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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초밥왕’ 안효주 셰프 “아직 내 초밥에 만족하지 못한다”

『한국의 셰프들』 학문여역수행주(學問如逆水行舟), 계속 노를 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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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선수도 시합 전에 이미 게임은 끝난 거예요. 시합 날짜를 받아놓고 정말 뼈를 깎는 고통으로 노력하면 계체량 끝나고 이미 승부는 끝난 거예요. 99%를 했으면 내가 이길 거고, 80%만 했으면 질 거고요. 이미 끝난 거예요. 경쟁자가 있기 때문에요.

단연 이 수식을 가장 앞에 놓아야 할 것 같다. ‘미스터 초밥왕’

 

안효주 셰프는 1985년부터 2003년까지 신라호텔에서 근무하고 같은 해 청담동에 ‘스시효’를 열어 지금까지 국내 초밥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식어 ‘미스터 초밥왕’은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테라사와 다이스케가 그를 찾아오면서부터 시작됐다. 셰프를 찾은 작가가 일본에 없는 초밥, 한국에만 있는 초밥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물어온 것이다. 안효주 셰프는 특유의 ‘탐구심’으로 단 하나의 초밥에 도전했다.

 

그렇지만 이 극적인 일화는 안효주 셰프의 초밥 인생에 그저 지나가는 한 점일지 모른다. 시종 담담하게 뱉은 셰프의 이야기는 그 모두가 밑줄 긋고 싶은 말들이었으니까. 그는 화가 나면 손끝에서 독이 나온다고 했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요리로 보여줘야 한다고 했으며, 손님과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한다고도 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칼을 가는 ‘검객’ 같았다.

 

셰프의 머릿속 한 구석엔 늘 요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 호텔 시절, 꿈에서 본 요리를 다음날 만들어 ‘꿈의 냄비’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적도 있었다. 그 기운은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 손님이 그를 향해 요리가 아니라 예술을 한다고 말하도록 했다. 요리에 끝이 없듯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틈을 메우기 위해 ‘초밥왕’ 안효주 셰프는 지금도 노력한다. 안효주 셰프의 초밥을 맛본 사람은 이해 못할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서 말이다.

 

『한국의 셰프들』은 안효주 셰프를 비롯, 원조 스타셰프 이종임 요리 연구가와 양식 요리계의 전설 박효남 셰프, 롯데 호텔 중식당 총 책임자이자 중식계 대부 여경옥 셰프 등 ‘진짜 고수’들의 내공이 담긴 요리를 한 곳에 담았다. “요리사는 말이 필요 없”다는 안효주 셰프의 말처럼 『한국의 셰프들』은 그저 요리로만 말을 건네는 책이다. 그 자체가 거대한 이야기다. 화려한 맛의 향연이다. ‘한국의 셰프들’을 모두 만나지 못한 아쉬움은 안효주 셰프와의 깊은 인터뷰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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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식재료에 대한 철학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세요?

 

시장 나가서 생선 사고, 지점도 한 번 씩 가봐야 해요. 할 일이 매일 있어요. 수시로 남대문 시장에서 그릇이라든지 도마도 보고요.

 

직접 그릇이나 도마까지 보러 가신다고요?

 

공산품처럼 규격화되어 있는 것은 주문해서 쓰면 되는데요. 용도에 따라서 ‘저 그릇은 어떤 요리를 담아야겠다’ 생각하면서 사야하기 때문에 시키지를 못하는 거죠. 전화로는 불가능하고요. 채소 담는 그릇을 사야하면 가서 보고 채소가 어떤 색깔이니까 어떤 모양의 그릇에 담아야겠다, 이런 걸 구상하면서 사요.

