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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한 러셀의 제안, 자신에 대해 무관심해져라 -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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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은 사소하고 즐거운 일에 집중함으로써 경쟁에서 꽤 긴 시간 눈을 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에 더욱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고도 했다. 러셀의 경험과 주장대로 취미는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며, 열정은 행복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열쇠다.

아주 오랫동안 책장 한 켠을 조용히 지켜온 고전을 다시 읽기 시작하며 내면에서 울리는 질문은 한결 같았다.

“인생, 정말 살 만한 것일까?”

40년을 살아놓고 인생은 살 만한 것인지 되묻다니, 이처럼 실없는 물음이 어디 있을까. 너무 늦은 물음 같기도 했다. 이미 10대에 겉멋에 취해 친한 친구와 치기 어린 고민을 나누었다. 또 20대에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인생이 살 만한 것인지 심각한 토론을 반복했다. 그리고 지금은 기름에 튀긴 싸구려 땅콩과 맥주를 기울이기보다 고급 와인을 홀짝거릴 정도로 물질적인 환경은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술을 마시다 이르게 되는 마지막 종착역은 역시 허무한 인생이었다.

40대는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같은 ‘고독한 시기’라기보다, ‘마지막 사춘기’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직장 상사에 대한 뒷담화와 자식 걱정, 일등만 기억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다가 마지막에는 ‘왜 이러고 사는지’라며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술자리에 동석한 사람은 바뀌어도 매번 반복되는 레퍼토리다. 10대 때 겪은 ‘질풍노도의 시기’는 그나마 발전을 위한 시행착오라고 여길 수 있지만, 40대에 겪는 인생에 대한 고민은 별반 소득 없는 푸념이 될까 봐 두렵다.

그렇게 고민했어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풀지 못했으니, 이쯤 되면 앞으로도 시간만 허비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우리는 허무한 인생을 바꿀 해결책을 찾기보다 ‘인생이 살 만한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를 의심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죽지 못해서 살든 살고 싶어서 살든 살아야 한다면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인생을 만들어가느냐’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인생의 본질적 문제는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행복하게 사느냐, 불행하게 사느냐’인 셈이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약속된 미래가 아니다

행복만큼 인류 역사에서 관심을 받은 화두도 없을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쇼펜하우어 등 수많은 철학자와 구도자, 심리학자들이 행복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인간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행복이 연구 대상인 걸 보면 행복만큼 정의내리기 어려운 감정도 없는 모양이다. 분명한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행복을 바라지만, 그 행복의 모습이 결코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이는 행복하다고 느끼는 반면, 어떤 이는 불행하다고 호소한다.

그 때문인지 행복을 연구한 철학자들이 내세운 행복의 조건에도 차이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지닌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한 상태’, 즉 자아실현을 행복이라 정의하면서 행복의 조건으로 지혜, 사랑, 선한 의지를 꼽았다. 반면 칸트는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당신은 지금 행복하다’라고 행복을 구체화했다. 또 인간이 살아가는 주요 목표가 행복이라고 생각한 달라이라마는 행복이나 불행은 ‘우리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자신이 가진 것에 얼마나 만족하는가에 달려있다’라며 개인의 자세를 중요시 여겼다.

최근에 사회적 공감대를 얻고 있는 긍정심리학에서는 행복은 ‘인생을 이끌어가게 하는 진정한 영적인 에너지이며,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습관’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행복을 둘러싼 이론의 홍수 속에서 내가 선택한 이는 러셀이다. 러셀은 왠지 철학자적인 느낌보다 인간적인 느낌이 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행복하게 태어나지 않았고, 청년 시절에는 삶을 증오해서 자살의 유혹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에서 행복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는 회의적이었다. 그러던 그가 삶을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직장 동료도 아니고, 20세기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철학자가 불행했던 자신이 행복해진 과정에 대해 들려주겠다는데, 어떻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러셀의 행복론은 상당히 명쾌해서 나처럼 철학적인 지식이 없는 이들이 이해하기 쉽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러셀은 행복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약속된 미래가 아니고, 노력해서 정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크게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Causes Of Happiness)’와 ‘행복으로 가는 길(Causes Of Happiness)’로 나누어 우리를 행복으로 안내한다.


