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사람들] 책도 미술작품처럼 감상할 수 없을까? – 정민영 아트북스 대표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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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대한민국 출판계를 이끌고 있는 분들을 찾아갑니다. 4편은 2001년 미술 전문 출판사 ‘아트북스’를 만들어 15년째 책을 만들고 있는 정민영 아트북스 대표입니다.

“독자 입장에서 낸 책이에요.” 정민영 아트북스 대표가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을 설명하며 보탠 말이다.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 국내 유수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월간 <미술세계>에서는 편집장, 계간 <이모션>에서는 편집인을 지낸 미술전문 출판사 ‘아트북스’ 대표의 설명이 자못 어색했다. 평생 ‘책바치’로 살아온 정민영 대표가 쓴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현장에서 본 상식적인 북디자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북디자이너가 아닌 사람이 쓴 ‘북디자인’ 이야기이기에 그는 스스로를 ‘독자’로 한정했다. 이 책의 힌트는 ‘책도 미술작품처럼 감상할 수는 없을까?’이다. ‘편집자를 위한’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책의 면면이 궁금한 독자라면 꽤나 흥미롭게 읽힐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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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몸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을 펴내셨습니다. 단독 저서로는 두 번째 책인데, 이 책 또한 출간하기까지 많이 망설이셨다고 들었습니다.


책이라는 게, 자기 입장에서 쓸 수밖에 없으니까 만들고 나면 부족한 점이 많이 보여요. 그래도 할 이야기는 했구나, 싶어요.

 

‘편집자라는 타깃을 설정하셨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퍽 관심이 갈만한 책입니다.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은 크게 보면 일종의 책을 사랑하는 법에 관한 책이에요. 책이라는 게, 표면적으로는 하나의 물질로만 보이지만, 따져보면 어떤 짜임새를 갖고 만들어진 완결된 형태예요. 사람들이 책을 읽을 때, 책등을 보고 속표제를 여는 과정 등은 생각을 안 하겠지만, 책의 구성을 의식하고 본다면 좀 더 애정을 갖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자꾸 종이책이 소용이 없어지는 시대라고 하는데, 책의 물질적인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요즘 몸매가 어쩌고,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요. 제목에 ‘편집자’라는 말을 붙였지만, 크게 보면 ‘책의 몸을 사랑하는 법’을 말한 책이라고 볼 수 있어요.

 

‘책의 몸을 사랑하는 법’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책의 구조를 따져보면 앞날개부터 시작해서, 앞표지, 면지, 권두, 본문 등으로 나뉘어 있어요. 독자는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디자인하고 편집한 시각적인 동선을 따라, 책의 조형미를 접하면서 내용을 흡수하죠. 이 책은 ‘읽다’보다는 ‘보다’에 집중한 책이라고 볼 수 있어요. 내용보다는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서, 주도면밀하게 설계된 책의 몸매에 관해 생각해보는 책이죠. 저는 책을 처음 집어들 때, 책등이나 질감, 무게감 등 책의 전체적인 느낌을 봐요. 본격적으로 책을 읽을 때 내용이 좋으면, 굉장히 기분이 좋아요. 미술을 전공한 입장에서는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 보고요. 어떤 소재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짜임새가 있는지 등을 살펴보는데, 이 또한 책의 몸을 사랑하는 법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좋은 책은 좋아 보이는 책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책에 쓰셨는데요. 썩 수긍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만듦새는 좋은데 속이 부실한 경우는 거의 없어요. 책도 사람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책의 외모, 즉 디자인을 통해서 내부로 들어가잖아요. 겉이 마음에 들어야 내부로 들어가는 기회도 생기죠. 디자인은 ‘이 책은 이렇게 좋아’라고 홍보를 해주고 자기는 뒤로 물러나는데요. 이런 역학 관계를 생각하면 책이라는 물질성이 굉장히 재밌어요. 독자를 인도해주고, 자기는 뒤로 물러나서 ‘디자인’은 기억도 안 나게 해버리니까요.

 

아트북스의 책은 내용과 함께 만듦새까지 함께 보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어떤 책을 만들고자 하시나요?


크게 내세울만한 건 없습니다. 신경을 쓰는 건, 미술 전문 출판사에서 으레 나오는 미술책에서 벗어나서 미술책 같지 않은 미술책을 만들고자 해요. 독자들이 미술책이라고 하면 ‘내 분야는 아니야’라고 재단할 때가 많은데, 그 틀에서 벗어나 미술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표지를 통해서도 그렇게 다가가려고 하고요.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의 표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이 책을 가로로 눕혀 들면, 마치 또 하나의 책을 든 것 같은 그림이 나와요. 옷하고도 매치가 될 수 있겠죠. 기왕 책을 들고 다닌다고 한다면, 이렇게 매치되도 좋지 않나? 싶었어요.

