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하는 여자들] 홍한별, 모두에게 열린 단어의 세계
번역하는 여자들 2편
흔히 '끝내 번역되지 않고 남는 것이 문학성'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문학성이 번역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2023.04.24)
동시대 여성에게 필요한 말을 가장 뜨겁게 전하는 여성 번역가들의 이야기. 인터뷰 시리즈 '번역하는 여자들'은 매달 마지막주에 연재됩니다. |
한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을 증언하는 소설 『밀크맨』에서, 옛이야기를 유쾌하게 뒤집는 리베카 솔닛의 『해방자 신데렐라』까지 번역가 홍한별의 우주는 다채롭다. "홍한별의 번역이라면 믿고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언어의 질감을 잘 살린 문장은 진솔한 에세이와 소설 번역에서 특히 빛난다. 그리고 단어들 사이를 깊이 채우는 것은 책과 함께한 그의 삶이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통해 엄마로서의 삶을 겹쳐보고, 미래의 딸들을 위해 새로운 감수성의 동화를 번역하며 그는 모두에게 열린 단어의 세계를 꿈꾼다.
영어영문학과 대학원 재학 시절 번역을 시작하셨죠.
대학원을 다닐 때, 출판사에서 책을 검토하고 번역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1996년에야 한국이 베른 협약(저작권에 관한 국제 조약)에 가입해서 번역서를 출간할 때 독점 저작권 계약이 필요해졌는데요. 그래서 영어를 할 수 있는 저 같은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때 책도 몇 권 번역했는데, 내세울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제 이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 이름으로 나왔어요. 아무튼 그때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깨 너머로 출판에 대해 많이 배웠고요, 그때 알게 된 분들이 나중에 번역 일감을 주셔서 본격적으로 번역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어요.
당시에는 번역가의 이름이 지워지는 경우가 많았군요.
번역가가 독립된 직업으로 인식된 것이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어요. 대리 번역을 맡기고 이름난 명사의 이름을 대신 내세워 출간하는 경우가 많았죠. 아무도 번역가에게는 주목하지 않다가 이미 소설가로 유명했던 이윤기, 안정효 선생님 같은 분들이 번역을 하고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번역도 장인 정신을 갖고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생겨났죠. 덕분에 저도 번역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름을 단 첫 번역서가 나왔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정말 좋았죠. 저한테 책을 뭔가 대단한 걸로 여기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책을 좋아하셨던 부모님의 영향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인지 저희 집에서는 책은 신성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책을 밟기라도 하면 크게 혼났어요.(웃음)
처음에는 인문 에세이를 많이 번역하셨어요. 대중에게 친숙한 키워드로 시작해서 문학, 예술, 역사 등 다양한 인문학 지식을 펼치는 책들이요.
사실 일을 막 시작했을 때는 제가 책을 고를 입장은 아니었어요. 번역이 프리랜서업이잖아요. 일이 끊기면 안되니까 다음 제안이 오면 계속 수락했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제가 작업하고 싶은 책으로 일정을 채울 수 있게 됐어요. 번역의 좋은 점 중 하나가 책 한 권을 작업하고 나면 항상 무언가 남는다는 것인데요. 문학 작품은 감정이 남는다면, 인문 에세이는 지식이 남아요. 작업할 때의 기분도 접근 방식도 다르고요. 그래서 두 분야를 적절히 섞어서 하려고 하죠.
