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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밤에 들으면 더욱 좋은 음악, 쇼팽의 녹턴

쇼팽, 피아노 음악의 새로운 경지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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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은 자신의 ‘녹턴’을 ‘피아노로 부르는 노래’라고 여겼지요. 그는 작곡가로 첫발을 내디뎠던 17살(1827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이었던 1847년까지, 거의 평생에 걸쳐 21곡의 녹턴을 썼습니다. 그가 남긴 4곡의 ‘발라드’와 비교하지면, 녹턴은 보다 시적이고 영상적인 반면, 발라드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녹턴은 시적이고 발라드는 서사적입니다.

‘캐릭터 피스’(Character Piece)라는 말을 아시나요? 우리말로 바꾸자면 ‘성격적 소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낭만의 시대인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자유로운 감정의 표현이 피아노 음악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는데,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장르가 바로 ‘캐릭터 피스’라고 할 수 있지요. 소나타와 변주곡 등 고전적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피아노 소품들을 일컫습니다. 아름다운 시적 영감이 두드러질 뿐 아니라, A-B-A의 단순한 3부 형식, 또 선율과 화성이 매우 강조돼 있어서 듣는 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쉽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음악에 속합니다.

시대적으로 보자면, 몇 가지 객관적 조건이 캐릭터 피스의 출현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하나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개량과 발전이겠지요. 과거에 비해 연주하기가 보다 쉬워졌고 음량도 더욱 커졌습니다. 또 하나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신흥 부르주아지의 성장입니다. 새로운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른 부르주아지 중에서 이른바 ‘부자’들이 속속 등장합니다. 그들이 집안에 피아노를 들여놓기 시작하지요. 귀족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음악을 자신들의 교양으로 만드는 것은 신흥 부르주아지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화적 목표였습니다. 거기에 또 하나의 조건이 따라붙습니다. 바로 악보 출판의 활성화였습니다. 이런 사회적 조건들이 무르익으면서 음악은 좀더 대중적인 지평을 얻게 됩니다. 넉넉한 집안의 부인이나 딸들은 집안에 독선생(獨先生)을 불러들여 레슨을 받으면서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들이 급격히 늘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머릿속에 여전히 자리해 있는 ‘돈 많고 화목한 가정’의 이미지, 예쁘게 차려입은 딸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부모가 그 옆에서 흐뭇하게 미소짓는 장면은 그렇게 19세기에 이미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작곡가들은 악보 출판과 아마추어 연주자들까지도 염두에 둔 짧고 쉬우면서도 아름다운 피아노곡을 많이 썼습니다. 이른바 살롱 문화의 등장도 캐릭터 피스의 유행을 더욱 부채질했겠지요. 한데 캐릭터 피스를 단지 사회적 수요에 의한 것으로만 규정한다면 단견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캐릭터 피스는 작곡가 본인에게도 ‘자유로운 음악’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음악적 형식에서 마음 편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은, 작곡가들에게도 자신의 기질이나 감성을 음악 속에 좀더 투영하게 해줬습니다. 그래서 캐릭터 피스는 거대한 규모의 다른 장르들, 이를테면 낭만주의 시대의 교향곡이나 오페라 같은 장르에 비해 작곡가 개인의 내밀한 심성을 더욱 드러내는 측면이 있습니다.

어떤 작곡가들은 가곡에 제목을 붙이는 것처럼 캐릭터 피스에도 ‘표제’를 달았습니다. 누가 그랬을까요? 멘델스존의 ‘봄노래’, 슈만의 ‘어린이정경’과 ‘트로이메라이’, 리스트의 ‘에스테장의 분수’ 등등 헤아리기조차 힘들 만큼 많습니다. 차이코프스키도 ‘사계’라는 표제를 붙여 일년 열 두달의 정경을 묘사하는 12곡의 캐릭터 피스를 썼습니다. 그런데 표제를 달았다는 것은 작곡의 전제나 목표가 있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특정한 주제나 소재를 전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출처: 위키피디아]



폴란드의 작곡가ㆍ피아니스트.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8살 때엔 이미 공연을 가졌다. 청년 시대를 바르샤바에서 보내고, 1830년 조국을 떠나 빈ㆍ독일 각지로 연주 여행을 다니다가 1831년 파리에 정주하면서 시적인 섬세한 솜씨로 자작곡을 연주, 망명 폴란드 귀족 사회의 총아가 되었다. 거기서 리스트ㆍ베를리오즈ㆍ베를리니ㆍ발자크ㆍ하이네 등과 교제하는 한편, 여류 작가 상드(Sand, George)와 사귀어, 폐환(肺患)의 몸을 이끌고 그와 함께 마주르카 섬으로 요양을 떠났다(1837). 6개월만에 돌아왔으나 회복의 가망이 없다가, 1848년 런던의 연주 여행의 과로로 병세가 악화되어 파리에 돌아온 뒤 얼마 후 요절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피아노 협주곡 2곡, 피아노 소나타 3곡, 밸러드 4곡, 스케르초 4곡, 즉흥곡 4곡, 폴로네즈 10곡, 마주르카 51곡, 첼로와 피아노의 소나타 등이 있다.
-[출처] 『인명사전』
이에 비해 아무런 표제 없이 그냥 작곡된 캐릭터 피스는 더욱 직감적이고 순간적인 음악, 개인의 내면을 보다 노골적으로 투영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오늘 함께 들을 쇼팽의 ‘녹턴’(Nocturn, 야상곡)이 그렇습니다. 39년의 생애를 살다간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모두 21곡의 ‘녹턴’을 작곡했는데, 그중에서 19번, 20번, 21번은 사후에 출판된 유작입니다. 쇼팽 개인의 내밀한 분위기를 진하게 풍길 뿐 아니라 여성적인 선율 위주로 작곡된 곡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대규모 홀에서 이 곡을 듣는 건 별로 적절치 않습니다. 자그마한 살롱풍의 콘서트홀, 혹은 각자의 방에서 작은 오디오를 틀어놓고 듣는 것이 한층 어울리는 음악입니다. 물론 이 지점에서도 잠시 첨언할 사항이 있습니다. ‘녹턴’은 쇼팽의 음악 가운데 일부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녹턴’이 보여주는 ‘여성성’이 쇼팽 그 자체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실 쇼팽은 매우 격렬하고 남성적인 곡들도 많이 썼습니다. 특히 피아노 소나타 1번과 2번이 대표적이지요. 21곡으로 이뤄진 ‘녹턴’에서도 종종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튀어나오곤 합니다.