 

생선 역시 매일 새벽시장에 직접 사러 간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날그날 생선이 다 다르기 때문에요. 기본적으로 광어, 도미 이런 활어는 다 똑같은데요. 선도는 매일 달라요. 산지도 다르고요. 또 철따라 나오는 생선들도 있고요. 시장 상황이라는 것이 생물이기 때문에 공산품처럼 규격화된 게 없단 말이에요. 잘 나오던 것이 오늘은 안 나오는 것도 있고, 쭉 안 나오다가 오늘 나오는 것도 있고요. 가령 봄 전어는 작아요. 그런데 이 시기가 지나버리면 자라서 값어치가 없어요. 그러니 잘 보고 사야해요.

 

전어라면 가을을 떠올리기만 했는데 봄 전어라고요.

 

원래 초밥용은 봄 전어가 맛있어요. 작은 거요. ‘싱꼬(新子)’라고 부르는데요. 출세어(出世魚)라고 하죠. 작을 때, 중간일 때, 컸을 때 부르는 이름이 다른 걸 출세어라고 해요. 전어도 그렇죠. 작은, 손가락만 한 걸 ‘싱꼬’라고 해요. 중간만큼 성장을 하면 ‘고하다(こはだ)’라고 하고, 가을전어처럼 큰 걸 ‘고노시로(子の代)’라고 하죠. 부르는 이름이 다 달라요. 그중 초밥용은 작은 것일수록 맛있고 값어치가 있어요. 이 시기에 이걸 못 구하고 성장해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런 것을 만나기 위해 시장을 가는 거고, 시장 조사가 필요한 거고, 생선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거예요.

 

휴일은 있으시죠?(웃음) 거의 쉬는 날도 없이 다른 식당에도 가보고 늘 연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옛날에는 안 쉬고 했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더라고요.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요.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씩은 쉬어요. 쉬는 날도 특별하게 일이 있으면 일도 보긴 하지만요. 주로 일본으로 많이 가는데요. 평상시에 요리라는 것이 머릿속에 항상 있으면 어디 가서 외식을 하더라도 그게 다 공부예요. 평상시 관심이 없으면 색다른 식자재를 봐도 ‘저것으로 뭘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안 들어요. 머릿속에 뭔가 갈구하는 것이 항상 자리 잡고 있으면 새 식자재를 보는 순간 저걸 가지고 뭘 해보자는 새로운 생각이 들죠. 작곡가가 논두렁을 걷다 악상이 떠오르면 팔에다 쓴다고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을 늘 가지고 있어야 그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도 요리에 대한 갈구가 여전하단 말씀이시군요.

 

일주일 전부터 달팽이를 쓰고 있어요. 우연히 TV를 봤는데 국내에 달팽이 양식을 하시는 분이 있더라고요. 달팽이 점액질이 굉장히 좋다고 해요. 무기질도 풍부하고요. 그래서 여성분들 화장품으로도 쓴다고 하는데 그걸 요리에 접목하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일식에 접목하긴 사실 좀 무리가 있지만 바로 그곳에 전화를 해서 달팽이를 받아 테스트를 해봤어요. 굉장히 식감이 좋더라고요. 맛도 좋고요. 손님들한테 달팽이라고 얘기 안 하면 몰라요. 한식 같으면 고춧가루 무쳐 쓰면 되는데 일식은 담백한 맛을 내야 하잖아요. 저는 데리야끼 식으로 해서 쓰고 있어요. 일단은 먹어서 맛이 있으니까 고기를 쓰다가 그걸로 교체를 했거든요. 그런 생각은 요리에 대한 갈구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냥 지나가요. 자꾸 변화를 줘야 하기 때문에 더 좋은 식자재가 없는가, 어떤 것이 없는가, 계속 추구를 해야 해요. 계란을 하나 쓰더라도 산 속에서 닭을 방사해서 얻은 계란을 쓰고요. 일반 계란보다 10배는 비싸거든요. 그래도 그런 걸 갖다 쓰죠. 어디에 뭐가 좋다고 하면 어디라도 가서 사오려는 마음이 있어야죠. 그래야만 현재보다 조금이라도 올라가는 거지 현실에 머물러 있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좋은 식재료에 대한 철학이기도 하겠죠?

