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400미터 초고층 빌딩 줄타기를 한 남자

당신의 묘비명은 무엇입니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100km 마라톤을 뛸까? 그가 ‘구름 위를 걸을’ 생각을 하게 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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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이 나갈 정도로 맹렬하게 뭔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 열정과 꿈. 남들이 또라이라 비웃든 말든 끝까지 견뎌내며 이루고야 마는 지독함과 그 안에 깃든 알 수 없는 아름다움. 우스갯소리지만 누군가 그랬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타이타닉은 첫 항해에 침몰했지만 아마추어가 만든 노아의 방주는 인류를 구원했다고…



나는 바보다. 나는 언제나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한다. 경험도 경력도 연륜 따위도 소용없다. 가지 못할 길도, 가지 말아야 할 길도 모른다. 같은 함정에 거듭 빠지고, 오류를 반복한다. 그럴 때는 나의 고질병인 지독한 건망증이 큰 도움이 된다. 다 잊어버리지 않고는 내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기억의 어지러운 물결무늬를 지우지 않고는 새롭게 출발할 수 없다.
그리하여 언제나 처음처럼 걷는 길은 낯설고 고단하다. 나는 머뭇거리고 비틀거리고 주춤거리며 걷는다. 하지만 건망의 중환자이면서 어리석은 미련퉁이이기도 한 나는 뒤돌아서거나 지름길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꾸역꾸역 간다. 오로지 시간에 의지하여, 시인 김수영의 표현대로 온몸으로 온몸을 밀어.

당신은 얼마나 뜨겁게 살고 있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루키의 팬이라면 그의 ‘무한 달리기 사랑’에 대해 익히 전해 들었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도 ‘달리기’가 들어가 있어 나는 책을 읽기 직전까지 하루키의 달리기가 진짜 달리기인 줄로만 알았다. 트레이닝복을 빼입고 동네 서너 바퀴를 가볍게 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달리기 말이다. 그가 사반세기에 걸쳐 밥 먹고 잠자듯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금도 달리고 있으며, 전 세계 각종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람 잡는 철인 삼종 경기와 100킬로미터에 이르는 울트라 마라톤까지 참가한 ‘독종’ 작가 인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나는 늘 한 가지를 5년, 10년씩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그 열정의 지속성, 혹은 열정이 사그라졌다 해도 의무감이든 잘난 체든 어떤 요소를 붙잡고 오랜 세월 길게 늘어지는 사람들이 놀라웠다. 솔직히 부러웠다. 내 인생에서 남들이 보기에 ‘꾸준하다’ 싶을 만큼 지속한 것은 딱 두 가지, 책 읽기와 연애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지랖이 태평양처럼 넓고 변덕은 단팥죽보다 더 잘 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통 곁눈질만 하다 좋은 시절 다 보냈다. 도자기를 좀 배워볼까 싶어 도자기 학원을 기웃거리다가 어느 날은 빵 굽는 폼이 멋있어 보여 반죽도 좀 만지작거리다가……. 요가에 심취해보기도 했고, 그래 맞다! 하루키처럼 달리기에 빠진 적도 있었다. 매일 아침 동이 틀 무렵 퉁퉁 부은 눈을 간신히 떼고 특별히 엄선해 고른 트레이닝 바지와 러닝화를 신고 머리는 늘 포니테일로 묶은 채 동네를 한 바퀴씩 달렸는데, 어찌나 창피하던지 도저히 십 회 이상 지속할 수가 없었다. 모두들 나를 보며 남자에게 차여서 정신줄을 놓아버린 여자쯤으로 오해하는 것 같아 발바닥보다 얼굴이 더 뜨거웠다. 하루키 자신도 고백하지 않았던가. 달리기는 사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그렇다면 하루키는 왜 달리는 것일까? 무엇이 여기저기 요청도 많고 부름도 많은 이 세계적 작가를 매일 달리게 만드는 것일까? 하루키는 책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항상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를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오직 나 자신과 마주한 침묵과 사색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작가로서는 어쩌면 일의 연장이자 원천. 이쯤 되면 하루키에게 달리기만큼 완벽한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배드민턴이나 하다못해 바둑을 두려 해도 상대가 필요한데 오직 ‘길과 나’만 있으면 그만인 달리기는 작가 하루키에겐 최고의 조건인 셈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하루키가 그토록 열성적으로 달리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지만 그렇다고 그 이유만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미열이 있으나 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순히 의지 강약의 차이인가? 하루키는 다시 덧붙인다. 나로선 이보다 충분한 이유는 없어 보였다.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나는 생각한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작심삼일에도 못 미치고 중단해버린 그 숱한 나의 취미생활에 대해. 하루키의 말처럼 내게는 그것을 지속해야 할 이유보다 자기 합리화하며 때려치워야 할 이유들이 언제나 더 많았다. 하지만 그 작고 사소한 이유들을 하나하나 소중히 단련하며 사반세기를 달린 작가 하루키. 나는 이제 하루키의 작품만큼이나 그의 달리기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 그는 아스팔트 위에 작열하는 한 여름의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남자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맨 마지막 장은 하루키가 미래의 묘비명을 작성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작가, 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그는 터질 듯 뭉친 다리 근육과 패닉 상태에 이를 것 같은 과호흡, 연골이 튕겨 나갈 것처럼 고통스러운 무릎을 끌고서도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 밖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의 표현대로 가령 달리기라는 것이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계속해서 물을 붓는 것처럼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래서 뭐 어쩌라고? 기록도, 순위도, 타인의 평가도, 효능과 겉모습도 모두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뜨거운 심장으로 여전히 달리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승점까지 완주했다는 사실. 그걸로 완벽하지 않은가?


