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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서윤후, 황유원 “시와의 마주침”

민음사 X 빈브라더스 Dear Poe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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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게는 순간이 영원일 수 있어요. 본인이 항상 생각했던 것이 순간을 쫓아가기 때문에 시인의 순간이 시 세계를 읽는 데 힌트가 될 수 있습니다.

3월 29일, 민음사와 빈브라더스가 손을 잡고 젊은 시인들을 초청해 시 낭독을 함께하는 ‘Dear Poet’ 두 번째 행사를 열었다. 지난달 있었던 황인찬과 유계영 시인의 낭독회 바통을 이어받아 이번에는 황유원, 서윤후 시인이 함께했다. 두 명의 시인이 자신의 목소리로 각자의 시를 낭독하는 시간과 함께, 한 번도 발표한 적 없는 신작 시를 ‘카페에서의 마주침’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는 자리였다. 빈브라더스의 바리스타가 직접 내린 향긋한 커피와 미리 준비된 선물을 받아들고 입장하자 곧 행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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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읽으면 관측되는 기후

 

황유원 시인은 1982년 울산에서 태어나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첫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로 제34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서윤후 시인은 1990년 정읍에서 태어나 2009년 월간 현대시에 등단했다. 올해 첫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을 냈다.

 

약력으로는 시인의 느낌이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만난 시인은 약력보다 어려보이거나 나이가 들어 보였다. ‘관측되지 않은 기후’를 시인의 시와 대화에서 읽어내려가 보았다. 첫 번째 낭독한 시는 황유원의 「새처럼 우는 성 프란체스코를 위한 demo tape」, 서윤후의 「오픈북」이었다.

 

내리막길에서 손을 놓은 자전거의 속도
큰 날개 휘저어
춤을 추는 것처럼
다들 모여 어서
춤구경이나 하라는 것처럼
새들이 도망
갔다 도망
갔다 도망갔고
도망갔다 도망
갔으나
끝내 도망가지지 않는 잡새들
훌훌 휠휠 훨훨
(황유원, 「새처럼 우는 성 프란체스코를 위한 demo tape」 중)

 

대화를 읽으면 관측되는 기후가 있다. 소나기를 맞지 않았는데, 춥지? 하며 건네는 찻잔 속의 소용돌이, 침묵은 희미해진다. 펼쳐 놓은 표정에 네가 없어 틀린 예보, 체온에 깜박 속을 뻔한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두꺼워진다. 영영 보지 않을 책처럼, 또 만나자는 약속처럼 시작과 끝의 모든 구절은 반복된다.
(서윤후, 「오픈북」 중)

 

서효인 두 분 다 첫 시집에서 고른 시일 텐데, 이 시를 처음 낭독하는 시로 고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황유원 제가 새를 좋아하는데, 이맘때 새를 보러 많이 나가거든요. 새들이 짝짓기 철이 되면 요란하게 울어요. 3년 전 봄에 새들의 소리를 듣고 이 시를 썼던 것 같아요. 그때도 봄이고 해서 생각이 나 골라 봤습니다.

 

서윤후 이 공간과는 무관할 수 있지만 이 시를 신도림 빈브라더스에서 썼습니다. 시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제목을 고친 작품이기도 했고요. 물론 이 시는 헤어지는 의미가 더 크지만, 지금 여기의 만남을 생각하면서 가까워지잔 의미도 있어서 골랐습니다.

 

서효인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죠. 오늘 주제는 ‘까페에서의 마주침’입니다. 공간과 잘 어울리는 주제인데, 연관해서 최근에 겪은 인상 깊은 마주침이 있었나요? 꼭 카페나 최근이 아니더라도요.

 

서윤후 저는 카페를 좋아해서 다양한 곳을 다니는데, 제일 좋아하는 카페 중 하나가 이수역에 있는 아트나인이에요. 전 여자친구가 자주 가던 곳이었고 카페를 알게 된 것도 그 친구 덕분이었는데 얼마 전에 헤어졌어요. 얼마 전에 시집을 내고 대담을 하는데 거기에서 하게 된 거죠. 여자친구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았는데…… 별로 안 나더라고요(웃음) 마주침이 아니라 헤어짐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렇게 공간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 같아요.

