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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극소수의 노인을 위한 나라

개인적인 저항보다 집단적인 분노가 필요한 이유 『디 마이너스』 손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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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실상 노인들을 위한 나라다. 모든 노인도 아니고 극소수의 노인을 위한 나라다. 그것이 청춘들이 아픔을 느끼는 이유가 아닐까.

지난 1월 27일, 서울 합정동 자음과모음에서 『디 마이너스』 출간기념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시간이 마련됐다. 『디 마이너스』는 손아람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로 용산 참사를 포함,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근현대사 10년을 그리고 있다. 이날 행사는 ‘손아람?UMC ‘나쁘니까 청춘이다 : 나쁜 것들에 대하여 질문하고 답하다’’라는 이름으로 독자들의 사연과 그것에 대해 손아람과 UMC(래퍼)가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손 작가가 이날 행사에 대해 소개하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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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행사로 뭘 할까 고민하다가 김무성 의원이 최근에 한 말(”아르바이트생들의 부당한 처우 문제는 인생의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지, 방법이 없다”)때문에 제목을 지금처럼 붙여봤다. 그 말을 듣고 분노를 느낀 분도 있을 것이다. 한국은 실상 노인들을 위한 나라다. 모든 노인도 아니고 극소수의 노인을 위한 나라다. 그것이 청춘들이 아픔을 느끼는 이유가 아닐까. 그래서 ‘나쁘니까 청춘이다’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열게 됐다.”

 

UMC도 말을 이었다. 『디 마이너스』는 2000년대 허물어져가는 학생운동에 대한 관찰에서 나온 얘기다. 21세기의 학생운동은 관심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지금 정치권이나 대중은 ‘486’에 고정돼 있다. 조기숙 교수가 최근 트위터에서 (백화점 갑질 모녀 사건과 관련해 아르바이트생이) 왜 용감하게 나설 용기조차 없느냐고 했는데, 이는 나는 과거에 이만큼 고생했다는 메시아 증후군 때문일 것이다. 청춘들이 겪고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손아람 작가는 소설가가 되기 전 래퍼였다. 그러나 손아람의 랩은 직업으로 할 정도는 아니었다(웃음).”  
 
첫 사연이 흘러나왔다. 27살, 단역 배우를 하고 있는 여성의 사연이었다. 한 TV드라마에 단역이지만 고정적인 역할로 들어가게 됐는데, 주연이 어떤 옷을 입을지 몰라서 그것에 맞추기 위해 자기 돈을 들여 정장 5벌을 샀다. 출연료보다 옷값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촬영을 하면서 주연과 동선이 맞지 않아 발을 밟았고, 촬영이 중단됐다. 주연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주연은 협찬 받은 구두인데 어떻게 할 것이냐는 둥 얼마짜리인줄 아느냐는 둥 불만을 토했다. 결국 단역 배우는 역할에서 잘렸다. 그러면 일당을 받을 수 없기에 하루 종일 주연이 등장하는 신마다 문을 여닫는 일을 했다. 연기를 배울 때 학원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단역 때의 경험만큼 성장한다는 그 말이... 과연 그럴까. 독자 중에 배우가 있어서 진짜 이러느냐고 물었다. 이 독자는 영화를 찍으면서 주연을 기다리느라 11시간을 기다린 경험을 말했다.

 

UMC :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 신인일수록 오래 기다린다. 신인이 계속 리허설을 하고 인기 있는 가수들은 시작 5분 전 나오거나 녹화가 끝날 즈음 나온다. 2000년대 초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해 띠를 두르고 나와서 엄청 고생했다. 띠에는 자본의 논리에 따른 영화산업 개방을 반대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지금의 결과를 놓고 보면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열매는 대기업에게 돌아갔지만. 그렇게 대기업이 돈을 버는 새 영화스태프들의 처우는 나아진 것이 없다. 이것이 살짝 사회문제화 된 적이 있지만, 한 유명 배우는 이런 말을 했었다. 스크린쿼터는 사수해야 하지만 배우 몸값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스크린쿼터는 사수해야 하고, 배우의 몸값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정해질 수 있다고는 보는데, 확실한 건 그것 때문에 희생되는 청춘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잊고 있다. 

