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일 “사람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자”
에세이스트 김현진과 서간집 『가장 사소한 구원』 펴낸 라종일 한양대 석좌교수
‘어른의 세계에 부딪혀 피를 흘리고 있는’ 김현진에게 라종일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이제 아무 걱정 하지 마라. 나는 네 편이다. 글 쓰는 사람은 원래 어느 정도 불행해야 한다. 당신도 그것을 알지 않느냐?”
얼마나 많은 곳에 밑줄을 쳤는지 모른다. 더 이상 밑줄을 그으면 줄무늬 노트가 될 것 같아 포기했다. 이건 누구 한 사람의 ‘사소한’ 구원이 아니었다. 『가장 사소한 구원』은 에세이스트 김현진과 한양대 석좌교수 라종일이 주고 받은 편지를 담은 책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라종일 교수의 전화로 시작됐다. 김현진이 2009년에 쓴 『그래도 언니는 간다』를 인상 깊게 읽은 라 교수가 만남을 청했고, 김현진이 힘들 때마다 연락하게 되는 사이가 됐다. 엘리트 코스를 거쳐온 탁월한 정치인이자 행정가, 교육가인 라종일 교수와 스스로를 ‘여태껏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날백수’라고 평하는 김현진. 어울리는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두 사람은 지난 1년간 32통의 편지로 서로의 생각을 읽었다. 삶에 대해 하소연을 하고 질문을 하는 쪽은 대부분 김현진이었다. ‘어른의 세계에 부딪혀 피를 흘리고 있는’ 김현진에게 라종일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이제 아무 걱정 하지 마라. 나는 네 편이다. 글 쓰는 사람은 원래 어느 정도 불행해야 한다. 당신도 그것을 알지 않느냐?”
라종일 교수와 편지를 주고 받은 ‘복 많은’ 저자 김현진은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이 충만한 이 기록들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선생님의 답장들을 나 혼자 읽기가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출간이 된 지, 4달이 지난 4월. 뒤늦게 라종일 교수에게 인터뷰를 청한 것도 같은 이유다. 혼자 읽기가 너무 아까웠다. 책 속에서 만난 ‘김현진의 남자친구’ 라종일 교수는 현실에서도 매우 부드럽고 따뜻한 어른이었다. 김현진이 ‘연애 편지’를 빙자하며 따끔한 질책을 받더라도 구차한 이야기를 늘여놓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인터뷰를 읽기보다 책을 꼭 펴보기를 권한다.
궁지에 몰린 쥐가 도망칠 틈새를 찾아내듯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사소한 구원에 매달렸다. 그것이 선생님과의 서신 교환이었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선생님은 고통을 활자로 옮기라며 단호하게 이야기하셨다. “이야기된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당신이 그 고통들을 글로 쓸 수 있을 때 당신은 비로서 낫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진실을 알려준 사람을 하소연과 자기비하, 좌절로 가득한 편지의 수신자로 감히 택했던 것이다. 택했기보다는 매달렸다는 표현이 맞겠다. 선생님은 몇 번이나 이 기록들을 책으로 묶어내는 것을 망설이셨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이 충만한 이 기록들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선생님의 답장들을 나 혼자 읽기가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7쪽)
행복이라는 게 아주 잠깐 아니에요?
출간을 무척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지 않으셨나 싶어요.
처음부터 이 책이 출판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제목도 반대했어요. 구원이라는 건 엄중한 것인데, ‘사소한 구원’이라는 게 말이 안 된다, 생각했어요. 출판이라는 건 비용도 많이 들고, 다른 사람들의 시간도 뺏을 수 있는 거라서 가볍게 출판해서는 안 된다고 했죠. 김현진 씨가 자꾸 우겨서 내게 됐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질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북 콘서트에도 많이 오시고 질문도 열심히 하셔서 놀랐습니다.
김현진 씨도 책에 썼지만, 두 분이 썩 잘 어울리지는 않아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교수님과 반항아였던 김현진 씨의 조합이. 보통 교수님들은 모범생들을 더 좋아하지 않나요?
