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인들을 위하여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사람은 변한다 사랑도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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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은 스물넷의 나이에 이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썼다고 한다. 갓 스물을 넘은 그녀가 썼다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심리 묘사와 완숙한 감정의 처리가 놀랍다. 오래된 연인들의 권태로움과 새로운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그렇지만 이 사랑 역시 지금 자신이 겪는 권태를 맞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아는 한 여인의 난해하고 복잡한 감정을 잘 그려냈다.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적힌 쪽지와 함께 찾아온 새로운 사랑이 있었다.

서른아홉 살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폴. 그녀는 아직 미혼이지만 로제라는 오래된 연인이 있다. 로제는 비록 이혼 경력이 있지만 둘은 마음이 잘 맞았고 금세 서로 사랑에 빠졌다. 다만 로제는 한 번의 이혼 경험 때문인지 함께 살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주말이면 폴을 찾아와 행복한 주말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그래도 폴은 로제를 사랑했기에 이 상황을 이해했다. 서로에 대한 독립성을 존중하는 더 나은 관계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둘 사이에도 권태가 찾아왔고, 권태 속의 독립성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 아닌 무관심으로 느껴졌다. 폴은 로제의 태도가 예전 같지 않음을 눈치챘다. 출장을 핑계로 주말에 도시를 떠나 있고, 연락도 뜸해져만 갔다. 정해 놓은 약속도 일을 핑계로 깨뜨리기가 일쑤였다. 그에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몽이라는 젊은 청년이 그녀 앞에 나타난다. 그녀보다 열 살 가까이 어린 데다 지나칠 정도로 잘생겼고, 부잣집 도련님이었으며, 피 끓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시몽이 나이 많고 볼 것 없는 폴에게 사랑을 고백한 것이 아닌가. 그는 젊은이의 패기로 그녀에게 적극적인 애정 공세까지 펼치기 시작한다. 밤새워 쓴 편지 보내기, 집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기, 간절한 눈빛으로 데이트 신청하기 등 그녀에게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격정적인 사랑의 표현들이었다. 시몽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적힌 쪽지와 함께 콘서트 티켓을 보내왔고, 그 쪽지를 받은 폴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그 등장인물인 ‘사강’이 마음에 들어 자신의 필명으로 삼았다는 프랑수아즈 사강은 스물넷의 나이에 이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썼다고 한다. 갓 스물을 넘은 그녀가 썼다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심리 묘사와 완숙한 감정의 처리가 놀랍다. 오래된 연인들의 권태로움과 새로운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그렇지만 이 사랑 역시 지금 자신이 겪는 권태를 맞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아는 한 여인의 난해하고 복잡한 감정을 잘 그려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영화화한 <Goodbye Again, 1961> 중

오래 연애를 하면 그 감정이 너무 익숙해져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더 이상 떨림이 아닌 평범함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새로운 사랑이 다가온다면 누구나 흔들린다. 그것은 배신을 하는 것도,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다.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잔잔하던 물의 표면이 흔들리듯 우리네 마음도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강은 그 과정에서의 심정 변화를 너무나도 섬세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마치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듯이 말이다.

사랑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한다는 것, 그리고 그 변해가는 사랑을 지켜보는 일이 생각보다 고통스럽다는 것, 또다시 사랑은 찾아오지만 그 사랑도 변할 걸 알기에 선택할 수 없다는 것. 이 모든 복잡한 심정이 녹아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호기심이 익숙함으로, 떨림이 편안함으로 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진리다. 그리고 그 당연한 진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오래된 연인들을 위한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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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산책 리듬 저 | 라이온북스
어떻게 살고 사랑하고 꿈꾸며 일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네이버 파워블로거 ‘리듬’의 독서 에세이. 그녀는 [달콤 쌉싸름한 일상]이라는 블로그를 통해 지금까지 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과 자신의 책 이야기를 나눴다. 책에 대한 짧은 감상과 자신만의 생각을 덧붙여 놓은 그녀는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내 안에 남겨야 하는지에 대한 독서 팁도 꼼꼼히 챙겨준다. 잠도 오지 않는 헛헛한 밤에 읽기를 권하는 《야밤산책》은 마치 책의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듯 당신을 고요하고도 명랑하게 위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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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리듬

6년 전 어느 날 누군가가 버리고 간 책 무더기에서 《리듬》이란 책을 발견하고 그 책에 감명 받아 그날부터 ‘리듬’이 되기로 했다. “나는 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바람처럼 하늘처럼 달처럼…… 변하지 않고 있어주는 것이 좋다”는 책 속 구절처럼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를 지켜주는 책의 매력에 빠졌고,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흔들리던 20대 중반 책으로부터 큰 위로를 받아 출퇴근길 지하철을 독서실 삼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읽은 책은 꼭 블로그에 기록을 남겼고, 그렇게 남긴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이제 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다녀간 유명 블로거가 되었다. 애서가이기는 하나 장서가는 아니라 소장한 책이 1,000권을 넘은 뒤로는 적정량의 책을 유지하게 위해 읽은 책은 과감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22개 성 모두를 여행하는 게 꿈이다. [대학내일] 인터뷰와 [우먼센스], [쎄씨] 등에서 책벌레로 소개되며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4년 연속 네이버 책 분야 파워블로거로 선정되었다. 지금은 제이 콘텐트리엠앤비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잘나가는 회사는 왜 나를 선택했나?》(공저) 등이 있다.
<리듬의 달콤 쌉싸름한 일상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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