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구두당』 구병모가 들려주는 여덟 편의 동화

『빨간구두당』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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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서 ‘네가 네 인생의 주인공이야’라는 말이 너무 이상적인 말이 아닌가 싶어요. 모두가 삶이 팍팍하고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밀려나잖아요.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주인공을 띄워주는 주변인으로만 살다 가기에도 너무나 허덕이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고요. 우리 하나하나가 결국은 중심이 아닌 주변의 운명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변 쪽으로 시선이 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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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구두당』 구병모가 들려주는 여덟 편의 동화


『위저드 베이커리』 『피그말리온 아이들』의 작가 구병모가 여덟 편의 동화와 함께 돌아왔다. 『빨간구두당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안데르센의 동화와 그림 형제의 민담 등을 토대로 새롭게 써 내려간 것들이다. 원작과는 다른 시각과 문제의식을 담아낸 작품인 만큼 낯선 신선함을 안겨준다. 다시 한 번 ‘구병모식 판타지’를 선보인 작가는 『빨간구두당』의 출간을 기념해 지난 23일 독자들과 만났다.

 

이 날 사회를 맡은 서유미 작가는 “올 한 해는 구병모 작가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말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구병모 작가의 두 번째 단편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이 ‘오늘의 작가상’과 ‘황순원 신진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음을 알린 것. 특히 올해로 39회를 맞는 ‘오늘의 작가상’은 처음으로 독자들의 투표 결과가 반영되어 의미가 남다르다. 이에 수상 소감에 대해 묻자 구병모 작가는 “아직 수상자는 아니다. 수상 예정자다”라는 말로 겸손함을 표하며 “새로운 방식으로는 선정되는 만큼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시는 분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될 거라고, 그리고 큰 영광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수상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너무 놀랍고 아직 실감이 안 난다”고 답했다.

 

서유미 :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이라는 제목이 저는 참 좋았거든요. 의미도 있고. 그런데 책에는 같은 제목의 표제작이 없어요.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제목으로 책을 내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구병모 : 만약 그 제목이 마음에 드셨다면 평소에 서유미 작가님께서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게 아닌가 싶은데요(웃음). 저 역시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정의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비겁하고 치사한 생각인 걸 알고 있지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제 안에 있는 굉장히 비겁한 측면들, 한심한 부분들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직면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어서 그런 제목을 달았고요. 책을 내고 나니까 꼭 그런 뜻으로만 읽히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어차피 모두 힘든 세상을 살고 있는데 나만 이런 곳에 있는 게 아니어서 안심이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다른 의미로는,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은 이런 현실을 이루는 일부가 되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있는 거죠. 그건 작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가지는 생각인 것 같아요.

 

이 날의 대담에서 구병모 작가는 『빨간구두당』의 탄생 비화를 밝히기도 했다. ‘창비청소년문학시리즈 50권 기념 소설집’ 『파란 아이』를 위해 집필했던 「화갑소녀전」에서 『빨간구두당』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것. 이에 대해 작가는 “「화갑소녀전」이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래서 예정에 없던 작업이지만 시작하게 됐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봐주신 것 같아서 시작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썼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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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변의 운명을 살고 있으니까요


두 작가가 나누는 이야기는 『빨간구두당』에 실린 단편들로 옮아갔다. 표제작인 「빨간구두당」을 비롯해서 「개구리 왕자 또는 맹목의 하인리히」 「기슭과 노수부」 「화갑소녀전」 등 책에 실린 작품들은 구병모 작가만의 색다른 시각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채워져 있었다. 

 

서유미 : 『빨간구두당』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이야기도 담겨있지만, 그것과 전혀 다른 식으로 마무리가 된다든가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표제작인 「빨간구두당」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원작인 안데르센의 동화에서는 빨간색이 부정적인 이미지였다면 「빨간구두당」에서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구병모 : 「빨간구두당」에서의 빨간색이 긍정적인 것인지는 독자님들이 판단하실 부분이지만,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의 잣대에 달려 있잖아요. 그런데 설령 기준에 따라서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되더라도,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마녀사냥처럼 단죄할 권리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원작의 결말은 제가 현대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빨간 구두가 나쁘다고 했던 이유가 교회의 엄숙주의 때문인 게 더더욱 마음에 안 들었는데요. 물론 성당 미사에서 빨간색을 피해 주는 게 맞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정색이라는 드레스 코드가 사람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어버리면 주객전도 아니겠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코드라는 게 인간을 지워버려도 될 정도로 대단한 것인지 고민을 했죠. 저는 빨간 구두를 신었다고 주인공을 단죄하는 엄숙한 교회 사람들이 더 문제라고 봤습니다.