 

황유원 1월 말인가? 아침부터 눈이 오더라고요. 카페에 잘 안 가는데 ‘아, 이 눈을 보고 느낌을 받고 싶다’ 해서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 갔어요. 창가에 헐벗은 은행나무를 보는데 말벌집이 거의 완벽한 형태로 있는 거예요. 지금도 바람에 따라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생각나요. 그 자리에서 쓴 시가 오늘 발표할 시입니다. 그게 최근에 일어난 마주침이었습니다.

 

서효인 황유원 시인은 새, 비, 개미 같은 일상적이고 작은,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두고 스케일이 큰 시를 씁니다. 아까도 말한 벌집 같은 것도 어떻게 시로 승화했는지 궁금해지네요. 질문 하나씩 더 해보겠습니다. 두 분 다 첫 시집을 냈어요. 첫 시집에 대한 소회가 남다를 텐데요.

 

황유원 시집에 옛날에 쓴 시도 있고 최근에 낸 것도 있는데 옛날에 쓴 시 중에는 꼴도 보기 싫은 게 있어요. 그런 마음 반이 있고요, 반쯤 끝나고 반쯤 안 끝난 느낌이랄까.

 

서연후 스무 살 때 등단을 했는데, 학교에서 친구들의 반응은 ‘그럼 김경주, 황병승 시인 만나 봤어?’ 이런 거였어요. 그때는 등단이라는 게 그냥 시를 쓰고 시집을 낼 수 있는 시인이 된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더 많은 걸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 책임감이 생긴 건데. 첫 시집을 오래 기다렸다고 생각하면서도 저에게는 너무 이르게 온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군대에서 행군할 때 저는 출판사별로 시집이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민음사에서 나오면 이런 색으로 표지를 하고 책을 펴면 이렇게 펼쳐지겠다, 상상하다 보면 행군이 다 끝나 있었어요. 내고 싶던 출판사에서 첫 시집을 내게 되어서 기쁘고. 지금은 기쁜 마음 슬픈 마음, 만감이 교차합니다.

 

 

기타의 목질이 허공에서 축축히 젖어가는 자리

 

두 번째 낭독으로는 서연후의 「독거 청년」, 황유원의 「전국에 비」로 두 시인 모두 비가 연상되는 시를 골랐다.

 

나는 집에서도 가끔 나를 잃어버립니다

 

단 하나의 실핏줄로 터진 얼굴들을 생각하며 창백한 창문을 봅니다 실내에서 유일하게 한 일은 웅크림이라는 도형을 발명한 것뿐입니다.
(서연후, 「독거청년」 중)

 

어둔 밤, 창 밖으로 들려 오는 자욱한 빗소리 속에서
나는 기타를 치고
기타는 허공에 나무 한 그루 심어놓지만
기타의 목질(木質)이 허공에서 축축히 젖어가는 자리
(황유원, 「전국에 비」 중)

 

이어 이 시를 고른 이유와 시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날씨, 시집 발간 전 에피소드 등을 들어보았다.

 

서윤후 자취한 지 팔 년이 되어갑니다. 이 시를 쓸 때는 제 모습을 그대로 쓰자는 게 제일 큰 취지였고, 이 시를 쓰고 제가 좋아하는 시인들에게 칭찬을 받았어요. 개인적으로 너무 감격스러웠고 이 시가 남다르다고 생각해서 가져왔습니다.

 

서효인 누가 봐도 자취생의 시라는 게 느껴지죠. 저도 좋았습니다.

 

황유원 오늘 비가 온다고 해서 비 오는 시를 골랐습니다. 가슴이 많이 아픈 시인데, 옛날 여자친구에게 작곡도 해 주고 기타를 쳐 주기도 하고 그랬어요. 치다가 틀리면 저는 마음에 걸리는데, 그 분은 그런 게 전혀 없고 기타 치는 것 자체가 너무 평화롭고 좋대요. 이게 전혀 중요한 게 아니구나, 하고 충격을 받았어요. 한참 뒤에 혼자서 기타를 치다 생각이 나서 한달음에 썼던 시고….. 지금 읽어도 슬프네요.

