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아이돌(Idol)이란 단어가 쓰인 지도 벌써 15년이 됐습니다. 에이치오티(H.O.T) 때부터 규격화된 이 명칭은 강산이 변해도 가요계에서 한 자리를 맡으며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죠. 주 공략 나이가 10대라 지나치게 젊은 세대들만이 즐길 수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지금 아이돌만큼 대중성을 중점에 두는 음악도 찾아보긴 드뭅니다. 그만큼 듣고 즐길 수 있는 소리겠죠.
15년의 역사만큼, 그간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줬던 아이돌 노래들을 모아봤습니다. 그룹만 대면 당연히 나와야 할 대표곡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아 아쉬웠던 곡들도 추려봤어요. 모두 20곡이네요. 다양한 그룹들이 나왔던 만큼, 한 팀당 한 곡의 중립도 지켰죠. 솔로는 제외했습니다.
에이치오티(H.O.T) 「Candy」 (1996)
강타는 「전사의 후예」가 전파를 타자마자 다음 날 숙소 앞에 200여 명의 팬이 모였다고 했지만, 그들을 전국적으로 알린 건 이 곡이 틀림없습니다. 작곡가 정용진이란 이름도 덩달아 유명세를 치렀죠. 밝은 분위기에 어울리는 의상과 안무는 점차 비주얼이 중요시되는 시기에 군더더기 없는 일체를 이루며 ‘H.O.T’란 브랜드를 확실히 각인시켜줬습니다.
태사자 「Time」 (1997)
젝스키스(Sechs Kies)로 일단락될 것 같았던 아이돌 전쟁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2라운드는 엔알지(NRG)와 태사자의 등장으로 불을 지피게 됐죠. 아쉽게도 두 팀 다 대박을 터트리지는 못했지만, 「Time」은 그 시기 듣기 좋았던 팝이었습니다. 「도」란 곡으로 데뷔했던 4명의 소년은 「Time」과 함께 1위에 올랐죠. 이들의 유일한 히트 넘버입니다.
젝스키스(Sechs Kies) 「커플」 (1998)
「마법의 성」을 쓴 작곡가 겸 가수 김광진이 노래방에서 자주 부른다죠. 굳이 한 명을 통해 전체 표본을 예상할 순 없지만, 곡을 이해해준 연령대 범위가 기존의 아이돌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노래는 정규가 아닌 스페셜 앨범에 수록됐었는데요. 타이틀을 「너를 보내며」로 정했었지만, 「커플」이 가진 아름다운 선율의 힘은 결국 주연 자리를 꿰차며 젝키의 대표곡이 됐죠. 「학원별곡」,「기사도」 등 매번 무거운 이미지를 내세웠음에도 지금 기억되는 분위기는 그 반대네요.
지오디(g.o.d) 「Friday night」 (1999)데니 안은 맨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대박 날 줄 알았답니다. 예상이 크게 빗나가진 않았죠.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애수」의 인기 덕에 빛을 보진 못했지만, 어깨가 들썩이는 후렴은 금요일 밤이면 떠올릴 수 있는 싱글이 됐습니다. 지오디(g.o.d)하면 애절한 가사로 마음을 울렸던 「어머님께」를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 거에요. 철저히 박진영의 ‘창작곡’으로서 선정해봤습니다.
베이비복스(Baby V.O.X) 「Killer」 (1999)지속되는 아이돌 열풍에 김형석도 빠지진 않았습니다. 세 번째 앨범의 「Get up」, 「Killer」 모두 그가 쓴 곡이지만, 「Killer」는 타이틀로 나왔던 「Get up」의 활동을 이른 시일 내에 멈추게 했죠. 기타의 쉴 새 없는 움직임과 매력적인 선율은 「야야야」 이후 멤버 교체를 겪은 상황에서도 인기를 지켜줬습니다.
핑클(Fin.K.L) 「Now」 (2000)
매번 SM의 후발업체로 비쳤던 DSP의 어깨가 펴진 건 핑클(Fin.K.L) 덕분이었습니다. 여성 그룹의 기본 골격이 4인조로 체계화된 것도 이들의 영향이 크죠. 핑클이 에스이에스(S.E.S)보다 대중적 지지도에 ‘조금’(이 부분에 민감하실 분들 많습니다.) 앞설 수 있었던 이유는 순위에서 더 많은 노래가 인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Now」가 아직도 기억될 수 있는 건 곡을 리메이크한 김경호의 공도 있어요. 남성 팬들이라면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 기억하시나요? 당시 폭발적 인기를 받았지만, 정식 수입이 안 되어 애태우던 소니(Sony)사의 게임기가 뮤직비디오에 등장해 잡음이 있었죠. 아… 정말 그때니까 발생할 수 있었던 일이네요.
