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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 이제는 일흔 - 폴 매카트니, 박지윤, 한음파
벌써 ‘일흔’ 폴 매카트니, 포크 싱어로 돌아온 박지윤, 인디밴드 한음파의 신보
전 지구적 ‘비틀즈 키드’를 양성했던 폴 매카트니의 나이가 벌써 일흔이라고 하네요. 신보는 기존의 스탠다드 재즈 넘버들을 재해석한 앨범으로, 세월의 깊이를 재즈의 선율에 고스란히 담아낸 듯 편안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앨범입니다. 여전히 정력적으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전 지구적 ‘비틀즈 키드’를 양성했던 폴 매카트니의 나이가 벌써 일흔이라고 하네요. 신보는 기존의 스탠다드 재즈 넘버들을 재해석한 앨범으로, 세월의 깊이를 재즈의 선율에 고스란히 담아낸 듯 편안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앨범입니다. 여전히 정력적으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네요. 과거 「성인식」의 섹시아이콘 이미지를 벗고 포크 싱어로 돌아온 박지윤의 앨범과 국내의 인디밴드 한음파의 신보도 함께 소개합니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 Kisses On The Bottom >
로큰롤에 심취했던 리버풀의 한 소년은 버디 홀리와 엘비스를 이상으로 여기며 로큰롤 스타를 꿈꿨다. 기타 코드 하나를 배우기 위해서 기타 잡이들을 쉼 없이 찾아다녔고, 동네친구들과 결성한 밴드를 이끌고 난폭한 주정뱅이가 넘쳐나는 함부르크의 지하클럽에서 밤낮으로 연주했다. 이 ‘피 끓는 생기’는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이어졌고, 이는 온연히 고귀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 소년의 나이가 올해로 70이다.
1962년 비틀즈 데뷔 이후 50년의 세월동안 ‘위대한 뮤지션’의 이름 아래에서 한순간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유수의 평단과 팬들 모두가 인정하는 대중음악 최고봉 비틀즈의 ‘중추’는 다름 아닌 폴 매카트니다. 그룹 해체 이후에도 다른 멤버를 압도하는 음악적 커리어를 이어왔으며, 슈퍼스타의 삶을 영위했다. 미국에서 21개의 넘버원을 보유하고 있고, 솔로와 ‘Lennon / McCartney’ 콤비의 곡을 합치면, Top10에 든 노래는 50곡이 넘는다. 그의 이름은 역사이며,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거대한 전설’이다.
2011년은 공사다망한 한해였다. 4년간 교제해온 낸시 슈벨(Nancy Shevell)과 존 레논의 생일(10월 9일)에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으며, 비틀즈의 곡 「Helter skelter」로 그래미 수상의 영예를 얻어냈다. 음악적으로는 기존의 색을 완벽히 벗어난 발레 음악 < Ocean's Kingdom >에서 클래식과 팝을 잊는 작업에 몰두했고, 빌리 조엘의 < Live At Shea Stadium > 공연에 깜짝 게스트로 출현해 「I saw her standing there」와 「Let it be」를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본 작품인 < Kisses On The Bottom >에 이어 하반기에는 록 앨범을 발표한다고 하니 정력가형 뮤지션 폴 매카트니의 2012년 여전히 뜨거울 것임이 자명해 보인다.
새로운 작품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듣고 부르며 음악 세계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었던 곡들 위주의 재즈 스탠더스 커버곡들을 수록했다. 폴의 재즈 앨범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두 가지다. 비틀즈의 팬들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이 두 팔 벌려 환영할법한 ‘왕의 귀환’이겠지만, 그 외의 다수 젊은 음악팬들에게는 단지 ‘노거장(老巨匠)의 신보’로만 여겨 질 것이다. 단순히 음악사(史)로만 봤을 때 이미 모든 것을 이룬 그다. 그렇다면 과연 이 앨범의 의미가 무엇인가.