행복하기 위해 반드시 버려야 할 것

『행복의 정복』은 행복에 대한 가장 명쾌하고 구체적인 책이다. 그가 보기에 불행의 원인은 단순하다. 아무 이유없이 불행해하면서 그 불행의 원인을 우주의 본질로 돌리는 ‘바이런적 불행’에서부터 경쟁, 권태, 피로, 질투, 죄의식, 피해망상, 여론에 대한 공포까지 여러 가지 원인을 제시하고 있지만 불행의 원인을 뭉뚱그리자면 한마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몰입이다. 자기도취나 과대망상, 모두가 나만 미워한다는 합리적이지 못한 자기비하 등의 감정은 우리를 자기 안에 가두어 행복이 머물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은 바로 자기집착이다. 자기집착은 쉽게 말해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집착은 여러 불행의 요소를 낳을 수밖에 없는데, 대표적인 것이 쓸데없는 걱정이다. 러셀의 말대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과로가 아니라 걱정이나 불안이다. 나의 경우,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혹시 상대방이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을 한다. 또 어떤 때에는 내가 쉬면 큰일이 날 것 같아 휴가조차 제대로 쓰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나에게 러셀은 “모두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며 강펀치를 날린다.

당신의 장점을 과대평가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당신과 마찬가지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상상하지 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을 해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만큼 당신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고 상상하지 말라.
30대의 내가 송두리째 조롱당하는 기분이 들면서도 속이 후련해지는 통찰력이었다.

러셀 역시 불행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었는데, 바로 그 비결은 “내가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서 대부분은 손에 넣었고, 본질적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단념했기 때문이다.” 라고 서술했다. 이런 경험과 관찰을 통해서 러셀은 불행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고, 자신의 믿음이 사람들의 상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고 언급한다.

이 책의 비결을 통해 불행을 겪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일부만이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거기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기 바란다. 나는 불행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노력하기만 하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이 책을 썼다.


나에 대한 집착이 낳은 행복의 적, 경쟁

집착이 낳은 가장 큰 불행의 요소는 경쟁이다. 러셀은 현대인들이 성공하기 위해 경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공이 인생의 목적인 사람은 성공 이후에는 권태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할 일이 없는 것을 참을 수 없으니 다른 자극을 찾아나서야 한다. 경쟁은 쳇바퀴처럼 계속된다. 바로 이와 같은 경쟁이 행복한 인생을 방해하는 중요한 저해요소라고 러셀은 지적한다. 대부분 미국인들은 안전한 투자를 위해 4%의 이익을 거두기보다 위험한 투자를 해서 8%의 이익을 얻는 것을 선호한다. 결국 이들은 자주 타격을 입게 되고 끊임없는 근심과 걱정에 시달린다. 나는 돈이 있으면 생계를 걱정하지 않으면서 여가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현대인들은 돈이 있으면 그것을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벌고, 돈이 많은 것을 과시하면서 이제껏 엇비슷하게 살던 사람들을 따돌린 채 호사스럽게 살기를 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나는 스트레스라는 가벼운 용어로 내 삶을 불행으로 이끄는 경쟁의 부작용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러셀의 지적대로 경쟁사회에 매몰되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불행’해진다! 스트레스와 불행은 어감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만일 경쟁에만 집중하는 것이 불행의 지름길이라면,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불행은 술 몇 잔이나 여행을 통한 기분전환으로 해결되지 않는 근원적인 문제니 말이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소주 한 병으로 쉽게 치유되는 일시적인 증상이다. 스트레스라는 단어는 경쟁을 순화시켜 이를 지각하지 못하도록 만든 덫일지도 모른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러셀의 진단법에 따르면, 경쟁에 매몰된 나는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의 상태이다. 바쁜 생활 속에서 행복과 불행에 관심을 둘 여유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행복해지기 위해 얼마 되지도 않는 사회적 지위와 월급 등을 버리고 방외지사(方外之士ㆍ제도권에서 떠나 있는 선비)가 될 용기도 없었다. 다행히 러셀은 나 같은 ‘현실안주형 인간’도 노력하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나 이외의 것에 대한 관심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청년 러셀은 늘 자살의 유혹에 시달렸지만 그가 네 번의 결혼을 하면서 97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수학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발판으로 이 책 곳곳에는 행복해지기 위한 비결로 우호적인 시선, 따뜻한 사랑, 열의 등과 같은 삶의 자세를 무척 강조한다.