처음 김현진한테 받은 인상이 현실감각이 아주 날카롭고 글 쓰는 재능이 탁월하다는 점이었어요. 두 번째는 자기관리를 잘 못한다는 점이었고요. 큰 충격은 현실감각이 좋은데 그게 잘못된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죠. “애를 누구 좋으라고 낳냐?”라고 말하는데, 그게 저 같은 사람의 생각에서는 말이 안 되는 소리거든요. 아이가 utility인가요? 물론 사회적인 구조가 중요하지만 사람의 일생이 그것 때문에 운용되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의 사회구조를 생각하면서 아이를 낳고 안 낳고를 결정한다는 건, 아닐 말이죠. 대통령이 된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좋은 가문에서 자랐나요? 거의 그렇지 않아요. 사회구조를 생각하면서 아이를 낳는 문제를 생각한다는 게 저에겐 충격이었고, 또 약속을 잘 안 지키고 자기관리를 못해서 더 관심이 갖는지도 몰라요. 관리를 잘하면 좋은 작품을 써서 기여할 수도 있고요. 애를 낳아서 키우는 게 얼마나 위대한 일인데요. 사회비평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현진은 수긍을 해요. 실천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요(웃음).
『가장 사소한 구원』에서 김현진 씨는 끈질기게 교수님의 사적인 이야기를 물어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여쭙는 게 참 재밌게 보이면서도, 실제 궁금했는데요.
별로 할 이야기가 없어요. 되게 평범한 가정에서 살았고 평범하게 가정을 꾸려왔기 때문에 특별한 게 없어요.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거절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통 인터뷰나 기고 요청이 오면 대부분 수락을 해주시나요?
제가 공직에 15년을 있었는데요. 웬만하면 시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해요. 일을 맡은 분들이 늘 비판을 받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그분들도 힘들거든요. 제가 할 때도 힘들었고요.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만들기가 정말 힘든 일인데, 전임자가 현직에 있는 사람에게 논평을 하면 그분들에게 부담이 되고 도움은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건 안 해요. CNN에서 남북한 관계에 대한 인터뷰를 여러 차례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거절했어요. 당시 아시아 책임자였던 분이 ‘왜 그렇게 인터뷰를 안 하냐’고 뭐라 하시더라고요. 지금 일을 맡고 있는 사람도 어려운데 전임자가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는 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적으로 브리핑해줄 수는 있지만 신문 같은 데서는 안 하려고 해요.
김현진 씨는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며, “폭죽 터지듯 화려하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 고요하고 별일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라고 했고, 교수님은 “행복에 대한 집착이, 그 참기 힘든 가벼운 추구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라고 하셨어요.
행복이라는 게 아주 잠깐 아니에요? 생각하던 일을 흡족하게 처리했을 때, 글을 썼는데 내가 생각한 걸 잘 전달했을 때, 그런 행복감을 느껴요. 그런데 그게 정말 잠깐이에요. 행복이라는 건 믿지 않아요. 사람이라는 존재의 근본적인 모순 하나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행복할 수 없다는 거예요. 지구는 우주의 작은 별에 불과하지만 사람은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발목 아래를 들여다보면 그런 근거가 없어요. 사람의 존재의 모순 중 하나가 만족할 수 없다는 거예요. 조금 행복하면 또 다른 걸 바라게 되고 욕심을 내고. 그렇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건 믿지 않아요.
사모님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결혼생활 초창기에는 ‘사랑하는 사이라기보다 함께 생활을 개척하고 꾸려나가는 동료였다’고 표현하셨어요. 다른 이기적 동기와 관련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건, 사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을 때 대신 아프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라고.
며칠 전에 한 잡지사에서 결혼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처음 본 잡지였는데 쓸 가치가 있어 보여서 썼어요. 제목을 ‘이브의 침묵’이라고 했어요. 동화책을 보면 왕자님하고 공주님이 결혼해서 둘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걸로 이야기가 끝나잖아요. 왜 그런 줄 아세요? 그 다음이 어렵기 때문이에요. 결혼까지 가는 것도 어렵지만 결혼한 후에 부부관계를 잘 지키는 게 더 어렵거든요. 동화에서는 구질구질하고 어려운 걸 다루기 싫어하니까 그렇게 결말을 맺는 거예요. 창세기에서도 아담은 이브가 오니까 좋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브는 침묵했어요. 왜 말을 안 했겠어요? 결혼생활이 어렵다는 걸 이브가 더 잘 알았기 때문이겠죠. 더 나쁜 건 아담이 이브를 배반한 거죠. 자기 부인이 잘못한 걸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안 하고, “저 사람 때문에 제가 이렇게 됐습니다”라고 했으니. 제가 창세기를 읽으면서 가장 마음 아픈 부분이에요. 이혼이 점점 늘어나는 게 결혼을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사랑이라는 건 주관적인 감정이지만 훨씬 더 많은 지혜가 필요한 일이에요. 도덕적인 책임감이 있어야 가능한 건데, 요즘은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책에서 오셀로와 처용 이야기도 하셨죠.
