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감각적이다 이 책!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38회) 『디테일의 발견』, 『디자이너의 일상과 실천』, 『가족을 폐지하라』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3.04.27)
불현듯(오은) : 이번 주제는 '감각적이다 이 책!'입니다.
프랑소와 엄 : 예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제안 드린 주제였는데요. 사실은 제가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었어요. 이 책을 소개했을 때 괜찮은 주제를 찾아보았습니다.
생각노트 저 | 위즈덤하우스
아시다시피 저는 어떤 단어가 던져지면 사전적 의미를 먼저 파악하는 편이에요. '감각적'이라고 할 때 두 가지 뜻이 있더라고요. 하나는 '감각을 자극하는, 또는 감각을 자극하는 것.' 그러니까 감각적인 문체나 감각적인 소설이라고 말하는, 작품에 언급하는 경우일 거예요. 두 번째는 '감각이나 자극에 예민한, 또는 그런 것'인데요. 이때는 사람에게 많이 표현을 하겠죠. 그 사람 참 감각적이야,라고 할 때 쓰는 표현으로요.
전자에 해당하는 책이라면 앤 카슨의 『플로트』를 가지고 설명을 드렸을 거예요. 그 책은 여러 개의 낱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앤 카슨이 이 책을 쓰고, 어떤 것이든 먼저 읽고 싶은 것을 읽으라고 했대요. 그게 에세이일 수도 있고, 편지글일 수도, 시일 수도 있는 엄청 세련되고 독특한 책이에요. 이 감각적인 책을 소개할까 하다가 오늘 결국 가져온 책은 『디테일의 발견』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후자의 자극과 감각에 맞닿아 있는 책이에요. 그러니까 감각이나 자극에 예민한 사람이 쓴 책인 거죠.
'디테일'이라는 표현은 전체적인 윤곽에서는 발현되지 않아 보이지만, 관심 있게 세부를 톺아보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이 책에는 '고객을 사로잡은 101가지 한 끗'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고요. 아래에 또 다시 작게 '공간, 제품, 서비스의 차별화를 만든 사소한 차이에 관한 관찰 기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제품을 사용하거나 어떤 서비스를 받거나 어떤 장소에서 경험했던 것들이 이 '한 끗'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이 책은 한 끗을 발견한 뒤 그냥 넘어가지 않고 하나하나 기록했기에 나올 수 있던 책입니다.
요새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ESG 경영이잖아요. 그리고 지구에 폐를 덜 끼치게 하는 서비스나 상품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고요. 그런 아이디어도 많이 소개되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는데요. 세븐일레븐에는 에코 얼음컵이 있대요. 보통 얼음컵은 플라스틱 잔에 주잖아요. 얼음이 종이컵에 들어가면 당연히 흐물흐물해지니까요. 그런데 세븐일레븐에 있는 에코 얼음컵은 내수성이 높은 종이를 쓴다고 합니다. 그래서 흐물흐물해지지도 않고, 다 사용한 후에는 일반 종이류에 분리수거도 가능하대요. 이런 디테일들은 알려고 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은 모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아, 역시 보고 싶은 사람에게만 내 주변의 풍경은 비밀한 것들을 보여주는구나' 생각했어요. 디테일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책, 그리고 감각적인 분들이 읽기에 참으로 좋은 책이라는 설명도 덧붙입니다.
권준호 저 | 안그라픽스
이 책은 제가 올해 만난 책 중 가장 예쁘고, 제가 좋아하는 디자인 스타일을 갖고 있는 책이에요. 정말 만져보고 싶은 책이거든요. 내지도 그렇고, 북디자인에 굉장히 신경 쓴 책인데요. 안그라픽스에서 나온 책이기도 하지만, 책의 저자가 직접 북디자인을 한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발견하게 된 계기는 SNS였어요. 어떤 책이 주황색인데 예뻐서 YES24에서 책을 검색하고 미리보기로 몇 페이지를 읽었는데요. 글이 너무 재미있어서 바로 구입을 해 읽게 됐습니다.
저자인 권준호 작가님은 영국에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셨고요. 런던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신 후 2013년 귀국을 하셔서 '일상의 실천'이라는 스튜디오를 동료들과 운영을 하고 계세요. 저는 목차에 일단 반했는데요. 제목들이 이래요. '가용 예산과 눈치 게임', '견적 비교를 위한 견적서', '대표님 우리 대표님', '정말 이런 작업을 해도 되나요?' 뭔가 예상과 다르죠.(웃음) 저희 방송을 출판인 분들이 많이 들으시잖아요. 저는 편집자나 마케터, 디자이너 분들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딱 목차만 봐도 저자가 솔직하겠구나, 하는 감이 오실 것 같아요.
