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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한국 영화 OST가 탄생하던 시절 - <별들의 고향>

<별들의 고향>은 실질적인 국내 최초의 OST 앨범이다. 영화음악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한 영화에서의 음악만 모아서 독립적인 음반으로 출시된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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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고향>(1974년, 화천공사)
음악: 이장희, 강근식
감독: 이장호
주연: 안인숙, 신성일

지금은 사라져 버린 1970년대 서울의 옛 풍경들을 본다. 잿빛 하늘, 낡은 육교, 사람들로 꽉 찬 시내버스, 거리에 서 있는 인간 군상, 세발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그네를 타는 아빠와 딸, 갓 지어진 5층짜리 구 반포 주공 아파트. 그로부터 30년 넘은 시간이 흐른 지금 많은 것들이 바뀌고 사라져 버렸다. 옛날 서울을 추억하면서 <별들의 고향>을 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경아(안인숙)라는 젊은 여인, 비극적인 주인공을 찾아 나선다.

『별들의 고향』은 최인호가 20대에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소설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서울고등학교 동기 동창이기도 한 이장호는 최인호를 찾아가 이 소설은 무조건 내가 영화화한다고 강짜를 부렸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렇게 해서 이장호는 감독으로 데뷔를 하게 된다. 1970년대 한국의 젊은 감독들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 중 하나였다.

이장호와 최인호. 친구이기도 한 두 사람은 <별들의 고향>으로 인해
당대 최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별들의 고향>은 통속적인 멜로드라마다. 경아라는 젊은 여주인공의 인생 유전이 줄거리를 이룬다. 사랑을 찾지만, 사랑했다고 믿었지만, 모든 남자들이 다 그녀에게서 떠나간다. 문호(신성일)만이 그녀가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봐 줄 뿐이다. 경아라는 한 평범한 여성이 남자로 인해 호스티스로 전락하고, 결국은 자살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그 죽음은 한 여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냉담한 시선이 빚어낸 결과에 다름없다. 영화에는 여성에 대한 성적 불평등이라는 통념과 이데올로기가 담겨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아직 여성은 차별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던 시절이었다.

문호(신성일)가 병원에서 나와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이장희의 목소리로 「한 소녀가 울고 있네」가 흐른다. 거리 풍경과 함께 슬픈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아의 존재를 경쾌한 포크 음악으로 연주한다. “한 소녀가 울고 있네. 가냘픈 어깨가 들먹이네, 싸늘한 달빛이 비춰주네. 긴 머리가 달빛에 흔들리네. 한 소녀가 울고 있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었네.” 영화는 이렇게 가사와는 반대의 경쾌한 멜로디로 경아의 비극을 노래한다.

