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연애할 수 있는 인간의 자격 -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어라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는…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지금껏 어떤 책에서도 진실한 연애를 할 수 있는 인간의 자격에 대해서는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연애를 할 수 있는 자격이라니? 조금 생뚱맞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연애에 도대체 어떤 자격이 필요한 걸까 고민해본 적은 결단코 한 번도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연애에 빠지는 걸요.
이렇게 태어났으니, 애써 홀로 고독하게 태어났으니, 알고 싶지 않습니까?
둘이 어떤 것인지.
-다자이 오사무 『사양』 중에서



진실한 연애를 할 수 있는 인간의 자격
-무라카미 류,
『사랑에 관한 달콤한 거짓말들』

문정희 시인은 젊음의 최상의 꽃이 바로 ‘연애’라고 말했다. 헛되고 헛된 유한(有限), 유일(唯一)의 삶 속에서 그래도 가장 가슴 뛰는 일이 연애라고 콕 집어 말했다. 세상에는 분명 선천적으로 연애를 잘하도록 태어난 사람이 있다. 그것은 바이올린이나 외국어, 바둑이나 수학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듯이 일종의 타고난 재능일 것이다. 반면에 백날 연애 지침서를 들여다보고, 박사 학위를 써낼 만큼 이론에 빠삭해도 실전에는 백전백패하는 가련한 사람도 있다.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보는(더 정확하게는 이성의 심리를 잘 파악하는) 능력과 센스, 세련된 매너나 자신감 넘치는 성격, 섹시한 뒤태나 눈웃음 등이 연애 선수들의 조건인 걸까? 수많은 연애 지침서에는 이런 외형적인 조건들을 변화시키기를 제시함으로서 연애의 달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지금껏 어떤 책에서도 진실한 연애를 할 수 있는 인간의 자격에 대해서는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연애를 할 수 있는 자격이라니? 조금 생뚱맞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연애에 도대체 어떤 자격이 필요한 걸까 고민해본 적은 결단코 한 번도 없었으니까.

오랫동안 내가 꿈꾸는 사랑의 판타지는 모든 것을 함께하는 것이었다. 한 침대에서 일어나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외출을 하고, 함께 쇼핑을 하고 취미 생활을 공유하고. 함께 유학을 가고, 그렇게 삶의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나란히 한 길을 걷는 것.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미치도록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사랑이었고, 나는 늘 그런 사랑을 해왔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연애를 할 수 있는 자격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릴케의 말처럼 사랑은 그렇게 무턱대고 덤벼들어 하나됨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미완성인 내가 역시 미완성인 그와 무원칙적으로 하나가 된다 해서 그것이 곧 진실한 사랑을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카롤린 봉그랑의 소설 속의 한 구절처럼, 음수(-) 더하기 음수(-)는 여전히 음수일 뿐, 두 개의 고독이 합쳐진다 해서 하나의 행복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그와 내가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가장 먼저 스스로가 온전히 행복한 사람으로 우뚝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작정 시간을 공유하며 표면적으로 둘이 하나처럼 보인다 해서 그것이 진정한 하나는 아닌 것이다.

앞서 말한 스캇 펙은 상대방에게 의존함으로서 행복에 이르려는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가장 잘못된 일을 하는 것이다. 차라리 헤로인에 의존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 약물은 항상 당신을 행복하게는 만들어줄 테니까. 그러나 타인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면 끊임없는 실망과 절망을 감당해야만 한다’고.




한 가지 분명한 일이 있다. 그것은 연애란 자립한 사람에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립이라는 것은 정신적인 것이지만, 사실은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면 성립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돈 많은 노인이 여고생하고 사랑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결코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유희 같은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또는 한쪽이 자립하지 못한 사람들이 맺어지면, 반드시 어느 한쪽인가가 기대게 된다. 어느 쪽인가가 다른 쪽에 기대지 않으면 관계가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류는 그의 에세이, 『사랑에 관한 달콤한 거짓말들』에서 엄청난 지면을 할애하며 ‘연애할 수 있는 인간의 자격’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홀로서기가 되지 않은 사람은 연애할 자격이 없다. 그래서였을까? 그래서 릴케 역시 일찍이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고, 오로지 혼자가 되라고 말한 것일까?