이 책이 특히 좋았던 건 제목처럼 디자이너의 일상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작업물이나 일하면서 느끼는 고충들을 다양하게 소개한다는 거였어요. 그 이야기들의 연결이 굉장히 조화로웠거든요. 어린 시절 얘기를 했다가 대표님 이야기를 했다가 어떤 클라이언트한테 썼던 편지가 나오기도 하는데요. 이게 정말 자연스럽게 읽혔어요.
작가님은 사회 참여적 작업, 의미 있는 작업을 꼭 하시려고 하는 편이에요. 예산이 조금 적더라도 이 프로젝트가 우리 디자인 스튜디오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주저하지 않고 일을 하시는 스타일인데요. 관련해서 공감했던 문장이 하나 있었어요.
나는 쿨한 사람을 믿지 않는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쿨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 나의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 이웃의 삶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무지하거나 그것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굳이 내가 저 사람의 삶에 침범해서 의견을 낸다든가 먼저 행동을 하는 선택을 요즘 사람들은 안 하려고 하고, 저부터도 그런 면이 있는데요. 가끔 쿨한 척을 하는 입장에서 되게 반성도 되고, 위로를 받았던 문장이었어요. 권준호 작가님과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 책이 좋았습니다.
소피 루이스 저 / 성원 역 | 서해문집
일단 표지와 내부 디자인이 아주 예쁘게 만들어졌어요. 각 챕터 앞에 대단히 큰 폰트로 어떤 문장들을 인용해 놓기도 하고요. 쪽수를 표기한 부분도 귀엽게 디자인이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만 보고 책을 선택했어요. 또 제목이 굉장히 도발적이잖아요. 마침 저의 관심사와 닿아 있어서 소개를 하고 싶었어요.
저자는 소피 루이스라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지리학자예요. 이 저자의 첫 번째 책 제목이 『이제는 완전한 대리모 제도를』입니다. 더 적은 대리모가 아니라 더 많은 대리모, 완전한 대리모를 주장하면서 기존의 가족 개념을 부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던 것인데요. 이번 책에서 다시 한 번 가족을 폐지하자는 주장을 펼치면서 가족이라는 것의 실체, 한계, 그리고 가족이 배제하는 것들을 자세하게 들여다봅니다. 아무튼 대단히 논쟁적인 글을 쓰는 작가인 것이죠.
첫 챕터에 아주 큰 폰트로 한 페이지에 슬로건처럼 붙어 있는 글이 있어요. 내용이 이렇습니다.
상대와의 관계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은 다양하다.
이 인용문을 말한 사람이 티파니 레타보 킹이라는 미국의 퀴어 젠더 연구자인데요. 저자는 이 글을 인용하면서 책의 목표를 분명히 밝힙니다. 이 책의 목적은 사람들이 "가족을 폐지하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경악에 휩싸여서 하게 되는 오해를 정리하고 바로 잡는 것이라고요.
책이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거든요. 첫 번째 챕터에서는 현재의 가족이 결국은 자본주의의 기본 단위로만 기능하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아주 상세하게 주장하고 있고요. 2장과 3장에서는 저자 자신의 주장에 어떤 이론적인 토대가 있는지, 이런 주장이 어떤 역사적인 맥락을 갖고 있는지를 훑어 봐요. 그러니까 가족 폐지론이라는 게 저자가 새삼스럽게 처음 얘기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인 거죠. 또한 가족 폐지론을 듣고 나올 수 있는 다양한 반박에 대응하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보면 가족 폐지론이 역사도 깊고 이론적으로도 납득이 되는 얘기들이 많이 있어요. 마지막 4장에서는 그러니까 우리 한번 가족을 넘어서서 동지가 되는 실천을 한번 해보자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가족과 가족 제도는 다르다. 이 책은 가족 제도의 정치경제를 다룬다. 결혼은 감정을 제도화하는 폭력이고, 이혼의 첫 번째 조건은 따로 살 거처 즉 경제력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이미 가족은 페지되었다. 제도로서의 가족이 자본주의와 이성애 제도를 유지시킬 뿐이다. 이 책이 가족과 관련된 모든 사회 질서를 이해하는 데 적절한 입문서인 이유다. _정희진(여성학 박사, 오디오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결국, 여기에서 폐지돼야 되는 가족은 추천사에서 얘기했듯 자본주의와 이성애 제도를 유지시킬 뿐인 제도로서의 가족을 말하는 거예요. 이 책이 혈연 관계를 없애자, 이런 건 아니고요. '근족'을 중심으로 조금 더 넓게, 더 많이 연결되고 돌봄을 주고받는 사회를 상상해보자는 이야기예요. 어제 방송인 『에이징 솔로』와 같이 연결해서 읽으셔도 정말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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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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