‘예술가’와 ‘광인’의 경계를 줄타기하는 남자
-필리프 프티,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

살다 보면 나라면 누군가 돈을 준다고 해도 못할 것 같은 일들을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우리는 그들을 무슨 무슨 쟁이, 오타쿠, 또라이, 조금 미화하자면 마니아 같은 단어들로 부르는데 이를테면 이런 사람들이다.

내가 아는 한 남동생은 라면 마니아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라면을 꼽는다. 그렇다고 이 아이가 라면만 먹어야 할 정도로 찢어지게 어렵냐하면 ‘절대 아니올시다’다. 그는 넉넉한 집안의 장남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몸이다. 그런 그가 각종 산해진미를 맛봐도 라면만큼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목청 높인다. 라면 회사에 전화를 걸어 반드시 그를 홍보 모델로 채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실제로 삼시 세끼 가운데 한 끼는 꼭 라면을 먹는다. 1년 365일 라면을 먹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

필리핀에서 3개월을 함께 살았던 여동생은 비누 수집가다. 그녀는 놀랍게도 아주 어릴 적부터 비누 회사에서 일하겠다는 포부(?)를 간직하며 살았다(지금까지 내가 들어본 유년시절 꿈 중 두 번째로 특이하다. 가장 특이한 사람은 나의 친오빠. 우리 오빠의 어린 시절 꿈은 ‘밥통 고치는 사람’이었다. 도대체……왜?). 그녀가 어떤 이유로 비누에 꽂혔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그녀는 비누를 처음 봤을 때부터 그냥 비누를 사랑하게 됐다고 대답했다) 비누에 대한 그녀의 남다른 애정은 시간에 비례해 자라나더니 결국 이 나라 저 나라를 돌며 각종 비누를 수집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필리핀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마트에 들러 온갖 비누를 쓸어 담은 일이었다.

또 건너 건너 아는 어떤 사람은 몇 년째 들꽃 사진만 찍는다. 그의 눈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는 척박한 환경에 아랑곳없이 생명의 강인함을 입증하는 들꽃이기 때문이다.

오직 세 가지 색깔의 옷만 고집하는 사람, 항상 고춧가루를 휴대하고 다니며 어디든 뿌려먹는 사람, 라면 냄비 밑에 깔린 신문까지 읽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지독한 활자 중독자 등등.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그만큼 다양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독창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가 빠진 세계는 안타깝게도 매번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세계다. 그 주인공이 바로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의 저자 필리프 프티 Philippe Petit다(이름마저 독특하다). 책의 표지에는 하늘에 닿을 것 같은 아찔한 높이의 건물과 건물 사이에 놓인 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순전히 호기심에 펼쳐들었는데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그를 그저 ‘정신 나간 남자’ 쯤으로 여겼다. 혹은 연예인병 걸린 관심중독증 환자 정도? 지독한 안전주의자인 내 눈에 그의 예술은 이해불능의 ‘쇼’처럼 비춰졌다. 물론 이건 책을 읽기 직전까지의 생각이다.

