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책 한 권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G. 장강명 작가)
오은의 옹기종기 (168회) 『책 한번 써봅시다』
지금 제 옆에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소설을 쓰고 싶지만 끝에는 주인공과 친구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해피엔딩 애호가이기도 한, 최근 『책 한번 써봅시다』를 출간하신 장강명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0.12.31)
음식은 대체로 비쌀수록 맛있지만 창작의 기쁨은 도구의 가격에 별로 좌우되지 않는다. 대인관계에서 얻는 즐거움과 달리 창작은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만족감을 준다. 스포츠와 달리 운동신경이 둔해도 괜찮고, 종교처럼 자아를 지우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온전하고 또렷하게 자신을 드러낸다는 면에서 인간적인 영웅이 되는 길이다. 대단히 평화적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장강명 작가님의 책 『책 한번 써봅시다』에서 한 구절을 읽어드렸습니다. 먹는 욕구, 활동하는 즐거움, 심지어 종교의 희열과도 다른 창작의 기쁨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글을 써서 나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걸까요? 과연 누구나 책 쓰기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이런 저런 궁금증을 떠올리는 분들이 계실 텐데요. 여기 장강명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이것이 작가님의 말이거든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장강명 작가님이 오셔서 책쓰기 꿀팁을 대방출 해주실 예정이에요. 마음 속에 글쓰기의 욕망을 품고 계신 여러분, 귀 기울여주세요!
오은: 2018년 여름에 <오은의 옹기종기>에 찾으셨었죠. 그 사이에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뭘까요?
장강명: 녹음하러 와서 느끼는 것이 그때는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건데요. <책 이게 뭐라고>는 팟캐스트에서 한 발 물러났고, <책읽아웃>은 인기 팟캐스트로 계속되고 있다는 게 달라진 점 같아요.
오은: 『책 한번 써봅시다』가 11월에 나왔고요. 2개월 전인 9월에는 『책, 이게 뭐라고』가 출간되었잖아요. 프랑소와 엄님이 <어떤,책임>에서 그 책을 소개하면서 작가님께 전화를 했는데 전원이 꺼져 있었어요. 그때 뭘 하고 계셨던 건가요?
장강명: 요즘 그냥 낮에 전화를 자주 꺼놔요. 알림 메시지도 너무 많이 오고요. 저는 직장인이 아니니까 촌각을 다투는 연락이 있지는 않거든요. 급하면 문자 메시지 남기겠지, 하는 생각으로 꺼두고 2시간에 한 번씩 확인하곤 하는데요. 너무 좋습니다. 족쇄가 풀린 것 같고요. 저의 2021년 목표는 전화를 꺼두는 것에서 나아가 인터넷 접속도 안 해보자는 거예요.
오은: 작가 소개를 할 차례인데요. 장강명 작가님 소개는 <책읽아웃-오은의 옹기종기> 34-1회를 들어주세요. 오늘은 다시 한 번 <김하나의 측면돌파>의 시그니처 코너 ‘스피드퀴즈’를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질문을 받으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답해주셔야 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오늘도 새벽 6시에 일어나 세수도 안 하고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왔다. Yes or No?’
장강명: NO, 6시 30분에 일어났습니다.
오은: ‘HJ의 판단으로 빼야 했던 글감들을 따로 모아둔 곳이 있다. Yes or No?’
장강명: Yes, 폴더에 따로 모아놓습니다. 폴더 제목을 ‘무덤’이라고 지었습니다.
오은: 작가님, 끝나면 추후 질문 드릴 거예요. 이렇게 시간을 버시는 것 같은데 안 돼요.(웃음) ‘나에게 더 잘 맞는다고 느꼈던 일은? 1)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2)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일’
장강명: 2번.
오은: ‘지금도 소설가보다는 기자 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볼 때가 있다. Yes or No?’
장강명: Yes.
오은: ‘작가로서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1) 성실함 2) 날카로움’
장강명: 1번.
오은: ‘다시 생각해도 ‘어떻게 그걸 썼지?’ 싶어지는 책이 있다. Yes or No?’
장강명: Yes.
오은: ‘나의 밑바닥을 확인하고 마는 때는? 1) 퇴고할 때 2) 스쿼트를 할 때’
장강명: (웃음) 1번.
