁이)이 궁에 들어가 왕과 만나 역사의 소동에 휘말린다는 소재 역시도 이미 여러 차례 사용되었다. 따라서 <관상>은 그 결과를 미리 알고 있는 계유정난 속 개인사를 설득력 있게 그려야 하고, 익숙한 팩션 사극의 패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큰 숙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저 그런 범작이 될 수밖에 없는 숙명에 빠져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관상>은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크게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익숙한 패턴을 거듭 보여주면서 안정적인 노선을 택한다.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의 서두,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들에게 찾아오는 낯선 사람,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린 개인의 무기력한 대응, 그리고 액자식 스타일로 귀결되는 이미 예측 가능한 결말에 도달하면 <관상>이라는 영화와 우리는 이전에 보아왔던 수많은 팩션 사극영화의 장면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앞서 말한 배우들의 열연이 <관상>의 가장 큰 장점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훌륭한 배우들을 모아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이 딱 그 자리에서의 기능적인 역할 이외에 불꽃 튀는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장면이 없다는 점은 꽤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이는 한재림 감독이 인물의 장점을 고루 안배하는 균형보다는 이야기의 축에서의 기능적인 역할을 조율하는데 더 힘을 기울였기 때문인 듯하다. 또한 한재림 감독은 역사적 사실을 현재에 불러오는 방법에도, 개인을 역사 속에 밀어 넣는 방법에도 남다르거나 독특한 장치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야사’로 흘러가던 이야기가 대하드라마로 변하는 순간, 가상의 인물들이 힘을 잃고 표류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의 소동 속 개인과 살기 힘든 민초들의 삶 속 깊이 카메라를 들이댄 시선과 부당한 세상에 맞서 싸우는 정의에 대한 갈망은 <왕의 남자> 이후 관객들의 마음을 충분히 움직일 만한 ‘일맥상통’의 힘이 있다.


상상력과 사실의 경계 : 팩션 사극들


<황산벌>

천만 영화 목록에 팩션 사극이 두 편이나 올라 있을 정도로 팩션 사극은 한국 영화계에서 나름 흥행이 보장된 하나의 장르영화가 되었다. 그 시작은 이준익 감독의 2003년작 <황산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 대표적인 황산벌전투의 김유신, 계백, 김춘추, 의자왕 등과 함께 가상의 인물 거시기가 만나 벌어지는 기막힌 상상력이 돋보인 영화였다. 이어 2005년 이준익 감독은 연산군과 아름다운 광대 공길, 우직한 장생 사이의 역사적 사실과 사랑, 우정의 이야기를 통해 사극 영화의 천만 시대를 처음 열었다. 이후 팩션 사극은 다양한 모습으로 관객을 유혹했고, 대부분 평균 이상 흥행에 성공했다.


<왕의 남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008년에는 조선후기 화가 신윤복이 여자라는 가정 하에 에로틱한 상상력을 보였던 <미인도>와 공민왕이 동성애자라는 가정 하에 호위무사와 왕후 간의 삼각관계를 그린 <쌍화점>, 조선사에 등장한 다연발 로켓 화포 ‘신기전’을 소재로 한 <신기전>이 개봉했다. 2009년에는 고종, 대원군, 명성황후가 주인공인 애절한 로맨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도 있었고, 2012년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그가 성군이 되는 과정을 그린 코미디였다. 같은 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서빙고에 비밀의 방이 있다는 가정 하에, 사도세자가 아들 정조를 위해 남겨둔 유물을 찾는 도둑들의 신나는 어드벤처물이었다. 이외에도 강우석 감독의 2006년 작 <한반도>는 고종에게 숨겨진 옥새가 있다는 가정을 담았고, 2012년 <가비>는 커피로 고종을 독살하려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상상한다. 2005년 이순신이 21세기의 남북한 장교를 만나 용기를 얻는다는 <천군>과 2009년 한국이 여전히 일빈 식민지라는 가정 하에 만들어진 <로스트 메모리즈>는 SF 장르의 영화였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역사적 사실을 담아낸 영화는 강풀 원작의 <26년>이다. 1980년 5월 광주 비극의 원흉이지만, 여전히 잘 먹고 잘 사는 인물, 후손들이 뼈아픈 통증을 마음에 품고 그 사람을 암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현재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가슴 아픈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였다.


<26년>

영화 <26년>처럼 친일파 문제부터 시작해 정신대 할머니, 독도 분쟁, 독재정권 등 현대사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역사적 청산'을 경험하지 못한 한국인들에게 역사는 늘 묵직한 무게로 남아있다. <왕의 남자>부터 <관상>까지 이제까지 흥행에 성공한 팩션 사극을 보면 정치는 늘 민심을 배반하고, 무자비한 권력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바람을 짓밟는다. 희망 보다는 권력에 무너지는 개인을 그린 사극에 관객들이 호응하는 이유도 이런 역사적 패배감이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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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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