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정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구분은 가능할까”

미술 평론가 반이정 『예술 판독기』 출간 기념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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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형질이 많이 변했거든요. 미술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게 요즘 미술의 주류예요. 이렇게 형질이 아주 많이 바뀐 미술을 형질이 아주 많이 바뀐 평론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죠.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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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7일 저녁, 합정에 있는 빨간책방에서 미술 평론가 반이정과 함께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예술 판독기』는 그가 영화 잡지 <씨네21>에 지난 5년간 연재한 글을 묶은 책이다. 영화를 다루는 대중 잡지에 예술에 관한 비평이 연재됐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만큼 그의 글이 예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읽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이정 평론가는 예전부터 예술과 비예술을 구분하는 기준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은 이미 규정되고 판독된 것이다.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평가하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 제도권 하의 아주 많은 예술이 있는 반면, 예술의 범주 안에 들지는 않지만 예술에 준하는 감동을 주는 것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술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이번 책 『예술 판독기』의 표지를 보면 예술 작품들과 일반적인 상품 이미지들이 뒤섞여 있다. 반이정 평론가는 이것이 이 책의 방향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발견된 오브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컵은 음료를 담는 용기죠. 그것을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이 발견된 사물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뒤샹의 <Fountain>이죠. 이 작품은 남자 소변기를 눕혀서 분수처럼 만든 것입니다. 원래의 용도를 변경해서 이것을 감상된 사물로 만든 것이죠.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을 용도를 바꿔서 다시 제시하는 것은 예술에 있어서 일종의 공식입니다. 아주 후진 아주 많은 예술, 다시 말해 예술이라는 규정에 안주해서 예술임을 주장하는 것들과, 예술로 간주되지는 않는데 기존의 노선을 살짝 비껴 나가서 감동을 주는 사례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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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예술 아닌 것 사이

 

이날 반이정 평론가는 가급적이면 최근의 상황을 토대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한겨레21>에서 소설가 김영하가 한 말을 예로 들었다. "소설가 김영하는 ‘무엇이 문학인가’를 둘러싼 정의도 새롭게 접근하자고 했다. 종이에 쓰여 책으로 읽고 묵독하는 문학은 구텐베르크 이후 몇 백 년의 짧은 시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학의 범주를 조금 더 넓혀서 본다면 구텐베르크 이후의 문학 그 너머에 무언가 있다는 것인데 미술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이어서 그는 작년에 시행된 ‘SeMA-하나 평론상’을 심사했던 이야기도 꺼냈다. 그는 심사평을 통해, 형질이 크게 변한 오늘의 미술에 평론이 여전히 낡은 독해법으로 대응하려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평론의 위기라는 주기적인 쟁점보다, 평론이 직면한 형질변화라는 과제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술의 형질이 많이 변했거든요. 미술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게 요즘 미술의 주류예요. 이렇게 형질이 아주 많이 바뀐 미술을 형질이 아주 많이 바뀐 평론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죠.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미술관의 형질도 많이 변했죠. 지드래곤을 주제로 전시도 하잖아요. 이건 비공개된 사실인데 제가 그 당시 자문위원이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결과만 봤을 때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욕을 먹을만한 결과물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이 낫다고 봐요.”

 

예술은 주로 어떠한 규정 밖으로 초월해서 나갔을 때 우리에게 감동을 주곤 한다. 반이정 평론가는 알랭 로베르라는 한 프랑스인이 맨손으로 빌딩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 BMX 자전거로 화려한 묘기를 부리는 사람의 영상, 멜버른 지하철공사의 ‘바보같이 죽는 방법’이라는 캠페인 등 예술로 간주되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 예술에 준하는 감동을 주는 사례들을 제시했다. 그는 이러한 예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술임 직한 것들만으로 감상의 안목을 제한했을 때에는 진정한 예술적 감동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제도권 미술은 아니지만 그것에 버금가거나 그것을 능가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었다.

 

“마르셀 뒤샹의 <Fountain>이 나온 것이 벌써 100년 전입니다. 그때 그의 행위 역시 엄밀히 말하면 이런 태도였던 것이죠. 하지만 그것이 미술사라는 제도권에 기록되어 우리가 지금 다시 미술로 보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 경계들이 무너진 지 굉장히 오래 됐어요. 미술이 아닌 미술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관계미학이라는 것이 있어요. 일반적으로 예술가라고 하면 뛰어난 개인을 떠올리죠. 미술 작품을 그 사람의 타고난 자질이나 꾸준한 노력의 결과물로 생각하는데, 관계미학에서는 작가가 거의 사라져 있고 때로는 작가가 없거나 결과물도 없어요. 결과물이 있더라도 금방 사라지죠.”