 

손아람 : 이 사연에서 더 충격적인 것은 출연료보다 옷값이 더 많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착취의 정교한 구조다. 아무도 옷을 사라고 강요하지 않지만, 옷을 자기 돈으로 사야지만 출연할 수 있다. 착취의 구조가 문제다. 사연의 마지막에 연기학원 선생이 단역 때 경험만큼 배우가 성장한다고 말하는데, 이 말이 섬뜩하다.

 

다음 사연은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사연이었다. 손님 두 명이 각각 매장에 들어왔는데, 먼저 들어온 손님에게 인사를 했더니 나중에 들어온 손님 왈. 나 무시해? 돈 없어 보여? 왜 저 사람에게 먼저 인사해? 이런 말을 내뱉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는 것. 그리고선 계산기를 직원 얼굴에게 던지기까지 했다. 매장 노동자는 급기야 무릎을 꿇었고, 보안요원이 와서 말리자 이 손님이라는 작가는 보안요원의 뺨을 때렸다. 맞은 보안요원은 협력업체 직원인지라 분을 못 참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이 들이닥치고 이 뺨을 친 사람은 보안직원을 자르면 화를 풀겠다고 백화점 상담 직원에게 말했고, 결국 보안요원은 잘렸다. 백화점에 얽힌 사연 2개가 더 나왔고, 그들이 처한 상황은 첫 사연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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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C : 백화점의 위계를 보면, 손님이 제일 위에 있고, 바로 밑에 매장 운영 사업체가 있다. 첫 번째 을이 입점 업체다. 손님이 돌멩이를 떨어뜨리면 입점 업체가 해결해야 한다. 해결 못하면 계약을 못하니까. 그 뒤 입점 업체 노동자들에게 불똥이 떨어진다. 이런 경우를 들은 적이 있다. 백화점 지하 식품 매장에서 손님이 3/4 정도 먹은 뒤에 이걸 반품한단다. 상했다거나 맛이 없다며 뭐든 이유를 붙이면 된다고 하더라. 한국이 서비스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왜곡돼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진상을 피면 다시 받는 마법이다.

 

손아람 : 한 백화점의 주차장 아르바이트생이 백화점 손님 모녀에게 무릎을 꿇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인적인 저항은 불이익으로 돌아온다. 개인적인 저항은 효과를 보기 어렵다. 그러나 사회적인 분노는 효과를 본다. 위메프 사태가 터졌을 때를 보라. 사회적인 분노가 전원복직을 시켰다. 우리가 쉽게 개인적으로 힐링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개인적인 분노와 저항은 힘들지만, 집단의 분노로 표현됐을 때는 부당함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

 

UMC : 위메프는 억울하겠지. 다른 데도 다 그런다며. 여론이 화가 나서 마녀사냥을 하는 건 때때로 효과가 있다. 그 방법이 아니면 치유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대학교 한 시간강사의 사연도 널리 호응을 받았다. 강의 평가점수도 꽤 높았는데 잘렸다. 페이스북에서 대통령을 비난했다는 이유였다. 수업을 듣는 한 학생이 이를 캡처해서 ‘일간베스트(일베)’에 올렸고, 조선일보가 이를 기사화했다. 경찰에 신고했고 일베에 이를 올린 학생을 잡았으나 문제는 재단 이사장이 긴급회의를 소집, 시간강사의 강의를 다 없앴다. 이후 입시학원에 취직했으나 신문을 봤다며 학부모가 알면 큰일 난다며 계약이 안 됐다. 
 
UMC : 이건 명백하게 복고다. 1960~1970년대의. 2000년대 중반은 극우 백색테러가 분명치 않아서 보수언론이 그런 이야기를 해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의식이 있었는데, 지금 정권이 들어선 이후 어른들이 해준 말이 현실이 돼서 돌아오고 있다. 부모가 70년대 이야기를 해주는데 지금과 싱크로율이 꽤 높다(웃음).

