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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판사나 학자들이 만드는 법이 아니다

『헌법을 쓰는 시간』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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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차이의 시작은 시민들이 헌법의 원칙을 알고 있는가, 신뢰하고 있는가,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용기를 낼 수 있는가에서 시작됩니다. (2017.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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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판사나 학자들이 만드는 법이 아니다. 바로 헌법을 따로 공부하지 않은 독자들, 바로 그분들이 헌법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한 사람이 꾸는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함께 꾸는 꿈은 이미 현실”이라고 말했다. 가장 이상적이고 정의로운 원칙이 있고, 우리들이 다른 이들과 함께 그 꿈을 꾸려고 노력한다면 그 원칙들은 어느 순간 우리들의 현실로 이뤄질 수 있다. 『헌법을 쓰는 시간』은 법을 공부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헌법의 원칙들을 설명하기 위한 안내서다.

 

『헌법을 쓰는 시간』 저자 김진한은 헌법과 헌법재판 실무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로, 헌법재판소 재직 시절 국회 날치기 표결 사건, 학교 주변 영화관 금지 사건,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 사건 등에서 위헌 판단의 새로운 시각과 해결을 제시하였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는 막연한 헌법을 생동감 넘치게 전달하여 학생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헌법에 대해 토론하고 글을 쓸 때면 언제나 가슴이 뛴다는 그에게 헌법 연구는 천직이다. 2016년 봄부터 독일 에를랑겐의 프리드리히 알렉산더대학에 방문학자로 머물면서 독일의 헌법과 민주주의를 관찰하고 있다.

 

책 말미에 ‘법을 공부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책’이라 언급하셨어요. 많은 독자들이 ‘법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일텐데, 집필하시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먼저 쓴 챕터는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 검열 금지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참고자료 없이도 자신 있게 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고를 쓴 뒤 국어 교사인 아내에게 검토를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왜 했던 이야기를 자꾸 반복하냐며, 한 페이지로 끝낼 내용이 중복된다고 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법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단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법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안을 직관에 의해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논리를 위하여 같은 쟁점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하나하나 판단하는 방식은 법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는 바보 같은 일일 수 있습니다. 제가 극복하려고 한 것은 그런 ‘바보 같은 글쓰기’ 였습니다. 법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다가가려 노력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책 제목이 『헌법을 쓰는 시간』입니다. ‘쓰는’이 어떤 의미일까요? ‘Writing’인가요, ‘Using’인가요? 혹은 두 가지 모두인가요?


제가 제목을 떠올린 것은 ‘Writing’으로서의 쓰기입니다. 헌법은 스스로 자기의 규범을 집행할 수 있는 힘이 없는 법입니다. 가장 강한 권력을 대상으로 하는 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이 그 법을 스스로의 자유를 지키는 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믿을 때, 진정으로 만들어지고 진정한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니 시민들이 헌법을 공부하고, 알고, 신뢰하는 그 과정이 헌법을 쓰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권력을 통제하는 과정이므로 주권자인 시민들이 헌법을 사용하는(Use)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요. 덧붙이자면 이제 헌법의 개정 작업이 시작될 것이므로, 헌법을 쓰는 작업이 바로 시작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참여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수십 년간 기다려온 헌법 개정의 기회를 권력 견제라는 토대 위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개헌 이야기가 오가는 시점에서 시민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내기 위해 어떤 점들을 고려하고 준비해야 할까요?


세금이나 연금을 결정하는 문제처럼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에게는 별로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헌법의 원칙을 알고 나면 시각이 달라집니다. 헌법은 세금이나 연금을 결정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헌법은 권력의 얼개를 만드는 법입니다. 그 법에 의하여 모든 권력의 상호작용이 결정됩니다. 그 균형을 놓치는 순간 권력은 시민들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순간 권력으로부터 습격을 당하기 전에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권력의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 현명합니다.

 

헌법의 논의는 추상적입니다. 그래서 어느 것이거나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기가 선호하는 정치세력, 전문가들의 의견을 따라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뒤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권력을 통제하고 싶다면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합니다. 권력의 첫 번째 단계는 바로 헌법입니다.