 

서유미 : 「개구리 왕자 또는 맹목의 하인리히」의 경우에는 왕자가 아닌 신하 하인리히의 시점으로 전개되는데요. 이런 주제의식은 「기슭과 노수구」에서도 발견됩니다. 작가님께서는 평소에도 주인공이 아닌 인물들에 관심이 많으셨는지 궁금해요.


구병모 : 엑스트라나 조연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드라마와 영화 등 다른 서사에서도 많이 시도된 방식이에요. 이런 작품들은 대부분 역발상 차원에서 주인공이 전도되는 건데요. 저는 요즘 들어서 ‘네가 네 인생의 주인공이야’라는 말이 너무 이상적인 말이 아닌가 싶어요. 너무 당연한 말인데도 불구하고요. 왜냐하면 모두가 삶이 팍팍하고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밀려나잖아요.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주인공을 띄워주는 주변인으로만 살다 가기에도 너무나 허덕이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고요. 어떤 소설을 쓸 때 현재의 상태나 시점이 반영된다고 한다면, 우리 하나하나가 결국은 중심이 아닌 주변의 운명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변 쪽으로 시선이 가는 것 같습니다.

 

서유미 : 「화갑소녀전」은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잖아요.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공장 노동자의 이야기가 겹쳐지더라고요. 혹시 염두에 두시고 쓰신 건가요?


구병모 :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서유미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읽어주셨어요. 저로서는 딱히 불만은 없고요(웃음). 어떤 방식으로 읽어주셔도 감사하죠. 다만 중요한 건, 인간을 거대한 기계의 한낱 부속품처럼 쓰다가 버리고 갈아 치우는 체제와 그보다 더 큰 구조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성냥이 타고 나면 버리잖아요. 그런 것처럼 사람을 성냥만도 못하게 만드는 체제와 구조에 대해서 항상 고민을 해야 될 것 같아요. 「화갑소녀전」은 서유미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방식으로 읽어주셔도 좋고, 더 큰 구조를 생각하시고 보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구병모 작가와의 대담은 책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서유미 작가는 “구병모 작가는 평소 책을 많이 읽기로 유명하다”고 전하며, 최근 구병모 작가를 사로잡은 책들에 대해 물었다.

 

구병모 :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좋았던 건 보르헤스가 인터뷰한 모음집이었어요. 『보르헤스의 말』이라는 책이고요. 그리고 미국 작가 찰스 보코스키의 일기를 모은 책이 있는데, 제목이 멋있어요.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인데 취향을 타는 책이긴 해요(웃음). 그 외에는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인데요. 『몸의 일기』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날의 만남에는 유독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이 함께했다. ‘청소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작가’라는 말은 구병모 작가에게 있어서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었다. 이번에도 작가는 독자들의 기대를 두루 만족시킬 것으로 보인다. 『빨간구두당』에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동화가 담겨있고, 그것을 자유롭게 변주하는 구병모만의 매력으로 채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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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구두당구병모 저 | 창비
작가의 새 책 『빨간구두당』은 안데르센 동화와 그림 형제 민담 등을 다층적으로 엮고 다채롭게 변주한 여덟 편의 소설을 모은 단편집으로, 동화의 원형을 간직하면서도 그 자체로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서사를 구축하며 ‘구병모식’ 판타지의 재림을 알린다. 세상은 완전한가, 선악은 완벽히 나뉘는가 등의 사유가 촘촘히 담겨 있어 기존 질서에 불응하고 다른 세계를 꿈꾸는 젊은 세대의 정서와 호응할 만하다. 마음을 홀리는 비극적 마력이 빛나는 작품들이 독자들을 더욱 깊고 넓은 이야기의 심연으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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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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