 

쌀부터 시작해 물도 산 속에 미네랄이 풍부한 물을 길어다 밥을 짓거든요. 그런 부분은 손님들은 모르죠. 수돗물로 씻든 그 물로 씻든 그런 것까지 알 정도의 미각을 갖는다는 건 사실 어렵잖아요. 그렇지만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철학은 있어야 한다고 봐요. 아무래도 수돗물보다 조금이라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는 거고요.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만화책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잖아요. 진짜 맛있는 밥을 지으려면 벼가 먹고 자란 물, 예를 들어 강원도 철원쌀을 쓴다면 철원에서 물을 길어다 밥을 해야 진짜 맛있는 밥이 된다고 하잖아요. 참치를 녹일 때도 소금을 물에 풀어서 거기 담가 해동시키는 경우가 있거든요. 참치가 살았던 환경을 만들어 재료 준비를 하면 더 좋다,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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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말이 나온 김에 소금 얘기를 좀 해주세요. 초밥을 비롯해 요리에 있어 특히 소금을 빼놓을 수 없겠죠.

 

소금은 요리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기둥맛이니까요. 오미(五味, 신맛, 쓴맛, 매운맛, 단맛, 짠맛)라는 게 있잖아요. 일본 사람들은 거기에 감칠맛까지 더하는데요. 모든 요리의 기둥은 짠맛, 거기서부터 시작돼요. 그래서 소금을 제일 좋은 것을 쓰려고 노력하는 거죠. 지금 쓰고 있는 소금보다 더 좋은 소금이 있다면 어디라도 가서 구해다 쓰고 싶은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세계의 소금을 다 써봤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천일염만큼 감칠맛 나는 소금은 없었어요. 지금 쓰고 있는 소금은 15년 된 거거든요. 그 소금은 일본 손님들도 먹어보고 진짜 맛있다고 해요.

 

“자기만족을 하면 거기서 끝이다” 이런 말씀도 하셨는데 최고의 자리에 있지만 안주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당연하죠. 저도 처음부터 요리가 좋아서 시작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지금 세대들은 어릴 때부터 요리가 정말 좋다고 시작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 친구들과 저를 비교하면 저는 또 비교도 안 돼요. 그 친구들은 정말 열정적으로 좋아서, 즐기면서 요리하는 친구들이란 말이에요. 저는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요리지만 어차피 시작했고, 잘할 수 있는 게 요리밖에 없으니까 이거라도 평생 업(業)으로 삼고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한 거고요.

 

‘장이’라고 하죠. 요리도 마찬가지고 이런 손기술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요. ‘장이’들이 특히 그렇죠. 자기만족을 하면 그 순간에 끝이에요. 간혹 자기만족에 도취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것은 오래 못 가는 거죠. 거기서 끝이란 말이에요. 자기가 어떤 일을 했을 때, 만들어놓은 걸 봤을 때 항상 긍정적인 시각보다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거든요. 부정적인 시각으로 봐야 부족한 점, 개선할 점이 발견된단 말이에요. 해놓고 ‘와, 잘했다’ 하면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어요. 제가 지금 초밥을 하고 있지만 만족을 못해요. 가운데가 빈 초밥을 만들고, 손님들이 맛있다고는 하는데 정작 나 자신은 마스터를 못했단 말이에요. 손님들은 감동을 하고, 만족을 하지만 저는 뭔가 부족한 걸 느껴요.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요. 아직 부족한 이만큼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아직도 나의 초밥에 만족하지 못하신다고요.