 

그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기도 했다. 몇 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학생들이 학교가 있는 신의문역 근처의 육교를 하룻밤 사이에 앵두색으로 페인트칠한 일이 있었다. 이용하는 사람도 몇 명 없었던 육교를 빨갛게 색칠함으로써, 여러 사람들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재탄생 시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동대문 구청에서는 육교를 원상 복구하지 않으면 고발하겠다고 했고, 결국 육교는 원래대로 돌아갔다.

 

“젊은 사람들의 작품일수록 이렇게 관계성미학의 작품들이 많아요. 보통 미술관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미술 작품을 감상하다 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공식인데, 여기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제도권의 중견 미술가들도 그런 점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고요. 빅 뮤니츠라는 브라질 사진작가가 있습니다. 브라질에는 카타도르(catador)라고 불리는, 재활용 쓰레기를 주워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사람이 그 카타도르들을 동원해서 작품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지금 보시는 사진은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라는 작품을 카타도르의 도움을 받아서 쓰레기를 분류하고 창고 바닥에 늘어놓아서 재현한 거예요. 그리고 사진으로 찍은 것입니다. 이 과정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나왔어요. 일시적인 작업이고, 자기 혼자 만드는 게 아닌 작업이죠. 이런 작품은 제도권 미술가들의 고전적 제작방식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결과물입니다.”

 

이 밖에도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안규철 개인전 중 천 명의 사람들이 필사에 참여해 관객들이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나가는 <1,000명의 책>의 사례를 들기도 했다. 이러한 예들은 미술작품이 뛰어난 한 사람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공식을 버리게 하고, 실은 그 결과물마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이정 평론가는 “이런 시도가 높게 평가 받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색다른 시도이다. 예전의 미술에서 받는 감동과 질감이 다른 감동을 받는다는 점에서, 비평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루이 16세가 참수 당하는 장면, 단군상의 목을 자른 개신교도들, 메두사의 목을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 동상, IS의 인질 참수 장면 등을 나란히 보여줬다. 물론 이 중에서 언론의 보도사진이나, 인질을 참수하는 영상은 예술 비평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행위를 한 주체의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비슷하다. 반이정 평론가는 이에 대해 “시각예술을 평론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 모든 게 실은 거의 대등한 선에서 논평할 수 있는 후보군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예술 판독기』를 쓴 근거 역시 여기에 있다. 어떤 동일한 맥락의 대상을 보고 결국 그것들을 관통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 담겨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에 쓰나미가 왔을 당시의 언론 보도사진과 화가 호쿠사이가 일본의 쓰나미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비교하기도 했다.

 

“저는 이런 보도사진도 예술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이것이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죠. 물론 이 둘이 절대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맥락 면에서는 거의 같은 것일 수 있겠죠. 액자에 담겨 있느냐, 컴퓨터의 모니터로 보느냐의 차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술작품이 시각적 쾌감을 주는 역사적 결과물이듯이 보도자료 역시 역사적 결과물입니다. 우리는 보도사진을 보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둘의 목적 역시 이러한 사실이 있었다는 기록을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죠. 저처럼 냉정한 해석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칠 할 이상은 비슷한 현상을 비슷한 용도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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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어두운 이면

 

반이정 평론가는 제도권 미술품을 비평하면서 느끼는 미술의 이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높게 평가 받는 예술의 이면에 있는 인정하기 싫은 부분들에 자신 역시 가담하고 있다는 점에서 느끼는 일종의 고백이 이 책 안에도 담겨 있다.

 

“이것은 제 책의 맨 마지막 장에 있는 것인데요.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전문가의 일인데, 작품에 미모가 가산점으로 작용할 때가 있습니다. 트레이시 에민이라는 영국의 한 예술가가 있는데요. 굉장히 주목을 많이 받는 작가입니다. 미모도 굉장히 뛰어나거든요. 이 사람이 다루는 작품들 중에는 자신의 선정적인 사생활이 담겨있는 것들이 많이 있어요. 지금 보시는 것은 속옷, 쓰레기, 술병, 콘돔 등이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침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나의 침대>라는 작품입니다. 터너상에 노미네이트됐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때 가장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작품이었죠. 재작년에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는데, 이게 42억에 팔렸어요. 동시대미술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고 했을 때, 과연 이래도 되는가 생각하게 만들죠. 그런데 이래도 되는 게 동시대미술입니다. 작품이 확실한 몇 가지 포인트를 갖고 있으면 점수를 많이 얻거든요. 트레이시 에민이 그 대표적 케이스라고 봐요. 일단 미모로 가산점을 얻고 들어가고, 자신의 사생활을 노출해서 호객행위를 한 부분이 많다고 보거든요.”