런던에 있을 때 세익스피어극장에서 오셀로를 본 적이 있어요.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자꾸만 함정에 빠지다가 엄청난 짓을 저지르잖아요. 그러다가 문득 비록 무속의 세계일지라도 벽사진경(僻事進慶)의 상징이 된 ‘처용’이 생각났어요. 간통 현장을 목격하고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는 게 상상이나 돼요? 어쩌면 그는 배신하는 자기 부인을 불쌍하게 여겼는지 몰라요. 오셀로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궁극적으로 그의 함정은 자기 스스로가 만들었기 때문이죠.
나이가 들면,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화가 나는지요?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여유가 생기고 관용이 많아지잖아요.
길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들을 보면 좀 화가 나요(웃음). 뭐 간단한 거 빼고는 그다지 화가 나는 일이 많진 않아요. 질문을 이렇게 하면 좋을지 몰라요. 나이가 많아지면 화가 난다, 안 난다 그런 문제보다 놀랄 일이 조금 없어져요. 이런저런 경험을 하게 되면 ‘그럴 수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여겨지는 게 훨씬 많죠. 사람이 근본적으로 그렇게 지혜롭고 슬기롭지 않잖아요. 나를 훌륭하게 생각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정말 어리석다는 걸 많이 봐와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봐도 ‘사람이 그렇지 뭐’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이라는 건 구부러진 나무라서, 똑바른 재목을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세상의 성공은 전혀 중요한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보다 우선 부모가 사람으로서 자란다”고 하셨어요. 자녀 분들에게 어떠한 일도 강요를 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점이 있었을 텐데요.
신앙이었어요. 사람이라는 존재의 여러 가지 차원 중에 가장 최고의 단계라고 생각하니까요. 나중에 선택은 본인들이 하더라도, 어릴 적에는 신앙의 세계에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천주교 영세를 네 아이 모두 받았는데, 넷이 다 잘했어요. 지금은 개신교로 간 아이들도 있는데 그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자신들이 결정하고 선택한 일이니까요. 아이를 키운다는 게, 아이에게 뭘 베푸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한테 엄청 훌륭한 일이에요.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걱정이 참 많았어요. 기껏 외국까지 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박사 학위를 못 따면 어떡하지? 그러면 취직도 못할 텐데? 그런 걱정이 많았어요. 시골에서 그렇게 환송을 해줬는데 망신을 당하면 어쩌지? 전전긍긍했는데, 아이가 태어나니까 그런 건 부차적인 일이더라고요. 세상에서 성공하느냐 마느냐, 그런 건 전혀 중요한 일로 여겨지지 않았어요. 차원이 다른 행복을 경험했고 매일 희망과 보람을 느꼈어요. 더 이상 두려운 것도 무서운 것도 참을 수 없는 일도 없어졌어요.
“모범생을 더 좋아했던 태도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모범생은 안 돌봐도 되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조금 그렇긴 한데, 사실 모범생이 인간성이 제일 나쁜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거든요. 성경에 나오는 탕자, 아시잖아요. 나쁜 짓을 했어도 뉘우칠 수 있다면 그건 훌륭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큰 아들은 얼마나 자기 이해를 잘 따지는 사람이었어요. 동생이 방탕한 생활을 하는데도 오히려 자기 입장에서는 괜찮다고 여겼죠. 이해타산적인 사람이에요. 모범생이라고 반드시 훌륭한 사람은 아니죠.
스승의 날을 ‘제자의 은혜에 보답하는 날’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우리나라는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는 생각하는데, 자식의 은혜, 제자의 은혜는 생각하지 않아요.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얼마나 제자가 중요해요? 그런 걸 좀 고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자의 은혜에 보답하는 파티를 했어요. 재밌으라고 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번쯤은 제자의 은혜도 생각해야죠. 가르침이라는 게, 일방통행만으로 이뤄지는 게 결코 아니에요. 일방통행으로 은혜를 주고 갚는 건, 나쁘게 말하면 깡패 세계에나 있는 거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스승이 가르쳐준 걸 다 잊으라는 소리 아니겠어요? 제자는 스승을 극복할 수도 있어야죠.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특별히 존경할 만한 그런 분들도 있는데요.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만나는 사람마다 참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렇고요. 제가 모르는 것, 좋은 점을 갖고 있어요. 70대 중반까지 살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위로는 역사에 남을 만한 인물도 만났는데, 완벽해 보이고 성인이고 특히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 중에 자기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에 필적할 지식, 정보를 모두 갖춘 사람은 못 봤어요. 다 불안정해요. 반대로 아무리 형편 없는 사람을 만나도 훌륭한 점이 있어요. 테러리스트 강민철에 대한 전기를 쓴 것도, 흉악한 살인범이지만 그런 사람에게도 동정이 가기 때문이었어요.
