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낯선사람들’ 차은주, “이제는 즐겁게 하려 한다”
4집 앨범 <다시 위로> 발매
차은주의 발걸음은 1990년대 중반서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퓨전 재즈, 새로운 싱어송라이터 붐과 결의 방향을 같이 한다. 그 발자취가 비록 뜸하다고는 해도 결코 얕거나 가볍지 않기에 사람들은 기억의 자락에서 그를 놓지 못한다.
조금 더 많은 결과물이 나오길 바라기도 했던 것 같다. 20년을 바라보는 활동 기간에서 차은주의 음악과 만날 수 있었던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5인조 보컬 밴드 '낯선사람들'에서 낸 음반 하나, 혼자서 낸 음반 넷이 정규 앨범 이력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으니. 게다가 작품 활동 사이의 시간 간격도 작지 않다.
사람들은 차은주라는 아티스트를 잊지 못한다. 차은주의 발걸음은 우리나라의 많은 대중이 사랑을 보냈던 1990년대 중반서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퓨전 재즈, 새로운 싱어송라이터 붐과 결의 방향을 같이 한다. 그 발자취가 비록 뜸하다고는 해도 결코 얕거나 가볍지 않기에 사람들은 기억의 자락에서 그를 놓지 못한다.
얼마 전 차은주는 4집 앨범 <다시 위로>를 통해 '다시 위로' 올라가자고 위로를 다시 건네는 대화를 스스로 나누었다고 한다. 활동 시기 간에 있었던 굴곡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조금은 더 활발히 움직이기 위해. 그리고 아티스트는 실제로 최근 활력적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 음악 인생의 여러 장면을 운이 좋게도 이즘이 들을 수 있었다.
근황이 궁금하다.
지난달 29일에 싱글 나왔다. 오랜만에 노래하는 거라 연습도 하고 있고 틈날 때 마다 곡도 쓰고 있다.
이번에 신곡 'Goodbye love'가 나왔다. 만난 과정이 독특하다고 알려져 있다.
강의 나가는 학교 기말시험 채점 중에 전공 학생이 부른 노래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울컥할 정도로. 창작곡이었던지라 작곡가를 소개해달라고 했고 이후 그 친구와 얘기해 노래를 부르게 됐다. 한 곡 더 같이 작업하기로도 예정돼있다.
크레디트를 보니 세션도 다 학생들이었던 것 같다.
학생도 있고 졸업생도 있다.
데뷔 때부터 굵직한 세션들과 작업하다 이번에 어린 세션들과 함께 작업했다. 작업은 어땠나?
작곡가가 편곡하고 작곡가와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녹음하는 게 재밌었다. 곡에 애착을 가진 사람이 연주까지 하니 상승효과가 발생했다. 정성이 들어간 작업이라 마음에 들었다. 이런 느낌을 일찍이 1집 만들 때 조동익 선배랑 같이하면서도 경험했다. 조동익 선배는 일에 늘 정성을 들인다. 편곡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데다 수정 작업도 상당히 많이 한다. 디테일적으로는 조금 다를 수 있으나 연주력 뛰어난 분들과 하는 것에서도, 젊은 친구들과 하는 것에서도 늘 많은 걸 배운다.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편곡한 음악을 넘겨받았을 때 너무 좋았다. 당시 내 마음 상태와도 닮았던 곡이라 특히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난 지금 이걸 불러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늘 앨범 포맷을 내놓다 이번에는 싱글로 내놓았다.
얼마 전 소속사를 옮기기도 했고 그 전까지는 잠깐 혼자 작업할 때도 있어서 현시점에서 작업할 수 있는 곡 세 개를 싱글 포맷으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음악은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건가. 고등학교 때는 EBS 청소년가요제 대상, 아남 델타 가요제 금상을 받지 않았나.
EBS 청소년가요제 무대 영상 아직도 돌아다니더라. 그때 걔 보면 때려주고 싶던데. (웃음) 부모님께 처음으로 인정받았던 건 EBS 청소년가요제가 끝나고 나서, 노래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건 내가 기억이란 걸 하는 순간부터였다.