오은: 작가로서 날카로움보다는 성실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장강명: 날카로움도 성실함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 성실해지면 날카로움도 저절로 따라오는 것 같아요.
오은: 이제 『책 한번 써봅시다』를 작가님께서 직접 소개해주시는 시간입니다. 이 책은 어떤 책인가요, 작가님?
장강명: 이 책은 ‘나 책을 쓸 수 있을까? 책 한번 써보고 싶은데, 나 같은 게 무슨…’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망설이는 분들을 제가 손 잡고, 책 써야 한다고 끌고 가는 책이에요.
오은: 『책, 이게 뭐라고』와 비슷한 시기에 출간이 되었잖아요. 읽고, 말하는 일과 읽고, 쓰는 일이 작가님을 사로잡은 계기가 있나요?
장강명: 쓸 때는 잘 몰랐는데 비슷한 시기에 ‘책’이라는 말이 들어간 책 두 권을 내다보니까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고요. 아마 작년과 올해 책을 읽고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정리할 필요도 느꼈고요. 하도 사람들이 책을 안 읽기도 하고, 지금 같은 유튜브 시대에 책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왜 읽어야 하지, 왜 써야 하지, 읽는 사람은 뭐가 다르지, 같은 생각을 저도 하게 됐어요.
오은: 책 앞에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합니다’라고 되어 있거든요. ‘써야 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개인이 판단하는 것인가요?
장강명: 구체적으로 여기서 한 번 말씀을 드려볼게요. 죽기 전에 책 한번 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 1년이 넘은 사람이라면 써야 하는 사람입니다.
오은: 작가님은 책이 의사소통의 핵심 매체가 되는 사회를 상상하셨어요. 지금은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게 굉장히 빨라진 시대인데요. 책에 손을 들어주신 이유가 궁금해요.
장강명: 작년과 올해 읽고 쓰는 일을 생각하면서 크게 깨친 것이 있어요. 인터넷이 시작되고 약 20년간 일어난 일을 한 걸음 떨어져서 보니까 사회가 우리에게 들어오는 정보의 품질을 희생하면서 짧고, 빨리, 넓게 퍼지는 방향으로 갔다는 것이 명확히 보이더라고요. 인터넷 이전을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신문도 꼬박꼬박 읽고, 스크랩도 했어요. 그러다 인터넷으로 신문을 읽으니까 점점 뉴스 주기도 짧아졌고요. 스마트폰이 생기니까 기사가 짧아졌어요. 카드뉴스가 나오고요. 이제 포털에는 긴 기사 밑에 댓글로 ‘누가 요약 좀’이라고 달리죠.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인공지능 요약 서비스가 생겼고요. 그런데 그렇게 줄이면 대부분 틀립니다. 짧고 거친 글을 보면 사람들의 반응도 즉각적으로 나와요. 제 생각에는 정보를 그렇게 빨리 알 필요가 없거든요. 좀 길고, 사연이 있는 정보들로 세상을 알아야 하는데 그게 뭘까 생각했어요. 그게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오은: 그래서 『책 한번 써봅시다』는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보게 만드는 책이기도 한 것 같아요. 써야만 얻을 수 있는 깨달음 같은 것이 있잖아요.
장강명: 글을 쓰다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하는 경우도 많고요. 거꾸로 좋은 글을 쓰려면 자기를 좀 들여다봐야 하죠. 흔히 글쓰기에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하는데요. 저는 아마 자신의 마음이 어떤 모양인지 글을 쓰다 보면 살피게 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오은: 이 책은 ‘글 한번 써봅시다’가 아니에요. 글이 아니라 책을 쓰자고 하는 이유가 뭘까요?
장강명: 책이 조금 더 목표가 분명한 것 같고요. SNS 때문에 글쓰기와 말하기의 경계도 좀 무너지는 것 같아요. 글을 어떻게 쓰자고 말할 때는 허들이 좀 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이라고 했어요. 책의 경우 단행본이 최소한으로 요구하는 규격 같은 것이 있으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매체, 사연이 있고 맥락이 있는 매체라는 것도 책 같거든요.
