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백영옥 “실패하지 않은 사랑에는 관심 없어요”
『애인이 애인에게』펴내 연애소설이긴 하지만 이상한 연애소설 <월간 채널예스> 2019년 4월호
관계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제가 위안을 받고 싶어서 쓴 책이에요. 제가 정말 힘들고 뭔가 놔버리고 싶었을 때, 곁을 지켜준 사람은 모두 여자들이었던 것 같아요.
소설가 백영옥은 더는 ‘나’로 시작하는 말에는 관심이 없다. 과거에는 자신이 너무 중요해 스스로의 내면을 파는 데 집중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누군가 “너는 말이지, 우리는 말이지”라고 대화의 포문을 열 때, 귀를 쫑긋 세운다. 언제나 성공보다 ‘실패’에 집중하는 작가답게 4년 만에 펴낸 소설 『애인의 애인에게』는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 이야기다. 소설 속 주인공은 네 명. 성공에 집착하는 뉴욕의 포토그래퍼 ‘성주’와 그를 짝사랑하는 ‘정인’, 그와 결혼하는 ‘마리’, 그가 정말 사랑하는 ‘수영’이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사랑을 한다.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맞닥뜨린다는 사실이다. 백영옥은 “좋은 소설이란, 질문을 확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설의 독자들은 과연 어떤 질문을 던지며 책장을 넘기고 있을까, 작가는 몹시 궁금하다.
연애소설이긴 하지만 이상한 연애소설
소설은 오랜만이시죠? 근 4년 만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일이 많았어요. 하지만 소설이 나오지 않은 기간에 글은 가장 많이 쓴 것 같아요. 기자로 복직한 느낌이랄까요? 사실 저를 소설가로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많아요. 이번에 소설이 나온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어머, 소설 쓰세요?”라고 놀란 분도 계셨어요.
의외네요. ‘소설가 백영옥’을 알고 친구 신청을 했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은 분이 의외로 많더라고요.(웃음) 제가 소설을 쓰기 전에 다양한 직업을 거쳤잖아요. 광고회사 AE도 했고, 잡지기자도 했고, 인터넷서점에서 일하기도 했고요. 내 생애 마지막 직업이 소설가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럴까 싶기도 해요. 요즘은 삶의 조건이 워낙 유동적이니까요. 그리고 저라는 사람 자체가 새로운 일을 좋아하고 일에서는 전투적이에요. 성격으로 보면 소심하고 오히려 보수적인 면도 많은데, 일할 때는 달라지는 것 같아요. 모험을 즐기는 편이라 여러 가지 시도하는 게 즐거워요. 내 인생에 실패가 많아서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작가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읽었어요. 이번소설 『애인의 애인에게』를 두고, 친구분께 “그냥 망한 사람들 이야기”라고 말하셨다고요?
(웃음) 저는 실패하지 않은 사랑에는 관심이없어요. 사람들은 대개 사랑의 성공을 ‘결혼’이라고 여기잖아요. 하지만 관계의 지속성이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은 아닌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실패로 끝난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는 아무리 길어도 귀 기울여 듣게 돼요.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건 기적”이라고 했잖아요. ‘성주’를 열렬히 사랑한 ‘마리’의 사랑이 그랬듯, 현실에서는 이런 기적이 잘 일어나지 않아요. 토익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 점수를 올릴 수 있지만, 사랑은 아니에요. 인풋을 많이 한다고 아웃풋이나오는 게 아니죠. 인과관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정말 어려운 세계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이 소설이 ‘실패한 사랑 이야기’라는 생각을 안 했어요. 마리와 수영, 정인은 모두 각자의 사랑에 충실했으니까요.
