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법으로 독서를 금지하면 좋겠어요 (G. 문유석 판사)
김하나의 측면돌파 (65회) 『쾌락독서』
내일이 온다고 해서 별 게 오지 않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날그날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고는 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즐거움을 느끼는 감각 자체, 행복을 충분히 향유하는 느낌 자체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감퇴되고 둔감해지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오늘 놀 일을 내일로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요(웃음). (2019. 01. 10)
인간이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쓸데없는 유희의 축적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내곤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여전히 동굴 생활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 쾌락은 우리를 단조로운 동굴에서 끌어내어 새로운 모험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쾌락의 카탈로그를 늘리고 늘리며 세계를 풍성하게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상상력도 재미도 없는 성공충들의 권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엔 즐기는 자들이 이길 것이다.
문유석 판사의 책 『쾌락독서』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문유석 판사 편>
오늘은 ‘성공한 책덕후’ 한 분을 모셨습니다. ‘책을 가지고 노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이야기하는 책 『쾌락독서』 를 쓰셨는데요. ‘책으로 노는 방법의 끝판왕은 직접 책을 쓰는 것’이라고 말하는 분입니다. 사실은 글 쓰는 판사님으로 더 유명한 분이죠. 『판사유감』 , 『개인주의자 선언』 , 『미스 함무라비』 를 쓰신 문유석 판사님 모셨습니다.
김하나 : 저희가 팟캐스트에서 늘 ‘책은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리고 판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재밌어서 책을 읽다 보면 여러 가지 부산물이 따라올 수 있죠. 교양이 높아질 수도 있고 상식이 넓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들은 부산물이라는 거잖아요. 너무 마음에 들어요!
문유석 : 고맙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렇게 이해해 주셔서(웃음).
김하나 : 어렸을 때부터 책벌레이셨잖아요. 그게 누구의 영향을 받은 건가요?
문유석 : 어머니가 책을 좋아하셨고요. 그래서 집에 어른들 책이 꽤 있기는 했던 것 같아요. 어릴 때 자연스럽게 집 여기저기에 책이 굴러다니고 있으면, 물론 엄청나게 많은 건 아니지만, 그것만 해도 분명히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호기심이 많으니까요. 저희 집에 있던 책 중에 르네, 루소, 앵그르 등의 화집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주로 야한 그림을 봤던 기억이 있어요(웃음). 그래서 오르세 미술관에 갔을 때 아는 그림이 많더라고요(웃음). 집에 책이 많으면 이렇게 부산물로 알게 되는 것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불순한 의도로 출발했지만 아는 게 생기더라고요(웃음).
김하나 : 저도 너무 와 닿았어요(웃음). 저희 집에도 삼성판 문고 전집이 있었는데 『아라비안 나이트』 를 열심히 봤거든요.
문유석 : 아, 장난 아니죠(웃음).
김하나 : 장난 아니더라고요, 진짜. 밤마다 저만의 「천일야화」가 펼쳐지면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곤 했었는데요(웃음). 그 부분이 이 책에도 정확하게 나와 있어서, 너무 반가웠습니다(웃음).
문유석 : 참 공감대가 일찍 형성되네요(웃음).
김하나 : 판사님은 형제가 있으신가요?
문유석 : 네, 저는 2남 1녀의 장남입니다.
김하나 : 그러면 다른 형제들도 책을 좋아해요?
문유석 :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는 좋아하는 것 같아요.
김하나 : 저희 어머니가 늘 했던 말씀이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이면 자녀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희 오빠는 별로 책에 관심이 없거든요.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는 걸 보고 ‘이건 교육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타고나는 부분이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이야기를 하고는 했어요.
문유석 : 그 말씀도 맞는 것 같아요. 분명히 사람마다 다 다른 성향들을 타고나고 그걸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요. 다만, 좋아할 가능성이 있는데 기회가 없는 건 아쉽잖아요. 그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몰라서 안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요.
김하나 : 판사님께는 두 따님이 있잖아요.
문유석 : 네.