우리는 흔히 연애와 사랑이란 혼자만의 세계를 박차고 나와 상대방의 생각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놀라운 성찰을 지녔던 작가들의 말에 따르면 오래 유지될 수 있는 사랑이란 각자 독립된 개체로서 두 사람이 함께 각자의 삶을 즐기고 영위하며 도움을 주고받으며 걷는 관계다. 그러니 사랑이란 기꺼이 홀로 설 준비를 마친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어떤 책에서 온전히 홀로 설 수도, 든든하게 함께 설 수도 있는 사랑을 원한다고 적어놓았다. 지금 내가 원하는 사랑이 꼭 그러하다. 때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란히 걷다가, 각자의 이정표에 따라 마주보며 걷기도 하고. 그러다 갈라진 길 끝에서 다시 만나 손을 잡고 걷기도 하고, 때로는 넘어진 상대방을 위해 숨을 돌리며 길가에 서서 기다려주기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무라카미 류가 말한 올바른 연애의 정석일 것이다. 조금 극단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자립하지 못한 인간이 맺은 관계는 결국 파탄을 맞게 된다. 먼저 나 자신으로 우뚝 선 후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사랑에 빠지고 섹스를 나누는 일은 쉽다. 하지만 사랑 안에 머무르며 사랑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랫동안 사랑을 지키고 유지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전한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을 도피처나 은신처로 삼지 않았다. 덜 외로워지기 위해 사랑을 하거나 혼자가 두려워 사랑한다는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이 실패로 관계를 끝맺음한 것과 달리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더 행복하기 위해 관계를 맺는 이들은 오랫동안 그 관계를 아름답게 유지한다.


사랑이란 선택의 자유로운 실행

비단 연애뿐만이 아니다. 결혼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건전한 결혼 생활이란 강하고 독립적인 두 사람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결혼을 전쟁 시 대피할 수 있는 지하 벙커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거대한 착각이 말도 안 되는 배우자의 등급제를 만들고, 사랑에 앞서 학벌이나 연봉을 계산하는 우스꽝스러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결혼을 일종의 보험으로 생각한 결과이리라. 이러한 씁쓸한 풍경 앞에 스캇 펙의 한 마디는 어찌나 속 시원한 충고가 되었던지. 그는 배우자에게 집착하고 의존하는 환자에게 다음과 같은 언어의 채찍질을 퍼붓는다.



당신이 말하는 것은 기생충의 생활이지 사랑이 아니에요. 당신의 생존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요구할 때, 당신은 그 사람에게 의존하여 기생하는 식객입니다. 거기에는 선택도 자유도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이기보다는 오히려 필요성 때문이지요. 사랑이란 선택의 자유로운 실행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서로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지만 더 잘 살기 위해 상대방과 함께 살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지금, 고요히 자신을 돌아보자. 그 혹은 그녀가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감정의 밑바닥에 과연 무엇이 보이는가? 그것은 사랑 때문인가, 아니면 단순한 필요성 때문인가? 그것은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나의 행복을 위해서인가? 지금 당장 잔혹하리만치 진실되게 자신의 사랑을 돌아보자. 그리고 언제나 무라카미 류와 스캇 펙의 충고를 기억하라. 누구나 오로지 혼자일 때만이 온전히 그 스스로가 될 수 있다는 충고를. 고독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자유도 사랑할 수 없으며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타인도 사랑하고 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스갯소리지만 발자크의 말이 옳은지도 모른다. 방을 따로 쓰는 부부는 이혼한 사람들이거나 행복을 아는 사람들이다. 서로를 싫어하거나 서로를 섬기는 사람들이다.


