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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메적인 황홀경의 향연 - <스피드 레이서>
그렇다. 우리가 <스피드 레이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쾌락’은 ‘망가’에서나 가능하던 상상을 스크린의 실사영화로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니메적인 황홀경의 향연, <스피드 레이서>
※ 이 글은 국내에 출시된 <스피드 레이서> 블루레이 타이틀을 기준으로 작성하였으나 필자가 블루레이 타이틀을 캡쳐할 만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상태인 관계로, 글에서는 DVD 타이틀을 캡처한 이미지를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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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자동차 경주에 모든 것을 건 레이서 집안의 둘째 아들 스피드 레이서(에밀 허쉬)는 경주 중 사고로 죽은 그의 형이자 전설적인 드라이버 렉스가 가지고 있는 트랙 신기록에 육박하는 기록을 세운다. 거대 자동차 메이커인 로얄튼의 스카웃 제의를 받을 만큼 특급 레이서로서 인정을 받게 된 스피드. 하지만 가족과의 의리 때문에 로얄튼의 제안을 거부하자 곧 비리와 폭력으로 얼룩진 자동차 경주 리그의 위협을 맞닥뜨리게 된다. 스피드는 정보기관과 함께 경주 리그의 비리를 수사하는 정체불명의 레이서 X(매튜 폭스)와 함께 경주에 이길 경우 업계의 비리를 알려주겠다는 태조 토고칸(비)의 팀에 합류하여 위험하기 짝이 없는 랠리 경주에 참여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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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국내 방영 당시 <달려라 번개호>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마하 Go Go Go>는 요시다 다츠요의 원작 만화를 <독수리 오형제> <신조인간 캐산> 등으로 유명한 일본 다츠노코 프로덕션이 1967년에 52화의 TV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유명해진 작품이며 워쇼스키 형제의 <스피드 레이서>는 바로 <마하 Go Go Go>의 미국판 제목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다. 또 <스피드 레이서>는 각종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보듯 원작 만화의 세계관이나 의상 등을 좀 더 심화시키거나 영화적 현실에 근접하려는 최근의 추세와 달리 원작 만화의 원색적인 색감을 스크린상에 구현하려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워렌 비티가 <딕 트레이시, 1990>를 영화판으로 만들며 원작 만화가 지니고 있었던 파스텔 톤의 색감을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기려는 시도와 유사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18년 전 <딕 트레이시>가 기대만 한 흥행 스코어를 기록하지 못했던 것처럼 <스피드 레이서>의 올해 흥행 스코어는 썩 좋지는 못했다. 국내에서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비’가 ‘Rain'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했다며 크게 주목을 받았지만, 한국의 관객들 역시 이 영화가 선보이는 망가(Manga, 일본 만화)적인 비주얼에 적응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워쇼스키 형제는 노자 사상과 성경, 장 보드리야르의 세계관에다가 저패니메이션의 시각적 스타일과 홍콩 와이어 액션 요소가 뒤섞여 특유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영화 <매트릭스>의 연출자들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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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피드 레이서>는 이 영화의 표피적인 측면을 차지하는 망가적인 비주얼을 ‘아동용’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또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에서 보여준 연출을 거창한 것으로만 여기지 않는다면 충분히 환호할 만한 요소가 넘쳐흐르는 영화다. 주지하다시피 이 영화의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 우리의 주인공은 끝내 이기고 악당은 벌 받으며 가족들은 단단히 맺어진다. 기이하게도 <스피드 레이서>는 올해 <다크 나이트>와 <아이언맨>같은 미국산 슈퍼 히어로 영화가 점차 어두운 인간의 심연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만화 원작 영화다. 이 영화는 한없이 가볍고 아무도 죽거나 크게 다치지 않을 뿐 아니라 고전적이라고 할 정도로 선과 악의 구분이 뚜렷하다. 즉,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단선적이며 그들의 태도는 시종일관 변하지 않는다. 이는 <스피드 레이서>가 충직하게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에 모든 것을 건 영화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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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가 <스피드 레이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쾌락’은 ‘망가’에서나 가능하던 상상을 스크린의 실사영화로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부분에 있어서 워쇼스키 형제들의 정교한 연출력이 빛을 발한다. 이 영화의 제작진은 이 영화의 자동차 레이스 장면을 ‘Car-Fu’라고 부른다. ‘Car-Fu’는 자동차(Car)와 쿵푸(Kung-Fu)라는 두 단어가 조합된 말이고, 제작진이 만들어낸 이 신조어는 이 영화에서 펼쳐지는 4번의 레이스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희미한 기억이기는 하지만 필자의 기억에 남아있는 이 영화의 원작 만화 <달려라 번개호>의 기억은 자동차 레이싱 중에 펼쳐지는 황당무계한 액션 시퀀스였다. 레이싱 경기 중 자동차에서 쏟아져 나오는 각종 무기, 물리적인 법칙을 무시하고 점프하고 벼랑에 매달려 질주하는 즐거운 상상. 바로 그런 현실에서 불가능한 레이스가 이 영화에서는 신명나게 펼쳐진다. 주인공 스피드의 자동차 ‘마하5’는 벼랑에 매달려 질주하고 숨겨둔 톱날로 자신을 공격하는 적의 자동차를 박살내 버린다. 그래도 이 위험천만해 보이는 레이스에서 (적어도 겉으로는) 죽는 사람은 없다. 그 점이 이 영화의 광포한 레이스 장면을 아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하는 심리적 요소이기도 하다.