서양음악사에서 ‘쇼팽’이라는 두 글자는 피아노 음악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가 남긴 음악은 약 200곡인데 대다수가 피아노 독주곡이지요. 특히 그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새로운 뉘앙스’를 만들어낸 음악가였습니다. 이를테면 건반을 밀고 당기면서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리듬과 악센트, 마치 한편의 영상처럼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슬라브적 음색, 과감한 조바꿈과 때때로 등장하는 불분명한 느낌의 조성들이 그렇습니다. 그것은 쇼팽 이전의 음악에서는 좀체 맛보기 어려웠던 피아노 음악의 새로운 경지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쇼팽은 자신의 ‘녹턴’을 ‘피아노로 부르는 노래’라고 여겼지요. 그는 작곡가로 첫발을 내디뎠던 17살(1827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이었던 1847년까지, 거의 평생에 걸쳐 21곡의 녹턴을 썼습니다. 그가 남긴 4곡의 ‘발라드’와 비교하지면, 녹턴은 보다 시적이고 영상적인 반면, 발라드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녹턴은 시적이고 발라드는 서사적입니다.


Chopin Nocturne No. 2 (Op. 9) [performed by Yundi Li]

사람에 따라 생각이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21곡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곡은 첫머리에 나오는 1번(op. 9-1)과 2번(op.9-2)일 겁니다. 특히 쇼팽 특유의 센티멘털리즘이 매혹적으로 펼쳐지는 2번은 ‘쇼팽의 녹턴’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곡으로 손꼽힙니다. 더불어 5번(op.15-2)과 8번(op.27-2), 10번(op.32-2)도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특별한 음악적 설명이 없어도, 그냥 듣는 것만으로 음악적 감흥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캐릭터 피스’입니다. ‘야상곡’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혼자 있는 밤에 들으면 더욱 좋습니다.


아르투르 루빈슈타인(Arthur Rubinstein)/1965년/Sony(RCA)

오랫동안 1순위 음반으로 거론돼 왔다. 95세까지 살았던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1887~1982)은 평생에 걸쳐 쇼팽의 ‘녹턴’을 세 차례 녹음했다. 앞의 두 가지는 모노 녹음인데다 음반을 구하기도 어렵다. 1965년의 스테레오 녹음은 여든이 다 된 나이에 내놓은 세번째 음반이다. 로맨틱한 정감이 풍부하면서도 약간 묵직함이 느껴지는 연주다. 폴란드 태생의 루빈슈타인은 고전에서 낭만에 이르는 많은 곡을 연주해 녹음으로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최고의 유산은 자국의 작곡가인 쇼팽을 연주한 음반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아쉬운 점을 한 가지 거론하자면, 쇼팽 음악의 매력 포인트인 루바토(템포의 변화)에서 루빈슈타인의 연주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연주가 좀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반 모라베츠(Ivan Moravec)/1965년/Supraphon

체코의 피아니스트 이반 모라베츠(모라벡, 모라베크 등으로도 표기함)는 미켈란젤리의 제자로도 유명하다. ‘아메리칸 레코드 가이드’는 그가 1965년에 라이브로 녹음했던 ‘녹턴’을 역사상 최고의 쇼팽 녹음 가운데 하나로 극찬한 바 있다. ‘녹턴’의 시적인 느낌을 빼어나게 살려내고 있는 연주다. 아름다운 레가토와 잔잔하면서도 꿈을 꾸는 듯한 음색이 황홀하다. 낭만주의적 해석임에는 분명하지만, 매우 절제된 음량을 구사해 듣는 이를 음악 속에 서서히 빠트린다. 비록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놓칠 수 없는 쇼팽 연주 가운데 하나다. 이 음반이 국내 매장에서 현재 품절 상태인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리아 주앙 피레스(Maria Joao Pires)/1996년/DG

루빈슈타인이나 모라베츠의 연주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한층 생동감이 느껴지는 연주다. 루바토는 물론이거니와 강약의 대비에서도 매우 신선하고 자유로운 해석을 펼친다. 마치 즉흥연주를 듣는 듯한 감흥을 전해준다. 물론 ‘녹턴’ 특유의 애잔하고 쓸쓸한 느낌도 예리하게 포착한다. 생동감 넘치는 리듬과 악센트, 조바꿈에 따른 미묘한 뉘앙스를 빼어나게 구사하면서 듣는 이에게 음악적 감흥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한마디로, 변화가 많은 동적인 연주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거칠다는 의미는 아니다. 피레스 특유의 섬세함과 따뜻함은 여전히 살아있다. 16년 전의 피레스가 얼마나 에너지 넘치는 연주자였는가를 확인하는 것은 이 한 장의 음반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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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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