독자마다 소설을 통해 느끼는 지점이 다른것 같아요. 어떤 독자는 ‘난 절대 마리처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너무 불쌍해’라고 생각할수도 있고, 어떤 독자는 ‘마리는 이 사랑을 통해 나중에 더 깊은 사랑을 하겠구나. 훨씬 더멋진 사람이 되겠구나’라고 느낄 거예요. 작가로서는 후자이길 바라는 거예요. 누군가 제게 “『애인의 애인에게』가 어떤 소설이냐?”고 묻는다면, “어둠 속에서 어둠을 보는 법에 관한 이야기”라고 답할 거예요. 요즘은 사랑도 너무 자기계발화가 됐잖아요. 사랑 안에서 정답을 찾고 매뉴얼을 찾는데, 사실 우리는 알지 않나요? 매뉴얼대로 한다고 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걸요. 그런데 자꾸 왜 매뉴얼을 만들까를 따져보면, 답답해서일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랑이라는 건 간단치않으니까, 그 답답함을 끌어안자는 거예요. 사랑은 결코 얄팍하고 얇지 않아요. 굉장히 입체적이고 다양한 방식이 있어요.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쓴 『사랑 예찬』을 보면, 데이트 사이트의 슬로건이 하나 등장해요. “사랑에 빠지지 않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쾌락은 취하고 고통은 버린다는 거예요. 굉장히 많은 프로그램이 사랑을 안전하게 만들고자 하지만, 사랑은 절대 안전할 수 없어요. 사랑에 빠지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으니까요.
소설 속 주인공 ‘마리’가 위험에 빠진 것처럼요.
마리도 자신의 일부를 버려야 했으니까요. 사랑은 가장 적극적인 소통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나와 너가 만나서 ‘우리’라는 정체성을 만드는데, 모든 걸 합칠 수는 없어요. 나의 일부, 너의 일부를 버려야 해요. 마리와 수영, 정인은 ‘성주’라는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 각자 다른 상처를 겪어요. 하지만 이들은 결국 인간적으로 매우 훌륭한 여자들이에요. 자기감정만 보지 않았잖아요.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봤고, 좀 더 자신을 내밀하게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요. 인간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어요. 이 소설의 형식은 연애소설이지만, 어떻게 보면 자매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연애소설이긴 하지만 이상한 연애소설이랄까요?
세 여자에게 사랑받는 남자 ‘성주’의 캐릭터는 약간 모호하게 느껴졌어요. 이상과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인물인데요.
성주라는 캐릭터에 대해 무게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했어요. 너무 나쁜 놈 같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성주 같은 사람이 어디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연애할 때 한 번쯤은 통과하게 되는 남자인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되는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성주는 자기 야망이 있는 사진가인데, 포르노그래피를 찍으면서 돈을 벌어요. 결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하지 않고요. 이상과 현실이 있으면 그 중간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철저히 이상주의자도 아니고 현실주의자도 아닌, 20대를 대변하는 캐릭터 같아요.
현실에서 ‘성주’와 같은 남자를 만난다면, 이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을 것 같아요.
(웃음)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고 할 때, 그림자 쪽을 만나는 체험이에요. 다양하게 자기계발화가 된 세계에서 제공하지 않는 어두운 그림자를 경험해보는 거죠. 그림자를 경험하면 인간으로서는 성장할 수 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안전하고 싶으니까요. 대신 소설이라는 세계를 체험하는 거죠. 사랑의 시차와 속도는 같을 수 없는 것 같아요. 먼저 사랑을 시작한 사람이 금방 식을 수 있고, 늦게 시작한 사람이 오히려 더 강하게 사랑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자주 싸우고 또 이별하게 되는데, “넌 왜 나를 더 이상사랑하지 않니?”라고 말할 순 없어요. 사랑은 누가 피해자고 가해자라고 말할 수 없는 문제예요. 성주도 어떤 면에서 보면 그렇게 사악한 인물이 아니에요. 자기이고자 하는 힘이 강한 사람일 뿐이죠. 나를 양보 안 하려는 사람, 내 캐릭터를 고수하려고 하는 사람인데, 연애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나쁜 사람으로 보이기 마련이에요. 상대적으로 ‘마리’는 자기를 많이 포기했으니까요.
그런데도 흥미로운 건, 갤러리스트인 마리는 절대 ‘성주’의 사진을 평가해주지 않았어요.
마리는 어떻게 보면 엄청난 원칙주의예요. 성주가 그렇게 많은 자기 작품 사진을 집에 붙여놓았는데, 단 하나의 코멘트도 해주지 않아요. 갤러리스트로서의 원칙이 분명한 거예요. 성주의 사진이 자기 원칙에 부합하는 작품은 아니었던 거죠. 마리는 굉장히 현실주의자인데, 격렬한 사랑을 만나서 산산이 부서져요. 마리가 성주에 대한 사랑에 괴로워, 자기 손에 칼을 몇 번 긋잖아요. 일종의 죽는체험을 한 거예요. 마리 이야기를 쓰면서, ‘왜 인생에서 이렇게 훌륭한 교훈은 이기적인 사람에게서 얻게 될까?’ 싶었어요.