2013년에 출간된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 말씀이시군요.
사실 초고는 출간된 책 분량의 2,3배를 썼어요. 나온 책보다 더 신랄하게 썼죠. 우리 민족이 통일을 바랄 자격이 있나, 그런 이야기도 썼어요. 솔직히 이 사건은 전두환, 김일성 두 사람의 책임이에요. 광주사태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후에 두 사람은 친해지고 비싼 선물도 주고 받고 파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강민철을 꺼내줄 생각은 안 했어요. 입에 담지도 않았죠. 고 김수환 추기경,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죽고는 온 나라가 떠들썩했지만 이 젊은 애가 25년을 감옥에서 살다가 죽었는데, 아무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책으로라도 그 사람을 살려놓겠다, 싶어 썼어요. 국내에서는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뉴욕타임스에서는 저를 인터뷰해서 전면에 실었어요. 번역도 되지 않은 책을 소개해줘서 놀랐어요.
고 강민철은 결국 간암에 걸려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감옥에서 병원을 가던 길 위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팔이 없는 채로 25년간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아요. 묘도 쓰지도 못했다고 하더군요. 북한은 혁명열사능이라고 해서 특수 사업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을 모셔놓는데, 강민철은 어디에도 갈 때가 없었어요. 아주 완전히 죽어서도 버려진 사람이에요. 5월에 어린이 날이 있잖아요. 예전에 인권위원회 위원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나라는 어린이에 대한 지위가 굉장히 사회적으로 낮았어요. 어린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도 얼마 되지 않았고요. 늙은이, 젊은이는 있어도 어린이는 없었죠. 일제시대, 아주 어려운 시대 때 마해송,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알려야 한다고. 어린이인권상을 만들던지, 방정환상, 마해송상을 만들어야 한다고요. 반영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어요.
우리 민족이 잘되는 걸 보고 싶다
교수님께서는 고민이 많았다고 하셨지만 『가장 사소한 구원』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애당초 저는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낸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아직도 미심쩍은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잘한 일인가? 걱정을 했는데, 책이 잘 팔린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어느 정도 부담감은 덜해졌어요. 내가 그렇게 엉터리 짓을 한 건 아니구나, 싶어요.
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김현진이 책 마지막에 이렇게 썼더군요. “살아야겠다”고. 그건 저에게 보람이었어요. 만약 현진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읽고 똑같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저로서는 바랄 게 없겠죠.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교수님께 일간지 1면, 전면이 주어진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지요?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사람한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자. 우리 모두는 굉장히 부족하고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결함이 많은 사람들인데, 타인을 볼 때 너무 큰 기대를 갖고 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 기대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더 큰 분쟁이 생기는 것 같아요.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추후 출간 예정인 책이 있나요?
지금 장성택 전기를 쓰고 있어요. 책으로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쓰고 있어요.
앞으로의 소망, 꿈은 무엇인가요?
소박한 꿈인데요. 우리 민족이 좀 잘되는 걸 보고 싶어요. 지금 제가 대학원에서 외국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이미 졸업을 하고 외국에서 취직을 한 학생들도 있고요. 얼마 전에 한 학생이 이메일로 질문을 하나 했어요. 한류 파워를 소프트 파워(soft power)로 평가해야 하는데, 주변에서 비판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한류가 커머셜 마케팅(commercial marketing)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고요. 저는 한국 사람들이 마케팅을 잘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소프트 파워가 더 중요하게 되리라고 생각해요.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같이 한국 사람들에 관한 오래된 기록을 살펴보면, 예로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춤과 노래를 즐겼어요. 외국의 침략도 많이 받고 오랫동안 가난을 겪었기 때문에 마음속에 한을 어떻게든지 흥으로 풀어내야 했으니까요. 저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됐고 어느 정도 민주화도 됐고 문화수출국이 된 걸 참 기쁘게 생각해요. 물론 어두운 면도 많고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만큼 잘된 것도 훌륭하게 생각하고 앞으로도 잘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겠지만 더 잘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20세기는 참 비참한 세기였잖아요. 21세기는 우리 민족이 더 잘되고 잘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가장 사소한 구원
라종일,김현진 공저 | 알마
이 편지들 안에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이야기,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길을 걸으면서, 혹은 직장에서, 가정에서 느꼈던 감정의 흐름들, 내면에 꼭꼭 숨겨놓았지만 빙산의 일각처럼 그 작은 편린만 종종 드러나곤 했던 아픈 상처들, 일상에서 문득 발견하는 소중한 깨달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잔잔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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