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낮 공연이라서 그런가, 언제나 바글바글하던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 빈자리가 보인다. 거미줄까지 쳐진 음산한 무대며, 연극 안에 또 다른 극이 있다는 점은 나름대로 신선한데, 이거 도입부가 꽤 지루하다.
덥지 않아서 좋기는 한데 어째 좀 아쉽다. 아직은 여름을 붙잡고 불퉁불퉁 트집을 잡고 싶은데, 예고도 없이 가을이 찾아오더니 스산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공연계는 가을을 맞아 봇물 터지듯 무대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연극계는 ‘연극열전’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기대를 모았던 유명작품들이 대거 무대에 오르고 있다. 아직 여름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일까? 멜로물이 쏟아지는 요즘, 고도의 공포 심리극을 찾아 나섰다.
예상치 못한 360도 다각적 공포, 연극 <우먼 인 블랙>
다각적 공포 연극 <우먼 인 블랙>
주말 낮 공연이라서 그런가, 언제나 바글바글하던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 빈자리가 보인다. 거미줄까지 쳐진 음산한 무대며, 연극 안에 또 다른 극이 있다는 점은 나름대로 신선한데, 이거 도입부가 꽤 지루하다. 뭐야,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6천 회 이상 공연되며 3백만 관객을 동원한 스테디셀러 연극이라더니…. 그런데 무대에 있는 유령이 내 말을 들었나? 도도하게 무대를 바라보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몸을 바짝 움츠리고 바들바들 떨어야만 했다.
한 노인이 연극학원 비슷한 곳을 찾는다. 자신이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던 무시무시한 사건을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으려 하는데, 배우는 아니지만 좀 더 전달력 있게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노인과 강사는 연기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젊은 시절 변호사였던 노인은 한 시골 저택의 유일한 거주자였던 노파가 죽자, 장례식 참석과 서류 정리를 위해 마을을 찾는다. 런던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에 마냥 좋은 변호사.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저택에 들어서면서부터 평생을 따라다니는 불운과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무대에는 노인과 강사, 달랑 2명의 배우가 오른다. 그들은 노인이 겪은 일을 연기하고 지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1인 다역을 맡게 되는데, 물론 연기 변신은 볼만하다. 특히, 상체 움직임을 통해 기차 안 덜컹거림을 표현하거나, 엉덩이와 다리를 적절히 움직이면서 마차 모는 모습을 연출하는 등 특별한 무대 배경이나 소품 없이 특정 장면을 표현하는 모습은 가히 천재적이다.
뭐가 그렇게 무서우냐고? 일단 희곡 자체가 탄탄하다. 예측은 되지만 뻔히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순간순간 화들짝 놀라게 된다. 거기에 독특한 구성과 앞서 말한 배우들의 숙련된 연기가 더해져 목을 쭉 내밀고 극에 빠져든다. 다음은 노련한 조명. 공포물의 일등 공신은 긴박함이 아니던가? 배우와 함께 숨 가쁘게 돌아가는 조명은 그야말로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음향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연극 무대에서 이런 사운드를 듣기는 처음인데, 영화관처럼 소리가 이쪽저쪽으로 옮겨가며 공포 분위기를 확산한다.
공포 영화는 연극보다 훨씬 다양한 장면과 특수효과를 세련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아무리 무서워도 <링>의 귀신이 TV 브라운관 밖으로 나오는 것처럼 스크린 밖으로 상황이 튀어나올 수는 없다. 어차피 스크린 안에 모든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연극은 무대 자체가 열려 있고, 객석이나 천장도 무대의 연장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조명으로도 공포감을 실어 나른다. 그렇다, 공포 연극은 앞은 물론 뒤에서, 위에서 또 다른 장면이, 무슨 소리가, 어떤 조명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것이다. 360도 다각도에서 전해져 오는 예측할 수 없는 공포! 웬만한 영화는 흉내도 못 낼 공포다. 물론 공포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반전도 잊지 마시라.
