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우울할 때에는 커피를 마셔라

그렇게 희미하게나마 반짝이는 불빛을 보며 보이는 어둠에서 벗어날 첫 번째 발자국을 떼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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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삶이 버거운 날들이 찾아온다.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고, 괜히 사람이 싫고, 세상에 내가 발 디딜 곳은 없는 것 같고, 아침 햇살조차 기분 나쁘게 느껴지고, 일은 쌓였지만 손가락 움직일 힘조차 없을 때가 있다.

때로 삶이 버거운 날들이 찾아온다.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고, 괜히 사람이 싫고, 세상에 내가 발 디딜 곳은 없는 것 같고, 아침 햇살조차 기분 나쁘게 느껴지고, 일은 쌓였지만 손가락 움직일 힘조차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우주가 온 힘을 다해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드는 날. 우리는 대개 금세 마음을 가다듬고 회복하지만, 때로는 속절없이 바닥없는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가기도 한다. 우울증은 바로 그렇게 어둠에 갇혀버리는, 마음의 병이다.

기분이 조금 우울한 것과 병으로서의 우울증은 많이 다르다. 그건 주변에 풀이 우거진 얕은 연못과 늪처럼, 얼핏 보기에만 비슷해 보일 뿐이다. 기분이 저조하지만 때가 되면 무얼 먹을지 궁리한다거나, 지금 진행 중인 일을 어떻게 매듭지을지 고민하면서 그럭저럭 일상을 꾸려나간다면 그것은 늪이 아니라 그저 야트막한 연못에 발을 적신 상태, 그래서 조금 눅눅하고 불편한 상태라고나 할까. 반면 우울증은 깊고 복잡해 한번 빨려 들면 쉽게 벗어나기 힘든 늪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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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민(물나무)

 

외국에 사는 지인의 아들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심한 우울증이 원인이라 그는 응급 치료를 마친 뒤 일주일쯤 격리 병동에 입원해야만 했다. 그 소식을 들은 후 나는 우울증에 관한 책, 보이는 어둠』을 읽기 시작했다. 멀리서 도와줄 도리가 없다 보니 그런 극단적인 마음을 먹은 이유만이라도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 최소한의 이해나 노력조차 없이, 죽을 용기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형식적이고도 쉬운 말은 건네고 싶지 않았다.

『소피의 선택(Sophie’s Choice)』의 저자 윌리엄 스타이런(William Styron)은 겉으로는 성공한 작가였지만 속으로는 깊은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우울증이 깊어져 자살 충동을 참기 어려워지자 그는 마지막 이성을 발휘해 스스로 격리 병동으로 걸어 들어가 7주 동안을 견뎌내기까지 했다. 상담, 약물 치료, 격리 치료를 모두 거치면서 그는 아주 고통스럽게, 지루하게 그 어둠의 시간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대신해 자신의 우울증 발병과 치료 과정을 담담히 기술한 책 보이는 어둠』에서 우울증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노력했다.

그 책에서 격리 병동의 풍경을 묘사한 부분을 읽다가, 나는 뜨거운 커피를 왈칵 발등에 쏟은 것처럼 한참 동안이나 마음이 화끈거리고 쓰라렸다. 우울증 때문에 자살까지 기도한 아들을 입원시킨 뒤, 매일 그곳으로 면회를 오갔던 지인이 묘사한 외국의 격리 병동 풍경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깊은 새벽에 음독을 하던 중 마음을 바꾼 지인의 아들은 메신저로 친구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잠든 식구를 깨워 응급실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응급 처치를 모두 마치고 그를 격리 병동으로 옮긴 뒤에 보니 빈 병실이 많지 않더라고 했다. 그곳에도 열 네댓 명의 자살 미수자, 혹은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자들이 모여 있었던 것.

때문에 그 격리 병동에서는 간호사들이 지나가면서 실내를 들여다볼 수있도록 늘 모든 문을 조금 열어두어야 했고 입원실에도, 화장실에도, 심지어 샤워실에도 잠금 장치가 없었다. 게다가 간호사가 한 시간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점검을 하고 있다는 알림판까지 나붙어 있었다. 모든 생필품은 자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치워지거나 간소화되었다. 전화선마저 위험하다고 여겼는지 사람들이 북적이는 휴게실에 달랑 전화기 한대만을 놓아두었다. 식사시간에도 모든 음식은 튼실한 플라스틱 그릇과 컵에 담겨 나왔다. 초록색 플라스틱 식기 때문에 수프와 빵은 당장 싸구려 배급소 음식처럼 느껴졌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일상용품이거나 필수품이지만 절망한 사람에게는 무기가 될 수 있는 것들이 철저하게 치워진 곳, 다른 사람의 감시를 받는다는 점에서 병실이라기보다는 감금 장소같았다. 전문의가 이제 위험이 사라졌다는 판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부모도, 성인인 본인도 퇴원을 결정할 수 없다 보니 그런 황량한 곳을 찾을 때마다 지인은 마음이 쓰라렸다고 한다.