"번역을 하며 우리와 상관없다고 생각한 현실을 직면하고 공감할 수 있다."(『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247쪽)고 하셨죠. 실제로 번역 목록에 우리의 인식을 넓혀주는 책이 많아요. 특히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책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책들은 제가 인간과 세상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어요. 2000년대 초에 자폐라는 말이 아직 친숙해지기 전인데, 제가 작업실 공간을 얻어서 쓰던 출판사에서 특수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된 책을 많이 찾아보게 됐어요. 그때 폴 콜린스의 『틀렸다고도 할 수 없는』 , 템플 그랜딘의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등을 번역하면서,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구나, 나와 다른 인식의 세계를 가진 사람이 있구나, 하는 걸 알았고 정말 눈이 새로 뜨이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소설 번역'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는데요. 『밀크맨』, 『클라라와 태양』 등 홍한별의 번역이면 믿고 읽는다는 평이 많아요.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정말 기쁘고 고맙습니다. 최근에는 소설 작업이 많아졌는데 예전에는 소설을 하고 싶어도 일이 잘 오지 않았어요. 작업 목록에 소설이 없는 사람에게는 소설을 잘 맡기지 않으니까요. 보통 그래서 번역가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비슷한 분야의 책을 계속하게 돼요. 최근에 어떤 책을 번역했느냐가 어떤 책이 나에게 들어오는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일을 쉬지 못하는 것도 있어요. 주변에서는 프리랜서니까 몇 년 쉬어도 되지 않냐고 하는데, 공백기가 생기면 기억에서 금방 잊히니까요.
소설 번역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등장인물의 보이스를 정하는 게 핵심이에요. 소설 속 서술자가 어린아이거나 노인이거나 똑같은 목소리를 가지면 안 되니까요. 서술자의 목소리가 소설의 분위기나 글 전체적인 느낌을 결정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해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투도, 보통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나온 사람의 기억과 이미지를 결합해서 인물을 상상하고 그 사람한테 대사를 맡기는 식으로 작업을 해야, 살아있는 사람이 하는 말처럼 생생하게 느껴져요. 그러기 어려울 때도 있죠. 이를테면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의 주인공 클라라는 AI여서 참조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SIRI와 안드로이드가 주인공인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도움을 받아 작업했어요.(웃음)
『클라라와 태양』을 번역할 때는 여러가지로 재미있는 일이 많았어요. AI인 클라라는 말투가 보통 사람과 달라요. 일상에서 사람들은 비유 표현이나 관용어, 슬랭(slang)을 많이 쓰는데, 클라라는 함축적인 의미는 잘 파악하지 못하고 언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독특한 개인어를 써요. 새로운 사물을 보면 자기만의 이름을 붙여서 지칭하죠. 그렇기 때문에 때로 어색한 표현을 할 때가 있는데, 번역자로서 이걸 어디까지 살려야 하나 고민했어요. 굉장히 고심해서 AI처럼 표현했더니 ‘번역이 어색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죠.
번역자의 의도를 알아주지 않을 때 속상하기도 할 것 같아요.
그런 일은 너무 많아서요.(웃음) 하나의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독특하고 신기한 표현과 보수적이고 진부한 표현 사이에서 늘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 같아요. 작품에 인공지능이나 외국인이나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등장하거나 하면 한층 더 어려워져요. 인물이 구사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걸 표현하면서도 읽기에 거슬리지 않아야 하니까요.
소설의 배경이 낯선 문화권일 때 더 까다롭지 않나요? 최근 출간된 『설탕을 태우다』는 배경이 인도였으니까요.
다른 문화를 번역할 때는 늘 그걸 얼마나 독자 쪽으로 가깝게 끌고 올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설탕을 태우다』를 작업할 때는, 인도의 계급 문화를 번역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영어 원문에는 존댓말의 구분이 드러나지 않지만, 인물들은 계급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면, 주인공이 나이가 많은 가정부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계급 차이를 생각하면 가정부에게 반말을 쓰는 게 맞을 텐데, 제 안의 유교 정신이 "분명 연장자인데 반말을 쓸 수는 없잖아?"라고 말하는 거예요.(웃음)
유교 정신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계급 제도에 대한 거부감이 제 마음 한 구석에 있어서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문화 권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었어요. 한국인인 제가 인도의 계급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자신의 문화에 맞게 번역해버리면 그것도 폭력일 수 있겠더라고요. 마치 일부 유럽인들이 이슬람 문화권의 히잡이 성차별적이기 때문에 무조건 쓰지 말라고 강요하는 게 폭력일 수도 있는 것처럼요. 항상 고민되는 부분이에요.