70세 노인의 새로운 시도. 대가의 장르를 넘나드는 ‘거룩한 도전’은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작업임과 동시에, 후대에게 전하는 선구자의 가르침이다. 언제나 혁명적이거나 선동적일 필요는 없다. 인간의 가슴속에 스며들어오는 순수한 감동을 전하는 것은 음악 본연의 역할이다. 또한 그 동안의 작업들을 들춰내며 비교하는 작업들은 무의미하다. 음반에서 들려지는 그대로, 부드럽고 느긋하게 흐르는 음악에 집중하면 그만이다. 나이는 물리적 숫자일 뿐 음악과는 무관하다.
1935년 초연된 패츠 웰러(Fats Waller)의 「I'm gonna sit right down and write myself a letter」는 작품 전체의 영감을 얻어온 곡이다. 아버지가 가장 사랑했던 곡을 첫 번째 위치시키며 어린 시절 아버지의 품속을 회상한다. 미국의 작곡가 프랭크 로에져(Frank Loesser)의 작품 「Bye bye blackbird」과 몰트 딕슨(Mort Dixon)과 레이 헨더슨(Ray Henderson)의 「It' only a paper moon」는 존 레논과의 음악적 교류가 처음 이루어질 때 함께 들었던 곡들이다. 80여 년 전의 예스러운 순박함과 신비스러움을 그대로 담아낸 담백한 편곡을 들려준다. 당시의 무드를 고스란히 잇기 위해 억지스럽거나 거추장스러운 장치들은 모두 걷어냈다.
커버곡과 함께 수록된 신곡들은 스탠다드 명곡들 사이에서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귀에 가장 먼저 들리는 트랙은 에릭 클랩튼의 연주임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My valentine」이다. 매카트니의 나지막하고 느슨한 육성과 클랩튼 특유의 블루지한 기타 톤의 주고받는 호흡은 앨범의 백미이며, 팬들의 라이브러리에 들어갈 발라드 명작이다. 스티비 원더와는 1982년 차트를 휩쓸었던 「Ebony and ivory」에서 느꼈던 조우의 감동을 「Only our hearts」에서 다시금 재현한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감상을 전하는 폴의 보컬과 풍성하게 울려 퍼져 나가는 현악 연주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스티비 원더의 하모니카 연주는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냄과 함께 감미로운 낭만을 연출한다.
지나간 옛 시대의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불리어진 고전 음악들을 자신이 꾸며내는 소리로 전하고자 했다. 이제는 시대의 어른으로 후세대에 소중하고 귀중한 유산을 남기고자 한다. 우리와 함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그의 목소리에는 모두의 가슴속에서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있다. 또 그 잔향(殘響)에는 영원히 변치 않을 감동이 있다. 폴 매카트니의 음악 ‘생(生)’이다. 폴은 ‘여전히’ 살아있다. Paul is ‘still’ live!
박지윤 < 나무가 되는 꿈 >
박지윤은 어둠 속으로 자진해서 스며들었다. 아픔을 굳이 호소하지 않아도 됐다. 난도질이 남긴 상흔은 작은 숨결마다 녹아있었고, 흉터를 간직했다. 역설적이게도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쓰디쓴 길을 돌아오긴 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일부는 이에 소통했다. 그것이 연민이었든, 인간승리에 대한 조용한 박수였든지 간에.
3년 만에 돌아와 나무가 되는 ‘꿈’을 말하지만 아직도 뿌리를 감싸는 토양은 침울하다. 이별이 멜로디보다 앞선다. 각각의 곡들은 상실이라는 공통적인 메시지로 궤를 같이한다. 「성인식」 과잉된 이미지 탓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웅크린 자아가 송라이팅을 통해 가지를 뻗어나갔다. 여기에 메이트(Mate)의 정준일, 디어 클라우드(Dear Cloud)의 용린, 박아셀이 가세한다. 각각의 느낌은 상이하지만 멜란콜리한 감성을 놓치지 않던 작가들이 듣기 좋게 잔가지를 쳐줬다.
