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비건 특집] 기후변화 시대의 소설 - 소설가 김기창
<월간 채널예스> 2021년 6월호
두 작품 모두 쓰면서 울컥하는 순간이 많았어요. 한국에 참 많은 현실이고, 너무 처참하잖아요. 기후변화가 일상을 이렇게까지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게. (2021.06.11)
소설은 관념으로 아는 것을 감정으로 알게 해준다.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을 구성하는 열 편의 이야기 가운데 행복한 결말을 예견케 하는 소설은 한 편도 없다.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소설은 흔하지 않아요. 더구나 한국에서는. ‘이야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 걸까요?
기후변화가 중요한 문제지만 제가 재미있게 풀어낼 가능성이 없었다면 쓰지 않았을 거예요. 소설은 이야기이고 이야기는 재미있어야 하니까요.
소재는 다르지만 앞선 두 작품(고독사 문제를 다룬 『모나코』,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이야기한 『방콕』)이 그랬듯이, 생명을 가진 것들의 ‘존엄’ 이야기로 읽히기도 했어요. 유럽기후재단 컨설턴트인 김혜경의 추천사에도 관련한 문장이 있더군요. “소설은 그 재앙이 모퉁이에 있는 이들에게 더 가혹하다는 점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저는 글이 사회적 약자의 무기라고 생각해요. 다른 무기, 이를테면 영화나 미술에 비해 자본의 영향을 가장 덜 받으니까요. 물론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소설도 있지만, 그런 이야기를 내가 쓴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작가의 말에 “이 모든 것을 다시 마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여기 실린 소설들의 동력이다”라고 고백했죠.
『방콕』을 막 탈고한 무렵이었어요. 마산에 살고 있던 때라 아내와 함께 구례를 비롯한 남쪽 지역을 여행했어요. 참 좋았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이 장면을 다시 볼 수 없겠구나. 비슷한 시기에 사진 한 장을 보게 됐어요. 사냥꾼과 완전히 탈진한 어미 북극곰이 대치하고 있고 둘 사이에 새끼 곰이 있었어요. 새끼 곰이 천진한 얼굴로 사냥꾼에게 다가가는데 어미 곰이 아무런 제어도 못 하는 거예요. 이런 것이구나, 기후변화란. 어느 시점에서는 우리 모두 손 놓고 볼 수밖에 없겠구나. 가장 사랑하는 것에게 죽음이 닥쳐도.
그 사진이 「약속의 땅」이 됐군요. ‘아푸트’라는 이름을 가진 미지의 동물. 소설에서는 끝내 어떤 종인지 알려주지 않아요.
「약속의 땅」은 실린 순서로는 여덟 번째지만 쓴 순서는 첫 번째예요.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의 목소리를 담고 싶었는데 이 작품을 빌려 소망을 이뤘어요.
기후변화 문제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만한 현실이 곳곳에 등장하죠. 그런 점에서 「소년만 알고 있다」가 기억에 남아요.
열 편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발리에서 어업으로 생존하는 소년은 산호초의 죽음이나 어종이 바뀌는 데 아무런 책임이 없어요. 그런데 그로 인해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죠. 그런 존재들이 거듭 생존의 위협을 받으면, 결국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살인 같은 비극의 발화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긴박한 상황을 전하고 싶어서 장르문학 요소를 많이 가져왔어요. 미스터리라면 불안과 두려움, 긴박함을 증폭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가 하면 앞에 배치된 세 편은 SF예요. ‘돔시티 3부작’이라 불리던데, SF적 상상력을 발휘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돔시티는 제 스스로 생각해본 대안이에요. 정말로 거주불능지구 시점이 왔고, 과학기술은 더욱 발전해 있을 텐데, 그때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일까지 할까? 둘러싸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거대한 투명 태양열 패널로 둘러싼 도시, 그 도시에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소수일 거예요. 그래서 1부에는 밖에 있는 사람, 2부에는 안에 있는 사람, 3부에는 경계에 있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각각 이야기를 펼쳐나갔어요.
분명 미래 도시인데 현재가 읽혔어요. 우리가 알고도 눈감는 문제들, 오늘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비극이 그 도시 안에 있더라고요.
실제로 1부 「하이 피버 프로젝트」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람들을 생각하며 썼어요. 3부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은 트럼프가 멕시코 국경에 세운 벽이 모델이었고요. 밀려난 사람들의 존엄은 짓밟히고, 안전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밖으로 내보낸 채 일상을 살아가고, 경계에 있는 사람들은 지키는 동시에 죽여요. 그것이 우리의 미래일 수 있는 거죠, 아마도.
북극에서 발리까지, 돔시티에서 동사무소까지 다양한 장소들이 등장해요. 다양한 처지의 사람들도. 인간이 아닌 종이 주인공이기도 하고요. 이 또한 작가의 의도인가요?
소재든 공간이든 인종이든 종이든, 최대한 많이 등장시키려고 했어요. 기후 위기에서 예외인 존재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이 심각한 현실을 소설적 재미와 연결 짓기 어려웠는데, 결과는 정반대였어요. 특히 「굴과 탑」, 「접는 나날」은 오래된 우화 같았어요. 불가능한 깊이로 굴을 파고 불가능한 높이로 탑을 쌓아서라도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연인, 직업을 접고 좁은 원룸의 살림살이를 접고 끝내 한 장의 티셔츠로 접힌 청년이라니.
두 작품 모두 쓰면서 울컥하는 순간이 많았어요. 한국에 참 많은 현실이고, 너무 처참하잖아요. 기후변화가 일상을 이렇게까지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건 제 방식이 아니기도 하고, 자칫 르포처럼 보일 수 있을 것도 같았죠. 그래서 더 우화적으로 썼어요. 이야기로 존재하길 바라니까요.
제목에서 선언했듯이 열 편 모두 사랑 이야기예요. 그런데 그 모든 사랑이 잔혹하게 난도질을 당하죠. 마치 기후변화의 결말과 닿아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소설이 사실보다 힘이 세다고 생각해요. 더 오래 기억하니까요. 비극은 더 그렇고요. 작가의 말에도 썼듯이 좋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두려움을 느껴야 해요. 어설픈 희망은 이상하죠. 더욱이 지금 같은 때에는.
*김기창 1978년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나 한양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이런저런 매체에 글을 쓰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했다. 2014년 장편소설 『모나코』로 38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그 외 저서로는 장편소설 『방콕』, 단편소설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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