원문에 이미 성차별적이고 소수자를 배제하는 문화가 있을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그런 작품은 되도록 맡지 않으려고 하는데요.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현재의 감수성에 맞게 고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물론 번역가의 월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죠. 번역자에게는 원문을 고칠 권리가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린이책에는 번역이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도 하잖아요. 엄청나게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예요. 예를 들면, 로알드 달이 쓴 동화에 기괴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표현이 쓰였다고 해서, 어린이들에게 그대로 읽히면 안 된다고 하는 입장도 있지만, 아이들이 로알드 달에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그 황당하고 과한 내용 때문이거든요. 쉽게 말하기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에세이 앤솔로지 『돌봄과 작업』에서 말씀하셨죠.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은 언제나 아이를 두고 도망쳐야 하는 일이었다고요.
물론 번역이 프리랜서업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육아의 책임이 제게 많이 올 수밖에 없었어요. 남편은 회사에 가 있으니까 돌발 상황이 생기면 늘 제 일에서 시간을 빼야 했고, 주변에서도 제가 집에 있으니까 편하게 아이를 맡기기도 했고요. 그래서 작업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출판사에서 작은 방을 빌려서 작업실로 쓰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방학이 되면 또 집에 있어야 해서… 결국 다시 집에서 일하게 됐죠.
육아서가 부모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운다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읽지 않으셨다고요. 어쩌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정반대에 놓인 책 같아요. 어머니인 저자는 아들이 총격 사건의 가해자가 되면서 '내 아이를 부모조차 모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 책을 번역하는 내내 묘한 감정이 들었어요. 말하자면 육아의 처참한 실패이기도 하잖아요. 보통 번역 작업을 할 때 서술자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동일시를 하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런데 그 책만은 제가 도무지 동일시를 할 수 없는 지점들이 계속 나타났어요. 제가 작가와 똑같이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니까, 제 안에서 “난 이 사람과 달라”하면서 자꾸 밀어내게 되더라고요.
책을 번역하는 내내, 영향을 많이 받으시는군요.
맞아요. 제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펄 벅의 『자라지 않는 아이』를 번역했는데요. 펄 벅이 딸 캐롤이 정신지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겪은 많은 일들을 담은 책이거든요. 책은 좋은 책이지만 그 시기의 제게는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번역을 마치고 잠이 들면 나쁜 꿈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보통 두어 달에 한번씩 작업하는 책이 바뀌는데요, 저는 지금 어떤 책을 작업하고 있느냐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특히 작업이 즐거운 책이면 삶도 덩달아 즐겁고, 암울한 내용의 책이면 제 기분도 영향을 받고요. 어떤 책을 한 권 작업하고 나면 그 책의 문체에 영향을 받아 제 문체도 약간 바뀐 걸 느낄 때도 있어요.
여성으로서 번역을 할 때 느끼는 희열도 있을 것 같아요. 리베카 솔닛의 『해방자 신데렐라』는 남성 중심적인 이야기를 뒤집고 새롭게 쓴 동화책인데요.
리베카 솔닛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특히 리베카 솔닛의 글 중에서 문장의 밀도가 굉장히 높고 의미가 2~3개씩 중첩되어 있는 에세이를 좋아해요. 그런 밀도 높은 에세이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포기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해방자 신데렐라』는 번역하기 쉬우면서도 굉장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잖아요. 어린이책인데도 리베카 솔닛 특유의 아름다운 문장이 살아 있는 게 너무 좋았죠. 뿐만 아니라 리베카 솔닛이 평소에 하던 무수한 고민들, 남성중심적, 인간중심적, 계급주의적 사회에 대한 고민을 모두 담아서 써낸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후속작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재해석한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인데 곧 출간될 예정이에요.
20년 동안 번역을 해오시다 보니, 아주 오래전에 번역한 책을 재번역한 경우도 있었다고요.
20년 전 번역서를 다시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이렇게 못했지!(웃음) 다른 한편으로, 지금까지 한 건 번역밖에 없는데 그래도 내가 20년 동안 많이 컸구나' 하는 위로도 되었고요. 그렇지만 제가 한 번역 작업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퀄리티가 낮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정말 괴롭죠. 얼마나 실수가 많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요.
