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학생도 자살하는 한국, 뭐가 문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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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내게 찾아온 절망을 쫓아주었다. 글쓰기가 그렇게 대단한 힘을 갖고 있는 줄 몰랐다. 나는 글쓰기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이 땅을 구원할 한 가닥 희망이 글쓰기에 있다고 믿는다. 암기와 문제풀이 능력을 키우느라,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법만 배우느라 뇌가 성장을 멈춘 이 땅의 절망들에게 글쓰기는 희망의 씨앗이다. 글을 쓰면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를 발견하면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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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은 투명한 유리알 같다. 호수 위에서 눈부시게 빛난다. 오리 가족이 줄지어 헤엄친다. 물결에 유리알이 부서진다. 연인은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책을 읽는다. 아이는 세발자전거를 탄다. 소풍 나온 가족이 매트 위에 둘러앉아 김밥과 치킨을 먹는다. 공원은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웃음소리가 민들레 씨처럼 날린다. 봄은 평화롭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올 겨울바람은 유난히 매서웠다. 봄이 오긴 오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봄은 어김없이 약속을 지켰다. 그렇다. 불행도, 슬픔도, 괴로움도 언젠가는 모두 끝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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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무지개 식당 문을 닫고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돌았다. 이 도시가 좋다. 서울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이 도시에서 나는 어느덧 13년째 살고 있다. 복잡한 서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편하다. 언덕이 없어 자전거 타기에 좋고, 숲과 나무가 많아 생각에 잠겨 걷기에 좋다. 고향은 아니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잔디밭에 앉아 가방을 열고 태블릿을 꺼낸다. 반짝반짝 빛나는 화면 위로 손끝을 두드릴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태블릿은 세상을 보는 창문이다. 얇고 검은 판때기로 세상과 소통하리라고 과거에 누가 상상했을까?

뉴스를 읽다가 우연히 한 줄의 기사가 내 눈을 잡았다. 최근 내가 사는 도시에서 유명한 작가의 자살 사건이 벌어졌다. 그 사건에 대해 형사는 이렇게 진술했다.

<이곳에서만 한 달에 100건이 넘는 자살 사건이 있습니다. 자살 사건이 일어난 그날 밤도 특별할 게 없었어요. 흔한 자살 사건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경찰서 담당 형사)>


한 달에 100건이라니? 서늘한 기운이 가슴을 훑고 내려갔다. 머릿속으로 온갖 장면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한 달에 100건이면 하루에 서너 건씩 이 도시에서는 자살 사건이 일어난다는 얘기다. 봄 햇살이 쏟아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도시에는 자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같은 시각 같은 공간에서 어떤 사람들은 공원에 앉아 소풍을 즐기고, 연인과 속삭이며, 자전거를 타고, 오리들에게 먹이를 줄 때, 같은 시각 같은 공간에서 어떤 사람들은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지고, 약을 먹고 번개탄을 피우고, 숨이 끊어지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평화로운 도시의 현실이다. 투명한 유리알 같은 봄의 평화 뒤에 감춰진 악몽이다.

어디선가 이런 글을 읽었다.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는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죽어서까지 가고 싶어 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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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다. 그 바닥 모를 어둠의 공포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왜 이렇게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대한민국은 왜 자살 공화국이 된 것일까? 나는 다시 태블릿을 두드리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봤다.

대한민국은 그다지 행복한 곳은 아닌 것 같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 ‘피지’와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그 뒤를 서유럽 국가들인 네덜란드, 스위스가 이었고, 브라질, 콜롬비아 국민도 4분의 3 정도는 스스로의 삶이 행복하다고 답변했다. 우리나라는 하위권에 속한다. 대한민국은 경제지수는 높을지 몰라도, 행복지수는 바닥이다.

피지와 나이지리아는 우리보다 분명히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곳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삶에 만족을 느끼는 것은, 우리와는 무언가 다른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을 자살이란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원인은 무엇일까?

카이스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최고의 과학기술 인재들이 모인 곳이다. 그러나 올해도 카이스트의 비극은 계속 됐다. 이곳에서는 끊임없이 자살이 벌어진다. 카이스트는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모두 합해 800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해에만 5명의 학생이 자살했고, 교수까지 잇달아 자살했다. 카이스트는 자살방지를 하겠다고 온갖 대책을 내놓았지만, 올봄에 또 한 명의 학생이 기숙사 건물에서 몸을 던졌다. 그 청년은 이런 유서를 남겼다.

“열정이 사라지고 정체된 느낌이다. 진로가 고민된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이렇게 좋은 가정은 없을 거야. 엄마, 아버지, 동생, 사랑합니다.”


이 유서에서 나는 비극의 씨앗을 보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세대는 20대와 30대다. 이 땅의 청년들이 목숨을 버리도록 만드는 비극의 씨앗은 바로 이것이다.

“경쟁에서 이겨야 살 수 있다. 성공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쟁을 하고 살아왔던가. 반에서 몇 등, 전교에서 몇 등, 전국에서 몇 등이란 등급을 꼬리표처럼 달고 살아왔다. 반에서 줄을 서고, 전교에서 줄을 서고, 전국에서 줄을 섰다. 전국의 모든 학생을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웠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서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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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줄을 세우는 방식은 오로지 암기와 문제풀이였다. 암기와 문제풀이 능력을 최고로 여기고, 그런 능력이 없으면 인생의 실패자로 낙인을 찍었다.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주고 절망에 빠뜨렸다. 그렇다고 성적이 좋은 학생이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성적이 좋은 학생은 성적이 떨어질까 봐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렸다. 1등을 하다가 2등을 하면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최고가 되는 능력은 단지 암기와 문제풀이였다. 다른 능력들은 모조리 무시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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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벼랑 끝으로 달려가는 쥐떼들 같다. 우리는 그저 다른 쥐들이 달려가니까 나도 달려갔다. 모두 미친 상태라서 내가 미쳤다는 것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남과 경쟁해서 이기는 법만 배워왔다. 그렇게 비극의 씨앗은 우리 마음속에서 계속 자랐다.

