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커리어의 모범 답안 - 큐 팁 < Amplified >
화려한 솔로 커리어의 초석이 된 명반, 큐 팁의 < Amplified >를 소개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그룹 활동이 깨지고 나면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솔로 전향을 한 번쯤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행동에 옮긴 이들 중에서 그룹 활동 시절보다 더 큰 반향을 이끌어내는 경우는 드문 것 같네요. 큐 팁의 경우는 반대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그룹 활동이 깨지고 나면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솔로 전향을 한 번쯤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행동에 옮긴 이들 중에서 그룹 활동 시절보다 더 큰 반향을 이끌어내는 경우는 드문 것 같네요. 큐 팁의 경우는 반대입니다. 아니, 그룹 시절에도 워낙 유명했으니 반대라고 못을 박기보다는 그저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네요. 그의 화려한 솔로 커리어의 초석이 된 작품, 1998년의 명반 < Amplified >를 소개합니다.
큐 팁(Q-Tip) < Amplified > (1999)
1998년 발표한 < The Love Movement >를 끝으로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는 해체했고 그들의 걸출한 행보는 마감되었다. 그러나 팬들이 느낄 아쉬움의 시간은 다행히도 그리 길지 않았다. 그룹이 쌓은 업적은 팀의 주축 멤버 큐 팁(Q-Tip)의 솔로 활동으로 수계(受繼)되었으며 그는 능히 솔로 아티스트로서 그룹에 버금가는 스탠스를 구축해 냈다.
90년대 중반에 이슬람교로 전향하며 본명 조나단 데이비스(Jonathan Davis)를 카말 이븐 존 파리드(Kamaal Ibn John Fareed)로 바꾼 큐 팁은 어린 시절 깡마른 체형에 한껏 부풀린 아프로 머리를 하고 다닌 탓에 친구들로부터 '면봉(q-tips: 미국의 유명 면봉 브랜드)'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보이는 생김새를 그대로 설명해 주는 명사는 자신의 실제 이름보다 더 유명한 호칭이 되었지만 그의 랩 스타일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단어이기도 했다. 두껍지 않은 가느다란 톤에 맨 끝에 달린 솜뭉치처럼 푹신함이 느껴지는 음성으로 일구는 자늑자늑함은 다른 래퍼들 사이에서도 언제나 큐 팁을 확연히 구분 짓게 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외형과 음악적 특징을 모두 연결하는 멋진 작명이 된 것이다.
편안한 래핑 외에 뛰어난 프로듀싱 능력도 큐 팁의 음악적 재능을 수식하는 부분이다. 키스 머리(Keith Murray)의 「Dangerous ground」, 나스(Nas)의 「One love」, 몹 딥(Mobb Deep)의 「Give up the goods (Just step)」 등 개인적인 활동과 더불어 그룹의 동료 알리 샤히드 무하마드(Ali Shaheed Muhammad), 2006년 세상을 떠난 슬럼 빌리지(Slum Village)의 일원 제이 딜라(J Dilla)와 함께 그는 움마(The Ummah)라는 프로덕션 팀을 구성해 동료 가수들에게 많은 곡을 제공해 왔다. 공동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Honey」 말고는 상업적으로 히트한 작품은 없을지라도 간결함이 돋보이는 비트 구성은 그만의 독보적인 프로듀싱 스타일을 확립할 수 있게 도왔다.
1999년 발표한 솔로 데뷔 앨범 < Amplified >가 그것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작품이다. 재지(jazzy)한 힙합을 지향하던 그룹 시절과 달리 제이 딜라와 거의 모든 곡을 만들며 또 다른 변신을 꾀한 본 음반은 전자음을 가미한 다소 침잠된 사운드, 둔중하거나 억세지 않은 소리를 중심에 두며 힙합 팬들의 청각을 공략했다. 이와 더불어 곡의 얼개에 멜로디도 강조함으로써 안락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큐 팁 특유의 담담한 래핑과 섞인 음악은 부담감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빌보드 앨범 차트 28위로 데뷔했으며 발매 첫 주 만에 9만 장에 달하는 양이 판매됐다는 사실이 이를 설명한다. 그리고 두 달도 채 되지 않아서 50만 장을 넘겼다. 전에 속했던 팀이 워낙 유명했고 큐 팁과 제이 딜라가 뭉쳤다는 점만으로도 환심을 사기에는 충분했다.
전기기타 리프를 빌려 와 적당한 생동감을 구축한 첫 싱글 「Vivrant thing」은 제목 그대로 '활기에 찬 것'이었다. 어쩌면 그저 평범하게 느껴지는 구조임에도 큐 팁의 여유로운 플로우가 등장하면서 곡의 탄력을 증가시킨다. 전자음의 반복으로 기이한 반주를 꾸민 「Breathe and stop」, 여러 샘플을 활용해 몽환적인 기운을 내는 「Let's ride」, 단조로운 비트임에도 긴장감을 주는 사운드를 첨가해 이완과 수축을 거듭하는 「Go hard」, 콘(Korn)의 도움으로 기존 곡과는 달리 음습한 랩 록의 성향을 띠는 「End of time」은 제이 딜라와 큐 팁의 탤런트가 환하게 나서는 작품들이다. 각자의 재능을 어울리게 한 앨범은 빠른 속도로 각광의 대상이 되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행렬은 그러나 아쉽게도 계속되지 못했다. 2002년 4월에는 네오 소울을 시도하며 보컬리스트로 분하는가 하면, 밴드의 실연을 합해 애시드 재즈, 얼터너티브 힙합, 때로는 록의 면모를 띠는 등 실험성과 다채로움을 우위에 둔 두 번째 앨범 < Kamaal/The Abstract > 출시를 목전에 두고 있었으나 그가 속한 아리스타 레코드사(Arista Records)는 음악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빛을 못 보게 했다. 녹음된 트랙들이 유출되어 몇몇 사람은 그의 음악을 들어 볼 수 있었다고는 해도 전작에 이어 양질의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예상치 않게 사라지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힙합 소울의 역작 한 편이 아리스타의 창고 어디에선가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는 비보는 그렇게 7년 넘게 이어졌다.
그동안 다른 가수들의 곡에 찬조 출연하기만 했던 큐 팀은 2008년, 무려 9년 만에 새 앨범 < The Renaissance >를 공개하며 긴 공백을 끝마쳤다.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를 상기하게 해 주는 평온한 사운드로의 복귀, 면밀한 리듬 구도에 네오 소울을 덧댄 선드러진 힙합 사운드는 그룹 때 이뤄냈던 전성기를 재현하고 < Amplified > 이후 장기간 끊어진 수작의 자취를 연결하기에 충분했다. 다음해에는 장기간 묵혀 두었던 < Kamaal/The Abstract >를 마침내 꺼내게 된다. 두 앨범 모두 다수 음악 매체로부터 호평을 들으며 큐 팁의 디스코그래피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는 해체 6년 만인 2004년에 열린 힙합 콘서트 < 록 더 벨스(Rock The Bells) >에 출연하며 세 멤버가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했다. 2년 뒤에는 여러 공연에 서며 곧 있을 공식적인 재결합을 가시화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의 단단한 친분을 확인하고 옛 추억을 21세기에 다시 경험하는 것에 그칠 뿐이었다. 큐 팁은 이미 솔로 아티스트로서 시원스러운 생육을 다한 뒤였다. 그 시작과 튼튼한 기초가 된 곳은 단연 < Amplified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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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