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책읽아웃] 고양이와 언어와 소설 쓰기 (G. 김혜진 소설가)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20회) 『경청』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소설은 언어를 구조적으로 쌓아 올리는 일인데, 그 언어를 별로 신뢰하지 못하고 항상 정확하게 전달이 된다는 생각을 잘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든 의미를 전달하려 하고 있는 작업이라는 게 되게 모순되지 않나, 라는 생각을 종종 하거든요. (2022.12.28)


안녕하세요. 임해수입니다. 이 편지를 받고 놀라실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제 이름을 완전히 잊으셨는지도 모르죠. 누군가에게는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쉽게 잊히는 일이 되기도 하니까요. 잊을 수 없는 사람은 피가 마르는데 잊은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김혜진 작가의 소설 『경청』에서 읽었습니다. 이 편지를 쓴 화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려고 편지를 쓰기 시작하지만, 매번 편지를 완성하는 데 실패하고 그래서 편지를 부치는 일에도 실패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악인. 용서받지 못한 가해자. 어쩌면 가혹한 누명을 뒤집어 쓴 피해자. 역경에 굴복한 패배자. 지금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라는 질문을 통해 삶의 복잡성을 듣고 들여다보고자 한 소설. 김혜진 소설가의 다섯 번째 장편을 만나보겠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김혜진 소설가 편>

안녕하세요. 황정은입니다. 오늘은 언제나 사람이 궁금하다고 말하는 소설가를 모셨습니다. 새 장편 소설 『경청』을 쓰셨죠. 김혜진 작가님입니다.

황정은 : 이번 소설의 표지에는 한요 작가님이 그린 고양이 한 마리가 등장합니다. 『경청』 안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등장을 하잖아요. 그 중에서 '까미'네요.

김혜진 : '까미'인지 '순무'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황정은 : 순무는 치즈 아닙니까?

김혜진 : 그렇죠. 외형상으로 보면 까미에 더 가까울 거라고 생각됩니다.

황정은 : 저도 이 고양이가 순무가 아니라 까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어젯밤에야 했어요.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는 얘가 당연히 순무일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순무가 화자에게 대단히 중요한 계기를 주는 고양이 아닙니까.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덮고 다시 보니까, 일단 치즈가 아니고, 그래서 순무가 아니고 까미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웃음) 그런데 '경청'이라는 제목하고 (표지의) 이 고양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잘 모르겠는 표지인 거예요. 그래서 소설 내용이 되게 궁금해지는 표지였어요. 작가님에게는 어땠나요?

김혜진 : 이제 책이 나오기 전에 표지가 여러 개 나오잖아요. 이게 제목과 이미지가 좀 멀다고 하면 그건 조금 더 가까웠어요.

황정은 : 뭐였는지 궁금하네요.

김혜진 : 소설에 나오는 공터 같은 데 앉아 있는 어떤 여자가 수풀에 있는 고양이들을 보는 이미지였는데, 그것도 좋았거든요. 이게 두 번째 안이었는데, 그것보다는 조금 더 눈에 들어온달까요. 좀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이미지가 편집부에서도 좋다고 했고 저도 좋아서 이걸로 결정하게 됐습니다.

황정은 : 저도 좋습니다. 말씀하신 표지도 궁금하긴 한데 이 표지가 아까 말씀드린 이유로 되게 궁금하고, 책 내용을 궁금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리고 이 소설 안에서 순무가 화자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주는 고양이긴 하지만, 그대로 얘기하면 스포일링이 될 것 같기는 한데, 그 고양이한테 다다르게 하는 과정에서 까미가 되게 중요한 몫을 하잖아요. 그래서 까미로 추정되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표지는 참 적절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혜진 : 저는 까미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거든요.(웃음)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까 까미와 많이 닮아 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황정은 : 네, 이 표정을 보십시오. 뭐라고 묘사를 해야 될까요. 강단 있는. 그리고 꼬리의 치솟은 각도가 반가움의 감정 표현 아닙니까? 저는 좋았습니다.

김혜진 : 강단 있는 이미지, 저도 좋습니다.(웃음)

황정은 : 작가님도 혹시 고양이를 데리고 있나요? 

김혜진 : 한 마리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지난해 소설 쓸 때...

황정은 : 구조하셨다고요.