 

‘북디자인’을 이야기한 책이라서겠지만, 정말 많은 책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타 출판사에서 펴낸 책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요. 일일이 허락을 구하셨을 텐데, 굉장히 고된 작업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편집자가 정말 고생했어요. 수고했다는 말이 절로 나와요. 이 책은 그 양반 책이에요. 편집자도 10년이 지나고 보면, 이 책의 모자란 부분들을 발견하겠지요.

 

책 뒷날개에 아트북스에서 최근 출간한 『커버 Cover』라는 책을 소개했습니다. 북디자이너의 표지 이야기를 다룬 책인데요. 대표님의 저서와 매치가 되는 책이라, 독자들에게도 유용한 정보가 될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 디자인에 관한 우리 책이니까요. 뒷날개를 출판사의 홍보 면이라고 했으니까, 이 책을 포함해 디자인에 관련된 책들을 쭉 소개할까 하다가, 이 책이 가장 직접적인 책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런데 『커버 Cover』가 꽤 비싼 책입니다. 표지도 독특하고요. 제작 단가가 꽤 높을 거라 예상됩니다.


책이라는 게 내용만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크게 보면 디자인된 상태를 경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간혹 돈이 좀 더 들어가도 흑백이 아니라 컬러로 인쇄했으면 좋았을 법 싶은 책들을 만나곤 해요. 독자 입장에서는 이 귀한 자료들을 접할 통로가 책밖에 없잖아요. 일일이 박물관, 미술관을 다 찾아다닐 수 없으니까요. 저희는 가급적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책 안에서 완결된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출판사를 운영하다 보면, 판매 부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물론 신경을 쓰는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홍보비를 제작비에 조금 더 들인다고요. 제작비를 조금 더 늘리면 독자들은 컬러로 책을 볼 수 있는데, 이것 자체도 홍보가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책의 질을 높이고 그것이 알려지면, 곧 홍보잖아요.

 

책 앞날개에 실리는 ‘저자 소개 글’에 대한 질문도 하고 싶습니다. 굉장히 길게 쓰는 저자들도 있고, 그간 펴낸 책이나 간단한 소개만 곁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시민 작가가 그랬던가요? 책을 낼 때마다 늘 저자 소개를 다르게 쓴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공감했어요. 보통 책을 많이 내는 저자들은 한 번 소개글을 써놓고, 계속 그걸 카피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유시민 작가는 책의 독자 타깃에 맞게 어떤 부분은 숨기고 어떤 부분은 내세운다고 했는데, 귀담아들을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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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글발, 굉장히 중요하다


대표님 이야기도 좀 여쭙고 싶습니다. 굉장한 다독가로 유명하세요.


책을 좋아해요. 아내한테 미안한 이야기지만, 오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책 때문이에요. 내가 읽어야 할 책이 계속 나오지 않습니까? 지금은 뒤늦게 아이가 생겨서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이로 바뀌었지만, 책이 그렇게 좋았어요. 제가 살아온 인생을 이야기한다면, 책방이나 책에 관한 이야기로 다 할 수 있어요. 문학적으로 미쳤던 것도 있고, 비평 쪽에 관심도 있었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 화가로서도 자기 세계를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게 된 거예요. 사야 할 책이 계속 나온다는 게, 너무 좋아요.

 

모든 책이 가치가 있는 건, 아닐 텐데요. 이게 책으로까지 나와야 하나? 싶은 책들을 만날 때도 꽤 많습니다.


저는 그것도 긍정적으로 봐요. 사람들은 책 자체가 굉장히 묵직하게 오래 가야 하고, 시간의 어떤 마모력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패스트 푸드라면 조금 과장된 표현일 수 있겠지만, 일정 기간 빠르게 활동하다가 사라지는 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을 많이 보는 사람들은 그런 책은 안 좋다고 이야기하는데, 전 그 책들 또한 갖고 있는 기능이 있다고 봐요. 아트북스에서 대중서와 전문서의 중간 역할을 하는 책을 만드는 이유가 이런 생각 때문이에요. 일정한 기간에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사라지는 책들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요.

 

대표님을 두고 ‘편집자에게 많은 기회를 줬다’라고, 평한 글을 보았습니다.


책이라는 게, 출판사에서 마케터와 이야기해서 내는 경우도 있지만요. 한 책을 한 사람이 맡았다는 건, 그 책이 편집자의 책이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평소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볼 때, 판권에서 편집자 이름을 유심히 봐요. 그것과 연관해서 책의 모양새를 보고요. ‘이 편집자가 만들었네’하고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요. 편집자가 월등히 뛰어나면 뛰어난 만큼, 부족하면 부족한 만큼 그 모습대로 책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물론 한 권의 책을 내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지만 책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건 편집자예요.

