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백수는 무슨 글을 썼을까?

『18세기 조선의 백수지성탐사』 출간기념 저자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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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는 위기일 수도 있지만 기회, 축복일 수도 있는 시간입니다. 이 자유로운 시간 동안 마음의 소리를 들으면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깨달음을 18세기 조선의 백수지성 네 분이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절 이 네 분이 했던 고민을 여러분도 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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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0일, 서울 중구에 있는 남산강학원에서 『18세기 조선의 백수지성탐사』 출간 기념 저자 강연회가 열렸다. 『18세기 조선의 백수지성탐사』는 농암 김창협, 성호 이익, 혜환 이용휴, 담헌 홍대용의 삶과 글쓰기를 들여다본 책으로 2016년 1월에 출간되었다. 독자들은 남산강학원의 이곳저곳을 둘러본 뒤, 함께 점심을 먹고 세미나실에 모여 길진숙 저자의 강연을 들었다. 처음에는 4인을 백수라 하기 어려웠다며 말문을 연 저자는 연구를 통해 그들의 빛나는 업적이 백수 시절이었음에 주목하여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백수지성

 

4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백수 지성이라는 단어에 관해 설명했다.

 

“사실 저는 백수일 때 제일 고민했던 게 ‘남들한테 나를 뭐라고 소개할까’ 였어요. 여러분도 방 안에 가만히 있으면 ‘세상에 날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를 당연히 생각할 거에요. 제가 백수 지성이라는 말을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게 되면 ‘나는 무슨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고, 그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지성의 힘을 발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백수일수록 더욱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절실하게 깨달아야 무엇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거든요. 저는 백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이어 4인을 백수라 생각한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조선 전기에는 대결의식으로 인해 현실 정치를 뒤로하고 은둔생활을 했던 선비들을 은둔 지사, 포의의 선비, 은사로 불렀다. 그러나 조선 후기 선비인 4인은 자유를 위해 자의로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저자는 4인 중 먼저 농암 김창협을 소개했다.

 

 

농암 김창협: ”과거를 위한 공부가 아닌 나를 위한 공부를 해라”

 

김창협은 그의 아버지 김수항이 영의정을 지내기도 한 명문 집안의 자제였다. 서인의 대표주자였던 김수항은 숙종 때에 축출되어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게 된다. 이때, 아들에게 ‘절대 중앙관직에 나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만약 관직을 하고 싶다면 입에 풀칠할 수 있을 정도의 녹봉을 받는 일을 하되, 되도록 관직에 나가지 않는 것이 집안과 자신을 보호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후 김창협은 죽을 때까지 사직서를 내며 중앙관직에 나가지 않고 제자를 기르고 글 쓰는 일에 힘썼다고 한다.

 

“김창협은 제자들을 기르면서 과거 공부에 대한 회의를 느꼈습니다. 제자들에게 자기연마를 위한 공부를 하라고 일러도 모두 과거를 위해서 공부했기 때문이었어요. 당대 『사서삼경』의 띄어읽기도 못 하면서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고 해요. 이런 사람들이 관직에 나가면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김창협은 남들이 한 말을 그대로 표절하고 시험만을 위해 공부해서 관직에 나간 사람들은 목각인형과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을 했어요. 그래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과거를 위한 공부를 하지 말고 너를 위한 공부를 하여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김창협이 백수시절 새롭게 과거 제도를 바라봤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창협은 글쓰기의 독창성을 중요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나라의 시가 널리 읽혔던 당시, 조선의 언어와 성음은 당나라의 것과 다르므로 흉내 내기가 아닌 우리의 언어로 독창적인 글을 쓸 것을 주장했다.

“저는 농암 김창협이 글쓰기와 사유에 있어서 뭔가 독창적이고 새로운 길의 단서를 열어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자유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시선을 확보할 여유가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저는 그가 관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이 가능성을 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메모부터 비평까지 있는 그의 글에는 사유를 깨는 틈이 있습니다. 그게 농암의 의미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지식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었구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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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 ”농민과 나의 차이는 없다”

 

남인의 대표주자인 성호 이익은 어렸을 때부터 병약하여 밖에서 스승을 찾지 못해 집안에서 공부하며 둘째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형은 아버지가 유배지에서 유명을 달리하자 노론과 숙종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린다. 이 때문에 고문을 당해 결국 형이 사망하자 이익은 과거를 보지 않고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기로 결심한다.

 

저는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이라는 책을 읽고, 성호의 고민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그는 책을 읽는 선비인 자신과 농민들, 상인들을 비교했을 때 무슨 차이가 있는가를 고민했어요. 양반가에 태어나서 토지를 재산으로 받아 놀고먹을 수 있지만, 그의 입에 들어가는 곡식은 농민들이 만듭니다. ‘나는 농민들과 별 차이가 없는데 왜 농민이 만드는 곡식은 당연하게 생각하는가’를 사유하며 자신을 독서만 하는 무위도식하는 자, 좀벌레처럼 생각하기도 했어요. 실제 농사를 지어보려 애썼지만 태생이 병약하고 농사경험이 없어 잘 안 되었다고 해요. 농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성호 이익은 그들의 농사에 대해 기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무위도식하는 존재로 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글을 남겼다. 『성호사설』에는 검소하게 살기 위해 적게 먹을 것을 강조하는 「식소」라는 글이 있다. 조선사람들이 너무 많이 먹는다고 생각한 이익은 매번 밥을 한 움씩 덜어내자고 주장했다.