활동의 시작이 상당히 빠른 편이다. 낯선사람들로 본격적으로 데뷔한 게 2집이 나온 1996년이니 스물이 될 즈음에 시작한 셈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쯤 가수에 대해 확고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어렸을 때는 워낙 수줍음이 많아 주변에 노래하겠다는 얘기는 못 했다. 괜히 “성우 하겠다”, “디제이 하겠다”며 돌려 말하고 다녔고, 노래에 크게 자신도 없었다. 그러다 중학교 수업시간에 교실 앞에서 노래 부르다 수줍어서 중간에 끊고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한 친구가 계속 듣고 싶었는데 왜 들어왔냐며 얘기를 해줬다. 그 한 마디가 내 인생을 바꾼 거 같다.
낯선사람들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1994년 아남 델타 가요제 때 낯선사람들이 게스트로 왔다. 그쯤 이소라 언니가 나간다고 얘기해서 팀원 보충을 고민하던 차였는데 내 무대가 마음에 들었다고 하더라. 이후 팀에서 제일 나이가 많았던 신진 오빠가 전화를 해줬고. 솔로로 하자는 제의도 있었지만, 내가 낯선사람들 팬이었던지라, 들어가겠다고 결정을 했다.
사실 EBS 청소년가요제에서 불렀던 창작곡 '모두에게'는 중간에 색소폰 솔로만 빼면 재즈, 알앤비 등의 흑인음악과는 거리가 먼 발라드 또는 팝이었다.
맞다. (웃음) 그랬다.
낯선사람들의 음악이 재즈, 알앤비로부터 출발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해당 음악 장르에 관심이 많았나.
재즈는 대학교에 입학해서 많이 들었다. 맨해튼 트랜스퍼나 배리 매닐로우 같은 아티스트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들어왔지만 사라 본부터 얘기하는 옛날 재즈는 조금 나중에 접했다. 사실 재즈는 좀 공부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나는 퓨전 재즈 쪽을 더 좋아한다. 알 자로 음악 같은. 어스 윈드 앤 파이어 느낌의 재즈도 좋아하고.
두 번째 정규 음반을 끝으로 낯선사람들이 긴 휴지기에 들어가고 조금 지나 솔로 데뷔 음반이 나왔다.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나.
그 무렵에 몸이 많이 안 좋았다. 팀에 있던 (고)찬용이 오빠도 많이 아팠고. 솔로를 하겠다고 얘기하면서 낯선사람들에 들어간 것도 있긴 하지만, 낯선사람들 자체도 활동하기 힘든 상황에 있었다. 그러다 첫 솔로 음반이 나왔다. 몸 상태 때문에 집에서만 지내며 쓴 곡들로 채운 작품이다. 앨범에도 당시의 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느끼는 흐린 분위기. '흐린 아침'이 그걸 얘기한 노래고.
솔로로 출발하면서 가졌던 주안점이나 계획이 궁금하다.
좋은 곡을 쓰는 게 내 꿈이다. 작사, 작곡하고 그게 완성물로 나올 때 기분이 정말 좋다. 유명해지겠다 하는 꿈은 없었다.
곡을 쓸 때의 원동력은 어떤 것인가.
사랑이 1번이다. (웃음) 사랑을 하고 있는 나.
싱어송라이터임에도 상당히 많은 작곡가, 프로듀서들과 협업해왔다. 최성원, 장기호 등이 프로듀싱을 했었고 박성식, 이규호, 정원영 등으로부터 곡을 받기도 했다. 어떤 이유에서였나.
2집 때 곡을 특히 많이 받았다. 스스로 쓴 것도 많이 갖고 있었지만, (장)기호 오빠가 프로듀싱 해주면서 앨범 콘셉트가 많이 바뀌어 노래를 받게 됐다. 박성식 씨에게서도 곡을 받고 (이)규호 오빠한테서도 곡을 받았고. 원래 내가 쓴 곡들로는 조금 리드미컬한 느낌을 낼 계획이었다. 가수이기도 해서 그런가, 좋은 노래를 들으면 불러보고 싶다는 욕심도 많이 난다. '나는 내가 쓴 곡으로만 내 음악을 해야 해' 싶은 고집은 없다.