김혜진 : 네, 한 마리를 데리고 왔는데 걔를 키울 생각은 아니었어요. 정말로. 좋은 집에 입양 보낼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아프니까 보낼 수도 없고 맡을 사람도 없고 그래가지고 결국 저랑 살고 있습니다.

황정은 : 네, 오래오래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황정은 : 『경청』의 주인공인 임해수는 유능한 상담사입니다. 방송에 출연해서 자기가 잘 알지도 못하는 유명 배우에게 신랄한 말을 하잖아요. 그러고 나서 얼마 뒤에 그 배우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면서 임해수는 사람을 죽인 상담사로 사회적 비난을 받게 되거든요. 직장도 잃어버리죠. 이 소설은 어떻게 만드셨어요? 어디서 시작됐나요?

김혜진 : 음... 소설이 다 써지고 난 뒤에 항상 이런 질문을 받게 되잖아요. 어떻게 구상하게 됐느냐 언제 생각하게 됐느냐 이런 질문을 항상 받는데, 그때마다 제가 어떤 답을 찾아내려고 노력은 해요. 그렇지만 그게 언제 어떻게 시작이 됐는지는 사실 저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냥 이 소설에 대해서는 한 2년 전에 어려움에 처한 어떤 사람, 인생에서 어떤 힘든 순간을 맞이한 어떤 사람에 대한 얘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앞에 조금 썼는데 잘 진행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고 하다가 그걸 그냥 두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난해 봄에 본격적으로 쓰게 됐고, 처음에 구상한 거랑은 좀 다른 방식으로 쓰여진 것들도 있고 추가가 된 부분들도 있고, 그렇게 해서 완성이 된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본격적으로 쓸 때는 그런 생각을 좀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삶에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순간에 자신과 화해해야 되잖아요. 자기를 좀 받아들여야 한다고 해야 될까요.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지? 이런 생각을 좀 했던 것 같습니다.

황정은 : 2020년에 출간된 『불과 나의 자서전』은 '당신의 정의와 분노는 어디에서 오는가'를 묻는 소설이었는데요. 저는 이번에 『경청』을 읽으면서도 그 질문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님이 생각하기에는 어떤가요?

김혜진 : 『불과 나의 자서전』에는 홍이라는 인물이 나오거든요. 그리고 『경청』에는 임해수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비교를 굳이 하자면 홍이라는 사람은 자기 안의 기준이 조금 더 명확한 사람 같아요. 

황정은 : 홍이가 남일동에 사는 인물이었죠. 『불과 나의 자서전』은 재개발 이슈를 다룬 소설입니다. 

김혜진 : 네, 맞습니다. 홍이가 '이것은 잘못됐다, 이것은 옳다', '이렇게 바꾸고 싶다, 변화하고 싶다'라는 것들이 좀 명확한 사람이라면, 임해수라는 사람은 그것을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고, 소설이 결국 그런 걸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두 인물은 조금 다른 캐릭터이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정은 : 다른 캐릭터인데 작가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두 인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왠지 임해수라는 인물이 홍이라는 인물의 이후 버전인 것 같기도 하고, 홍이가 갖고 있었던 명확함 이런 것들이 흔들리고 깨지고 부서진 사람이 임해수인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둘이 연결이 돼 있기도 한 것 같은데 어떤가요?

김혜진 :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저도 어떤 사안에 대해서, 혹은 어떤 것에 대해서 옳고 그르다, 항상 모든 것에 명확하게 판단을 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점점점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것들이 참 쉽게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황정은 : 그렇습니다. 너무나 많은 삶과 또 타인의 고통을 더 많이 접하면 접할수록 그 경계가 대단히 모호해지는 것 같아요. 


황정은 : 소설은 임해수가 쓰는 편지로 시작이 됩니다. 임해수는 사건과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이 편지들이 대개 '나는'으로 끝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화자는 무슨 이유로 '나'를 반복하고 있을까요?

김혜진 : 사실 이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그래서 좀 생각해 보게 됐어요, 처음으로. 이 사람이 뭔가 해명하고 싶어서 계속 편지를 쓰는 거잖아요.

황정은 : 그렇습니다. 화자는 사실 사과하는 편지를 쓰고자 하지만 결국은 내용이 그렇게 되죠. 

김혜진 : 그렇죠. 항의이거나 자기변명이거나 혹은 자기의 억울함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그런 얘기를 결국에는 하게 되는데. 어쨌든 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자 하니까 '나'라는 주어에서 끝나는 게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좀 들었고요. 두 번째는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과를 하고 싶지만 쓰다 보면 그런 식으로 진행이 되지는 않는 거예요. 