에스이에스(S.E.S) 「감싸 안으며」 (2000)
많은 분이 「Just a feeling」을 택하실 수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세 요정을 기억해줄 만한 곡을 골라본다면 「감싸 안으며」 입니다. 바다가 노래 잘한다는 건 데뷔 때부터 알았지만, 타이틀로써 제대로 보여준 건 이 곡이었으니까요. 특히, 당시까지만 해도 대부분 그룹이 파트를 공평하게 나누려 했던 것과는 달리, 슈와 유진의 분량을 축소하면서까지 노래에 필요한 메인 보컬의 생명력을 지켜낸 건 훌륭했던 판단이었습니다.
유엔(UN) 「평생」 (2000)
아이돌인지 조금 헷갈릴 수 있으나, 처음부터 소속사에서 그렇게 밀었으니 너무 민감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태사자처럼 미지근한 반응의 타이틀로 활동하다 후속곡으로 정상을 차지한 남성 듀오죠. 좋은 곡은 오래간다는 말이 틀리지 않듯, 아직도 겨울마다 라디오에서 꾸준한 신청곡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10학번(1991년생)에게 이 노래를 아느냐고 물어보니 모른다더군요. 세월이 무섭습니다.
신화 「Wild eyes」 (2001)
최장수 한국 아이돌 그룹. 활동하지 않아도 꾸준히 모임을 갖는 그룹. 이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팀입니다. 「Wild eyes」가 수록된 <Hey, Come on!>에선 「Shinhwa Knights」를 추천하는 분들이 많지만, 마초 냄새를 지니면서도 강렬한 후크를 겸비한 곡으론 「Wild eyes」만한 게 없죠. 미국적 느낌이 강한 전주로 시작해 짜임새 있는 세련된 팝의 느낌을 전달합니다. 무대마다 퍼포먼스를 위해 들고 올라온 의자도 잊을 수 없죠.
오션(5tion) 「More than words」 (2001)익스트림(Extreme)의 「More than words」 만큼은 아닙니다. 그래도 앨범이름
<True Image of New>에 걸맞은, 깨끗한 기운이 가득합니다. 두 명의 보컬과 세 명의 래퍼라는, 팝을 소화하기에는 조금 벅찬 구성이었지만, 이런 형태에 아랑곳없이 곡은 두 보컬에 초점을 맞췄죠. 목소리 톤도 깔끔히 구분되어 화음이 아름다웠고, 등장된 악기 구성도 좋았습니다. 팀은 멤버 교체의 진통을 겪으며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블랙비트(Black Beat) 「In the sky」 (2002)SM에선 ‘신비’, ‘밀크’, ‘이삭N지연’ 등 시장의 쓴맛을 본 여성 그룹이 많았습니다. 반면 남성 그룹 중 실패를 본 건 블랙비트(Black Beat)만이 유일했죠. 타이틀 「날개」의 퍼포먼스가 너무 강렬해서일까요. ‘제2의 H.O.T’를 목표로 등장했던 5명의 남자는 단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긴 채 해체합니다. 그래도 발라드 「In the sky」만큼은 이들을 추억할 수 있는 노래죠. 깔끔히 내지르는 후렴 부분은 아이돌답지 않은 호소력을 갖췄습니다.
러브(Luv) 「Orange girl」 (2002)
가끔 노래를 듣다 보면 가사를 해결해주고 싶은 곡들이 있습니다. 물론 해당 작사자는 나름 시장 공략을 위해 선택한 방법이겠지만, 그걸 거부해주고 싶을 때가 있죠. 현재 연기자로 왕성한 활동 중인 전혜빈의 데뷔그룹 러브(Luv)의 「Orange girl」이 딱 그런 곡입니다. 상큼한 3명의 소녀를 도와주는 기타 이펙트, 당시는 찾기 어려웠던 전자 효과 등은 놀라운 편곡이었죠.
“퀸카인 내가 널 쳐다 봐주잖아 / 열라 캡숑 기쁘지”만 없었어도 순위가 5계단은 더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플라이 투 더 스카이(Fly To The Sky) 「Sea of love」 (2002)「남자답게」를 뽑기엔 「Day by day」(1999), 「Missing you」(2003) 같은 경쟁자들이 있습니다. R&B 듀오는 앨범마다 준수한 선율의 곡들로 복귀했으니까요. 여름에 듣기 적절한 「Sea of love」는 발라드를 지향했던 방향에 조금 반칙성이 느껴지지만, 매끄러운 가락으로 귀를 즐겁게 하죠. 실제로 팀이 행사장에서 자주 선곡했던 곡이기도 합니다.