가능한 한 폭넓은 관심을 가져라. 그리고 가능한 한 당신이 흥미를 갖고 있는 사물이나 인간에 대해 적대적이기보다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라.
세상에 대한 관심은 취미에 몰두하는 것도 포함된다.

어떤 취미에 몰두하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 신념에 헌신하는 것과 같다. 생존하는 가장 저명한 수학자 중의 한 사람은 그의 시간을 수학 연구와 우표 수집에 동등하게 분배하고 있다. 우표 수집은 수학 연구에서 진전을 보지 못할 때에 위안이 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러셀은 사소하고 즐거운 일에 집중함으로써 경쟁에서 꽤 긴 시간 눈을 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에 더욱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고도 했다. 러셀의 경험과 주장대로 취미는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며, 열정은 행복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열쇠다.


행복은 정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러셀이 말하는 행복론은 나에 대한 관심을 멈추고 되도록 외부 세계에 폭넓은 관심을 가지는 것, 그리고 외부의 사물이나 사람들에게 따뜻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간결한가. 사실 우리에게는 행복에 대한 환상이 있다. 행복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났는데 알고 보니 바로 내 옆에 있었다는 파랑새 동화에서부터 하루에 감사할 일에 대해 네 번씩만 적어 보면 행복해진다는 것까지 행복에 대한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책들은 행복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인데 우리 주변에는 행복한 사람들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러셀의 행복론에 공감이 가는 것은 간단명료하면서도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현실적이라는 점은 단지 나는 행복하다라는 마음의 주문을 넣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지침이라는 의미이다.

나에 대한 관심을 접고, 외부 세계로 폭넓게 관심을 가질 것!
러셀의 조언대로 행복해지기 위해 나는 마흔이 되는 해에 걱정을 멈출 휴식을 줄 참이다. 아이 교육 걱정, 집값 걱정, 직장 걱정은 지난 20여 년 동안 충분히 해왔고,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계속할 고민이다. 단 1년만이라도 걱정 휴식년제를 갖고 폭넓은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질 기회와, 충분한 잠과, 취미를 즐길 시간을 갖고 싶다. 이런 노력으로 내가 행복해질지는 나 역시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나는 이런 노력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어쩌면 행복은 우리가 그토록 가고 싶은 종착역이 아니라 이처럼 고군분투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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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고전에게 인생을 묻다 이경주,우경임 공저 | 글담
이 책은 저자들이 읽은 고전 중 마흔 즈음 독자들과 함께 읽고 싶은 24권의 고전을 엄선해 24편의 그림과 함께 수록했다.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젊을 때보다 다시 읽을 때 더 큰 감동을 느꼈던 『데미안』과 『노인과 바다』, 세상의 흐름을 이해하게 도와준 『불확실성의 시대』, 『소유의 종말』 등 동서양의 다양한 고전들을 만날 수 있다. 고전을 읽은 것으로 삶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들처런 삶의 본질과 마주할 용기를 얻고 마흔의 문턱을 조금 낮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흔, 책을 만나다

흔들리는 마흔,
이순신을 만나다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
마흔 즈음에 읽었으면
좋았을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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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주, 우경임

이경주
열심히 살면 행복하다는 신념을 가진 전형적인 워커홀릭. 마흔을 앞두고 열심히 뿐 아니라 잘 살고 싶다며 고전을 들었다. 속독과 다독을 통해 며칠이고 마음을 빼앗길 명문장을 캐내는 것을 즐긴다. 현재 서울신문 경제부 기자. 연세대에서 영문학·심리학을 전공했고, 동국대학원에서 광고홍보학 석사를 받았다. 2012년 7월부터 1년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UNC) 저널리즘대학에서 방문연구원(visiting scholar)으로 지내고 있다.

우경임
읽기를 놀이 삼아 자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절박한 학습이었다. 딱히 잘못된 것은 없는데 인생의 실타래가 꼬인 것만 같았다. 이리저리 용을 써 봤자 더욱 복잡해질 뿐이었다. 행간에서 답을 찾고자 빨간 줄을 정성껏 그어가며 읽었다. 정독을 즐기는 작가는 현재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연세대에서 사회학·심리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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