 

우리나라에서 꽤 크게 성공한 문화상품이나 예술품이 실제로는 외국에서 몇 년 전, 몇십 년 전에 유행했던 것들을 가져온 경우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대표적으로 태권브이의 경우가 그렇다. 반이정 평론가는 “외국에서 꽤 성공한 문화적 아이디어를 자국에 가져와서 성공하는 일들이 그 나라의 문화적 자양은 약간 키울지는 몰라도 그에 비해 그 사람이 갖게 되는 문화적 헤게모니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많아지는 것에 대한 평론가로서의 불편함이 있다”고 전했다.

 

“2014년부터 화단에서 큰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일이 있어요. 바로 단색화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나라식 모노크롬화라고 말하면서 지금 가격이 예전에 거래됐던 것에 비해 10배 이상 뛰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윤리적인 문제가 분명히 있습니다. 실은 단색화가 서구에서 비롯된 것이거든요. 면을 한 두 가지 톤으로 균질화시키는 미술 운동은 1950, 60년대 서구에서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단색화가 실은 우리나라의 정서를 담은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논고를 제시한 게 6.25 전쟁 이후 정신적 트라우마를 그리려다 보니까 빈 면을 그리게 됐다는 것이었죠. 최근 단색화를 작전으로 만들어서 기획하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했어요. 이 작업이 꽤 오랫동안 안료를 먹여서 하는 거라서 우러나오는 맛이 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의 발효음식과 일맥상통한다는 거예요. 또 하나는 ‘탕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말도 있었고 유교의 성실함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었어요. 1970년대 이후 40년만에 그 당시 헤게모니를 다시 가져와서 누리는 것이 저희 입장에서는 불편한 것이죠. 아무리 봐도 독창적, 미학적 발견이라고 할 수 없거든요. 기만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몇 가지 사례들을 이야기한 후, 그는 이어서 지금 예술이 얼마나 많이 바뀌고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나갔다. 반이정 평론가는 최근 일본 모리미술관에서 열렸던 무라카미 다카시의 개인전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작품은 높이 3미터, 가로 길이 100미터로 전세계에서 가장 큰 작품 중 하나일 거라고 합니다. 이 작품을 위해서 일본의 미술대학 학생들이 이백 명 넘게 모집됐다고 해요. 어떤 작가의 초대형 작품을 어시스턴트들과 함께 만들고, 작가는 지휘 통제하는 이런 모습이 화단에서는 허물이 아니에요. 초대형 작가들의 미술은 그 정도의 감각자극에 노출돼 있는 사람들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죠. 데미안 허스트도 자기는 작품에 손을 안 대죠. 어떤 인터뷰에서 자기는 옷에 물감 묻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 사람에게도 여러 전문가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지시해서 작품을 만들고, 자신은 프레스 릴리스 때 등장해서 사진 정도 찍는 거죠.”

 

동시대미술은 그 이름이 나타내고 있는 의미가 무색하게 동시대인에게 외면 받는 경우가 많다. 그는 현대인들이 느끼는 동시대미술에 대한 난해함이 대중미술 교양서나 강연 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반적 대중미술 교양서나 강연은 대개 독자나 수강자들이 좋아하는 미술만을 다루고 있고, 이러한 방식만으로 미술에 대한 교양을 쌓게 되면 동시대미술이 열리고 있는 진짜 현장에서 길을 완전히 잃게 된다는 것이다. 어렵고 불편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인이 동시대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반이정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저는 이것에 대해 타협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까 이야기하기도 했던 관계미학이라고 보거든요. 여러 사람들의 협업으로 만들어내는 것. 이것은 남다른 감동을 주는 것 같아요. 또 다른 하나는, 아주 많은 진부한 예술과 예술은 아닌데 남다른 감동을 주는 비예술적 현상들을 대등하게 바라보는 태도만 갖추면 동시대미술을 유연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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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판독기 반이정 저 | 미메시스
미술 평론가 반이정이 5년 동안 동명의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엮은 『예술 판독기』가 미메시스에서 출간되었다. 가장 대중 친화적인 미술계 인물이라 할 수 있는 그는 『예술 판독기』를 통해 예술 문외한들에게 미술 작품을 보지 않고도 예술을 즐기는 입체적인 유희를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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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지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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