 

일부러 이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까요. 또 일본에 계신 스승님이 보시면 부족함이 보일지도 몰라요. 계속 하는 거죠, 계속.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하는 거예요. 장인정신이라는 게 다른 게 없어요. 하다보면 싫증날 때도 있지요. 그 싫증나는 부분을 그냥 참고 또 하고, 또 하는 게 장인정신이지 다른 게 아니에요. 한계를 넘으면 또 한계가 있는 거고요. 그래서 고수가 돼도 만족을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진짜 ‘장이’들은 그럴 거예요. 학문여역수행주(學問如逆水行舟)란 말이 있잖아요. 강물에 흐르는 돛단배처럼 노를 안 젓고 가만히 있으면 뒤로 쓸려 내려간다는 말이죠. 올라가지는 못할망정 계속 노를 저어야 거꾸로 안 떠내려가지 쉬는 순간 떠내려가 버리니까요. 제자리라도 있으려면 계속 노를 저여야 해요. 10년 전에 비하면 저도 지금은 노력을 안 하는 편이지만 새로운 식자재, 조리법에 대한 추구하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체력은 어쩔 수 없지만 생각만큼은 젊은 사람들에게 뒤지고 싶지 않아 계속 활발하게 움직여요. 육신에는 세월이 있을지 몰라도 영혼에는 나이가 없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무엇으로 꼽으세요?

 

마음이죠, 마음. 정성이라고 하잖아요. 어느 순간 ‘나는 이걸 최우선으로 삼아야겠다’ 하고 딱 떠올랐던 게 위생이었어요. 굳이 순서를 정한다면 첫째가 위생, 두 번째가 정성, 세 번째가 맛입니다. 삼각형이나 마찬가지예요.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어요. 우선 깨끗해야 해요. 정말 의사들보다 더 철저한 위생관념이 있어야 해요. 아무리 맛있게 음식을 만들어도 그걸 먹은 손님이 배탈이 났다, 아무 가치가 없는 거죠. 개인위생은 물론이고 쓸고 닦고 위생적으로 해야 하고요. 그렇게 하다보면 정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맛은 저절로 나온다고 생각해요. 정성이 눈에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고 만들면 상대방한테 충분히 전달이 된다고 확신하고, 믿어요. 보이진 않지만 강력한 교감이 이뤄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화가 나면 아예 요리를 안 하는 게 좋죠. 안 그러면 ‘으쌰’해서 최면을 걸어서 손님과의 기분에 동화된 다음에 요리를 해야죠. 화가 나면 손끝에서 독이 나온다고 생각을 해요.

 

가장 기본적인 동시에 놓치기 쉬운 마음 자세예요.

 

몇 년 전에 프랑스 손님이 왔어요. 제가 서브를 못했어요. 일곱 분까지밖에 못하고 나머지는 다른 직원들이 하니까요. 그 일행이 다 먹고 디저트를 먹으면서 저를 불러요. 갔더니 프랑스 손님이 저더러 요리사가 아니라고 했대요. 예술가라고 했다는 거예요. 저는 서브에 정신 팔려서 했는데 그 모습을 본 거죠. 그건 보여준 게 아니고 그분이 느낀 거예요. 손님과는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한다고 얘기하는데요. 내가 만들어준 요리를 손님이 만족 못하면 내가 진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렇다고 맛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고, 실례기도 하고, 위생적인 측면도 있으니 해선 안 되죠. 요리사는 말이 필요 없어요. 일본의 스승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요리로 보여주는 거지 세일즈 하는 것처럼 말을 해서 만족시킬 필요는 없다고요. 요리로써 표현을 해서 교감이 이뤄져야 한다고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해요. 말보다는 행동으로, 요리로 보여주자는 걸 많이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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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중단 없는 노력을 해야


복싱 선수, 해병대, 지금은 최고의 일식 셰프, 삶의 궤적에서도 성정이 느껴져요. 그렇다면 왜 일식이었을까 궁금증도 생기고요.

 

운동을 하면서 큰물에서 놀아보자고 무작정 상경을 한 거예요. 먹고 잘 데가 없으니까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들어간 것이 식당이에요. 시골 뒷집 살던 선배가 있던 곳인데 그 선배가 한식당에 있었다면 한식 요리사가 됐을지도 몰라요.(웃음) 그게 계기가 돼서 요리사가 된 거지 처음부터 일식 요리사가 돼야겠다, 이런 건 아니에요.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일식이라는 게 분명 마음에 닿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일식은 하다보니까 저하고 적성이 맞는 것 같았어요.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써야 하는 부분 같은 것이요. 단칼에 썰어야 하잖아요. 이런 부분이 저와 좀 맞는 것도 같아요. 다 장단점이 있어요. 햇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죠. 그저 여러 가지가 맞았던 것 같아요. 하다보니까요. 제가 맞춘 건지 일이 맞은 건진 몰라도요.