 

손아람 : 늙은 교수들이 강의실에서 성추행, 논문조작, 연구비 착복 등을 하는 건 괜찮고 대통령을 욕한 건 품위를 어기는 일인가보다. 전체주의 사회는 처벌이 집행되지 않는 사회다. 구성원들이 알아서 복종하기 때문에 처벌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이 학교나 학원에 전화를 하진 않았겠지만 시간강사는 잘리고 계속 밀려난다. 우리 사회에 눈에 보이는 폭력은 사라졌지만 전체주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나도 최근에 이와 비슷한 일을 당하고 있다. 전작인 『소수의견』이 영화화돼서 2년 전 촬영이 끝났는데, 개봉을 못하고 있다. 『소수의견』은 용산참사에 대한 이야기다. 대통령이 책을 읽어보진 않았을 것이고, 누구도 투자사에 전화를 걸어 개봉하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수십억이 들어간 영화가 개봉을 못하고 있다. 자기 돈을 들였음에도 개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UMC : 이런 식으로 많은 문제가 공론화도 되지 않는다. 위에서 내려온 미움이 아래까지 잘 전파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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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연은 열 살이 많은 영업직 남자친구가 룸싸롱에 자주 가는 것 때문에 고민하는 여성의 사연이다. 남친은 처음 사귈 때부터 업무상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며 얘기했고, 이 여성은 두 가지 조건을 걸어 이를 용납했지만, 계속 고민 중이다.

 

손아람 : 이 관계는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성노동이라는 관점에서 우리나라는 불법인데, 합법을 해야 한다는 논쟁도 있다. 나는 이 문제에 관심이 많다. 우선 성매매 문제는 여러 세부 지형이 있다. ‘보수적 찬성’의 남자는 성매매는 인류 역사상 막을 수 없는 것이니 합법화하는 입장이다. 이 논리의 모순은 자기 딸이나 아내에게 성노동을 추천하지 않는데 있다. ‘진보적 찬성’의 논리는 대개 성노동도 노동이고, 불법인 상태에서 성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자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성매매가 합법화된 나라에서 성노동자들의 인권 수준이 굉장히 낮고, 합법화된 상태에도 자신을 떳떳하게 내세우지 못한다. 반면 성구매자인 남성과 포주는 떳떳하게 사업을 하고 산업화를 한다. 특히 시장논리가 개입돼 성노동자의 임금이 떨어진다. 지금 우리나라는 성매매가 불법이어서 돈을 번다. 불법에 대한 반대급부로.

 

‘보수적 반대’는 매우 유교적인 입장이다. 성을 사고팔다니, 조상에게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말한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성산업의 주고객층이다. 제도나 법적으로는 반대하나 개인적으로 불법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진보적 반대’는 북유럽 모델인데, 성매매를 불법으로 하되 성매매가 적발될 경우 성노동자는 100% 보호하고 성구매자를 가중 처벌한다. 이 경우 성매매가 이뤄져도 조금이라도 아니꼽게 굴었다가는 성노동자가 고소를 하고, 성구매자나 포주가 성노동자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이 법의 취지는 성구매를 하지 말라는 것이고, 유럽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담배다. 담배를 태우는 것은 합법이나 흡연자는 징벌적인 세금을 문다. 세금을 내는 이유는 흡연율을 낮추기 위함이라는데, 국가가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겠다며 흡연은 합법화의 영역으로 남겨 놓는다. 여하튼 룸싸롱에 가는 남자들은 가중 처벌을 해야 한다(웃음). 남자로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조심스럽지만, 진보 담론에 익숙해도 이것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말을 아끼는 경향이 있다.

 

UMC : 한 번은 공개방송을 할 때 백발이 성성한 분이 질문을 했었다. 꼭 필요한 사람이 있으니 공창 제도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고용을 할 수 없고 소개비를 받을 수 없으니 준공영공창을 운영하면 어떻겠느냐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서의 핵심은 노동권이다. 나는 대리운전에 비교하고 싶다. 한국에는 대리운전과 관련한 법이 없다. 현실에 대리운전은 이미 있는데, 대리운전을 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보장받지 못한다. 에이전트는 정직할 수 있어도 어플을 만드는 회사가 노동자와 에이전트의 수입을 다 뺏어간다. 그리고 뒤에 보험회사가 있다. 등록도 안 되는 직업이라 보험을 들려고 하면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 대리운전 기사는 진상을 만나도 보호를 받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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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손아람 저 | 자음과모음(이룸)
소수의견 손아람의 세 번째 장편소설. 디 마이너스는 말 그대로 낙제에서 간신히 복권된 학점 'D-'를 말한다. 소수의견이 대한민국을 현미경으로 세밀하게 확대한 사진이라면, 디 마이너스는 결코 끝나지 않는 대한민국의 과도기를 '가깝되 바깥인 곳에서' 멀고, 넓게, 바라본다. 용산 참사를 포함,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근현대사 10년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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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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