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으로 아내와 어머니한테 손가락질한 ‘백인 쓰레기’ - 에미넴(Eminem)의 The Marshall Mathers LP
위대한 ‘백인 쓰레기’의 등장 ‘흑인보다 더 흑인답게’ 랩을 ‘인종의 음악’에서 ‘계층의 음악’으로 확대
재작년, 리아나(Rihanna)와의 협업곡인 「love the way you lie」로 전 세계를 강타했던 에미넴. 지금이야 많은 뮤지션들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예전에는 많은 이들에게 조롱을 받기도 했던 래퍼입니다. 그가 왜 맹비난을 받았는지는 초기작품인 이 앨범의 가사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랩이 가지는 예술성만은 결코 비난받지 않았습니다.
재작년, 리아나(Rihanna)와의 협업곡인 「love the way you lie」로 전 세계를 강타했던 에미넴. 지금이야 많은 뮤지션들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예전에는 많은 이들에게 조롱을 받기도 했던 래퍼입니다. 그가 왜 맹비난을 받았는지는 초기작품인 이 앨범의 가사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랩이 가지는 예술성만은 결코 비난받지 않았습니다. 올해 8월에 내한 공연도 계획되어 있는 에미넴, 그의 대표작 < The Marshall Mathers LP >를 소개합니다.
에미넴(Eminem) < The Marshall Mathers LP > (2000)
새 천년 초입의 음악계를 달군 인물은 흑인의 전유물인 랩을 ‘흑인보다 더 흑인답게’ 구사하는 백인 래퍼 에미넴(Eminem)이었다. 그는 초강성의 랩을 들고 나와 버블 검 음악에 중독이 된 음악계에 반란을 도모했다. 사람들은 세상을 벌집 쑤셔놓은 듯 발칵 흔들어버린 에미넴 현상을 심지어 엘비스 프레슬리에 비교했다. 그처럼 에미넴도 백인이면서 흑인음악을 가지고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그가 일으킨 갖가지 소란이 모두 2000년에 소개되었던 이 앨범 < The Marshall Mathers LP >에서 비롯되었다. 1999년의 데뷔작 < The Slim Shady LP >로 3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기반을 다져놓은 그는 이 앨범으로 마침내 미국사회에 ‘빅 트러블’을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슬림 셰이디는 그의 가명, 본명이 이 앨범 제목인 마샬 매터스다) 앨범은 700만장이나 팔렸다.
성공을 열망하던 그의 꿈은 현실이 되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미국 언론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았다. 피부색부터 문제였다. 에미넴을 키워낸 흑인 명 프로듀서 닥터 드레(Dr. Dre)도 주변 인사들로부터 “왜 푸른 눈의 백인 래퍼를 키우려고 하느냐. 그 아이보고 록이나 하라고 그래라.”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그의 랩 라임(rhyme)이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는 점은 비판의 핵심이었다. 곡을 통해 동성연애자를 조롱하고 심지어 자신의 아내와 어머니한테도 손가락질을 퍼부었다. 일례로 아내의 실명을 제목으로 한 음반의 수록곡 「Kim」은 딸 앞에서 아내를 죽인다는 끔찍한 내용을 담았다. 견원지간인 모친과는 2002년의 히트곡 「Cleaning out my closet」이 말해주듯 법정소송도 불사했다.
친족 뿐 아니라 동료가수들에 대한 시비도 거르지 않았다. 노래 이곳저곳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엔싱크 등 틴 아이돌을 직접적으로 겨냥해 이유 없는 복수혈전을 펼쳤다. 다음 앨범의 첫 싱글 「Without me」로는 테크노 아티스트 모비(Moby)를 깎아 내렸다. 에미넴 때문에 화제 선상에 오른 사람들이 무수히 생겨났다. 그와 비프(상대방과 랩으로 경쟁하는 것)를 펼치며 싸웠던 뮤지션들 대부분이 그랬다.
토픽을 제공해주니 팬들은 좋았다. 일종의 대리 만족에 의한 쾌감이었겠지만 동시에 고의적인 자극을 통한 상업성의 술수가 아닐까하는 추측도 비집고 나왔다. < 빌보드 >의 편집장을 지냈던 고(故) 티모시 화이트(Timothy White)는 < The Slim Shady LP >를 “세상의 고통을 악용해 돈을 버는 앨범”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가정폭력 제창자, 여성혐오자, 자아도취 환자로 매도되었고 ‘더러운 백인 아이’(Dirty white boy)는 공인된 수식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사회에서 백인은 강점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만약 흑인이었다면 아직까지도 흑백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미국의 음악계가 그를 이렇게 방치하고 수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에미넴 스스로도 한 라임에서 “난 상품이고 백인이고 그래서 MTV가 호의를 보인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래핑만은 논란에서 철저히 비켜나 있었다. 앨범에서 발표되어 차트상위권을 잠식했던 싱글 「The real Slim Shady」는 마치 잰 듯 비트에 딱딱 맞아떨어지는 환상의 랩을 살포했고, 「Kill you」에서의 긴 라임은 호흡이라는 측면에서 음악적 경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어떤 흑인의 랩보다 그의 라임은 길었다. 그것은 고된 연습의 성과 아니면 타고난 재주였다. 래핑은 마치 ‘독침으로 귀를 쏘아대는’ 느낌이 들만큼 강렬하기로도 발군이었다. 신(辛) 래핑이 따로 없었다. 랩을 싫어하는 사람들조차도 「The real Slim Shady」에서 당대 가장 매력적인 라임으로 꼽힐 만한 ‘일어서세요’(please stand up) 부분의 친화력에 마냥 홀려버렸다.
외설 자기연민 대담함으로 가득한 「The way I am」는 분노의 화신인 듯 록 진영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초강력 랩을 뿌려댔으며 「Stan」은 여가수 다이도(Dido)의 「Thank you」를 샘플링해 듣는 사람의 청각을 유혹하는 대중적 감수성을 뽐내고 있다.
과거 백인 힙합 뮤지션들이 흑인의 흉내에 그친 반면, 에미넴은 늘 백인임을 당당하게 선포했다. 스스로를 백인 쓰레기라고 부르며 “백인들 중에도 흑인처럼 사회낙오자와 부적응자가 많다”며 자신의 랩 행위를 정당화했다.
[ Recovery ] [ Curtain Call: The Hits ] [ Relapse: Refill ]
[ The Eminem Show ] [ Encore ] [ 8 Mile OST ]
그는 어쩌면 백인 소외계층이 빈부 격차를 생각할 때 더 심한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는 점, 랩이 ‘인종의 음악’에서 ‘계층의 음악’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일깨웠다. 새 천년 음악계는 논란으로 뒤범벅된 한 트러블메이커의 융단폭격으로 Y2K의 혼란과 위기를 말끔히 잊었다.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