 

힘든 순간도 있었겠죠?

 

많이 있죠. 슬럼프라는 게 다 있잖아요. 그런 걸 겪고 잘 넘어서면 도약을 하고, 못 넘어서면 거기서 끝나죠. 모든 사람이 그래요. 저도 그런 경우가 있어요. 안 해야겠다, 이런 생각 가졌을 때도 있었고요.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인내했던 것이 오늘날의 저를 있게 만들었던 거겠죠. 선배와의 관계라든지 이런 것들이 자극이 돼서 인내심을 더 유발시킨 효과도 있었을 거고요. 그때 인내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겠죠. 당시엔 몰랐죠. 참으면 더 좋은 일이 있겠지란 생각을 가질 수가 없죠. 그런 혜안은 없어요. 사람이 앞날은 모르잖아요. 내일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그러나 그냥 일단 참자, 내가 지금 참지 않으면 스승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되는 거다, 이런 일념으로 참은 건데 지금 생각하면 인내했던 것이 참 현명한 판단이었다 이런 생각도 들죠.

 

이런 이야기는 후배나 제자 분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는 내용이에요.

 

많이 해주는데요.(웃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의 없죠. 그 의미를 모르니까요. 10년, 20년 후에 알게 되죠.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거죠.

 

재능이 없다고 느끼고, 내일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힘든 거잖아요. 아무리 열심히, 꾸준히 해도 안 될 것 같아 불안하고요. 그럴 때 ‘인내심’이란 다른 차원의 이야기처럼 들릴 거예요. 받아들이기 힘들만도 하고요.

 

성실하게 중단 없는 노력을 해야 해요. 그게 어떻게 보면 장인정신이죠. 인내를 해야 하는데 어려운 난관이 닥치면 포기하고 쉬운 길로 돌아간단 말이에요. 그걸 깨고 나가야 하는데 말이죠.

 

누구나 그 어려움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다 깰 수 있죠. 다만 시간이 좀 길고, 짧을 뿐이지 다 합니다.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못 당하는 거예요. 터득하기 위해 한 발 한 발 간다는 자체가 굉장한 고통의 연속이에요. 최고가 되려면 싫증이 나도 계속 해야 한단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최고가 될 수 없잖아요.

 

제가 색소폰을 배운지 4년 째 되는데요. 실력은 초보자 수준이지만 선생님과 약속을 했어요. 대중가요 같은 걸 불고 싶지 반음스케일을 계속 연습하는 것은 지루해요. 똑같은 걸 반복해야 하잖아요. 그러니 잘 안 해요. 하지만 그걸 마스터 해야만 연주에 도움이 된단 말이죠. 저도 싫증이 나니까 연습을 안 하고 새로운 노래만 자꾸 불렀어요. 그러다 한 달 전에 TV에서 손목이 없는데 피아노를 잘 치는 학생을 봤어요. 그걸 보는데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선생님과 약속한 거죠. 올해 안으로 반음스케일을 선생님만큼은 아니어도 자유자재로 할 때까지 하겠다고요. 지금은 가면 싫증이 나도 계속 해요. 갈 때마다 똑같은 걸 계속 반복하는 거죠. 나중엔 손이 저절로 가더라고요. 그렇듯 요리도 마찬가지예요. 가운데가 빈 초밥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을 해야죠. 어떻게 하면 더 부드럽게 만들까, 계속 고민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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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초밥왕의 탐구심

 

가운데가 빈 초밥, 셰프님의 초밥에 사람들이 감동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예요.