 

서효인 구여친 특집 낭독회입니다(웃음) 시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해볼게요. 황유원 시인이 김수영 문학상을 받을 때 제가 연락했는데, 나중에 시를 보고 너무 시가 길어서 놀랐습니다. 읽을 때는 시가 에너지가 있고 재밌어서 몰랐는데 물리적으로 시집을 묶으려고 보니까 두께가 상당하더라고요. 기획적으로 길이에 대한 생각이 따로 있었나요?

 

황유원 염두에 둔 건 있었어요. 민음사 시집 시리즈 첫 번째가 고은 시집이었는데 그거보다 두껍게 내고 싶었어요. 근데 실패했죠. 턱없이 모자라는 걸 보고 좌절했어요.

 

서효인 서연후 씨 시집은 동료 시인들이 상당히 기다려왔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더욱 기대되는 시인이기도 한데요. 제목에서도 ‘동생’이 나오는데 언제까지 동생으로 머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 시집에서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서연후 시집의 제목을 정해주신 건 김소연 시인입니다. 제목을 잘 지어주신다고 소문이 나서 10개를 뽑아갔는데 10개 다 별로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나의 연못」이라는 시 구절 중 하나인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을 제안해 주셨는데 마치 제 이름을 불러준 느낌이었어요.

 

저는 이 ‘동생’을 여기에서 끝내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어려서 등단했기 때문에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 가장 가깝게 지나온 이야기라고 생각을 해서 썼던 거고 이제는 더 이상 어리지 않기 때문에 성장해서 어른이 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서효인 지금 스물일곱인가요? 어리지 않은 나이죠. 지금은 백세 시대가 되어서 청년 기준이 많이 올라간지라 한동안은 젊은 시인 얘기를 꽤 오래 듣게 될 텐데요, 서윤후 시인의 성장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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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순간

 

빗소리는 무엇 하나 소외시키지 않았으므로
비로소 간극 없이 이어진 세계 속에서
내리는 비가 때리는 온갖 물질들이 내는 소릴 듣고 있었다
(황유원, 「인식의 힘(Notes on blindness)」 중)

 

황유원 <Notes on blindness>라고 멋진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비 오는 포장마차에서 친구가 이 다큐멘터리를 소개해 줬어요. 시각장애인 신학자 존 헐이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고 나서 카세트테이프에 자신의 일기를 녹음해요. 말 그대로 인식에 관한 내용인데, 다큐멘터리를 보고 바로 시를 썼어요. 제 설명보다 훨씬 좋은 작품이니 한 번 보기를 추천합니다.

 

서효인 황유원 시를 보면 시 자체가 거대한 습지 같아요. 시에 음악이라든지 하는 여러 문화적 요소들이 많은데, 모든 것을 다 빨아들인 후에 다 습기로 내뿜는 느낌입니다. 시에 나온 다큐멘터리나 음악 같은 문화적 요소를 찾아보는 것도 시를 읽는 좋은 방법이지 싶습니다.

 

내일 일기예보도 잘 맞히지 못하는 내가
어제의 날씨도 떠올리지 못한다
누가 나를 지울 때마다
기억을 도난당하고 허기가 진다
(서윤후, 「포기」 중)

 

서윤후 제임스 살터의 『포기』라는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쓴 시예요. 살아가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게 많아지는 나이를 겪어요.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만 목록을 세웠는데 이제는 하면 안 되는 것들이 많아져요. 선택을 해야 될 때가 많은데 대체로 하지 않는 방향을 택하는 것 같아요.

 

서효인 황유원 시인 전공이 흥미롭습니다. 인도철학을 공부하고 계시는데 소개를 해주시죠. 시인 대 시인으로는 묻기 부끄러운 질문이지만 이번 기회에 여쭤봅니다. 공부하고 있는 내용이 시에 영향을 미치나요?