차은주의 보컬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낯선사람들 2집과 솔로 1,2집, 그리고 그 중간에 인기를 끌었던 김현철의 '그대니까요'에서의 힘 있고 기교 있는 알앤비, 재즈, 보컬을 기억한다. 이러한 보컬 스타일은 언제서부터 어떻게 만든 건가.
'나는 특출 나는 게 없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 와서, 잘 부르고 싶은 욕심, 잘 하고 싶은 욕심이 많이 크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노래를 어렸을 때부터 불러봤던 것 같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들 음악 찾아 따라 부르고 그러다 보니 힘 있는 보컬 스타일도 얻었던 것 같고.
그럼에도 2008년 3집 <스마일 인 유어 아이스>에선 상당히 힘을 뺀 보컬 스타일을 보여줬다. 또 그 기초에는 빈티지 어쿠스틱 사운드를 입힌 부드러운 재즈팝 사운드가 있었고. 당시에 어떤 구상을 그리고 있었기에 이와 같은 변화가 나올 수 있었나.
그 무렵에도 아팠다. (웃음) 직전에 5, 6년 간 웨이브 밴드에서 하고 있었는데 그 무렵 밴드가 깨져버렸다. 재결합 시도도 못 했던, 조금 무기력한 상태에 있어 아예 다른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실용 음악 학원을 차렸다. 그런데 이건 이거 나름대로 내 적성과는 맞지 않은 일이더라. 학원 운영, 행정에도 신경 써야 하니까. 몸에 안 맞는 걸 하다 부작용이 생겼는지 봉와직염이 왔다. 게다가 오진도 많이 받는 바람에 길게 앓기까지 했다. '이러다 내가 죽는구나' 싶었다. 주변 의사들도 스트레스받지 말고 아예 푹 쉬고 놀라고 하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해놓은 게 뭐가 있을까'하는 말이 머리에 먼저 들었다. 그러더니 2집에 싣지 못했던 그 곡들이 생각났다. 그걸 그대로 완성했다. 힘 빠진 상태에서 그런지 음악이랑 목소리에 힘이 빠져있고. '죽기 전에 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낸 앨범이다.
사실 앨범 활동 순간 간의 시간 격차가 크다.
그렇다. 어쩌다 보니 아플 때가 많아서. 앨범 작업도 오래 걸렸고 홍보도 잘 못 했다.
창작 활동에 있어 호흡이 긴 편인가.
아니다. 길진 않다. 곡 쓸 땐 전화도 안 받고, 나오라 그래도 안 나가고, 순간에 집중해서 끝을 보는 스타일이다. 도저히 안 될 때까지. 얼추 정도라도 완성하게끔.
반면 시작한 2014년의 4집 다시 위로에서는 다시 파워풀한 사운드를 들려줬다. 심지어 보다 로킹하고 또 스타일도 다채로웠다.
그쯤 시규어 로스랑 콜드플레이, 에드 시런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록적인 스타일이 많이 나왔던 것 같다. 몽환적인 느낌도 같이 잘 났고. 프로듀싱을 해줬던 기타리스트 오정수 씨와도 많이 얘기 나누며 같이 작업했다.
그 무렵부터 다시 음반, 음원 활동에 박차를 가했던 거 같다. 게다가 요즘에는 거의 매해 결과물을 보인다. 계기가 있나.
아, 3집을 내고서 점점 건강이 살아났다. 학원도 그만뒀고. 4집이 활력적인 이유도 이 때문이고 좀 더 곡을 자주 내놓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4집 앨범의 타이틀 <다시 위로>의 뜻은 무엇이었나. 상실과 치유의 음악이라 소개하기도 해 힐링이라는 의미의 '위로'로도 다가왔지만 상승이라는 의미의 '위로'로도 다가왔다.