 

“이익은 정치에 나가지 않았으나 정치적인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정치의 자리는 위태로워서 나가지 않을지언정 정치개혁, 행정개혁, 사회개혁에 대한 글은 죽을 때까지 썼어요. 실천되지 않았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았지만 영업전과 균전제 등 사회 개혁안을 포기하지 않고 썼어요.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죠. 저는 그가 나름의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혜환 이용휴: ”진짜 나를 만나라”

 

문집이 비교적 늦게 발굴되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혜환 이용휴는 성호 이익의 대표적인 제자였다. 학문에 열중했던 다른 제자들과 달리 문장에 대한 관심이 컸던 그는 독창적인 글쓰기에 대해 강조했다.

 

“혜환 이용휴는 글을 쓸 때 자신의 견해를 쓸 것을 강조했어요. 남의 글을 따라 하거나 흉내 내는 것은 죽은 글이자 진짜 내가 사라진 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의 글 중에 ‘무지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어찌하여 자기 마음 하나 장악하지 못하는가’라는 내용이 있어요. 사람들이 감정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조차 꼭두각시처럼 타인을 따라 한다는 거예요. 마치 내가 주체인 것처럼 사는데 알고 보니 흉내 내며 산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어요. 그리고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중이 하는 것이 꼭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진짜 나를 만날 것을 강조했어요”

 

출중한 문장가였던 이용휴는 성리학, 거대담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살이에 대한 글을 주로 썼다. 글 쓰는 이의 소명은 평범하지만 특별한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라고 여긴 그는 글쓰기를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다. 또한 그의 글은 짧고 형식적인 틀을 깨는 파격이 있었다. 남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그의 글에도 정치적인 성향이 있었다.

 

이용휴 역시 글을 쓰는데 꽤 정치적이었습니다. 당시 남인은 과거에 합격해도 중앙관직으로 나가지 못하고, 지방 수령으로 나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때 혜환이 친구들에게 이별의 글을 써줬어요. 수령으로 가는 현재를 비관하지 말고 봉급은 적지만 백성과 직접 만나는 아주 중요한 자리라는 것을 강조했어요. 백성의 현실을 보고 그들의 삶을 살려주는 정치를 할 것, 그 지역, 그 백성에게 맞는 정치를 할 것을 일러주었어요. 혜환도 일상 속 자신의 자리에 맞는 정치를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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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헌 홍대용: ”우주에 중심은 없다”

 

담헌 홍대용은 아버지와 조부 모두 관직에서 물러난 적이 없었음에도 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백수가 된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여 그 결과 혼천의 등의 천체기구를 제작하고 지동설, 지전설을 주장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담헌은 우주를 관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다시 봐요. 세상의 경계로 여겨졌던 중화와 오랑캐, 문명과 야만 등의 이원적인 경계를 깨뜨렸습니다. 『의산문답』이라는 글을 보면 지동설, 지전설과 같은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어요. 홍대용은 우주에 중심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우주의 중심이 깨지는 순간 천하의, 세상의 중심도 없는 거죠.”

 

청나라를 다녀와 있는 그대로 보고한 최초의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담헌은 청나라에 가기 위해서 당시 양반들과 달리 중국어를 공부했다. 18세기 청나라는 문명이 번화한 나라였음에도 당시 대부분은 오랑캐로 여기고 무찔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담헌은 청나라의 번성함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어 홍대용의 여행을 대하는 자세에 관해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홍대용은 청나라로 여행 가면서 국경을 넘어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는 것이 유일한 욕심이었어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많은 사람과 대화했는데 몽골사람을 만나면 몽골어를 배우고 만주사람을 만나면 만주어를 배웠어요.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데, 담헌은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편견 없이 청나라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기록했어요. 구경하는 것도 좋아해서 여기저기 남들이 안 가는 곳도 많이 다녔어요. 그 결과 다양한 나잇대의 친구를 만날 수 있었죠. 앞서 말했던 세상에 대한 이분법을 깬 것은 그 덕일 거예요. 담헌이 이렇듯 편견 없는 삶을 산 것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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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의 백수지성탐사길진숙 저 | 북드라망friend
농암 김창협, 성호 이익, 혜환 이용휴, 담헌 홍대용. 일견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키워드가 있으니, ‘백수’(白手)가 바로 그것. 이들은 생의 어느 순간을 혹은 평생을 백수로 지냈을 뿐 아니라 백수였던, 그 시절에 가장 최고의 문장을 썼고, 최고의 학문적 업적을 이룬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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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최민아(예스24 대학생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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