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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등급 상상력의 대폭발 - <플래닛 테러>
어떤 의미에서 로베르토 로드리게즈의 <플래닛 테러>는 ‘그라인드 하우스’라는 본질에 좀 더 접근한 영화다. 타란티노의 영화가 좀 더 감독의 자의식이 느껴진다면 <플래닛 테러>는 그야말로 피 칠갑과 가공할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X등급 상상력의 대폭발 <플래닛 테러>
심장이 좋지 않거나 잔혹한 인명 살상 장면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분들에게는 절대로 이 영화를 권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상영 시간 내내 강도 높은 폭력장면이 속출한다.
의사가 되기를 꿈꾸었으나 스트리퍼가 된 체리(로즈 맥고완)는 인생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막 스트리퍼 일마저 그만둔 참이다. 식당에서 만난 옛 애인 엘 레이(프레디 가르시아)의 차를 얻어 타고 집에 가던 중 좀비떼의 습격을 받은 체리는 다리를 잃게 된다. 한편, 화학 가스에 의해 감염된 사람들은 좀비로 변해가고 병원과 경찰서 역시 예외는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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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도에 쿠엔틴 타란티노와 로베르토 로드리게즈는 7,8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동시상영관 영화, 즉 ‘그라인드 하우스’의 정취를 고스란히 재현한 영화 두 편을 나란히 공개했다. 미국 내에서는 ‘그라인드 하우스’라는 제목으로 두 편의 영화와 네 편의 예고편을 끼어넣어 연속 상영하는 방식을 취했고 해외(미국판)에는 각각의 영화가 좀 더 길어진 ‘인터내셔널 버전’의 <데스 프루프>와 <플래닛 테러>가 상영되었다. 국내에는 작년에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데스 프루프>가 공개되었고 올해 좀 더 과격한 <플래닛 테러>가 공개되었는데, 이 두 편의 영화는 현재는 자취를 감춘 저예산 선정영화(Exploitation Film)의 장르와 표현 방식을 따른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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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영화(Exploitation Film)는 심야상영을 전제로 한 저예산 장르영화로 할리우드 주류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폭력과 성(性) 묘사로 악명이 높았는데, 대부분의 영화가 한동안 영화팬들로부터 ‘쓰레기’ 취급을 받았지만 표현과 주제 의식에 있어 한계가 없었기에 오히려 주류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나름의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미 <킬 빌 1,2>를 통해 홍콩의 쇼 브라더스 무협영화, 일본의 찬바라 사무라이 영화 등을 오마주하여 자기 스타일로 만든 바 있는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런 B급 영화에 깊은 애정을 표시한 바 있었고, 이번에는 그의 단짝인 로베르토 로드리게즈와 함께 과거의 ‘그라인드 하우스’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런 기획에 따라 타란티노는 과거 그라인드 하우스 영화들 중 슬래셔 호러 영화와 스턴트 액션 영화의 요소들을 가져와 <데스 프루프>를 연출했고, 로드리게즈는 좀비 호러물과 무차별 총기 액션물의 요소들을 가지고 <플래닛 테러>를 연출한 것. 이 두 편의 영화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들의 주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막 나가는 수위’로만 따지면 로드리게즈의 <플래닛 테러>가 타란티노의 <데스 프루프>를 간단하게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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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 테러>는 그다지 논리가 중요하지 않은 영화다. 도대체 여주인공의 잘려진 다리에 장착된 자동소총이 어떻게 발사되는지는 알 길이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그냥 그 독특한 뉘앙스와 거기서 발생하는 액션 자체가 ‘폼’이 나는 것이면 그만이다. 좀비들과 싸우는 특공대의 여인네들이 왜 그리도 헐벗고 다니는지 알 길은 없지만, 그것 역시 여성을 눈요깃거리로 삼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B급 영화의 노골적인 태도였다. 이 영화에서 그런 개연성을 따지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다. 영화 상영 내내 반복되어 보이는 것은 육체가 녹아내리고 절단되고 부서져버리는 피 칠갑 장면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런 장면이 거듭되다 보니, 그것들은 일종의 ‘유희’의 하나가 되어버린다. 영화의 후반부는 창의적 방식으로 좀비 학살극이 벌어지고 사방으로 튀는 핏빛에 주인공들은 열광한다.