그런데 위험이 될 만한 모든 것들이 생략되거나 치워진 곳, 살풍경한 그곳에도 예외는 있었다고 한다. 그 병동의 간이 부엌에는 긴 전선까지 달린, 금방 뜨거운 물을 끓여낼 수 있는 전열 도구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곁에는 각종 차와 커피도 구비되어 있었다. 그 곁에 종이컵과 플라스틱컵, 소꿉장난감 같은 스푼이 놓여 있어서 전선까지 달린 전열 도구는 정말 크게 선심을 쓴 배려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과 말을 나누기는커녕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는, 그림자처럼 조용하게 복도를 오가는 격리 병동의 환자 한 명이 그곳에 들어와 고요히 물을 끓여 자신의 차를 만들다가 머뭇거리면서 먼저 말을 걸던 유일한 곳도 바로 그 간이 부엌이었다고 한다. 지치고 바랜 낯빛의 젊은이가 아래 서랍을 열어 보이며, “여기 차가 많으니 언제든지 만들어 드세요” 라고 권할 때, 그 시린 공간이 따뜻하게 느껴졌다는 말이 쉽게 이해되었다.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환자, 그런 식구나 연인이나 친구를 무력하게 지켜보던 면회객들이 만나 조용조용히 차를 만들어 마실 수 있는 그 공간이 어쩌면 그 격리 병동의 심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의사들은 생의 온기를 잃어버린 이들에게는 약만큼이나 절실하게 따뜻한 차가 필요하다고 여겨, 언제든 차를 끓여 마실 수 있는 전열 도구나 전선만은 자살 시도의 위험한 무기에서 제외했을 것이다. 그곳에서의 차 한잔, 커피 한잔은 숭고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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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민(물나무)

 

오전 10시, 집단 심리 치료 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그 시간에는 전문 상담자나 신경정신과 의사조차도 간섭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고 했다. 환자들이 서로 자신의 우울증 역사나 증세, 허약하나마 위로가 되는 자신만의 대처 방법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한 걸음 물러나 관찰해야 하는 의사들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환자들의 기호에 따라 커피나 차를 접대하는 일이었다. 답답할 정도로 웅얼거리면서 뭔가를 이야기하는 환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고개만 푹 수그리고 있는 환자, 몇 마디 하다 말고 눈물바람을 하는 환자 앞에서 담당 의사는 그저 묵묵히 커피며 차를 건넬 뿐, 전문가로서 조언하기 위해 맥을 끊지 않았다. 집단 심리 치료 시간이라기보다는 드라마틱한 티파티 시간 같더라고 지인은 말했다.

그 모든 안타까운 근황을 전하면서 지인은 격리 병동의 우울증 환자들에게서 얼핏, 날개가 부러진 천사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는 표현을 했다. 그곳의 환자들은 참 친절했다고. 먼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도 누군가가 휴게실에 들어와 곁에 앉으면 슬그머니 리모컨을 건네주고는 무례하지 않을 정도로 잠깐 자리를 지키다가 고요히 자리를 뜨는 사람,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그 짧은 시간에도 다른 이가 그 곁을 서성이면 전화 걸 일이 있는지를 꼭 묻곤 하던 사람, 복도 한편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다가도 누군가를 면회 온 가족이 나타나면 슬쩍 그 자리를 양보하고 떠나는 사람, 아직 식당에 안 나타난 사람의 식판까지 식탁에 반듯하게 놓아둔 다음에야 식사를 시작하는 사람…….

『보이는 어둠』에는“텅 빈 휴게실에서 밤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휴식처로 찾아 들어온 곳이 떠나온 세계보다 좀 더 친절하고 부드럽게 미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구절이 있다. 지인이 가보았던 격리 병동 역시 그처럼‘친절하고 부드럽게 미친 곳’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우울증 환자들이 대부분 너무 착하거나 세상의 모든 것에 과도하게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이더라고 했다. 조심스레 남을 배려하는 그들을 두고 자존감이 결여된 상태라거나 어떤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고 정리해버릴 수 없었다고 했다.

자살 시도를 할 만큼 증세가 악화된 우울증 환자는 어떤 희망도 즐거움도 느낄 수 없다. 그렇다면 동시에 감각도 이성도 함께 정지되거나 퇴보해 버리는 편이 더 나을 텐데, 오히려 고통에 대한 감수성은 더 예민해진다.