<별들의 고향>(1974)의 오리지널 포스터
테이블에 앉아 있는 문호에게 웨이터가 다가와 술을 따라 준다. 배경음악으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가 연주된다. 카메라가 혼자 바에 앉아 있는 경아를 비춘다. 문호는 그녀의 모습을 스케치해서 건네준다. 두 사람은 술집에서 우연히 만나서 다시 바로 온다. 또다시 「나 그대에게」가 흐른다. 이 노래는 경아를 상징하는 노래이다. 모든 남자들에게 사랑을 남김없이 주는 여인, 그리고 결국 빈손으로 혼자가 되고 마는 여인. 색소폰의 구슬픈 음률이 그녀의 감정을 슬프게 표현한다. 경아는 첫 남자인 영석(하용수)을 떠올린다. 경아가 사무실에서 떨어뜨린 펜을 영석이 주워 건네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시작된다. 두 사람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카지노에 가서 잭팟을 터뜨리고, 유원지에 가서 키스를 나눈다. 영석은 같이 잘 것을 요구한다. 경아는 거부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여관으로 간다. 영원히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영석은 경아를 떠나 다른 여자와 결혼해 버린다. 행복했던 시절, 경아가 영석과 함께 밴드가 연주하는 클럽에 갔을 때 누군가가 노래를 부른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그렇게 이 노래는 영화 전반에 걸쳐 경아의 테마처럼 흐른다.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오늘밤 문득 드릴 말 있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 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경아는 「나는 19살이에요」를 휘파람으로 분다. 그녀는 문호에게 “휘파람도 못 부는 아저씨가 있었어요.”라고 말하면서 만준(윤일봉)을 회상한다. 별장 같은 시골 대저택에 딸과 함께 살던 남자. 경아는 죽은 전처에 대해 아직까지도 집착하며 살고 있는 그와 결혼한다. 그의 의처증 때문에 부인이 자살했고, 부인과 많이 닮은 경아와 결혼한 것이다. 경아는 임신했다고 좋아하며 산부인과로 찾아간다. 그러나 그것은 상상 임신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만준은 의사를 통해서 경아가 낙태를 한 적이 있다는 사실만 알게 된다. 만준은 통념상 그녀의 낙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 만준도 경아의 곁을 떠나가 버린다. 짧은 결혼 생활에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 하나의 깊은 상처만 남았을 뿐이다. 이때 다시 「한 소녀가 울고 있네」가 흐른다. <별들의 고향>은 경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음악은 경아의 상황과 감정들을 표현해 준다. 여러 관점에서 순수한 한 여인에 대해 끊임없이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경아는 동혁(백일섭)으로부터 도망쳐 문호의 아파트로 들어온다. 경아는 문호에게서 위안을 얻지만 그녀의 삶은 점점 무너져 간다. 동혁은 경아의 몸에 담배로 지져 ‘혁’이라는 글자를 새긴다. 그는 경아를 사람이 아니라 소유한 물건처럼 대한다. 경아는 문호에게 “난 남자가 없으면 잠시도 살지 못해요.”라고 고백한다. 사랑을 두 번이나 잃은 그녀의 삶은 피폐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점점 술에 빠져 든다. 경아는 회상한다. “한때 모든 사람들은 저를 통해 위안을 받았죠. 그렇지만 하나 둘 떠나가요. 결국은 우리가 혼자뿐이라는 걸, 난 알아요.” 그리고 립스틱으로 거울에 쓴다. ‘아저씨, 안녕!’이라고.


동혁이 배를 타고 멀리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문호는 경아를 찾아간다. 경아는 이제 25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얼굴이 많이 상하고 말았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날은 한 해의 마지막 밤이다. 다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가 흐른다. 문호는 경아가 끓여 주겠다는 라면도 먹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고, 피곤하다며 경아의 방에 눕는다. 경아와 문호의 대화가 이어진다. 경아는 말한다. “행복해요, 더 꼭 껴안아 주세요. 여자란 참 이상해요. 남자에 의해 잘잘못이 가려져요. 한땐 나도 결혼을 하고 행복하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어요. (…) 아름다운 꿈이에요.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간 모든 사람들이 차라리 사랑스러워요. (…) 아저씨만 여기 계시는군요. (…)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뜨면 흔적도 없이 이별을 하곤 해요. 날이 밝으면 아저씨도 떠나가겠죠.” 경아는 자기가 만났던 남자들에게 자신의 순정을 주었지만, 그녀만 이렇게 홀로 버려진 것이다.

문호는 떠나고, 경아는 혼자 왕대포집으로 들어간다. 낯선 남자를 만난다. 「나는 19살이에요」가 윤시내의 목소리로 스크린에 가득 퍼진다. 경아는 그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하고, 또 다시 술집으로 돌아와 소주를 마신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선다.

난 그런 거 몰라요, 아무 것도 몰라요.
왠지 겁이 나네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난 정말 몰라요. 들어보긴 했어요.
가슴이 떨려오네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난 지금 어려요. 열아홉 살인 걸요.
화장도 할 줄 몰라요. 사랑이란 처음이에요.
웬일인지 몰라요. 가까이 오지 말아요.
떨어져 얘기해요. 얼굴이 뜨거워지네요.


노래가 끝나면 끝없는 설원이 펼쳐진다. 경아는 혼자 눈밭 위를 걷는다. 수면제를 먹고, 물 대신 눈을 떠서 먹는다. 사랑의 테마가 흐른다.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환청으로 듣지만 대지에는 새하얀 눈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녀는 문호와의 행복했던 마지막 기억들을 떠올린다. “제 입술은 조그마한 술잔이에요.” “그래, 정말 예쁜 술잔이로군.” 하늘에서 종이학이 떨어진다. 경아는 눈 위에 쓰러져 완전히 잠이 든다.