 

초밥이라고 다 같은 초밥이 아니에요. 같은 모양이어도 하나는 속이 비어있고, 하나는 꽉 뭉쳐놓은 거란 말이에요. 먹었을 때 느껴져요. 속이 빈 초밥은 싹 풀어지고, 다른 것은 밥알이 씹히고요. 이걸 저 역시 자유자재로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계속 하는 거예요, 될 때까지. 칼잡이가 눈을 감고 떨어지는 낙엽을 삼등분 할 수 있을 정도로 연습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런 얘기를 제자들은 이해하기 힘들죠. 산 넘어 산이거든요. 그걸 아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계속 올라가는 거고 그걸 모르면 거기서 끝이에요. 더 올라갈 수가 없어요.

 

무서운 선생님이세요?(웃음)

 

그렇진 않아요.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가르치는 방법도 달라야 해요. 리더상도 달라야 하고요. 선배한테 맞아가며, 야단맞으며 배웠지만 지금은 그걸 답습하면 안 되겠다 생각해요.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거죠. 왜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건지 보여주고요. 그래야 이해를 하고 따라와요. 직접 보여줘야 해요. 이렇게 해야 어떤 면이 좋다는 것까지 얘기를 해줘야 해요. ‘이렇게 하라니까 왜 안 하냐’ 하면 나는 알아도 제자들은 모르잖아요. 방법을 이제는 달리해야 하는 거죠. 무섭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요. 말을 물 먹는 곳까지 데려갈 순 있어도 억지로 먹이면 다 토한다고 하잖아요. 억지로 그렇게 하진 않아요.

 

『미스터 초밥왕』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어요. 제안이 왔을 때 뭔가 보여주고 싶은 게 있었을까요?

 

그것도 탐구심이 없었으면 안 했을 거예요. 그분이 일본에 없는 초밥, 한국에만 있는 초밥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해서 알았다고 대답을 했어요. 답을 하고 나서 생각하니 막막한 거예요. 일주일 후에 오겠으니 만들어 달라 해서 머리를 쥐어 짠 거죠. 생선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똑같고요. 생각 끝에 우리나라에 인삼이 유명하니까 이걸로 초밥을 만들면 어떨까 싶어 여러 테스트를 한 거죠. 삶아도 보고, 생으로도 해보고, 조려서도 하고요. 그러다 접점을 찾은 게 삶지 않고 90도 정도의 양념장에 하룻밤 재우니까 아삭한 식감도 유지가 되면서 양념맛도 스며들고 인삼의 쓴맛도 빠진 거예요. 먹어보니 깍두기처럼 아삭하게 씹히고 쓴맛은 없고 단맛도 나더라고요. 그렇게 만들어서 줬더니 인삼이 사포닌 때문에 쓴데 그렇지 않고 식감도 좋고 좋다, 이걸 책에 올리면 안 되겠느냐 하더라고요. 특별한 것도 아니니까 올리라고 만드는 법을 가르쳐줬어요. 그렇게 된 건데 그분도 탐구심이 있고, 저도 탐구심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탐구심’이 핵심이네요.

 

창작 능력이죠. 열정이 있어야 해요. 열정이 없으면 몰입도 안 되고요. 요리, 운동, 음악 모두 그렇죠. 항상 자기 콘텐츠를 머릿속에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만 새로운 것을 봤을 때 링크가 딱 되는 거죠. 관심이 없고 머릿속에 이게 빠져있으면 아무리 좋은 식자재를 발견했다 해도 바로 링크가 안 돼요. 머리 가장자리에 요리가 항상 자리 잡고 있으면 호박이든 죽순이든 어떻게 요리로 풀어볼까 바로 바로 링크가 되는 거예요. 등산을 하다가도 갑자기 날씨가 더우니까 샐러드를 어떤 걸 해볼까, 하고 순간적으로 떠오를 때가 있어요. 알로에를 국수처럼 썰어서 해보면 어떨까, 해보는 거예요. 맞는 경우도 있고 안 맞는 경우도 있지만요. 그러니 요리하는 꿈도 가끔 꾸죠.

 

꿈이요?