둘인 하나 혹은 하나인 둘

오랜만에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을 다시 꺼내 읽다가 무릎을 탁 치는 구절을 발견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관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와 달이 혹은 바다와 육지가 서로 접근할 수 없듯, 서로 접근하지 않는 게 우리의 과업이야. 우리 두 사람은 말하자면 해와 달이며, 바다와 육지란 말이지. 우리의 목표는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인식하고, 서로를 통찰하고 존경하는 법을 배우는 거야. 상반되는 것이 무엇이며, 서로 보완할 것이 무엇인가를 말이지.
아주 조금 철이 든 지금, 나는 왜 동서양의 그토록 수많은 현자들이 진정한 사랑에 대해 무조건 하나가 되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 마주보고 걸으라고 조언하는 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떨어질 때의 추위와 붙으면 가시에 찔리는 아픔 사이를 반복하다가 결국 우리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라고.

존 F. 케네디 역시 말했다. ‘불을 대하듯 사람을 대하라. 타지 않을 정도로 다가가고, 얼지 않을 정도로 떨어져라.’고.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사랑은 어떠한가?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 상대방을 태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멀찌감치 떨어져 상대방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자.

여성심리학자인 카렌 호니는 사랑에 대해 ‘사랑이란 기생적 의존도 아니고, 가학적 지배도 아니다’고 이야기했다. 지나치게 집착하며 생존의 전부를 거는 사랑. 나는 그런 사랑의 결과가 충만함을 가져다주었다는 얘기는 한 번도(심지어 소설이나 영화에서조차 단 한 번도) 전해들은 적이 없다. 결과는 언제나 다가가도, 다가가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에 시달리며 고통을 호소하다 결국 스스로 나가떨어지고 마는 꼴이었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는 ‘둘인 하나, 혹은 하나인 둘’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상대를 내 틀에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보듬으며 하나 같은 둘의 모습으로, 둘 같은 하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사랑
-앤소니 드 멜로,
『사랑으로 가는 길』

나를 백번도 넘게 울리며 결국 내 삶을 바꿔놓은 앤소니 드 멜로는 그의 책 『사랑에 이르는 길』에서 말한다.




사랑은 눈이 멀게 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과연 그럴까? 사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사랑만큼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눈이 멀게 된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그는 말한다. 장담하거니와, 참사랑만큼 눈 밝은 것은 없다고. 탐닉이, 애착과 집착과 갈망과 욕정이 눈 먼 것이라고. 그러니 눈먼 상태로 상대를 붙들며 나의 고독을, 나의 슬픔을, 나의 두려움을 몰아내주길 애원하는 것은 참사랑이라기보다 그저 애착과 집착일 다름이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요구가 없고, 기대가 없으며, 의존이 없습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내 행복이 너에게 있지 않습니다.
장담컨대, 행복과 고독은 다른 사람과 함께한다 해서 얻어지거나 치유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때 나는 지구상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친구들에 둘러싸여 생활했으나 외로움에 허덕이며 누구에게든 집착하는 성향을 보인 반면에, 현재는 사흘 내내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자들과 시름해도 넉넉히 행복하다 느끼곤 한다.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부모도 태어날 아이에게 ‘넌 앞으로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으며, 나를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느냐?’고 묻지 않는다. 아이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남녀 간의 사랑에서만큼은 얘기가 틀려진다.

순애보적인 사랑은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아니며 미련하고 가련한 사랑과 동일한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나 역시 그랬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는 것이라는데, 사랑을 하면 할수록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내가 이만큼 그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가 언젠가 나를 배신하면? 내가 이만큼 그에게 모든 걸 줬는데 그의 마음이 떠나가면?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지만 해답이 마련되기도 전에 또 다른 두려움만 밀려올 뿐이었다. 그는 나를 만나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그는 나를 만나 얼마나 덜 두려워졌는지는 늘 두 번째였다. 언제나 내 두려움과 내 행복과 내 기대와 요구가 1순위였다. 그리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결과는 이별이었다.