8인 8색 여배우들의 화려한 연기, 연극 <8인의 여인>
8인 8색 여배우들의 화려한 연기
역시 이력이 화려한 작품이다. 2002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영화 <8인의 여인들>의 원작인 연극 <8인의 여인>이 국내 무대에 처음으로 올랐다. 다소 독특한 분위기에 기묘한 흐름의 영화를 기억한다면 이 연극에 대한 기대도 남다를 것이다. 게다가 뮤지컬 <클로저 댄 에버>나 연극 <썸걸즈>에서 감각적이고 세련된 연출로 주목받았던 황재헌이 연출을 맡아 더더욱 믿음이 생긴다.
크리스마스 아침 프랑스 시골의 한 귀족 집안. 얼핏 봐서는 평화롭기만 한 이 집안에 사건이 터진다. 바로 가장이 살해된 것이다. 슬픔과 혼란 속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전화선도 끊기고, 자동차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낯선 사람을 보면 사납게 짖는 개도 밤사이 침묵을 지켰다. 그렇다면 범인은 집 안에 있다는 것.
집 안에는 모두 8명의 여자가 있다. 살해된 남자의 아내를 비롯한 여동생, 처제, 장모, 2명의 딸 그리고 2명의 하인. 모두가 용의자가 된 만큼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려는 8명의 사투는 가히 압권이다. 누군가의 거짓말, 자신의 혐의를 벗으려고 그 거짓의 진실을 들춰내는 일이 반복되면서 도대체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진다. 게다가 평화롭게만 보였던 그녀들, 도대체 무슨 사연과 비밀이 이다지도 많단 말인가? 살해된 남자를 둘러싸고 모두 돈과 사랑을 주거니 받거니 얽혀있다.
고도의 심리극 연극 <8인의 여인>
연극 <8인의 여인>의 가장 큰 재미는 역시 8인 8색, 무대에 오르는 여배우 8명의 각기 다른 연기 세계를 보는 것이다. 할머니 역의 이주실을 비롯해, 아내 이연규, 처제 박명신, 고모 정재은, 막내딸 방진의까지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는 다 모였다. 그리고 각기 개성 강한 역할을, 원래도 뚜렷한 개성을 자랑하는 그녀들이 각자의 노하우로 표현하고 있으니, 무대 밖에서 보는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두 걱정하셨어요. 여자 8명이 모였는데 무사할까(웃음)… 그런데 그것도 복이라고 할까요? 그래도 연극계에서는 각 세대별로 두각을 드러내는 배우들이 모여서,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배려하고 최선을 다하면서 즐겁게 공연하고 있어요.” 막이 오르기 전 이주실 씨를 만나 ‘여자 8명이 모였는데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느냐’고 물었더니, ‘에피소드가 없어 미안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다소 시끄럽기는 하다.(^^)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놀란 배우들의 마음은 알겠지만 소리를 너무 질러서 좀 촌스러운 맛은 있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노련한 연기, 특히 다른 무대에서의 그녀들을 기억한다면 그 놀라운 변신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마지막으로, 처음에는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던 그녀들이 점차 상처를 내보이며 서로 위로하는 모습에서, 이 연극이 참으로 많은 걸 내포하고 있는 심리극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즈음 터지는 반전에,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의 내실을 실감하게 된다.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왔던 김겨울 작가가 시인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본래 시인일지도 모르겠다. 김겨울 시인은 우화라는 이야기의 형태를 빌려, 담대하게 불가해한 인생의 의미와 슬픔이 가져다주는 힘을 노래한다. 다 읽고 나면, 이 시인의 노래를 가만히 서서 듣고 싶어질 것이다.
무기력. 전 세계를 뒤덮은 감정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코로나 팬데믹 3년이 결정적이었다. 매킨지 조사로는 세계 직장인 42%가 무기력한데 한국은 51퍼센트로 높은 편이었다. 희망은 있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가 무기력을 극복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궁금한 건 뭐든지 파헤치는 '왜왜왜 동아리' 제대로 사고쳤다?! 반려견 실종 사건을 파헤치던 동아리 아이들, 어른들이 이익을 위해 선택한 일들이 환경오염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후 행동에 나서게 되는데... 세상을 바꿔나가는 개성 넘치고 활기찬 아이들의 반짝이는 이야기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