 

호텔에 있을 때 꿈속에서 요리했던 재료로 해서 요리를 낸 적이 있어요. ‘꿈의 냄비’라고 이름 붙여서 판매한 적도 있었죠. 꿈속에서 요리를 하면 맛도 다 느껴져요. 어떤 것에 확 집착하는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어차피 요리를 시작했으니까 끝까지 요리를 해야 해요. 요리에는 끝이 없으니까 관에 못질할 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 생각하고 페이스를 조절하게 됐어요. 10년 전만 해도 열심히 해서 빨리 결승 테이프를 끊고 좀 쉬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굉장히 어리석은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결승선은 죽을 때가 결승선이거든요. 지금은 그걸 깨달아서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죽을 때까지 하려고 해요.

 

10년 전이라면 호텔에서 나와 ‘스시효’를 열었을 때 말씀이시죠?

 

네, 그때는 진짜 3년 동안 한 번도 안 쉬고 일을 했어요. 그것도 새벽 5시부터 나와서 밤 12시까지요. 손님들 가시면 문을 잠그고 갔으니까요. 그때는 긴박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으니까 그랬죠. 이걸 오픈해서 문 닫으면 끝이라는 각오로 했기 때문에 몇 년을 안 쉬어도 피곤하지가 않은 거예요. 지금은 그렇게 하면 쓰러지죠.

 

영감이라는 게 사람들이 보기엔 한 순간 딱 떨어지는, 내려오는 것 같지만 계속 생각하고 연구해야 꿈까지 꾸게 되고 영감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머릿속에 항상 있어야 해요. 관심이 있어야 영감도 생기고 그러는 거죠. 또 구상한 것을 금방 실천해봐야 해요. 생각만 하고 실천을 안 하면 의미가 없어요. 부뚜막 소금도 넣어야 짜지, 소금 한 가마니 갖다 놓아봐야 아무것도 안 하면 의미가 없는 거죠. 실천해보고 안 되는 게 있으면 뭐가 안 되는지 보고 계속 해야 해요. 뭘 하든지 최선을 다하는 게 제일 중요한 거죠. 최선을 다하고 하늘에서 천명을 바라야지 70~80%밖에 안 해놓고 좋은 성적이 나오길 바라선 안 되죠. 권투선수도 시합 전에 이미 게임은 끝난 거예요. 시합 날짜를 받아놓고 정말 뼈를 깎는 고통으로 노력하면 계체량 끝나고 이미 승부는 끝난 거예요. 99%를 했으면 내가 이길 거고, 80%만 했으면 질 거고요. 이미 끝난 거예요. 경쟁자가 있기 때문에요.

 

저희 주방장들은 어떤 특급 호텔과 비교해도 안 떨어질 정도의 실력이에요. 그러나 잘한다고 제가 얘기할 순 없어요. 제게는 항상 부족하니까요.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위생적인 측면이나 디테일하게 요리하는 것 보면 어떤 특급 호텔 요리사와 일을 해도 안 떨어질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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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온 요리법

 

장래희망이 요리사인 학생들도 많다고 하고, TV에서도 요리가 많이 나와요. 그런 것 보면 어떠세요?

 

좋다고 생각해요. 여기에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내일은 초밥왕’이라고 해서 TV도 나오고 신문에도 나왔던 친구가 있어요. 지금 스물여섯 살인데요. 지금은 아주 베테랑 수준이죠. 그런 친구들이 있듯이 지금 학생들이 요리사를 꿈꾸는 건 좋은 일이고 어렸을 때부터 관심 있는 분야,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에요. 그러나 너무 어렸을 때부터 하는 건 그것도 문제가 있어요. 저는 고등학교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요. 100세 시대라면서요. 70, 80살까지 일을 해야 하니까 그때까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야 행복하죠. 의사도 적성이 안 맞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런 사람은 명의가 안 되잖아요. 정말 불행한 거예요. 진짜 병을 고치고 의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명의가 탄생하죠.