황정은 : 그렇죠. 마음에 담긴 게 워낙 크기 때문에.

김혜진 : 네, 그래서 항상 거기에서 중단이 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습니다.

황정은 : 김혜진 작가님이 이 편지들이 '나는'으로 끝난다는 걸 몰랐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김혜진 작가님이 이 편지를 쓰실 때 임해수라는 사람의 내면에 대단히 깊게 몰입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자기도 모르게 임해수가 하고 싶은 말로 끝을 낸 거잖아요.

김혜진 : 그럴까요.(웃음)

황정은 : 네, 저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왜냐하면 대단히 고집스럽게 '나는'으로 끝나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황정은 : 소설에서 해수는 '정확한 단어로, 분명한 문장으로, 자신의 입장을 전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기로' 마음을 먹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의미 전달이라든지 말이라든지 소통을 생각하는 일은 소설을 쓰는 작가도 늘 하는 고민이잖아요. 김혜진 작가님도 그러시나요?

김혜진 : 네, 그런 것 같아요. 소설은 언어로 쌓는 어떤 세계잖아요.

황정은 : 옛날에 '집'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언어로 짓는 집'이라고 하셨죠.

김혜진 : 네. 언어를 하나씩 하나씩 구조적으로 쌓아 올리는 일인데, 그 언어를 별로 신뢰하지 못하고 항상 정확하게 전달이 된다는 생각을 잘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든 의미를 전달하려 하고 있는 작업이라는 게 되게 모순되지 않나, 라는 생각을 종종 하거든요. 한편으로는 정확하게 가 닿지 않기 때문에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돼요. 

황정은 : 그러네요.

김혜진 : 정확하게 과녁에 도달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다면 굳이 소설을 쓸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이렇게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황정은 : 이렇게 에둘러 갈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말이 제대로 전달되거나 그 말을 듣는 상대에게 제대로 도달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은, 그 말을 받는 타인이 내 삶의 맥락을 모르고 나는 또 그의 맥락을 모르잖아요, 그래서 발생하는 의심인 것 같기도 합니다.

김혜진 : 맞아요. 말은 나 혼자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사람 사이에 있는 거니까.

황정은 : 그렇죠. 그리고 말은 항상 각자 개인의 삶 속에서 구축되면서 약간씩 의미가 달라지잖아요. 그런 불안 때문에라도 그런 의심을 늘 갖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김혜진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치킨 런」이 당선되면서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2013년 장편 소설 「중앙역」으로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을, 2018년 장편 소설 「딸에 대하여」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 책읽아웃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경청
경청
김혜진 저
민음사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경청

<김혜진> 저13,500원(10% + 5%)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악인 용서받지 못한 가해자 어쩌면 가혹한 누명을 뒤집어쓴 피해자 역경에 굴복한 패배자 시련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린 얼간이… 지금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끝난 듯한 이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까? 김혜진 신작 장편소설 『경청』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2012년..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ebook

<김혜진> 저10,500원(0% + 5%)

■ 국민 상담사에서 공공의 적으로 임해수는 삼십 대 후반의 심리 상담 전문가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자신할 뿐만 아니라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날 이후, 신뢰받는 상담사 임해수의 일상은 중단됐다. 내담자들에게 자신 있게 조언하던 임해수의 자리 역시 사라진다. 지금 해수가 있는 곳은 모욕의..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AI, 전혀 다른 세상의 시작일까

유발 하라리의 신작. 호모 사피엔스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허구'를 꼽은 저자의 관점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진다. 정보란 진실의 문제라기보다 연결과 관련 있다고 보는 그는 생성형 AI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보 기술이 초래할 영향을 분석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 문학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줄 이야기

등단 후 10년 이상 활동한 작가들이 1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중 가장 독보적인 작품을 뽑아 선보이는 김승옥문학상. 2024년에는 조경란 작가의 「그들」을 포함한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실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과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주목받는 수익형 콘텐츠의 비밀

소셜 마케팅 전문가 게리 바이너척의 최신작. SNS 마케팅이 필수인 시대, 소셜 플랫폼의 진화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위한 6단계 마케팅 전략을 소개한다. 광고를 하지 않아도, 팔로워 수가 적어도 당신의 콘텐츠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생의 의미

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