보통이라면‘어쩔 수 없지 뭐’하고 넘어갈 상황을 우울증 환자는 고통스럽게도 선명하게 보고 느끼는 것이다. 한번 상상해보라. 불공평한 세상사, 서로가 얇은 가면을 쓴 채로 짐짓 연극을 하는 것 같은 주변 사람들의 모습, 그 속에서 어쩔 줄 몰라서 실수를 거듭하는 자의식 과잉 상태의 자기모습까지 더 선명하게 보이고 느껴질 때 우리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바로 그런 상황, 어둠은 어둠인데 빤히 헤아려지고 보이는 어둠이 우울증 환자가 처한 상황이다. 윌리엄 스타이런은 그‘보이는 어둠’에 시선이 사로잡혀 있어서 그 반대편에는 그나마 견딜 만한 밝음이 있다는 것을 헤아릴 수 없는 영혼. 그것이 우울증의 시작이고 마지막이라고 보았다.

윌리엄 스타이런은 그렇게 우울증에 빠져드는 과정을, 참혹한 과정을 설명하면서 단테의 신곡을 인용한다.


우리 인생의 여정 가운데서
나는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었다네.
제대로 난 길을 몰랐기 때문이라네.



그리고 길을 찾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조근조근 설명한 뒤 그는, 절망을 견딘 자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다시 단테를 빌려 마침표를 찍는다. “그래서 우리 빠져나왔도다. 다시 한 번 별을 보게 되었노라”라고. 우울의 늪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느끼는 순간, 또 우리 곁의 누군가가 하염없이 그 안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다시 한 번 별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함께 떠올리기란 힘들 것이다.‘보이는 어둠’에 사로잡힌 시선을 밝은 쪽으로 돌리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희망을 가지라는 말에 더 큰 환멸마저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별이나 희망 대신에, 일상용품조차 위험 요소로 간주되어 치워진 을씨년스러운 격리 병동에서 유일하게 따스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전열 기구와 여러 종류의 차 봉지들을 떠올릴 수는 있겠지. 우울증 때문에 격리된 이들이 스스로의 상처를 고백하거나 같은 처지의 누군가를 겨우 위로하며 버틸 때, 의사가 말없이 건네는 따뜻한 커피나 차 한잔도 상기할 수 있겠지. 그렇게 희미하게나마 반짝이는 불빛을 보며, 보이는 어둠에서 벗어날 첫 번째 발자국을 떼어볼 수 있지 않을까. 주저앉고 싶은 나에게, 또 절망한 친구에게 지금이야말로 커피 한잔이 필요한 때라고 권해보면 좋겠다. 가시나무 덤불숲에 사로잡힌 듯한 아픔을 느끼는데 고작 커피 한잔이라니, 그 무슨 감상적인 대처법이냐 물을지 모르지만……. 우울해서 더 예민해지는 그 순간엔 힘내라거나 포기하지 말라, 희망을 잃지말라는 귀를 때리는 응원가 대신 그 여린 붕대가 더 낫겠다 싶다.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약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듯, 우울증 바이러스가 덮쳐올 때우리 조용히 커피를 마시자. 표정이 어두운 내 곁의 누군가에게 조용히 함께 커피 한잔 마시자고 권하는 것도 좋겠다. 그 따스한 커피 한잔이 어두운 시절을, 우울을 견뎌내는 힘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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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완벽한 장윤현 저 | 쌤앤파커스

'하고 싶은 이야기'와 '보여 주고 싶은 이야기'를 세련된 감수성, 섬세한 감정선, 디테일한 연출력으로 그려내는 영화감독 장윤현의 첫번째 산문집이다.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접속」, 「텔 미 썸딩」, 「썸」 등 그의 영화에는 늘 인간의 외로움과 폐쇄된 감정 그리고 상처와 슬픔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묵직하게 담겨져 있다. 하지만 「황진이」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바리스타, 고종과 커피를 둘러싼 삶과 죽음을 그린 웰메이드 사극 영화 「가비」로 돌아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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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윤현(영화 감독)

1997년 영화 <접속>으로 데뷔해, 지금까지 영화감독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영화감독이라기보다는 수수한 회사원에 가까운 모습이다. 외모나 옷 입는 취향, 일상의 습관 모두 평범하다. 한눈에 영화감독인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문화인다운 풍모도 없고, 촬영 현장에서의 카리스마가 풍문으로 나도는 사람도 아니다. 재기발랄함, 날렵하고 세련된 감각, 이런 것들하고도 거리가 멀다. 나는 그냥 단순 무식하게 꾸역꾸역 앞만 보고 가는 사람,지름길로 가지 못하고 언제나 돌아가는 사람, 다만 오래 꾸준히 파고드는 사람이다. 그건 영화를 만들 때도 그렇고, 커피를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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