 

물론 TV에 나오는 스타 셰프를 보고, 그 단면만 보고 요리를 한 사람은 다 도중하차예요. 요리사라는 직업이 만만찮은 직업이에요. 체력도 좋아야 하고, 손도 많이 데어봐야 하고요. 사람들과 다른 생활 패턴이기도 하죠. 남들 쉴 때 일하고, 밤늦게까지 해야 하고요. 여러 제약사항이 많아요. 그런 것을 간과하고 화려함만 보고 요리한 사람은 금방 포기를 해요. 그런 사람이 많죠. 여기 와서도 하루 나오고 안 나오는 사람도 많아요. 정말 만지고 요리하길 좋아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거든요. 어쨌든 저는 관심이 높아지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셰프들』에 담긴 요리들을 보면 아무래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요리법은 아니에요. ‘도미머리는 50도 물에 담갔다 씻어 비늘을 제거한다’처럼요. 온도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저온 요리법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시는 중이라고요.

 

일본에 저온 요리를 연구해놓은 분이 계세요. 그분 연구를 토대로 검증을 하면서 요리하고 있는 거거든요. 한 가지 요리를 하기 전에 재료들을 밑처리, 기본 요리를 먼저 하는 거죠. 저온찜을 한 다음 그 재료를 가지고 요리한다는 개념이에요. 굉장히 번거로울 수가 있어요. 저희는 전용 찜통이 있고, 온도계가 있기 때문에 당근은 몇 도에서 몇 분 쪄서 내놓고, 샐러리는 몇 도에서 몇 분, 이렇게 할 수 있지만요. 다 찌는 시간, 온도가 다르거든요. 좀 번거롭죠, 아무래도. 그러나 그렇게 하면 요리 자체가 굉장히 격이 높아지고, 맛있는 요리가 돼요. 위생적으로도, 맛으로도 한 단계 높아지는 그런 요리가 돼요.

 

일본에 소개된 저온 요리법에 관한 책을 번역할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번역은 다 해놓은 상태예요. 내년 정도에 책을 한 권 쓰려고 일본 요리사 분과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저온 조리법에 관한 책인데 그대로 요리를 한다면 굉장히 획기적이고 맛있는 요리가 될 거예요. 그 요리법이 더 확산되면 많은 분들이 더 좋은 요리를 맛볼 수 있겠죠.

 

이곳, ‘스시효’에서도 저온 요리법으로 조리되는 요리가 있나요?

 

채소는 다 그렇게 하고 있어요. 표고버섯도 그냥 쓰지 않고 다 쪄서 사용하고요. 훨씬 맛있으니까요. 요리는 상상만 가지고는 안 돼요. 해서 먹어보고 내가 했던 기존 요리 보다 훨씬 맛있구나 느끼면 그렇게 하는 것이죠. 해보고 훨씬 맛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책에도 그 요리법을 쓴 거고요.

 

아직도 자신의 요리에 만족하지 못한다고도 하셨고, 다 마스터하지 못했다고도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자신 있는 요리, 권할 만한 요리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꼽을 수 있을까요?

 

초밥을 완성을 못했는데 어떻게 자신 있는 요리라고 할 수가 있어요? 제 초밥을 드시는 분이 평가할 일이죠. 내가 자신 있다, 해서 내놓는다는 것은 안 맞는 말이에요. 손님이 그것에 대한 가치를 논할 자격이 있는 거죠. 아무리 자신 있다고 해도 손님이 아니라고 하면 그건 아닌 거예요. 평가를 내가 할 수가 없어요. 너무 자만이죠, 그거는. 물론 다 할 줄은 알죠. 그러나 자신 있다는 얘기는 좀 안 맞는 것 같아요. 자만은 금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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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셰프들 이종임,안효주,박효남,여경옥 공저/이길남 편저 | 생각정거장
각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요리 명장 네 명이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한 데 뭉쳤다. 본인들의 삶을 통해, 그리고 거기서 얻을 수 있었던 음식 철학을 통해 업계 후배들은 물론 우리나라 음식문화 전반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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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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