당신의 행복이 외부의 어떤 것이나 사람으로부터 오거나 그것들에 의해 유지되는 한, 당신은 여전히 죽음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내 행복은 너에게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내 행복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면 자기 자신이 행복해지는 길을 발견해야 한다. 당신 생의 목적이 사랑받고 행복을 전해줄 누군가를 찾는 일이라면 당신은 그 목적을 영원히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에서 무라카미 류가 말한 ‘자립이 가능한 인간만이 진정한 연애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 말이 될 것이다.


img_book_bot.jpg

책은 언제나 내 편이었어 김애리 저 | 퍼플카우
작가 김애리는 ‘책’을 ‘내 편’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마르케스, 카잔차키스에서 산도르 마라이……. 고전부터 근래의 베스트셀러까지 100여 권의 책들이 작가를 통해 방황의 터널을 먼저 지난 선배로, 나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로, 혹은 나보다 더 방황하고 있는 친구로 다시 태어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새로운 친구(책)를 소개받고, 잊고 지낸 친구(책)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김애리라는 청춘이 길어 올린 찬란한 ‘인맥’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김애리

천 권의 책에 인생의 길을 물었던 김애리. 그녀는 거창한 결심을 이루기 위해서라기보다, 견디기 위해 책을 읽었다. 우울증에 시달릴 만큼 예민하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서 안정된 생활을 쫓던 그녀에게,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이놈의 ‘삶’을 견디는 일은 다 커서 젓가락질을 다시 배우는 일마냥 멋쩍고 창피했다. 이토록 소심한 여자가 청춘을 견디고, 서른을 견디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독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며불며 책을 읽었고, 사랑 역시 책으로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른이 되기 전에 천 권의 책을 읽었다. 청춘이라는 악몽 같은 시간을 오직 책으로 버텨낸 그녀의 열정은 2009년 겨울 서정문학상에 단편소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이 당선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으며 이후 『책에 미친 청춘』, 『십대, 책에서 길을 묻다』, 『아까운 책 2012』(공저) 등을 펴냈다. 현재 언론진흥재단, 김영사 웹진 등에 칼럼을 연재하며 독서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오늘의 책

진짜 수학 세계사

피타고라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뉴턴. 유명한 수학자는 대부분 유럽 남자다. 훌륭한 비유럽 수학자가 많았는데도 말이다. 『다시 쓰는 수학의 역사』는 지금까지 쓰여진 수학사의 공백을 채운다. 인도, 중국, 마야 등 다른 대륙에서 발달한 수학 들이 교차하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간절하게 원했던 보통의 삶을 위하여

의식주 중에 가장 중요한 ‘집’. 이 집이라는 출발점부터 비뚤어진 한 소녀가 어떤 여자를 만나고, 생판 모르는 남들과 살게 된다. 가출 청소년, 빚쟁이 등 사회 속에서 외면받은 이들이지만, 여러 사건을 통해 진정한 가족이 되어간다. 삶의 복잡한 내면을 다룬 수작이자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작.

국민을 위한 완벽한 나라가 존재하는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신작. 2036년,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던 미국이 아예 두 나라로 분리된다. 양국이 체제 경쟁의 장으로 활용하는 ‘중립지대’가 소설의 주요 배경이다. 그 속에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눈 이복자매 스파이들. 그들의 치열한 첩보전을 통해 적나라한 민낯들이 펼쳐진다.

‘시’가 전하는 깊고 진한 위로

장석주 작가가 전하는 시에 관한 이야기. 시인으로, 작가로 50년 가까이 글을 읽고 써온 그가 사랑한 77편의 명시와 이를 사유한 글들을 전한다. 과잉의 시대에서 덜어냄의 미학을 선사하는 짧은 문학, '시'가 선물하는 절제된 즐거움과 작가만의 울림 가득한 통찰을 마주해보자.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