둘 다다. 위로가 되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전체적으로.
근래 활발히 활동하며 주변 사람들도 반가워할 것 같다. 주변 반응들은 어떤가.
내가 가진 우울감 때문에 내 노래를 오래 못 듣겠다는 얘기도 좀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좀 편안해서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편한 마음이 음악에 담겨서 그런 건가 싶다. 이번 노래가 처절한 당장의 슬픔을 다루기보다는 슬픔이 지나간 후의 잔상을 이야기한다. 덕분에 우울 감성에 빠져서 노래하지 않아도 됐다.
다음 음반은 전작들보다는 조금 빨리 만날 수 있는 건가.
지금 작업은 계속하고 있다. 날짜를 딱히 정해놓은 건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 방향을 잡아보자는 얘기를 해놓은 상태다.
이번 신곡은 부드러운 팝 발라드였다. 향후 발매될 신보나 음악의 방향도 비슷한가.
아름다운 느낌으로 흘러가는 곡으로 하나 준비 중이다. 발설하듯 막 얘기하면 안 될 거 같다. (웃음)
이번 곡들도 학생들과 작업했듯, 대학교에 출강하면서 학생들로부터 여러 영향을 받을 거 같다.
좋다. 정말 좋다. 가르치는 처지에서 다가가긴 하지만 배우는 것도 많고 감동하는 일도 많다. 덕분에 이렇게 작업도 하게 되지 않았나. 특히 서로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얘기하는 게 즐겁다. 늘 좋은 영향을 받는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이번엔 적극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그간 겁도 많이 냈고 부끄럼도 많이 보였고 자신도 없었는데 그런 걸 이번에 많이 내려놨다. 이제는 즐겁게 하려 한다.
한편으로는 고민도 많을 것 같다. 특히 중견 아티스트들에 있어 지금의 우리나라 음악 환경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오랫동안 언더그라운드에서 자신을 표현해왔던 사람들마저 텔레비전 무대에 올라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지 않나. 차은주라는 싱어송라이터도 그 점에 있어 사실 포지셔닝이 쉬운 아티스트도 아니고.
오랫동안 고민이 많았다. 대중적으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의미로 쓴 곡도 있다. 비록 작업하진 않았지만. 곡을 내놓을 때마다 매번 독백하는 기분이었다. 또 공연하거나 앨범을 내면 손해를 끼쳐 소속사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는 딱히 유명해지고 싶진 않지만, 결국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버리지 않나. 나 좋자고 혼자 중얼거리는 거 아닌가 많이 생각했다.
음악적으로 방황을 많이 했겠다.
그렇다. 삶에 있었던 일만큼이나 내 음악에도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원인을 스스로 찾는 편인가.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원래 우울감이 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도중에 내가 변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밝게 생각하려고 매번 노력했고. 늘 그늘에서 시들어있는 화분 같다고 스스로에게 느껴왔다. 그러다 계속 이렇게 있으면 까미유 끌로델처럼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은 많은데 결국 우울함에 빠져 아무것도 못 하는 생으로 끝나겠다 싶어 이번에는 바꾸고자 했다. 긍정적인 빛을 주고자 힘썼다. 사실 음악이란 게 창작자의 당시 감성을 담은 결과물이다. 그 탓에 예전에는 혼자서 어둡게 중얼거리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은 많이 밝아진 편이다.
끝으로 차은주의 음악 인생에 영향을 끼친 음반 세 장을 말한다면.
유재하 선배의 앨범이 1번. 그 다음으로는 휘트니 휴스턴의 <Whitney Houston>다. 옐로자켓츠(Yellowjackets)와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이 함께 했던 <Dreamland>도 좋다. 꼭 들어보길 권한다. 아, 하나 더 하고 싶다. (웃음) 알 자로(Al Jarreau)앨범. 그 중에서도 <Breakin' Away>.
인터뷰 : 임진모, 이수호, 이택용, 정민재
정리 : 이수호
사진 :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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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