한 가지 감정에 치우친다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요소를 포함할 소지가 다분하다. 「그럴꺼야」를 제외하고는 여백이 공간을 채우며 침체된 트랙이 장막을 친다. 인내심이 부족한 이들이라면 앨범의 허리춤에서 하산할 가능성도 크다. 또한 비음 섞인 독특한 목소리는 지금까지도 단호하게 호불호를 가르는 요인이다. 실력이 있는 작곡가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곡과 보컬 간의 융화정도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일보를 주목하는 점은 헤어짐이라는 관념어를 프리즘에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큰 틀로 보면 같은 이별이라도 때로는 후회하고, 집착하며, 체념하기도 한다. 여기에 희미한 빛의 기색이 전해진다. 막바지인 「Quiet dream」에 도달해서는 애틋한 마음을 담아 교신을 시도하며 몽롱한 꿈에 젖는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분위기가 타블로(Tablo)의 < 열꽃 >과 묘하게 닮아있다.
컴백 이후 그동안의 작품들이 수난곡으로 점철되어있다면 이제는 차분하고 고독한 자아 속에서도 가끔은 미소 짓는 여유를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아직 쭈뼛한 박지윤의 어조 속에는 다시 한 번 세상과의 대화를 원하는 가녀린 손이 있다.
야속하다 싶을 정도로 예측 밖의 ‘변형’이다. 물론 내부적인 여러 정황들이 있겠지만 표면적으로 멤버의 구성이 대폭 바뀌었다. 낯익은 얼굴은 이정훈(보컬)과 장혁조(베이스)정도다. 동양적인 악기와 그 선율을 타고 흐르던 ‘심오한 신비’는 ‘섹시한 탐미주의’로 대체되었다. 여자의 다리와 힐이 담긴 선정적인 앨범 커버는 이들의 변신을 경고하는 일종의 선전포고다.
심벌처럼 빛나던 오리엔탈 터치가 점멸한 것은 아니나,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하던 마두금은 긴 침묵에 빠졌다. 이는 프로듀싱을 한 ‘로다운30’의 윤병주와 드럼 김윤태의 이력에서 실마리를 더듬어 볼 수 있다. 노이즈가든(윤병주)과 허벅지밴드, 허클베리핀(김윤태)을 거쳐 온 인디1세대 고수들은 ‘메탈’이라는 지분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한음파의 신작이 ‘사이키델릭’보다는 ‘메탈’적 색채가 발현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사유기도 하다. 고유의 밴드의 지류와 새로운 물결은 서로 융합되지 않고, 오히려 희석시키며 어중간해져버렸다. 안타깝게도 이는 라이브에서도 목격된다. 멘트나 곡은 밝아졌지만 질서가 잡히지 않아 실력이 제대로 표출되지 않았다.
< 독감 >이 세밀한 사운드를 수집해 서서히 압축하며 끓는점까지 올려나갔다면, 신작의 공정은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작정한 듯 내지르는 보컬은 음악과 충돌하며 계속 빗나간다. 「Damage」부터 「V.L.S」까지 냅다 지르는데, 과도한 꾸밈새까지 겹쳐 메탈식의 통쾌함도 주지 못한다. 특기였던 허미(khoomii: 동시에 두 가지 목소리를 내는 몽골 전통 창법)의 위치 선점도 어정쩡해 고유의 신비로움이나 유니크함을 살리지 못한다.
앨범에서 이들의 변이를 증거하는 트랙은 「재촉」과 「V.L.S」다. 어둡고 축축한 색체를 탈피해 경쾌하게 달리고, 일정한 후크와 가사적인 소품(내버, 내버, 내버려 둬)도 겸비한다. 희한하게도 사운드는 가뿐한데 보컬은 여전히 울부짖는다. 차라리 「머리, 위, 사람」과 「화석목」처럼 기존의 색에 일렉트로닉을 살짝 걸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보인다. 전작이 불친절하게 느껴졌다는 숙제는 이런 후크나 단출함으로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화려한 타이틀만큼 < Kiss From The Mystic >의 외피는 현란함으로 두드러진다. 음악은 한층 직접적이고 개운해졌으며, 기존의 성과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미지, 그리고 홍보면에서 훨씬 세련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씁쓸한 뒷맛은 무엇일까. 필시 본인들도 부담스러운 결심이었으리라 추측한다. 타협이라는 짐작은 오만일 것이다. 다만 하루속히 새멤버들과 조화를, 그리고 ‘한음파’로서 중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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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