과연 성공적인 사랑은 존재할까요? 정의를 내릴 수 있나요?
정말 모르겠어요. 질문을 던질 수는 있지만, 질문이 답으로 이어지진 않아요. 계속해서 질문이 발화해요.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것 같아요. 사랑의 성공이 결혼이라면, 결혼은 적합한 제도일까?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걸까? 그런 질문을 하게 돼요. 소설은 결국, 질문이 질문으로 확장하는 형태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굳이 답을 정해주는 소설이 좋은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질문을 확장시키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 아닐까요?
저는 글 노동자인 것 같아요
소설의 화자는 세 명이에요. 정인과 마리, 그리고 수영. 책은 ‘정인’의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정인은 뉴욕 지하철 안에서 『순수 박물관』을 읽고 있는, ‘성주’에게 반해요. 성주는 책을 읽으며 울고 있었어요. 이 장면을 읽으면서 궁금해지더라고요. 작가님이 실제 지하철에서 목격하신 장면이 아닐까 하고요.
지하철에서 누가 책을 읽고 있으면, 꼭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해요. 어떤 책을 읽는지도 살펴보고요. 누군가가 책 읽는 모습을 보는건, 언제나 흥미로워요. 저는 책을 읽는 사람이 어떤 한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동선들이 미학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밑줄을 긋는 손, 책장을 넘기는 손, 책에 몰두하고 있는 옆모습을 보는 건, 정말 황홀하죠. 만약 이 인터뷰를 골똘히 읽고 있는 남자 독자가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어요. 지하철에서 책을 좀 읽으라고요.(웃음) 예전에 뉴욕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남자들을 찍은 사진 작품을 본 적이 있어요. 책에 몰두한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이던지요. 그래서 일부러 책을 읽는 모습을 소설 속에 넣고 싶었어요.
요즘은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보기가 극히 드물어요.
작년에 서울 메트로를 취재한 적이 있어요. 3호선을 타고 첫 번째 열차부터 마지막 열차까지 쭉 걸은 적이 있는데,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더라고요. 정말 충격이었어요. 나는 앞으로 책을 몇 권이나 더 쓸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늘 책을 내면서,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애틋한 마음이 들어요.
설마 마지막 책은 아닐 것 같고요.(웃음)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어져도 어울릴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판권 문의가 들어오긴 했어요. 책이 나오고 일주일이 채 안 된 시점이라, 놀랐어요. 사실 이 소설에 대한 반응이 좀 의외예요. 『애인의 애인에게』는 지금까지 제가 쓴 소설 중에 가장 서사가 없는 작품이에요. 사랑 에세이처럼 인물과 상황에 집중한 소설이라, 플롯이되게 복잡해서 플롯에 따라 의미가 확장되는 소설이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가독성이 뛰어난 소설이라고 해서 되게 의외였어요. 이 소설이 대중적이라는 생각을 못 했는데, 의외였어요.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제 동생도 정말 빨리 읽은 소설이라고 해서, 엄청 놀랐어요.(웃음)
칙릿 소설 『스타일』로 2008년에 ‘제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하셨고, 이후 꾸준히 에세이와 소설을 펴내셨어요. 현재는 웹소설 「비정성 로맨스」를 연재 중이고, 여러 매체에 칼럼도 쓰고 계세요. 소설에만 집중하기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데요.
제 자의식 자체가 ‘나는 작가’가 아니에요. 예술을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제게 소설은 밥을 버는 행위예요. 그래서 어떤 선민의식을 갖고 ‘나는 아티스트다’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글 노동자인 것 같아요. 작년에 제가 쓴 원고를 따져봤더니, 8,000매예요. 이건 예술일 수 없죠. 그러니까 제 생각은 이래요. 세상에 많은 일이 일어나잖아요. 길을 걷는데 어떤 여자가 울고 있으면, 멈춰 서서 ‘저 여자는 왜 울지?’라고 궁금해해요. 생각하다 보면, 어제 읽은 책이 떠오르고 그 여자의 삶을 상상해봐요. 또 그 여자가 울고 있는 풍경, 그때 나를 스치고 지나간 사람들의 인상이 떠오르면서 세상을 사진 찍듯이 기록해요. 그 순간순간 그냥 기록하는 거예요. 책을 쓰겠다, 글을 쓰겠다는 목표를 갖고 보는 게 아니고요.