 

황유원 영향을 미치죠. 「인식의 힘」에도 보면 반복되는 구절이 변형되어서 나와요. 지루하게 보이겠지만 산스크리트 어 구절이 기본형이 변화되면서 변주되는 식으로 써지거든요. 계속 읽다 보면 이런 시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서효인 존 헐에서부터 시작해서 산스크리트어라고 하니까 굉장히 달리 보이네요. 서윤후 시인은 시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소가 있을까요?

 

서윤후 저는 아이돌 f(x)를 좋아해요. 에프엑스의 독보적인 컨셉과 자기만의 길을 걷는 느낌, 외국 사진작가들에게서 보이는 독보적인 색깔, 이런 것들이 자주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서효인 요새 본인들이 느낀 시적 순간은 무엇인가요?

 

황유원 고지라 1편 오프닝에서 고지라 소리가 사운드 이펙트로 나오는데, 지금 만드는 사운드 이펙트보다는 뒤떨어지지만 훨씬 독창적인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어요. 나중에 찾아보니 장갑에 송진을 묻혀 현악기에 긁는 소리, 문을 여닫는 소리, 코끼리 소리 등을 섞어서 만든 소리라고 하더라고요. 소리가 착각이잖아요. 우리가 고지라 소리라고 듣는데 전혀 고지라 소리가 아닌 것들로 고지라 소리가 만들어지는 거죠. 그거에 대해서 시를 썼어요. 그게 최근에 느낀 시적 순간입니다.

 

서효인 본인이 항상 생각하는 것을 순간에서 쫓아 나타나기 때문에 시인에게는 순간이 영원일 수 있어요. 시에서 소리, 음악 등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황유원의 시 세계를 읽는 데 힌트가 될 것 같습니다.

 

서윤후 외할머니가 제가 시 쓰는 걸 좋아하시고 읽으려고 노력하세요. 명절 외갓집에 갔을 때 외할머니 노트들 사이에 제가 교내문학상 받은 내용이 실린 신문이 밑줄이 그어진 채로 잘 보관이 되어 있는 걸 발견했어요. 그렇게 간직하고 있는 것들을 발견할 때가 시적 순간이 아닌가 싶어요.

 

이어 두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신청해 직접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다. 낭독을 신청한 독자들에게는 서윤후 시인이 여행에서 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든 엽서를 선물로 받았다.

 

 

까페에서의 마주침, 시와 마주치는 순간

 

두 시인의 신작시를 발표하기 전 ‘까페에서의 마주침’을 주제로 다른 시인의 시를 골라 낭독하기도 했다. 황유원 시인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플라멩코 삽화들」, 서연후 시인은 김행숙의 「유리창에의 매혹」을 꼽았다. 마지막 인사와 함께 신작시가 발표되었고 모두 따뜻한 박수로 시에 화답했다.

 

신작 시 두 편을 포함해 총 열네 편의 시를 나눈 자리였다. 시가 사어(死語)가 되어가는 이 때, 시인의 육성으로 공간에 풀어진 시는 살아있었다. 시와 마주치는 순간을 독자들도 같이 경험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민음사의 ‘Dear Poet’ 행사는 매달 마지막 화요일에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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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서윤후 저 | 민음사
2009년, 스무 살의 나이로 데뷔한 서윤후 시인이 등단 후 8년 만에 첫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을 출간했다. 시인이 시집의 주된 화자로 호출하는 ‘소년’은 가족 구성원 중 가장 깨끗한 백지상태에서 시작하여, ‘소년성’이 더렵혀지는 과정을 최후까지 남아 비교적 소상히 업데이트할 수 있는 ‘동생’으로서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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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최대화 황유원 저 | 민음사
제34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가 출간되었다.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데뷔하여 남다른 사유의 깊이와 언어적 발랄함으로 주목을 받아 온 황유원 시인의 첫 시집이다. 이 시집은 근래 가장 첫 시집다운 첫 시집이며 가장 의미심장한 시집이고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시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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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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