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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채식주의가 불가능한 이유

진보적 채식주의자되기 채식주의의 반대는 노예제도의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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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극단적 진보주의자의 입장을 존중한다. 노예제 철폐를 주장한 사람들도 당시에는 극단적인 진보주의자들로 대중에게 불편한 마음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노예제가 없어졌고 사람들의 인권의식도 높아졌다. 그런 극단적 진보주의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도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채식이다.

나는 채식주의를 옹호하는 싱어의 이론을 처음 접하던 그때나 지금이나 이 논증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부터 한참 동안은 전혀 실천하지 못했고 지금도 절반밖에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할 의지력이 부족해서다. 어떤 행동이 옳은지를 일러주는 이성과, 본능적으로 따르게 된 습관의 싸움에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너무 쉽게 본능에 자리를 내주고 만 것이다. 담배를 끊어야 할 이유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끊기로 결심했지만 끊지 못하는 사람과 똑같은 상황이다.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담배를 피우는 것, 고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고기를 먹는 것, 이런 일은 자제력 또는 의지력이 없기 때문에 생긴다. 자제력이 없다는 것은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또는 어떤 행동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그와 반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고기를 먹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오랜 습관과 생활환경 때문에 당장 채식을 할 수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논리적으로만 말하면, 동물의 고통을 아는 즉시 모든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가장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이런 진보적 채식주의자들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실천적으로는 좋은 전략이라고 하기 어렵다. (채식주의가 진보주의인가? 육식 위주의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태도이니 진보주의라고 해두자.)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채식을 하기 전에는 먹을 것을 가리는 사람이 영 불편하게 느껴졌다. 가까운 분 중에 돼지고기를 안 먹는 사람이 있었는데, 회식 장소를 고를 때마다 돼지고기 메뉴를 피하다보니 선택의 여지가 줄어들어 늘 구시렁거렸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다보면 운동의 목표를 달성하기보다는 반감을 사기가 더 쉽다. 회식 때 고깃집에서 함께 고기를 먹자는 말이 아니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 함께 어울리면서 버섯을 구워서 먹으면 된다. 그러나 버섯에 고기 기름이 묻을까봐 걱정할 정도의 진보주의자라면 아예 회식자리에 어울려서도 안 된다. 채식이 옳다는 것을 설득하기는커녕 채식주의자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인식만 남길 수가 있다.

진보주의자의 또 다른 문제는 진보주의자로 일관되게 살기가 참 힘들다는 것이다. 동물이 고통 받는 것이 싫어서 철저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면, 그저 고기를 먹지 않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동물의 고통을 유발하는 공장식 축산에 대해 지속적인 반대 운동을 해야 한다. 물론 그런 반대 운동을 벌이는 동물보호단체들이 많이 있다. 서양에서는 심지어 공장식 축산을 하는 시설에 몰래 들어가서 사육당하는 동물들을 풀어 주는 운동가들도 있다. (공장에서 살도록 개량된 가축들이 밖에서 제대로 살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법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 어떤 가축이든 언제고 (…) 열두 시간 이상 연속으로 필요한 음식이나 물 없이 가두어 두는 경우, 누구든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그 동물이 갇혀 있는 우리에 들어가서, 그대로 가두어 두는 한 필요한 물과 음식을 주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그곳에 들어간 데 대해 책임이 없다.

그래서 포어는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다른 동물 운동가와 함께 공장식 농장에 몰래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한다. 『암스테르담의 커피 상인』의 작가로 유명한 데이비드 리스David Liss『도덕적 암살자』에서는 고통 받는 동물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사람을 죽여 놓고도 오히려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공장식 농장에 들어가서 동물에게 먹을거리를 주건 동물을 풀어주건, 심지어 농장주에게 테러를 가하건, 그런 행동을 실천에 옮기는 운동가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 극단적인 방법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다소 타협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올바른 운동 전략이 아니다. 운동의 이념에 동조하고 근본정신을 잃지만 않는다면 타인의 실천 방법도 존중해주어야 한다. 진보적 채식주의자로 살기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아무리 고기를 먹지 않으려 해도 동물성 식품이나 의약품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먹고 있는 대표적 동물성 식품으로는 약 캡슐이 있다. 캡슐은 젤라틴으로 만드는데, 이 젤라틴은 동물의 가죽ㆍ힘줄ㆍ연골 등에 들어 있는 천연 단백질인 콜라겐으로 만든다.