쥬얼리(Jewelry) 「Tonight」(2002)쥬얼리(Jewelry)는 2집 「Again」부터 승승장구합니다. 「니가 참 좋아」(2003), 「Superstar」(2005), 「One more time」(2008) 까지 내기만 하면 정상을 차지했으니까요. 후속곡에서도 재미를 본 적이 있는데요. 「모두 다 쉿!」, 「Tonight」이 그 대표죠. 「Again」과 유사한 패턴이지만, 박자와 현악의 소리를 낮춘 편곡은 밤에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카라(Kara) 「우리 둘」 (2007)DSP에서 ‘제2의 핑클’로 제작한 카라(Kara)는 확실히 핑클보다 업그레이드 됐었습니다. 옥주현 자리엔 그녀가 부럽지 않은 김성희가 있었고, 소속사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작곡가 한상원의 프로듀싱은 탄탄한 가요를 만들었죠. 당시 내세웠던 「Break it」, 「Secret world」가 모두 진한 인상의 곡이었지만, 「우리 둘」 같은 평온한 노래는 4인조였던 그룹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던 트랙이었습니다.
원더걸스(WonderGirls) 「Tell me」 (2007)2007년은 원더걸스(WonderGirls)였습니다. 자극적인 표현이 아님에도, 후렴에 맞아떨어진 안무는 전 국민을 「Tell me」 열풍에 빠지게 하였죠. 1980년대 팝 마니아 박진영의 노련한 전략이 제대로 적중된 곡이기도 합니다. 역대 아이돌 곡 중에 이처럼 단기간에 많이 불린 곡도 없을 거예요.
소녀시대 「Kissing you」 (2007)냉정히 평가해 「다시 만난 세계」, 「소녀시대」 만으론 남자들의 마음을 뺏기는 어려웠습니다. 본격적으로 소녀들에게 집중된 건 사탕을 들어줬던 「Kissing you」였죠. 걸 그룹이란 범위를 떠나, 기타와 현악이 선도한 편곡은 그 자체만으로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가요를 들려줬습니다. 먼 훗날 「Gee」와 「Kissing you」 중 어떤 곡이 더 많은 리퀘스트를 받을지 궁금해집니다.
동방신기(東方神起) 「Mirotic - 주문」 (2008)절부터 기록되는 인상적인 멜로디는 간결한 후크와 합체되며 잘빠진 댄스 넘버가 탄생했습니다. 호흡을 통해 강약을 조절한 5명의 보컬은 실제 무대에서도 노래와 똑같이 재현해내며 ‘아시아의 별’이 괜히 별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줬죠. 비록 팬클럽 카페에 가입된 남성 팬 수는 3.25퍼센트겠지만, 이때만큼은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좋을 때 갈라섰으니, 참 아쉽습니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Brown Eyed Girls) 「My style」 (2008)길고 긴 무명의 터널을 벗어나 브아걸이 주목받게 된 건 「Love」(2008) 때부터입니다. 댄스로 전향하면서 순항을 하게 되죠. 「My style」은 당시 그 연속적인 활동의 막바지를 찍던 곡이었습니다. 한순간에 귓속으로 흡수되는 후크는 예쁜 목소리, 예쁜 가사, 예쁜 코러스가 한 덩어리로 가득 차 있어요.
빅뱅(BigBang) & 투애니원(2NE1) 「Lollipop」 (2009)
출발은 휴대전화 제조회사의 의뢰였지만, 그 끝은 해당 휴대전화기의 존재마저 뛰어넘어버리며 전국을 “반짝반짝 스타일”로 물들게 해버렸죠. 테디의 머리에서 나온 이 아이디어 집합은 철저히 힙합 리듬에 뿌리를 두면서도 액정 불빛이 부럽지 않은 감각적인 터치까지 장착했습니다. 제품 홍보 액세서리로 끝날 줄만 알았던 막대사탕은 노래의 가진 저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줬습니다.
빠진 곡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그룹의 대표곡들을 하나씩 다루기에는 금방 데뷔하고 사라진 팀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이죠. 그만큼 초창기엔 눈앞에 이익을 위해 소속사에서 급조한 무리들도 많았으니까요.
지금은 전보다 체계적이고 혹독한 훈련을 통해 하나의 그룹이 탄생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게 있어요. 예전 아이돌 그룹에는 대중들도 인정할만한 리드 싱어가 한 명쯤은 있었는데, 요즘엔 메인 보컬이 누군지 프로필을 보지 않으면 찾기가 어렵더군요. 이건 연습을 통한 상향평준화가 이루어져서 그런 걸까요? 계약에 묶인 그룹의 활동이 평생 이어지길 바라는 건 어렵겠지만, 10년 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을 가수는, 꼭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글 / 이종민()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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