우리는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얼마나 영리한가. 초등학생마저도 성공은 곧 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행복해지는 법을 모른다. 남과 비교해서 남보다 나으면 행복한 줄 안다. 남이 갖지 못한 걸 내가 가지면 성공한 줄 안다. 얼마나 유치한 셈법인가?

암기와 문제풀이 능력을 키우느라 우리는 정작 중요한 능력을 놓치고 말았다. 그건 우리가 어른이 되는 능력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암기와 문제풀이 능력에만 매달려서 그런지 청소년기가 지나면서 어느 순간 뇌의 성장이 멈추는 것 같다.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어린애 같은 정신을 갖고 있는 어른들이 있다. 남과 비교해서 남보다 잘나면 행복한 줄 안다. 남이 갖지 못한 걸 내가 가지면 성공한 줄 안다. 얼마나 졸렬한 가치관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볼 줄 모른다. 자신을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제대로 돌볼 리가 없다. 그저 경쟁에서 이기는 법만 배워왔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내가 정말 행복해 하는 것, 내가 모든 열정을 쏟아 부어서 할 수 있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애정도, 열정도, 믿음도 없다. 그저 달리기만 할 뿐이다.

나도 그저 달리기만 했다. 마흔이 될 때까지 왜 달리는지도 모르고 그저 달렸다. 24평 아파트에서 33평 아파트로 옮겨가면 그게 성공인 줄 알고 달렸다. 소형차를 타다가 중형차를 타면 그게 행복인 줄 알고 달렸다. 그렇게 달리던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든 내게 절망이 찾아왔다. 절망은 내게 “그렇게 사는 것도 사는 거야.”라고 달콤하게 속삭였다. 절망은 내게 바닥 모를 암흑을 보여줬다. 나는 잠이 들면 영원히 깨고 싶지 않았다. 울음이 나려고 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때 나는 미친 쥐떼들의 달리기를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톱!”하고 외치고 싶었다. 마흔이 되던 날,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표를 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게 되면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내가 좋아하던 것이 무엇인지, 내가 기쁘고 즐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여유를 갖게 됐다. 글쓰기는 내게 거울과 같은 것이었다. 나를 바라보고, 나 자신을 돌볼 줄 알게 해주었다.

글쓰기는 내게 찾아온 절망을 쫓아주었다. 글쓰기가 그렇게 대단한 힘을 갖고 있는 줄 몰랐다. 나는 글쓰기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이 땅을 구원할 한 가닥 희망이 글쓰기에 있다고 믿는다. 암기와 문제풀이 능력을 키우느라,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법만 배우느라 뇌가 성장을 멈춘 이 땅의 절망들에게 글쓰기는 희망의 씨앗이다. 글을 쓰면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를 발견하면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갖게 되고, 사회를 바라보는 논리를 갖게 된다. 그래서 미친 쥐떼들의 달리기를 그만 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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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자. 이제 “스톱!”이라고 외치자. 성공이 곧 행복이라는 근거 없는 논리는 버려야 한다. 경쟁에서 이기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도 버려야 한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저당 잡히는 어리석은 짓도 버려야 한다. 오늘 당장 한 장의 종이를 펴고, 연필을 들고 글을 써보자.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자. 지금 행복해야 앞으로도 행복해진다는 것을 명심하자. 글은 논리다. 내 생각을 하나씩 정리해 내려갈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나를 알게 되고, 세상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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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지원

스토리텔링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하며, 재미없는 글을 쓰는 건 죄악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250여 종의 스토리텔링 책을 집필을 했으나, 재능이 있어서 쓴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누구나 배우고 익히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지원 작가의 특징은, 지식과 교양을 유쾌한 입담과 기발한 상상력, 엉뚱한 소재로 스토리텔링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바다 소년으로, 한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문학과 비평》에 소설로 등단했다.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이상한 사람과 놀라운 사건을 취재했고, 출판사에서 요란한 어린이 책을 만들다가, 지금은 어린 시절 꿈인 작가가 되어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며, 예스24와 네이버에 스토리텔링 방법론에 대해, 빅이슈에 인간의 행복과 삶의 양식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글을 연재한다. 스토리텔링으로 쓴 책은 수학, 과학, 철학, 인문, 역사, 환경, 예술 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 있으며, 무려 300종에 가까운 책을 썼다. 중국, 대만 등 외국 여러 나라에 수십 종의 스토리텔링 책이 수출이 됐으며, 외국에서도 인기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쓴 책으로는 『어느 날 우리 반에 공룡이 전학왔다』, 『몹시도 수상쩍은 과학 교실』, 『국제무대에서 꿈을 펼치고 싶어요』, 『빨간 내복의 초능력자 1, 2』, 『훈민정음 구출 작전』, 『원더랜드 전쟁과 법의 심판』, 『세상 모든 철학자의 철학 이야기』, 『원리를 잡아라! 수학왕이 보인다』, 『다짐 대장』, 『토종 민물고기 이야기』, 『귀신들의 지리공부』, 『무대 위의 별 뮤지컬 배우』 『어린이를 위한 리더십』 등 많은 책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도서관협회가 뽑은 2012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는 등 스토리텔링으로 지식 탐구 능력과 창의적인 문제 해결능력을 담아주는 집필을 계속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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