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처럼 인간도 벽을 걸어다닐 날 멀지 않았다

자연을 본떠 만든 물질 스파이더맨처럼 천장과 벽을 걸어다니는 꿈이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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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반부터 생물영감 또는 생물모방 연구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자연을 본떠 만든 물질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나노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다양한 생물모방 물질이 개발되고 있다. 도마뱀붙이 발바닥의 빨판을 모방한 접착제, 연잎 표면의 돌기를 본뜬 자기정화 물질, 모르포나비 날개의 비늘을 흉내낸 옷감은 모두 나노기술을 활용한 소재이다.

우리 주변의 생물은 대부분 수천만 또는 수억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갖가지 도전에 슬기롭게 대처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이러한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본뜬다면 경제적 효율성이 뛰어남과 동시에 환경친화적인 물질의 창조가 가능할 것이다.

21세기 초반부터 생물영감 또는 생물모방 연구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자연을 본떠 만든 물질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나노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다양한 생물모방 물질이 개발되고 있다. 도마뱀붙이 발바닥의 빨판을 모방한 접착제, 연잎 표면의 돌기를 본뜬 자기정화 물질, 모르포나비 날개의 비늘을 흉내낸 옷감은 모두 나노기술을 활용한 소재이다.


도마뱀붙이와 나노 접착제

야행성 동물인 게코(gecko, 도마뱀붙이)는 중앙아시아, 남부 유럽, 아메리카 대륙에서 사막과 밀림에 살고 있으며 2,000여 종에 이른다. 몸길이는 꼬리를 포함해서 30~50센티미터, 몸무게는 4~5킬로그램 정도인 작지 않은 동물이지만, 파리 따위의 곤충처럼 벽을 따라 기어올라가는가 하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걷기도 한다.

미국의 켈라 오텀(Kellar Autumn)만큼 도미뱀붙이 연구에 전력투구하는 학자는 드물다. 오텀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도마뱀붙이의 능력은 발가락 바닥의 특수한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도마뱀붙이의 발가락 바닥에는 사람의 손금처럼 작은 주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 작은 주름은 뻣뻣한 털(강모)로 덮여 있다. 강모는 1제곱밀리미터에 약 15,000개가 규칙적으로 빽빽하게 배열되어 있다. 발바닥 한 개에 이러한 강모가 50만 개 정도 있다.

강모는 작은 빗자루처럼 생겼으며 길이는 0.1밀리미터 정도이다. 강모의 끝에는 잔가지가 100~1,000개 나와 있다. 잔가지의 끝부분은 오징어나 거머리의 빨판처럼 뭉툭하게 생겼는데, 지름은 200나노미터 정도이다. 도마뱀붙이 한 마리는 이러한 나노 빨판을 약 10억 개 갖고 있다. 요컨대 발바닥의 나노 빨판 덕분에 도마뱀붙이는 천장에 매달려 걸어다닐 수 있는 것이다.

오텀은 도마뱀붙이 발바닥의 경이로운 접착력을 규명하기 위해 실험을 해서, 도마뱀붙이의 강모가 표면과 접촉할 때 작용하는 힘이 무엇인지 밝혀냈다. 2000년 오텀은 세계적인 과학전문지인 《네이처(Nature)》 6월 8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분자들이 서로 끌어당기는 인력, 곧 ‘반데르발스 힘(van der Waals force)’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두 물체가 2나노미터 이하로 떨어져 있을 때에만 작용하는 힘이다. 요컨대 도마뱀붙이는 강모와 표면 사이에 작용하는 반데르발스 힘 덕분에 천장에 매달려 있을 수 있다. 1873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인 요하네스 반 데르 발스(Johannes Diderik van der Waals, 1837~1923)가 제안한 개념이다. 그는 1910년 노벨상을 받았다.

