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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2,900 페이지를 만들다 <배를 엮다>

사전을 만드는 편집부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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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때로는 무력하다. 아라키나 선생의 부인이 아무리 불러도 선생의 생명을 이 세상에 붙들어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고 마지메는 생각한다. 선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말이 있기 때문에 가장 소중한 것이 우리들 마음속에 남았다.

35.jpg「배를 엮다」가 일본 서점대상 1위를 차지했다고 했을 때 , 그리고 그 이야기가 사전을 만드는 편집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그 이야기가 재미있어봤자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그냥 흘려보냈었다. 요즘은 모든 것이 전자 사전으로 대치되어 사전 자체도 보기 힘들다. 게다가 단어들만 쭉 나열되어 있고 그것이 무미건조하게 설명된 사전을 만드는 일은 그냥 생각해도 별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누군가의 리뷰를 읽게 되었고, 그 리뷰가 나의 마음을 움직여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리뷰어의 말대로 이 책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소설은 겐부쇼보에서 37년간 사전 만드는 일을 한 아라키와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사전 편찬의 외길을 걸어온 편집부 고문 마쓰모토 선생의 대화로 시작한다. 둘은 수많은 세월을 함께하며 사전 만드는 일을 해왔고, 이제 마지막으로 편집부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 《대도해》라는 새 사전을 만들 계획을 세운 참이었다. 

워낙 장기 계획이기에 대를 이어 만들 새 편집자가 필요했고, 마침 마지메가 거론된다. 조금은 어리숙하지만 차분한 성격을 지닌 마지메가 편집부에 승선하면서 본격적인 사전 작업에 돌입한다. 


사전 작업은 용례채집카드를 만들면서 시작한다. 언어라는 것은 생물과 같아서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기도 하고, 뜻이 변하기도 하며, 새롭게 생겨나기도 한다. 때문에 단어집을 만들어 매일같이 체크하며 꼭 넣어야 하는 것, 애매한 것, 채택하지 않아도 될 만한 것들을 수시로 체크한다. 전문가의 설명이 필요한 것은 각계 전문가들에게 그 단어를 뿌리고, 편집부에서 원칙을 정해 그 용어 설명을 받아낸다. 여기서 단어 설명은 객관적이어야 하고, 간결해야 하며, 분명해야 한다. 이 작업도 만만치 않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주관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수많은 논의가 오간다. 예를 들어 ‘남자’에 대한 설명을 ‘여자의 반대’라고 하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또 ‘연애’를 ‘특정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느껴 고양된 기분으로…’라고 설명하면 동성 간에 느끼는 특별한 애정의 감정은 설명될 수 없다. 때문에 조금 더 면밀한 정의가 필요하다. 그렇게 너무 당연한 것들도 다시 한 번 체크하고 토의하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인 단어 설명을 위해 고치고 또 고친다. 


그렇게 용어채집만 수년, 그 사이 편집부에는 새로운 후배들이 들어오고 신입이었던 마지메는 편집장의 자리에 올랐다. 5교는 기본이고, 단어 하나가 빠진 것이 발견되었을 때는 모든 사람이 일주일간 밤샘 작업을 하며 다른 실수가 없는지 처음부터 다시 뒤진다. 종이 하나, 장정 하나에도 몇 년간의 개발을 통해 사전과 어울리는 것으로 만든다. 《대도해》 기획부터 편찬까지 1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바뀐 시대의 트렌드에 맞춰 끝까지 단어 선택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그렇게 《대도해》라는 사전이 탄생하기까지 15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 사이 마지메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하고, 마쓰모토 선생은 건강 악화로 사전 완성을 목전에 둔 채 세상을 떠난다. 사전 편집부에 있다 다른 부서로 좌천된 니시오카는 밖에서도 끊임없이 사전 편집부를 지원하고, 그 사이 들어온 신참 기시베는 이해할 수 없는 편집부의 모습에 방황하지만 어느 새 가장 중심부에서 사전을 만든다. 사전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 

의 일인지라 하나의 목표를 위해 끈끈하게 뭉친 이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책을 읽다 보니 나에게도 사전에 얽힌 추억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처음 사전을 선물 받았던 날 제일 첫 글자는 무엇인지 궁금해 첫 장을 펼쳐봤었다. 또한 몸의 은밀한 부위는 어떻게 설명되는지 궁금해 조심스레 그 단어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또한 한 단어를 찾으려고 페이지를 찾다가 그 주변에 눈에 띄는 처음 보는 단어에 한참 동안 그 설명을 읽었던 기억도 났다. 잊고 있었지만 나도 사전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 어쩌면 그 사전 덕분에 지금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가 보면 참으로 부질없고 지긋지긋한 일이지만, 그들이 있기에 우리의 언어가 계속해서 보존되고 전승되며 진화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그 사전 편집부에 있었다면 과연 나의 일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몇 번이나 해체 위기에 처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심지어 누군가는 나의 일을 쓸데없는 일이라 생각한다면 더더욱 말이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저자는 몇 년간이나 출판사의 사전 편집부로 출근했다고 한다. 저자의 노력과 프로의식에 큰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지금도 사전을 만들고 있을 세상의 모든 사전 편집자에게 머리 숙여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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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산책 리듬 저 | 라이온북스
어떻게 살고 사랑하고 꿈꾸며 일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네이버 파워블로거 ‘리듬’의 독서 에세이. 그녀는 [달콤 쌉싸름한 일상]이라는 블로그를 통해 지금까지 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과 자신의 책 이야기를 나눴다. 책에 대한 짧은 감상과 자신만의 생각을 덧붙여 놓은 그녀는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내 안에 남겨야 하는지에 대한 독서 팁도 꼼꼼히 챙겨준다. 잠도 오지 않는 헛헛한 밤에 읽기를 권하는 《야밤산책》은 마치 책의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듯 당신을 고요하고도 명랑하게 위로할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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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리듬

6년 전 어느 날 누군가가 버리고 간 책 무더기에서 《리듬》이란 책을 발견하고 그 책에 감명 받아 그날부터 ‘리듬’이 되기로 했다. “나는 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바람처럼 하늘처럼 달처럼…… 변하지 않고 있어주는 것이 좋다”는 책 속 구절처럼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를 지켜주는 책의 매력에 빠졌고,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흔들리던 20대 중반 책으로부터 큰 위로를 받아 출퇴근길 지하철을 독서실 삼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읽은 책은 꼭 블로그에 기록을 남겼고, 그렇게 남긴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이제 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다녀간 유명 블로거가 되었다. 애서가이기는 하나 장서가는 아니라 소장한 책이 1,000권을 넘은 뒤로는 적정량의 책을 유지하게 위해 읽은 책은 과감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22개 성 모두를 여행하는 게 꿈이다. [대학내일] 인터뷰와 [우먼센스], [쎄씨] 등에서 책벌레로 소개되며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4년 연속 네이버 책 분야 파워블로거로 선정되었다. 지금은 제이 콘텐트리엠앤비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잘나가는 회사는 왜 나를 선택했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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