 

요즘은 디자인적인 요소나 타깃 마케팅 등을 통해서 책이 알려지기도 하는데요.


간혹 책 표지가 아주 뛰어나서 판매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 말은 조금 의심해봐요. 책이 나오기 전에 출판사에서 보통 표지 시안을 다섯 개 정도 만들어서 선택을 하는데, 대개 모든 시안이 다 좋아 보여요. 대표든, 편집자든 누군가가 선택해서 최종 표지가 결정 나는데, 그건 그 사람의 취향이라고 봐요. 저는 표지가 일정한 수준만 된다면, 판매에 크게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종 결정은 편집자가 하게 해요. 편집자의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맡기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오랫동안 출판사 생활을 하다 보니 모든 걸 내가 통제하고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 밖에 괜찮은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알지 못하는 것에서 벌어지는 것도 많고요. 모든 걸 통제할 수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젊은 사람들과의 감각도 차이가 날 거고요. 제가 책을 좋아해서 주간지, 일간지, 잡지를 챙겨보면서 젊게 만든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어요. 결국 그 사람의 감각에 맞게 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아트북스를 만드시기 전에 정신세계사와 문학동네, 세계사에서 편집자로 일하셨습니다. 편집자로서 가져야 할 덕목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면, 어떤 점을 꼽고 싶으신가요?


글발이요. 저는 좋은 글이나 미문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편집자로 일하다 잡지사에서도 일했는데, 하루에도 수많은 보도자료가 날라와요. 보통 편집자들은 내부에서 책을 만든 후에 보도자료를 쓰는데, 보도자료를 받는 입장에서는 이 보도자료를 통해서 책으로 들어가요. 관계가 역전되는 거죠. 잘 쓴 보도자료에 의해서 책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고, 안 갖게 되는데요. 편집자의 기획력이 발휘될 수 있는 부분이에요. 신문에 어떤 책 소개가 나와서 궁금해서 인터넷서점에 들어가 그 책에 대한 출판사 서평을 읽어보는데, 그 글이 너무 잘 써져 있으면 그 책이 더 궁금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편집자의 글발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봐요. 단순히 책 내용을 요약할 수도 있겠지만, 독자들을 유혹하는 장치를 심어 놓을 수도 있죠.

 

특별히 좋아하는 출판사나 편집자가 있으신가요?


돌베개 책을 좋아해요. 돌베개에서 나온 책들 중에 상당수가 저희 집에 있어요. 돌베개 책의 특징은 장식이 없이 단순해요. 미니멀하죠. 그럼에도 짜임새가 있고요. 단순함에서 주는 힘이 있어요. 최근에는 현암사에서 나온 손철주 선생님의 『사람 보는 눈』의 출판사 서평을 읽다가, 편집자 글발이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책이 또 한 번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책이 날개를 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간혹 책을 만들다 보면, 내부 사정으로 인해 편집자가 바뀌는 경우도 있어요. 새로 책을 맡게 된 편집자가 기존 편집자가 만들어놓은 방향을 그대로 수용할 수도 있지만, 자기 시각에 아닌 부분도 있을 수 있고요. 그럴 때 저는 새 편집자가 보는 방향대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시각을 갖고 있는 건, 굉장히 중요해요.

 

미술 전문 출판사의 대표의 일상도 궁금합니다. 하루 중 어떤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으시나요?


저한테 오는 투고나 받은 원고를 검토하는 일이 많아요. 출판이 될 만한 원고가 들어오면 편집부와 함께 논의하고, 제가 직접 처음부터 방향을 잡아주는 원고도 있고요.

 

중대형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관리직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필드에서 뛰고 싶어 출판사를 여는 편집자 분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대표님은 어떠신가요? 편집자로 일할 때와 대표로 일하는 지금, 장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장단점이 있습니다. 전체를 결정해야 하니까 어려움도 있고 반면에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겠죠. 그런데 지금은 대표가 된 입장에서 이런 생각을 해요. 비유를 하자면, 사람들이 그림을 수집하지 않습니까? 추상화도 있고 극사실주의도 있을 거예요. 대개 자기 취향에 맞게 고르죠. 그런데 나중에 역으로 봤을 때, 한 사람이 선택한 그림들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 관심, 정신세계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고 봐요. 제가 아트북스를 만들고 대중미술서라는 포커스에 맞춰 책을 내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저자들은 본인의 책을 낸 거지만, 책을 펴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저자들을 통해 내가 생각한 세계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어요. 대표로서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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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문을 연 아트북스는 ‘생활 속의 미술’을 모토로 전문서를 비롯한 미술 대중서를 출간하고 있다. 아트북스는 적극적으로 국내 필자를 개발하고, 미술의 전공 유무를 떠나 미술을 사랑하는 저자들의 원고를 충실히 검토하여 책을 펴낸다.