김하나 : 혹시 몇 살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문유석 : 이제 대학교 들어갔고, 고3 올라갔어요.
김하나 : 따님들은 책을 재밌어하나요?
문유석 : 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인데 책 읽을 시간이 너무 없는 거예요. 그리고 강제로 읽어야 되는 어려운 책들이 너무 많은 거죠. 제가 그걸 보고 분개해서... 그게 이 책 집필에 큰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어요,
김하나 : 책에서 “누구 마음대로 ‘필독’이니”라고 하셨잖아요. 저도 ‘필독서’라는 말을 들으면 반감이 크게 생기거든요. 물론 어떤 리스트를 보면서 참고할 때도 많이 있지만, 그건 일종의 툴(tool)인 거지, 해내야 될 명제 같은 것은 아니잖아요.
문유석 : 그렇죠.
김하나 : 따님들이 책을 즐길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없는 걸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셨군요.
문유석 : 책에도 썼지만 저는 어릴 때 책을 보는 게 정말 너무 즐거웠어요. 가장 즐거운 여가가 책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책이 여가가 아니라 숙제더라고요. 스펙 쌓기고요.
김하나 : 아, 따님들에게요.
문유석 : 네. 그것도 굉장히 일찍부터요. 주변을 봐도 그렇고요. 그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원래 ‘해라, 해라’ 하면 너무 좋은 것도 하기 싫어지잖아요.
김하나 : 그겁니다! 저희가 늘 하는 이야기가 ‘책 좀 읽어라, 너는 책도 안 읽냐’라는 말이 책으로부터 사람들을 멀어지게 한다는 거예요.
문유석 : 맞아요. 법으로 독서를 금지하면 좋겠어요(웃음). 그러면 어떻게든 찾아서 읽지 않을까요(웃음).
김하나 : (웃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느 궁정에서 감자를 퍼뜨리기 위해서 궁정에만 감자를 심고 보초를 세웠더니 삽시간에 퍼졌다는 거예요.
문유석 : 음, 인간 심리를 굉장히 잘 아는 이야기네요.
김하나 : 그렇죠. 독서를 법으로 금지하면 더 독서가 부흥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저는 공감이 돼요(웃음).
김하나 : 독서뿐만 아니라 판사님은 기본적으로 ‘쾌락주의자’이시죠?
문유석 :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요? 인생을 즐거우려고 살지, 의무감으로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김하나 :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하긴 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쾌락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자꾸만 나쁜 짓처럼 여기거나, 나를 위에서 쳐다보는 시선 같은 걸 자꾸 상정하게 되는 것 같아요. 책을 많이 읽어야 된다는 걸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요. 다름 아닌 판사님이 ‘나는 쾌락주의자다, 나는 개인주의자다’라고 이야기하는 게 신선하게 와 닿는다는 것은,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문유석 : 슬픈 이야기인 것 같아요. 판사도 그냥 직업이잖아요. 먹고 살려고 하는 직업이고, 누구나 다 똑같죠. 인생은 한 번 사는 것이고, 본인 뜻에 따라 태어난 게 아니라 본의 아니게 태어났잖아요.
김하나 : 그렇죠. 태어나고 보니 세상에 내가 있는 거죠.
문유석 : 그러니까요. 그냥 작든 크든 뭔가 즐거움을 나름대로 마지막 날까지 누리고자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것이고, 그 즐거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 거잖아요. 즐거움이라는 것이 ‘쾌락’이고. 그런데 우리나라는 미래가 불안해서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 삶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낙오에 대한 공포. 그래서 ‘그 내일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웃음).
김하나 : 내일을 준비만 하다가 끝나는 삶이 될 수 있으니까요.
문유석 : 네. 저도 어느새 나이가 꽤 들었는데, 내일이 온다고 해서 별 게 오지 않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날그날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고는 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즐거움을 느끼는 감각 자체, 행복을 충분히 향유하는 느낌 자체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감퇴되고 둔감해지는 것 같거든요. 여행도 처음 갔을 때 서툴지만 모든 감각이 최고조에 올라 있어서 모든 게 너무 신기한데, 지금은 어디를 가도 시큰둥해요. 그러니까 오늘 놀 일을 내일로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요(웃음).