8,000매라니. 좌골신경통이 올 수밖에 없었겠네요.
다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앉아 있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서서 쓸 수 있는 테이블을 사서, 서서 글을 썼어요. 그래도 뭐, 작년에만 특히 심하게 많이 쓴 거예요.
글쓰기를 쉰 적이 없으시죠?
작가 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없는 것 같아요.
일이 되면 모든 게 하기 싫어지잖아요. 너무 좋아하는 일도요. 이제는 정말 지친다, 글쓰기가 싫다는 생각을 하신 적은 없나요?
있죠. 하지만 그것보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더 많아요. 전 평소에 계획을 잘 안 세워요.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요. 그냥 그때그때 제게 주어진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아직 작가님이 신춘문예를 수십 번 떨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독자도 꽤 있는 것 같아요. 평소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냐?’는 질문, 많이 받으시죠?
(웃음) 제가 지금까지 쓴 글 중에 가장 조회수가 높았던 글이 있어요. <조선일보>에 썼는데, ‘신춘문예, 이렇게 하면 떨어진다’는 십계명이에요. 아마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거예요. 작가가 된 지 10년이 됐지만, 좋은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전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 건 알아요.
어쩔 수 없이(?) 작가 지망생들에게 조언을 해야 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글쎄요. 꼭 작가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라기보다 직업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에게는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잘하는 일을 선택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현실적인 답변으로 들릴 텐데요. 결국 잘하는 일을 하다 보면 기회가 많이 생겨 계속 잘하게 되면서,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가슴 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려는 건,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생각해요. 실상 직업은 자아실현의 장이 못돼요. 문제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느냐죠. 직업을 꿈하고 연결시키면, 너무 많은 루저들이 생겨요. 다 실패자예요. 예전에 <경향신문>에서 ‘색다른 아저씨’라는 인터뷰 코너(『다른 남자』로 2014년 출간)를 진행하면서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감님을 만났는데, 그분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본인은 대학을 가고 싶었는데 집안 환경이 좋지 않아 경찰이 됐다고 하셨어요. 경찰로 일하다 보니 프로파일러가 됐을 뿐, 특별한 소명의식이 있진 않으셨대요. 그저 그분은 자기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을뿐이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잘하게 됐고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거고요. 직업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소설은 물론, 책을 잘 안 읽는 세상이잖아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꾸준히 소설로 위안을 받아요. 『애인의 애인에게』가 어떤 독자에게 닿았으면 하시나요?
관계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제가 위안을 받고 싶어서 쓴 책이에요. 제가 정말 힘들고 뭔가 놔버리고 싶었을 때, 곁을 지켜준 사람은 모두 여자들이었던 것 같아요. 전 나이 든 여자들이 굉장히 훌륭해지는 걸 자주 봤어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는데, 여자는 대개 마이너리티로 살잖아요. 소수자로 살면서 자기 정체성을 끊임없이 바꿔야 해요. 남자는 ‘일이야, 가정이야’라는 문제에서 선택을 강요받지 않아요. 강요받는 대상은 언제나 여자예요. 어느 부분은 버려야 하고, 항상 자기 정체성을 조율해야 해요. 그래서 공감 능력이 커지고 성숙해지지 않나 싶어요.
성주를 짝사랑한 ‘정인’이 성주와 사랑을 나눈 ‘마리’와 ‘수영’을 위해 스웨터를 선물하는 것처럼요.
맞아요. 여자들은 누군가의 말을 세밀하게 듣고 공감해주는 따뜻한 지혜가 있어요. 나눠주고 연대하는 법을 알아요. 그래서 그런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아프지만 이런 삶도 있다는 걸 말하고싶었던 것 같아요. 마리와 수영도 언젠가 누구를 위해 스웨터를 떠줄지도 모르고요.
애인의 애인에게백영옥 저 | 예담
흡인력 있는 문체와 생동감 있는 서사로 2000년대 한국 젊은 여성들의 감수성을 대표해온 백영옥 작가가 4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네 명의 연인들이 경험하는 사랑과 성공, 그리고 쓸쓸한 그 뒷모습을 주목하면서 상처와 실패를 통해 성숙해가는 젊은 예술가들의 심리를 예민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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