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양이」

장마철 휴일에 어울리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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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읽기 좋은 책은 뭘까요?’ 라는 질문은 여러 가지 대답이 가능한 질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맑고 밝은 산과 바다의 향취가 가득한 여행 수필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밑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보는 만화책일 수 있습니다.

‘여름에 읽기 좋은 책은 뭘까요?’라는 질문은 여러 가지 대답이 가능한 질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맑고 밝은 산과 바다의 향취가 가득한 여행 수필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밑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보는 만화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집중호우와 열대성 스콜이 한여름의 축축함을 더해주는 시즌이라면, 어째 조금은 괴기스러운 소설들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도 듭니다.

장마철에 어울리는 음습한 책 한 권을 고전 중에서 슬쩍 뽑아 본다면, 단연 애드거 앨런 포우의 단편 중 가장 유명한 소설인 「검은 고양이」일 것입니다. 사실 댄스가수 ‘터보’의 노래로 더 유명한 「검은 고양이」지만 (‘터보’의 「검은 고양이」는 소설 「검은 고양이」와 완전히 다른 컨셉입니다. 둘 사이의 연관관계는 없습니다) 「검은 고양이」는 미국 단편소설의 시조이자 현대 추리소설의 비조라 불리는 포우의 단편을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길지 않은 소설은 화자이자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련의 사건이 끝난 뒤에 서서 그 사건을 회고하고 있으며, 그 회고의 기록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뭔가 앞뒤가 맞지 않으며 음습하고 기괴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동물들을 사랑하고 정이 많았던 주인공은 부모님의 배려 덕택에 많은 애완동물에게 정을 쏟으며 자라 왔습니다. 그러나 동물들과 함께 하던 밝고 아름다운 생활은 결혼 후 의외의 벽에 부딪히는데, 바로 주벽입니다.

과다한 폭음의 습관은 주인공의 일상을 집어삼킵니다. 애완동물들에게 정을 주는 데 익숙하던 주인공은 점차 알코올에 의해 폭력적인 성격으로 변해 갑니다. 집안의 애완동물 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던 검은 고양이 플루토를 대하는 태도 또한 점차 달라지게 되어, 점차 가학적인 성향을 드러내던 중, 결국 사고가 발생하고 맙니다.

어느 날 밤, 내가 잘 다니는 술집에서 잔뜩 취해 가지고 집에 돌아오니까 고양이가 어쩐지 나를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고양이를 홱 붙들었다. 그러자 고양이는 나의 난폭한 행동에 놀라서 앞발로 내 손에 상처를 냈다. 순간 악마와도 같은 분노가 나를 휩쌌다. 나는 제 정신을 잃었다. 나의 원래의 영혼은 단숨에 내 몸으로부터 빠져나가고 그 대신 술에 젖은 잔인한 악의가 내 육신의 구석구석까지 찡하니 번졌다. 나는 조끼 주머니 에서 주머니칼을 꺼내어 편 다음 가엾은 동물의 모가지를 움켜잡고, 한쪽눈알을 눈자위로부터 잔인하게 도려냈다! 이런 저주스러운 흉측한 행동을 글로 엮자니 내 얼굴은 달아오르고 내 몸은 화끈거리며 몸서리마저 쳐진다.

- 「검은 고양이」 중 일부 발췌

이 사건을 시작으로 점차 주인공의 폭력성과 주인공 주위를 맴도는 불길한 기운은 함께 커져가기 시작합니다. 결국 주인공은 고양이를 목매달아 죽여 버렸고, 주인공의 집은 알 수 없는 화재에 의해 몽땅 타버리고 맙니다. 전 재산을 날린 주인공은 아내와 함께 가난한 생활을 시작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과도한 주벽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느 날 우연하게 발견해서 데려온 새 고양이는 심지어 전에 죽였던 플루토처럼 한쪽 눈이 없는 고양이였고, 더욱 놀랍게도 고양이 가슴에 나 있던 흰 털의 반점은 고양이가 점점 커 감에 따라 그가 목매달아 죽였던 교수대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기괴한 불운과 음습한 그림자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고양이를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이 고양이는 주인공에게 더 달려들어 친밀감을 표시하고, 주인공의 싫어함은 이제 두려움으로 변합니다. 결국 최악의 상황에 치달은 주인공은 고양이와 함께 지하실에 내려갔다가 우연한 사고로 아내를 죽이고 마는 지경에 이릅니다.

스포일러가 될 것을 우려해 이후의 줄거리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만, 이미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읽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고딕 gothic 소설이라고 불리는 장르입니다. 고딕 소설은 주로 영국에서 19세기 무렵에 유행하던 장르인데, 중세 고딕풍의 성채나 마을 등을 배경으로 공포스럽고 괴기스러운 이야기들을 다룬 소설을 통칭합니다. 비록 그 무대가 미국의 평범한 도시를 배경으로 변했지만, 소설이 뿜어내는 무겁고 음습한 분위기는 마치 고성의 지하 고문실을 연상시킬 만큼 살갗을 달아오르게 하는 무언가를 풍깁니다.