필리프 프티는 그의 책 제목 그대로 ‘구름 위를 걷는’ 남자다. 그는 줄과 장대만 가지고 고공횡단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열일곱 살 무렵 독학으로 곡예사, 줄타기꾼이 된다. 열여덟 살에는 선생님들을 상대로 소매치기 기술을 연마하고 책상 밑에서 카드 묘기를 하다가 다섯 번이나 학교에서 쫓겨난다. 그 후 집을 떠나 방랑하다 끊임없이 체포당하는 무허가 거리 곡예사가 되어 전 세계를 떠돈다.

그는 어떻게 감히 ‘구름 위를 걸을’ 생각을 갖게 된 걸까. 그가 열여덟 살이었을 때, 파리의 어느 치과 환자 대기실에 앉아 불현듯 세계무역센터에 올라가 줄타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묵은 신문 더미 속에서 짧은 기사를 읽은 후였다. 기사에는 몇 년 뒤 110층짜리 쌍둥이 빌딩이 뉴욕 시에 솟아올라 구름을 간질일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사를 접한 그는 너무나 그답게도 그렇다면 내가 반드시 이 위에 올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품는다. 물론 세상은 이런 괴짜들에 의해 진보하고 기록에 기록을 남기는 법이다.



훈련을 시작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는 신출내기 주제에 나는 최고의 고공 예술가가 되는 것이 나의 목표임을 공표했으며, 줄타기는 어느새 강박적이며 광신에 가까운 새로운 열정이 되어 있다.
그의 열정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그리고 깊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줄타기만 떠올리는 지독한 열병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마치 사랑을 앓듯 그렇게 이 위험천만한 대상을 향한 구애가 시작되었다. 어쩌면 ‘최고의 자리’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무언가를 시작하지만, 누구나 그들처럼 시작하자마자 최고가 되는 꿈을 꾸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를테면 뜨거운 사명을 부여받고 살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들만의 특권이라고나 할까. 흔히 우리가 말하는 광인들에게는 그런 순간이 불현듯 찾아온다고 한다. 내가 닿을 수 있는 이 길을 끝까지 닿아보고자 하는 욕망이 발현하는 순간. 그 불모의 영역에 닿기 위한 날갯짓이 시작되고 그 순간 그는 세상이 말하는 광인이 된다. 이후 그는 오로지 그 영역에서만 존재의 진실과 의미를 찾을 뿐이다. 데일 듯 뜨거운 열정을 퍼덕이며.



실체가 있는 것과 덧없는 것 사이에 매달려 곰곰 생각한다. 절반은 기술자, 절반은 시인, 머리 둘 달린 정신 나간 존재가 아니고서야 그런 어마어마한 모험에 기꺼이 자신을 구속시킬 자가 있겠는가? 나는 내 꿈에 감금된 죄수가 되어버렸다.
1974년 8월 7일 아침 6시 45분. 꿈에 감금된 죄수는 400미터 고공의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걷고야 만다. 마음 급한 통행자들, 분주한 사람들의 발길과 도심 차량의 흐름을 멈춰 세운 채 줄 위에서 꼬박 여덟 시간을 춤춘 사내. 이 공연은 닉슨 대통령 사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신문 1면에서 밀어낸 ‘세기의 예술적 범죄’로 주목받는다.