 

책의 4부에서는 기존의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헌법재판과 사법부에 대한 과감한 비판이 나오는데요, 그럼에도 헌법재판의 의의를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헌법재판은 매우 위험한 재판입니다. 우선, 권력을 가장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재판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권력으로부터 유혹과 협박이 오기도 합니다. 권력의 영향에 좌우된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내 놓을 수 있는 재판입니다. 또한, 헌법이 추상적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위험한 재판입니다. 헌법은 미래의 공동체 합의를 원활하게 보장하기 위해 추상적으로 규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재판은 재판을 하는 판단자들이 쉽게 자신의 주관적 의지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시민들이 헌법재판을 지켜보고, 그 논의의 내용을 알고, 적극적으로 비판할 때 헌법재판은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재판이 될 수 있습니다.

 

헌법의 6가지 원칙 중 ‘법치주의 원칙’이 가장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어떠한 이유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설명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법치주의 원칙은 항상 권력에게 이용되어 왔습니다. 시민들에게 고대 중국의 법가 사상과 같이 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헌법의 원칙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권력에게 매우 다른 효과를 부여합니다. 법치주의 원칙은 헌법과 동의어라고 할 정도로 중대한 원칙입니다. 법치주의 원칙은 권력의 전횡을 통제하는 원칙이며, 시민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원칙입니다. 법치주의 원칙을 권력자가 만들어 놓은 법을 준수하라는 의미로 이해할 경우 헌법 그 자체가 작동을 멈추게 됩니다.

 

“바람직한 헌법의 작동은 바람직한 정치의 작동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60p)”며 헌법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서 정치를 돌아보고 보살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시민들이 정치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야 할까요?

 

정치는 때로 우리들을 유혹합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잠시 반칙을 써도 된다거나, 나쁜 세력에게 승리하기 위해서 잠시 원칙을 접어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유혹에 빠진 시민들은 정치를 격투기처럼 바라봅니다. 선수들이 어떤 반칙을 하더라도 맹목적으로 우리 편이 이기기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관심은 오히려 정치를 망칩니다. 우리 정치가 여러 번 실패한 가장 핵심적인 원인입니다.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 공정,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정치라고 합니다. 정치세력들이 공정한 토론을 통해 경쟁한다면, 그래서 각자의 진실들을 다른 세력들과의 타협과 조화를 통해 실현한다면, 그 정치는 우리 모두를 승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보든 보수든, 권력은 위험한 괴물과도 같은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잘 통제되어 있을 때는 시민들이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되지만 헌법을 함부로 위반하는 정치가 시작되면 시민들을 노예로 만드는 정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올바른 원칙 위에 서 있는 관심이어야 합니다. 정치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목적은 우리들의 자유를 지키고, 권력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헌법을 작동시킬 때 달성될 수 있습니다. 헌법 작동에 대한 관심이 정치에 대한 관심의 첫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작가노트에서 “민주주의에 성공하는 나라들은 진정한 헌법의 토론으로 헌법의 여백을 채우지만, 민주주의에 실패한 나라들은 헌법의 사이비 주장으로 채운다”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헌법의 사이비 주장’이라는 부분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오늘날 어느 나라이거나 헌법의 모습은 유사합니다. 하지만 같은 헌법의 내용에 기초하여 이뤄지는 정치를 보면 모든 사람들을 삶을 파괴하는 정치를 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 민주주의와 권력분립을 성숙하게 이뤄내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헌법재판소가 작동한 이후부터 정치인들은 헌법을 자신들 주장의 중요한 논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장들 가운데 상당 부분은 헌법의 원칙에 어긋나는 거짓 주장입니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하여 헌법의 문구를 이용하고 있을 뿐, 진정 헌법에 따른 주장이 아닌 것입니다. 이들은 시민들을 속이려고 하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모든 차이의 시작은 시민들이 헌법의 원칙을 알고 있는가, 신뢰하고 있는가,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용기를 낼 수 있는가에서 시작됩니다. 시민들이 헌법의 원칙들을 알고 있다면 그런 주장에 속지 않습니다. 만약 시민들이 이를 그대로 용인한다면, 그 주장을 하는 세력이 힘이 강한 세력을 얻게 되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게 됩니다. 잘못된 헌법의 주장은 헌법의 관행으로 굳어지게 되고, 거짓 헌법 주장을 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유행이 되고 습관이 됩니다. 그런 헌법 위반의 관행들이 굳어지면 결국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정치가 이뤄지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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