당장 다루는 소재 자체가 밝은 구석이 하나도 없습니다. 고양이는 홍채가 세로로 되어 있는 덕분에 악마의 화신, 마녀의 애완동물로 자주 등장했으며, (소설 속에서도 아내가 고양이를 마녀의 환생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 독자들도 ‘고양이 목숨은 아홉 개’ ‘고양이는 복수의 영물’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어느 정도 그 음습함을 공감하게 됩니다. 게다가 주인공은 늘 술에 취해 있고, 사건들은 주로 지하실과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발생하곤 합니다.

상황을 더욱 음울하게 몰아가는 것은 일반적이고 논리적인 전개와는 거리가 먼, 다분히 환상스럽고 마술 같은 분위기의 전개가 펼쳐진다는 점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이성이 자주 마비되는 캐릭터인데, 소설은 재미있게도 주인공의 1인칭 시점에서 쓰여 집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이 횡설수설하는 마법 같은 서술은 주인공이 미처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를 유지하며 오락가락 쓴 듯한 뉘앙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발생하는 상황들은 그래서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맥락을 끊어먹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말대로라면 어느 날 주워 온 고양이가 전에 키우던 고양이에게 가했던 폭력의 상처, 애꾸눈을 그대로 가진 것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우연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이 녀석은 정말 전에 죽인 고양이의 화신인 것인지, 가슴의 흰 털이 점점 교수대 문양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아마도 주인공의 알코올 중독에 의한 것이겠지만, 우리는 그저 술에 취해 정신없는 주인공의 독백 외에는 상황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술에 취하지 않은 정상적인 독자들마저도 모호하고 기괴한 분위기로 몰고 가는 소설은 결국 파국에 이르고, 혼란은 독자들이 전혀 생각지 않았던 의표 찌르기에 의해 클라이맥스와 결말을 동시에 맞습니다. 다 읽고 난 독자들에게 멍한 충격과 공포, 그리고 찝찝함을 안겨 주는 것이 소설 「검은 고양이」의 재미입니다(이걸 재미라고 말하는 게 과연 올바른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길지 않은 소설은 이렇게 기괴함으로 일관하면서도, 결코 현실성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심리 묘사를 보여 줍니다. 밝고 명랑했던 주인공은 한순간에 술의 힘에 의해 타락하지만, 그 타락의 맥락이 독자들의 이해를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술에 취해 들어온 날 욱하는 상황에서 고양이가 주인공의 손등을 할퀴어 버리자, 술김에 흥분하여 고양이를 잡아다 패대기를 치는 부분은 오히려 인간이 가진 폭력성ㅡ특히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이종 생물에 대한ㅡ을 가감 없이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본 리뷰에서 뒷부분의 상세한 소개는 일부러 빠뜨렸는데, 소설 후반부에 주인공이 보여 주는 행동들은 일반적인 심리 묘사가 아니면서도 누구나 극단적인 상황에 닥쳤을 때 그럴 법하다는 동의를 구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묘사되고 있어, 독자들의 긴장감을 끌어 올립니다.

평단에서는 시인으로 더 인정받았던 에드거 앨런 포우는 그러나 일반 독자들에게는 이와 같은 괴기스런 단편 소설로 크게 환영받는 작가입니다. 그는 매우 어불성설일 것 같은 인물들의 행동과 심리를 보여 주면서도, 그것이 인간 본성에서 절대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서술을 통해 이성과 합리가 짚어내지 못하는 지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그의 단편들은 프로이트 계열의 정신분석학에서 자주 다루어지고 있으며, 라캉 같은 학자는 아예 「도둑맞은 편지」를 가지고 자신의 이론을 풀어가는 글을 쓴 바도 있습니다.

국내에서 ‘포우 단편선’ 으로 소개되는 책들은 「검은 고양이」를 필두로 하여 「도둑맞은 편지」 「모르그가의 살인」 「마르 로제의 수수께끼」등을 포함한 형태입니다. 사실 어찌 보면 요즘같이 추리 분야의 장르가 더욱 발달한 시점에선 ‘에이, 이거 이놈이 범인이군’ 하고 먼저 맞혀버릴 마니아 분들이 더 많을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포우 소설이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곰팡이 냄새는 쉽게 던져버릴 만한 매력은 아닙니다.

한결같은 음울함 속에서 비이성적 상황과 불가능한 전개로 광기의 영역을 무거운 펜걸음으로 다루는 포우 단편선은 5주 연속 주말에 비를 뿌리는 요즘 같은 날이라면 잔뜩 찌푸린 날씨에 마치 돼지고기에 새우젓 어울리는 듯한 궁합이라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멀리 휴가를 가실 상황이 아니시라면, 궂은 날씨 탓만 하지 마시고 날씨에 어울리는 포우 단편선과 함께 주말을 맞으시는 것도 장마철을 새롭게 즐겨보는 발상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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