오은: 실제로 도움이 될만한 팁이 많았어요. 우선 작법서는 참고하되 맹신하지는 말자고 말해요. 가령 문장은 무조건 짧게 쓰라, 첫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같은 말에도 한 번 의심을 해보는데요.
장강명: 실제로 저한테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분들이 어떤 부분에 어려움을 겪는지를 이 책 쓸 때 많이 생각했고요. 상담을 하면서 느낀 게 사람들이 작법서를 너무 맹신한다는 거였어요. 그렇게 맹신할 내용은 아닌 것 같거든요. 그 내용이 과학적인 검증을 거친 것도 아니잖아요. 저를 비롯해서 작법서 저자들은 그냥 자기 경험을 얘기하는 아마추어입니다. 프로 작가가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고요. 대부분의 작법서가 그냥 ‘내가 해봤더니 이게 맞아’라는 이야기를 일반화 해서 강조하는 것 같아요. 가령 첫 문장으로 사로잡아야 한다는 말을 너무 믿으면 첫 문장을 못 쓰게 됩니다. 첫 문장 중요하죠. 그런데 일단은 아무렇게나 쓰시고요. 나중에 고치세요. 그게 낫지, 첫 문장부터 독자를 사로잡을 명문으로 쓰겠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오은: 필사에 대해서도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어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필사는 반대한다고 밝힌 이유는 뭔가요?
장강명: 필사 도움 돼요. 저도 하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글쓰기 장르가 다르니까 본인이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파악해서 거기에 맞는 필사를 하자는 거예요. 내가 쓰고 싶은 글의 모범이 되는 글을 필사해야지, 안 맞는 글을 필사하는 것은 폐활량을 키워야 하는데 다른 근육 운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제가 생각하는 필사는 역엔지니어링 같은 거예요. 남의 제품을 분해해서 어떻게 이런 제품을 만들었는지 조사하는 작업이거든요. 관심 없는 글인데 문장이 좋다고 하니까 해보는 필사는 글쓰기에 별로 도움 안 되는 것 같아요.
오은: 글쓰기 영감을 많이 받기 위해서 견지해야 할 태도가 있을까요?
장강명: 저는 모든 사람이 영감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해요. 영감이 완성된 상태로 오는 경우는 없거든요. 첫 문장만 와도 다행이죠. 첫 문장의 앞부분만 오는 경우도 많은데요. 그럴 때 ‘어라라? 에라 모르겠다’고 치워버리지 않고, 왜 내가 ‘어라?’ 했을까 이유를 찾아보고 그것을 완성하는 태도가 중요할 것 같아요. 또 그럴 때 기록하는 거예요. 저는 요즘 ‘어라?’ 할 때 스마트폰 꺼내서 녹음합니다. 저는 ‘버스정류장에 이상한 광고가 있네’ 같은 식으로 녹음한 30초짜리 파일 되게 많아요.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먼저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영업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장강명: 몇 주 전에 읽고 큰 감명을 받은 책인데요. 『도도의 노래』라는 책입니다. 과학에세이인데요. ‘섬 생물 지리학’이라는 학문이 시작하고, 발전한 과정을 담았어요. 생물 지리학은 어떤 생물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 분석하는 건데 그 중 특히 섬에 사는 생물이 변이가 심하다고 해요. 독특한 생물도 많고요. 섬에 사는 생물이 멸종하기도 쉬워요. 고립되어 있으니까요. 이 얘기가 지금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많더라고요. 자연보호 구역도 사실상의 섬이고요. 환경 문제로도 이야기가 나아가는데 그런 식으로 작은 얘기부터 큰 얘기까지 다루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어요.
오은: 두 번째 질문, 『책 한번 써봅시다』가 한 권 있다면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으세요?
장강명: 아버지입니다.(웃음) 이 책을 쓰면서 아버지 생각을 했어요. 저희 아버지가 딱 책을 쓰고 싶어하는 분이거든요. 그런데 책 쓰기가 어려우니까 안 쓰는 거죠. 저는 저희 아버지가 ‘아, 내 이름 들어간 책 한 권 갖고 싶은데’라고 생각하면서 80세, 90세를 맞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일단 쓰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버지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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