워쇼스키 형제는 <스피드 레이서>를 통해 순수한 시각적 쾌락을 꿈꾼다. 이 영화에 대해서 현실감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영화는 F1레이스를 소재로 한 <그랑프리, 1966>나 나스카 레이싱을 소재로 한 <폭풍의 질주, 1990> 또는 거리 경주를 소재로 하고 있는 <분노의 질주, 2001>와 같은 영화와는 다르다. 오히려 이 영화의 레이싱 장면 재연은 플라스틱 트랙 위에서 펼쳐지는 장난감의 레이스와 같다. 영화에서 소개되는 ‘T-180’ 기술이 반영된 경주용 자동차는 바퀴가 180도로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자동차는 720도 회전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질주한다. 현실에서 불가능하지만 영화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 눈앞에서 ’실사‘로 펼쳐지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시각효과가 가능하게 된 것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CG 기술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런 영화 밖의 일을 잊어버리면 이 영화는 놀라운 자동차의 액션 스펙터클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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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워쇼스키 형제는 이 영화에서 CG를 썼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영화가 사실감을 위해서 CG를 사용했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스피드 레이서>는 의상과 미술부터 등장인물에게까지 원색적인 색감을 부여하였고 장면이 전환될 때는 출판만화처럼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에 인물을 끼워놓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선보인다. 말하자면 <스피드 레이서>는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경계를 워쇼스키 형제의 차원에서 이어놓는다. 결국 이런 시각적 스타일의 생경함 때문에 대중적인 호응은 약했을는지 모르겠지만 <스피드 레이서>는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질감의 영상을 관객에게 쏟아낸다. 그리고 적어도 필자에게 그건 ‘황홀경’이라고 부를 정도의 시각적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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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퀄리티를 선보이는 <스피드 레이서 BD>
<스피드 레이서> 블루레이는 이 새로운 매체의 탁월함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 영화는 애초에 HD 카메라로 촬영되었고 굉장히 많은 장면에서 CG 장면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원본 소스와 동일한 사이즈의 영상을 구현할 수 있는 블루레이 포맷에 가장 최적화된 실사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타이틀의 우수한 영상 퀄리티는 특히 엄청난 속도의 레이싱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탁월한 속도감의 표현과 많은 정보량에도 불구하고 영상적인 약점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고 매끈한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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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레이서> 블루레이 디스크의 포맷상 약점으로 지적된 점은 음향 부분이었다.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을 지닌 시스템이 많지 않기는 하지만 많은 최신작 블루레이 타이틀이 대개 고해상도의 돌비 디지털 True HD 포맷을 지원하는 데 비해 <스피드 레이서>의 경우에는 저사양이라고 할 수 있는 돌비 디지털 5.1 채널만을 지원했던 것. 하지만 이런 포맷에 대한 불안감은 정작 타이틀을 재생하면 체감하기는 어렵다. 놀라운 비주얼에 상응하는 폭발적인 효과음과 사운드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와 감상자의 얼을 쏙 빼놓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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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플먼트는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 디스크가 DVD 버전에 비해 두 개가 더 제공된다. 그중 하나인 Speed Racer : Car-Fu (27분 38초)는 이 영화에 사용된 자동차 경주 장면과 액션 시퀀스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는 메뉴로 환상적인 영화 속 장면이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해답을 줄 수 있는 메뉴다. 또 다른 서플먼트인 Speed Racer : Ramping Up!(9분 58초)는 일종의 홍보용 피처릿 같은 것으로, 배우들과 제작자 조엘 실버 등의 목소리를 통해 영화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캐릭터 소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외 두 편의 서플먼트는 국내판 DVD에도 포함되어 있는데, Spritle in the Big Leagues(14분 43초)는 영화 속에서 레이서 가족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로보트 태권V>의 깡통 로봇 같은)인 스프리틀 역을 연기한 아역 배우 폴리 릿이 독일에서 진행된 촬영장 곳곳을 가보며 영화 제작의 여러 부분을 소개하는 서플먼트. 약간 코믹한 분위기로 가볍게 즐길 만한 내용이다. 비가 무술 연습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 메뉴이기도 하다. Speedracer : Supercharged!(15분 41초)는 영화의 레이싱 장면에 등장하는 자동차를 소개하는 메뉴다. 내레이션을 통해 자동차의 제원과 장치를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 영화에는 100여 개의 자동차 디자인이 적용되었으므로 그 모두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에 사용되는 주요 자동차에 대한 소개가 수록되어 있다. 다만 블루레이 타이틀에 제공되는 서플먼트 포맷이 풀HD를 지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SD급의 풀 스크린을 지원하는 정도에 그쳐 아쉬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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