사실 몇 년만 지나도 언어 감각이 많이 바뀌어요. 예를 들면, 번역 당시에는 네일숍이 없어서 ‘손톱 손질을 하러 갔다’고 번역했는데, 3년 뒤에 한국에서도 네일숍이 많아져서 고친 적이 있어요. 생각보다 우리의 언어가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변해요. 거기에 출판 트렌드 같은 것의 영향도 있어서 번역서는 한 10년이면 낡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책 리뷰를 보면, 번역 칭찬도 있지만 대부분 원작자를 칭찬하잖아요. 서운하지는 않나요?
전혀요. 물론 번역이 좋다고 하면 기분이 좋지만, 책이 좋다고 하면 함께 칭찬 받는 거죠. 저도 이 책에 지분이 있으니까요. 일단 책이 많이 읽히면 누군가가 알아주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번역을 다 하고 나서 '잘하지 못했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도 느끼신다고요. 어떻게 긴 작업을 버티시나요?
늘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잘했을 텐데 생각하죠. 번역은 결국 꾸역꾸역 일정한 분량을 날마다 해야만 완성이 되는 작업이라, 하루하루 할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생각해도 너무 사소해서 웃긴 방법을 쓰는데, 어떻게 하냐면 하루 일과를 마친 다음에 스스로에게 칭찬을 많이 해줘요.(웃음) 오늘 열 쪽 번역을 하기로 계획을 했는데 그걸 마쳤다면 “정말 잘했다. 어떻게 이걸 다 해내냐” 하면서 엄청 칭찬을 해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럼 정말 잘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 힘으로 버티는 것 같아요. 그래야 다음날 또 일할 수 있죠.
번역하면서 특별히 기뻤던 순간이 궁금한데요.
『밀크맨』 번역을 맡았을 때요. ‘부커상을 받은 작품이 어떻게 나한테 왔지?’ 믿어지지가 않더라고요. 비슷하게 『클라라와 태양』 작업을 하게 됐을 때도 무척 신났던 기억이 나요. 가즈오 이시구로가 제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인 데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처음으로 쓴 작품이어서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책이었거든요. 이렇게 정말 하고 싶었던 책을 만나면 한 며칠 동안은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에요.
20년 동안 기술도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은 챗GPT가 사람의 번역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요.
인간의 번역을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아요. 분명 AI가 단순명료하고 객관적인 글의 번역은 잘 하겠죠. 그런데 리베카 솔닛의 글처럼 여러 겹의 의미가 있는 문장까지 섬세하게 번역하는 건 불가능해요. 물론 상대적으로 필요한 번역가의 수는 줄어들 거예요. 그래서 미래에 번역가가 살아남으려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출간 예정인 책을 소개해주세요.
지금 대기 목록이 아주 만족스러워요.(웃음) 그중 수전 손택 책이 두 권 있는데, 기대가 됩니다. 제가 번역 일을 시작한 초기에 손택의 책을 두 권 번역했는데, 워낙 오래 전이다 보니 분명 오류가 많았을 거예요. 그래서 늘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거든요. 이번에 그 빚을 갚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햄닛』 362쪽
매기 오패럴 저 / 홍한별 역 | 문학동네
흔히 '끝내 번역되지 않고 남는 것이 문학성'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문학성이 번역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잘 되는 건 아니지만, 여기에서는 잘 안되더라도 다른 곳에서 잘 나오기도 하고요. 이 문장은 소설 『햄닛』에서 아이 햄닛이 페스트에 걸려 죽어서 엄마가 시신을 수습하려고 천을 펼치는 장면인데 너무나 가슴에 와닿더라고요. 원문이 참 아름다웠는데, 다행히 제가 번역한 문장도 아름답게 나와 주었어요.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은 문장이에요.
(장소 협찬 : 카페 이 마스)
*홍한별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글을 읽고 쓰고 옮기면서 살려고 한다. 한때 번역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학위 과정을 밟는다는 무리한 설계를 하기도 했으나 첫째를 가지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그래도 세 살 터울로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번역 일은 중단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이들이 다 커서 하루에 여덟 시간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 그 시간에는 주로 번역을 하고, 가끔 글을 쓰고, 대학원에서 학생들에게 번역을 가르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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