옥상 끄트머리로 간다.
빔에 발을 얹는다.
왼발을 강선에 올린다.
체중을 오른발에 싣고서 건물 옆면에 찰싹 달라붙는다.
나는 아직 물질세계에 속해 있다.
체중을 살짝만 왼쪽으로 옮겨도 오른쪽 다리가 자유로워져 오른발이 줄에 사뿐히 닿을 것이다.
한쪽은 산더미. 내가 아는 생.
다른 쪽은 구름의 우주, 미지의 것으로 가득하여 우리 눈에는 텅 빈 것으로 보이는 세계. 너무 큰 공간. 두 세계 사이에 나의 존재가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머뭇머뭇 나눠 실으려 하는 가느다란 선이 있다.
……(중략)……
줄은 준비되었다.
심장이 저 줄에 꽉 눌려 심장박동이 두근두근 메아리치고, 또 메아리치면서 일어나는 생각을 저승으로 내던진다.
나머지 발이 단호히 줄 위로 올라간다.
400미터 고공에서 너풀너풀 한 마리의 나비가 된 남자를 떠올려보자. 질식할 듯 탐욕스런 대도시의 철근 콘크리트 정글을 발아래 두고 구름 위를 자유로이 걷는 남자를 그려보자. 처음에는 결국 그 일을 하게 만든 그의 모진 신념이 무서웠다. 왜? 도대체 왜? 어떤 이유로 그 일을 완성하려고 하는가? 혈관 속에 스며든 존재의 이유가 되게 만든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좀 더 지나자 그토록 뜨거울 수 있는 그의 열정과 꿈이 무서웠다. 누가 그의 꿈을 비현실적이라 비웃는가? 누군가의 말처럼 추억과 꿈을 비현실이라 할 수는 없지 않나. 이 삶이 모두 현실이 아닌 것처럼. 그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쉴 수 있는 진정한 현실일 수도 있다. 무역센터에서 내려온 뒤 경찰에 연행되어가며 그는 몰려드는 기자들의 마지막 질문을 받는다.

“왜 그랬죠?”
기자들이 합창하듯 묻는다. 그는 생각하지도 않고 곧바로 대답한다.
“나는 오렌지가 세 개 있으면 곡예를 하고, 건물이 두 채 보이면 줄타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 내게 “일주일 동안 바퀴벌레만 먹을래 아니면 400미터 상공에 올라갈래?”라고 묻는다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고소공포증 환자인 나는 여전히 필리프 프티가 대견하면서 동시에 이해불능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거다. 혼이 나갈 정도로 맹렬하게 뭔가를 추구한다는 것. 그 열정과 꿈. 남들이 또라이라 비웃든 말든 끝까지 견뎌내며 이루고야 마는 지독함과 그 안에 깃든 알 수 없는 아름다움. 우스갯소리지만 누군가 그랬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타이타닉은 첫 항해에 침몰했지만 아마추어가 만든 노아의 방주는 인류를 구원했다고. 그렇다. 중요한 건 전문성이 아니다. 바로 그 일에 들어간 당신의 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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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언제나 내 편이었어 김애리 저 | 퍼플카우
작가 김애리는 ‘책’을 ‘내 편’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마르케스, 카잔차키스에서 산도르 마라이……. 고전부터 근래의 베스트셀러까지 100여 권의 책들이 작가를 통해 방황의 터널을 먼저 지난 선배로, 나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로, 혹은 나보다 더 방황하고 있는 친구로 다시 태어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새로운 친구(책)를 소개받고, 잊고 지낸 친구(책)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김애리라는 청춘이 길어 올린 찬란한 ‘인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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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애리

천 권의 책에 인생의 길을 물었던 김애리. 그녀는 거창한 결심을 이루기 위해서라기보다, 견디기 위해 책을 읽었다. 우울증에 시달릴 만큼 예민하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서 안정된 생활을 쫓던 그녀에게,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이놈의 ‘삶’을 견디는 일은 다 커서 젓가락질을 다시 배우는 일마냥 멋쩍고 창피했다. 이토록 소심한 여자가 청춘을 견디고, 서른을 견디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독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며불며 책을 읽었고, 사랑 역시 책으로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른이 되기 전에 천 권의 책을 읽었다. 청춘이라는 악몽 같은 시간을 오직 책으로 버텨낸 그녀의 열정은 2009년 겨울 서정문학상에 단편소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이 당선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으며 이후 『책에 미친 청춘』, 『십대, 책에서 길을 묻다』, 『아까운 책 2012』(공저) 등을 펴냈다. 현재 언론진흥재단, 김영사 웹진 등에 칼럼을 연재하며 독서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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