나노 빨판 하나가 지탱하는 힘은 1만분의 1그램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발바닥 한 개에는 100~1,000개의 나노 빨판이 나와 있는 강모가 50만 개 있기 때문에 발바닥 하나로 무거운 몸이 벽이나 천장에서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끔 지탱할 수 있는 것이다. 도마뱀붙이의 강모가 모두 동시에 접착을 한다면 몸무게가 120킬로그램인 사람을 지탱할 수 있다.

오텀의 연구 덕분에 도마뱀붙이는 생물학적 호기심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공학적 연구의 핵심 주제가 되었다. 미국의 공학기술자인 론 피어링(Ron Fearing)은 도마뱀붙이의 강모를 모방한 접착제를 개발했다. 2004년 5월 피어링은 오텀과 함께 도마뱀붙이 접착제에 대한 특허를 획득하여 상용화의 길을 텄다.

벨크로의 막강한 경쟁 상대가 된 이 나노 접착제는 가정에서 건식접착제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벨크로와 달리 마이크로미터의 세계에서 물체를 포착하여 이동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가령 마이크로 전자제품의 조립에 사용될 수도 있다.


스티키봇(오른쪽)

2004년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의 서갑양 교수는 도마뱀붙이 접착제 개발에 착수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가 만든 접착테이프는 게코 발바닥보다 접착력이 두 배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개를 연결하면 10킬로그램의 물체를 옮길 수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김상배 연구원(현재는 MIT 연구원)은 게코처럼 미끄러운 벽면을 기어오를 수 있는 로봇을 개발했다. ‘끈적이 로봇’이라는 뜻을 지닌 스티키봇(Stickybot)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에 2006년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된 스티키봇의 밑바닥에는 게코 발바닥의 미세한 털을 모방하여 만든 나노 크기의 털이 붙어 있다. 스티키봇은 초당 4센티미터의 속도로 미끄러운 벽을 기어올라갈 수 있다.

게코의 나노 빨판을 모방한 나노 접착제는 1962년 첫선을 보인 만화주인공 스파이더맨(거미인간)처럼 천장과 벽을 걸어다니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img_book_bot.jpg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이인식 저 | 김영사
이 책에서는 이와 같이 자연에게서 인류가 직면한 문제의 해답을 찾고 자연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생물영감와 생물모방과 같은 기술을 인간중심 기술에 상반되는 개념으로 ‘자연중심 기술’이라 이름 붙이고, 기존 과학의 틀을 벗어나 인류에게 지속 가능한 발전을 보장해줄 ‘자연중심 기술’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생명공학에서 나노기술, 로봇공학, 집단지능까지,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 자연의 메커니즘을 모방한 자연중심 기술의 역사와 현주소는 물론 인류가 직면한 수많은 위기를 해결할 경이롭고 신비한 자연의 비밀을 한눈에 펼쳐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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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인식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였다. 현재 지식융합연구소 소장이며, 과학문화연구소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KAIST 겸직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민국 과학 칼럼니스트 1호로서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한겨레》《부산일보》 등 신문에 470편 이상의 고정 칼럼을, 《월간조선》《과학동아》《주간동아》 《한겨레 21》등 잡지에 160편 이상의 기명 칼럼을 연재하며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융합한 지식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2011년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의 월간지 《PEN》에 나노기술 칼럼을 연재하여 국제적인 과학 칼럼니스트로 인정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과학 칼럼이 수록되었다. 제1회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 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 2006년 《과학동아》 창간 20주년 최다 기고자 감사패, 2008년 서울대 자랑스런 전자동문상을 수상했다.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이인식> 저14,400원(10% + 5%)

자연을 희생시키는 경제적 발전이 계속된다면 자연은 물론이고 우리 인류의 미래까지도 위협할 수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자연과 공존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왔다. 이런 흐름에 가장 민감하게 대처해온 과학계에서도 최근 생태적 풍요와 경제적 번영을 함께 이룰 수 있는 과학기술로, 자연을 모방하고 자연의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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