또 <플래닛 테러>에서는 정치적 공정성 따위 역시 전혀 중요하지 않다.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는 처음부터 ‘막 나가는’ 영화를 만들기로 작정했고, 그들의 의도는 꽤 성공적이다. 거의 사멸된 ‘그라인드 하우스 영화’를 현대적으로 다시 만든 그들의 영화는 세련됨을 기본으로 하는 최근의 상업 영화와는 전혀 다른 질감의 폭력 묘사와 핏빛으로 메워진다. 로드리게즈는 DVD의 음성 해설에서 이 영화 곳곳에 B급 영화의 제왕인 존 카펜터와 로저 코먼 그리고 스파게티 호러 영화의 장인인 루치오 풀치에게 오마주가 들어있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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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 테러>는 영화의 금기를 하나하나 깨버리는 것이 마치 사명인 것처럼 진행되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들까지 모두 마초다. 그들은 자동소총을 들어 좀비를 학살하는 데 아무런 주저함도 없다. 그들은 모두 총을 사랑한다. 거기에 로드리게즈는 좀비의 근원이 ‘이라크에서 빈 라덴을 죽인 탓’이라는 정치적 블랙 유머까지 섞어 넣는다.
타란티노가 <데스 프루프>에서 영화를 이등분하고 전반부에는 상태가 안 좋은 그라인드 하우스 영화의 화질을 재연하면서 오마주를, 후반부는 비교적 깨끗한 화질로 자신의 재해석을 넣는 방식을 취한 것처럼, 로드리게즈 역시 의도된 화질 열화로 <플래닛 테러>의 표현 방식을 확장한다. 영화에서 인물이 ‘절단’을 의미하는 제스추어를 취할 때 영화는 탁 끊기는 효과가 표현되고, 인물이 폭력적으로 변할 때는 색감이 변하기도 한다. 또 영화에 안 좋은 징조가 있거나 폭력적인 일들이 벌어지기 전에 화질이 특히 안 좋아진다.
어떤 의미에서 로베르토 로드리게즈의 <플래닛 테러>는 ‘그라인드 하우스’라는 본질에 좀 더 접근한 영화다. 타란티노의 영화가 좀 더 감독의 자의식이 느껴진다면 <플래닛 테러>는 그야말로 피 칠갑과 가공할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플래닛 테러>는 결코 가족들과 함께 볼 수 없는 영화이지만(미친놈 소리 듣기를 원한다면야…….) ‘피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관객에게는 통쾌하기까지 한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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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 테러>는 매우 선명한 HD 카메라로 촬영되었으나, 심야상영관에서 화질 안 좋은 상태로 상영되던 과거의 ‘그라인드 하우스 영화’를 재연하기 위해 고의로 열화된 화질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상영 중간에 화면이 불타는 장면이 등장한 후에는 ‘필름 소실’이라는 자막이 뜨기도 하는데, 이 역시 철저히 의도된 것이다. 고의로 손상된 저예산 영화 필름임을 표현하는 영화이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면 영상의 질감이 잘 살아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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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역시 필름 손상의 표현을 사운드로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 당연히 거친 음향을 표현하고 있지만 막무가내로 질주하는 영화에 어울리는 돌비 디지털 5.1 채널의 사운드는 서라운드를 충분히 잘 활용하고 있다. 폭발 장면과 총격 장면이 난무하며 요란한 배경음악 역시 쉴 새 없이 스피커를 울려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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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 테러> DVD의 서플먼트는 ‘그라인드 하우스’의 다른 한편이자 타란티노의 영화인 (역시 서플먼트가 풍부한) <데스 프루프> DVD에 비해서도 상당히 풍부한 편이다. 일단 첫 번째 디스크에는 로베르토 로드리게즈의 음성 해설이 들어 있으며, 미국 심야영화관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관객 효과음 트랙 역시 들어 있다. 그 외에는 여러 나라의 포스터와 로비 카드 그리고 예고편이 수록되어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감독 로베트로 로드리게즈가 10분 내외 분량으로 음식이나 영화 만들기 요령을 다루고 있는 ‘10 Minutes’ 시리즈 형식으로 영화 제작 과정을 다루고 있는 10-Minute Film School With Roberto Rodriguez(11분 51초),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에 대한 소개와 인터뷰를 다루고 있는 The Badass Babes of Planet Terror(11분 49초), The Guys of Planet Terror(16분 31초), 감독이 자신의 아들인 레벨을 출연시킨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Casting Rebel(5분 33초), 스턴트맨에 대한 소개와 액션 연출에 관한 소개를 다룬 Sickos, Bullets and Explosions: The Stunts of Planet Terror(13분 17초) 그리고 영화에 출연한 감독의 지인들에 대한 소개인 The Friend, The Doctor And The Real Estate Agent(6분 41초)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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