젤라틴으로 만들지는 알약캡슐.
젤라틴은 동물의 가죽ㆍ힘줄ㆍ연골 등에 들어 있는 천연 단백질인 콜라겐으로 만든다.

치즈를 만들 때 우유를 응고시킬 목적으로 넣는 것으로 레닛rennet이라는 효소가 있다. 이 레닛은 송아지의 제4위胃에서 나오는 단백질 분해효소로서 송아지를 도살할 때 부수적으로 얻는 동물성 식품이다. 그래서 우유를 먹는 채식주의자(락토-오보채식주의자) 중에는 레닛을 넣지 않는 방식으로 치즈를 만들기도 한다. 딸기우유의 빨간색 색소도 동물성 염료인 코치닐로 만든다. 코치닐은 연지벌레를 건조한 다음 가루로 만든 것인데, 스타벅스가 딸기크림 프라푸치노의 빨간색을 이것으로 만든다고 해서 논란이 일었다. 벌레가 징그러워서, 또는 그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항의한 사람들도 있지만, 엄격한 채식주의자들은 그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를 표했다. 인도의 맥도날드도 감자튀김을 만들 때 소기름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숨겼다가 인도 사람들의 항의 시위에 부딪힌 적이 있다.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 사람들로서는 소기름으로 튀긴 감자튀김을 모르고 먹은 것이 참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음식에 ‘쇠고기다시다’도 넣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토록 엄격한 채식주의자라 해도 동물성 식품이나 약품을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다. 레닛이나 코치닐이 들어간 음식은 그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캡슐로 된 약을 안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레닛은 송아지의 제4위(胃)에서 나오는 단백질 분해효소로서 송아지를 도살할 때
부수적으로 얻는 동물성 식품이다. 치즈를 만들 때 우유를 응고시킬 목적으로 사용된다.

나는 극단적 진보주의자의 입장을 존중한다. 노예제 철폐를 주장한 사람들도 당시에는 극단적인 진보주의자들로 대중에게 불편한 마음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노예제가 없어졌고 사람들의 인권의식도 높아졌다. 그런 극단적 진보주의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도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채식이다.

공장식 농장을 항의 방문하거나 농장주에게 테러를 가하고, 그런 농장에서 나온 고기를 쓰는 업체의 식품을 불매운동하는 것만이 동물의 고통에 공감하는 행위는 아니다. 가까운 사람이 채식주의자라는 것만 알게 되어도 동물의 고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다. 오히려 그들만의 운동이 아닌, 더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차근차근 그렇게 하다 보면 채식인구는 차츰 늘어날 것이고, 그리하여 갈수록 고기를 찾는 사람이 줄어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장식 축산도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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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최훈 저 | 사월의책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는 채식주의, 정확하게 말해서 채식의 윤리적 측면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고기를 먹지 않는 식습관, 즉 ‘채식’이 도대체 왜 윤리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을까? 현직 철학교수인 저자는 이 질문을 심각한 철학적 난제로 다루는 대신, 독자로 하여금 웃음을 참을 수 없게 하는 자신의 체험담에서 시작하여 채식의 윤리적 의미를 친절하게 이끌어낸다.

 



채식과 관련된 도서

[ 채식의 유혹 ]
[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 ]
[ 육식의 종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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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훈

강원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세종대학교 초빙교수를 거쳐 호주 멜버른대학교, 캐나다 위니펙대학교, 미국 마이애미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다. 현재 강원대 인문사회과학대학 교양과정에서 가르치고 있다.
전공분야인 논리학, 과학철학, 윤리학 등 철학의 응용 분야에서 왕성한 연구 활동과 함께, 철학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 것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큰 관심을 가지고 대중적 눈높이에 맞는 철학서 집필에 꾸준히 힘쓰고 있다. 그런 결과물로 논리ㆍ논술 분야의 대표적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논리는 나의 힘』(2003)을 비롯하여 『데카르트 & 버클리: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벤담 & 싱어: 매사에 공평하라』 『라플라스의 악마, 철학을 묻다』 『변호사 논증법』 『좋은 논증을 위한 오류 이론 연구』 등을 펴냈고, 청소년 교양도서로 『생각을 발견하는 토론학교, 철학』 『나는 합리적인 사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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