<별들의 고향>은 실질적인 국내 최초의 OST 앨범이다. 영화음악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한 영화에서의 음악만 모아서 독립적인 음반으로 출시된 것은 처음이었다. 영화를 위한 영화음악이란 개념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이었다. 녹음실에서 아무 음악이나 표절해서 사용하던 게 현실이었다. 최근에 만난 이장호 감독은 “당시 영화들은 음악이 다 망친다는 생각이 들었어.”라고 말했다. 반면 <별들의 고향>은 당대의 최고 뮤지션 두 사람을 다 동원할 수 있었다. 이장희도 그렇지만, 당시 ‘동방의 빛’ 리더였던 강근식은 포크록에 관한 한 당대 최고의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었다. 작곡을 한 이장희는 최인호 작가와 친분이 있었고, 편곡을 담당하고 기타를 연주한 강근식의 누나와는 개인적으로 알던 사이였으니, 당시의 문화계도 무척이나 좁았던 셈이다. 지금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음악 스튜디오가 있어서 녹음을 다시 하면서 보강하는 작업이 병행되었다. 이전까지 한국 영화 제작 과정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영화를 찍는 동안 이장희는 계속해서 작곡한 노래들을 들려주었고, 1970년대 신세대들의 공동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별들의 고향> 앨범에서도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와 윤시내가 부른 「나는 19살이에요」는 빅히트를 했고, 이로 인해 OST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장호 감독의 차기작 <어제 내린 비>,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 김호선 감독의 <겨울 여자> 등 OST 앨범이 연속해서 히트하는 결과를 낳았다.

1970년대는 새로운 가치관과 청년 문화가 형성되던 시기다. 이 시기는 청바지와 장발, 통기타와 포크 음악으로 상징된다. 이장희, 조동진, 양희은, 송창식, 윤형주 같은 가수들이 새롭게 등장해서 직접 곡을 쓰고 노래를 불렀다. 젊은 층들은 포크 음악을 자신들을 대변하는 음악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정치적인 현실은 암울했다. 자유는 구속되어 있었고, 많은 것들은 다가가지 못하는 금단의 영역 속에 있었다. 젊은 층들은 자신들을 표현할 방법을 찾았다. 현실에서 그들의 이상은 꺾였고, 좌절을 느낄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옛것과 새것 사이에서 가치관은 혼란스러웠다. 세대 간의 충돌과 경제 발전, 급격한 사회적 변화 속에 경아라는 여인이 존재한다. 그녀는 남성 중심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그녀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살이었다. 그것은 정신적인 순수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별들의 고향>은 그런 시대적 상황을 통속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영화와 포크 음악은 내용상으로나, 정서적으로 어울렸다. 둘 다 같은 젊음을 노래하고 있었다.


[Tip 1] 2010년 3월 10일 때늦은 눈이 아름답게 쌓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이장호 감독을 오랜만에 만났다. 1945년생 ‘해방둥이’지만 여전히 청년 같다. 호탕하고 시원스러운 성격, 개인적으로 이장호 감독과 오랫동안 알아 왔다는 것은 우리 영화의 역사를 만나 왔다는 기분을 들게 한다.

[Tip 2] <별들의 고향>은 원래 <별들의 무덤>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배달되는 신문 연재소설이 무덤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면 썰렁하지 않겠느냐는 편집 회의 결과 <별들의 고향>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Tip 3] <별들의 고향> OST 앨범은 16만 장이나 팔려 나가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다시 OST 음반 판매 기록을 갈아 치운 영화도 이장호 감독의 <외인구단>이었다. 1986년 < 외인구단>은 영화의 성공과 함께 정수라의 「난 너에게」를 대표곡으로 2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다.

[Tip 4] <별들의 고향>은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어 105일 동안 상영되면서 46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전에 처음 30만 명을 넘긴 영화가 <미워도 다시 한 번>이었다. 이장호 감독은 당시의 기분을 이렇게 회고한다. “10만이 넘으니까, ‘야, 인호가 소설 참 잘 썼구나.’ 했지. 20만이 되어갈 때는 ‘이장희 음악도 효과가 참 컸구나.’ 했는데 30만이 넘으니까 ‘영화도 잘 만든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다가 40만이 넘으니까 슬퍼져요. 뭔가 배신당한 느낌이 들었어. 누구 것도 아니고 혼자 달리는 말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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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T13,400원(16%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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