김하나 : 전작들보다 문체가 더 경쾌해진 것 같아요.
문유석 : 네, 내숭을 덜 떨게 된 거죠(웃음).
김하나 : (웃음) 솔직한 이야기들도 많이 담겨있고요. 책이 나오고 나서 ‘이건 덜어낼 걸 그랬나?’ 생각하셨던 부분이 있어요?
문유석 :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체질이라서요. 전혀 그런 건 없습니다.
김하나 : 그러면 맨 처음에 책을 쓰실 때도 ‘이 책을 쓰면 이후에 내가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을 깊게 하지는 않으셨어요? 그냥 저지르고 보신 거예요?
문유석 : 처음 책 낼 때는 엄청 떨었었어요. 지나고 보니까 ‘왜 그렇게까지 떨었을까’ 할 만큼. 『판사유감』 처음 쓸 때는 ‘책 내면 엄청난 사회적 지탄을 받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요즘 보기 드문 존댓말로 되어 있잖아요. 그만큼 조심스러웠는데, 그 다음에 『개인주의자 선언』 을 쓸 때는 제목부터 조금 더 세졌고, 부족하지만 감히 소설( 『미스 함무라비』 )를 쓰기도 했고, 점점 더 용기를 내게 된 것 같아요. 『쾌락독서』 에 이르러서는 정말 속내를 드러낸, 본인의 마각을 드러낸 거죠(웃음).
김하나 : 저는 『미스 함무라비』 를 읽으면서 판사님이 이런 책을 쓰신다는 게 너무 신기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신기하게 느꼈던 것들이 『쾌락독서』 를 읽으면서 많이 풀렸어요. 그 중 하나가, 순정만화를 비롯해서 만화를 그렇게 좋아하셨다는 거예요.
문유석 : 그럼요, 지금도 좋아합니다.
김하나 : 문유석 판사님이 쓰신 책에서 황미나, 신일숙 같은 만화가들이 나오고 『굿바이 미스터 블랙』 이 나오고... 엄청 꿰셨더라고요.
문유석 : 그때는 거의 매일 야자를 빼먹고 만홧가게의 순정만화 코너에 살았던 것 같아요.
김하나 : 남학생한테는 순정만화 코너의 진입장벽이 훨씬 더 크잖아요.
문유석 : 그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웃음). 진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앉아서 읽었죠.
김하나 : 만화방의 묘사도 너무 재밌었어요(웃음). 입구에는 순정만화들이 꽂혀있고, 안쪽에 들어가면 무협 스포츠 같은 것들이 있고요. 마치 인종차별 시대처럼 (남녀 학생이) 분리가 되어 있었는데, 눈치를 보면서 청일점으로 순정만화 코너에 앉아서 섭렵을 해나가셨던 거죠.
문유석 : 그렇죠.
김하나 : 그 매력은 뭐였어요?
문유석 : 우선은 다양성이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소년 만화라고 불리는 게 너무 단조로웠고요. 소재도 싸움, 스포츠로 단조로울 뿐만 아니라 감성적으로도 조금 단선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로 소설로 시작을 하니까, 아주 다양한 감수성에 익숙해져 있잖아요. 그러니까 만화라는 매체는 좋아하는데, 당시에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만화는 ‘싸워서 이겨낼 거야’, ‘저 태양을 향해 달려보지 않으련?’ 이런 정서인데(웃음), 체질적으로 그걸 못 견뎌요.
김하나 : (웃음) 그게 너무 납작하게 느껴졌군요.
문유석 : 그렇죠. 그래서 입체적이고 다양한 감수성을 가진 걸 접하고 싶었고요. 고1, 고2 때쯤 『유리가면』 을 통해서 뒤늦게 접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이런 별천지가 있었다니’ 하면서 끝도 없이 빠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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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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