 

아트북스에서 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판매가 어느 정도 될 건지도 무시할 수 없겠고요. 기존의 시각들과 얼마나 다른가도 중요하게 봅니다. 가령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책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계속 나오지 않습니까? 이미 아트북스에서도 몇 권이 나왔지만 관점이 새롭고 좋다면 꾸준히 낼 생각이에요. 지금도 두 권 정도 준비하고 있고요. 또 미술의 대중화에 부합하는 원고라면 검토를 합니다.

 

15년 동안 펴낸 책 가운데, 가장 뿌듯함을 줬던 책을 꼽아주신다면요?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2009년에 펴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예요. 굉장히 두꺼운 책인데 이 책을 내고 무척 뿌듯했어요. 서경식 선생님이 언젠가 당신의 책을 펴내면서 “반 고흐 편지를 책으로 내고 싶었는데 이미 박홍규 작가가 내서 마음을 접었다”고 쓴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원문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은 책인데,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이 책이 나올 무렵,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묘하게 반 고흐의 삶과 일치하지 않나, 싶었어요. 고흐도 왕성히 작품 활동을 하다가 나중에 탄광촌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잖아요.

 

요즘은 주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책에서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것들을 메모하고 있어요. 좀 더 체계적으로 전문적으로 이야기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고, 책에 대한 단상을 짧은 단편으로 써볼까 하는 마음도 있어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책을 빼놓고는 대표님의 일상을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책을 안 봐야겠다고 결심한 적은 없으신가요?


(웃음) 그래서 일본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한글과 동떨어진 세계를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책을 한 권도 안 들고 갔어요. 그런데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일본에서 다녀온 곳들이 모두 우리 근대 문학가들이 활동했던 무대였더라고요. 그 문학가들의 작품들을 챙겨서 갔으면 어땠을까, 후회를 했어요.

 

저자들에게 ‘이런 책을 내자’고 제안하고 있는 기획물이 있나요?


지금은 없어요. 제가 앞서서 그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다양한 유형들의 책들이 쏟아지고 있잖아요. 아트북스가 벌써 15년이 됐는데, 지금은 또 다른 형식의 책 스타일이랄까? 대중서도 아니고 전문서도 아닌, 소설로 치면 경장편 같은 책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싶어요.

 

 

정민영 대표가 추천하는 책 BEST 3

 

 

내가 읽고 만난 일본 

김윤식 저 | 그린비

나는 저자의 애독자다. 미술학도이면서 그의 두툼한 문학연구서와 기행에세이를 비롯한 문학평론집을 읽고 모았다. 지금은 기행에세이와 연구서 몇 권만 남겨 두고 모두 출가시켰지만 나는 여전히 영혼의 허기가 느껴지는 저자의 책들 곁에 서성이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지적, 사상적 여정에 각인된 5인의 사상가에 대해 사유한 일종의 사상적 자서전이다. 평생, 동사 ‘쓰다’와 ‘읽다’의 주어로 살아온 저자의 도저한 지적 편력의 안쪽을 조금 엿본 기분이다. 내친 김에 저자의 문학적 자서전인 <내가 살아온 20세기 문학과 사상>(2005)도 찾아 읽었다. 두 책 모두 두툼하고, 뜨겁다.

 

 

 

간송미술 36 회화

백인산 저 | 컬처그라퍼

이 책은 넙데데한 판형과 큼직한 제목 글씨가 ‘청소년 책’ 같은 인상을 주지만 여느 옛 그림 관련 대중서와 격이 다르다. 격의 원천은 저자가 1991년부터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을 관리 전시, 연구해온 적임자라는 데 있다. 저자는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앞세우기보다 그림으로 직입하여 화풍과 필선을 분석하며, 그것을 둘러싼 전거와 역사적인 맥락을 통해 그림의 진가를 찾아준다. 더불어 그림에 대한 묘사가 세세하고, 애정이 흥건하여 읽는 즐거움이 동행한다.

 

 

 

 

미술 출장

곽아람 저 | 아트북스

기자만이 보고 쓸 수 있는 여행기 성격의 미술현장 취재기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은 인터뷰이나 미술현장이 아니다. ‘인터뷰 대상과 독자 간의 매개자인 기자’ 자신이다. 기사에서 기자는 철저한 ‘을’이지만, 이 책에서 기자는 완전한 ‘갑’이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기사에 쓰지 못했던 지난한 취재 여정과 ‘기자’가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소감까지 솔직하게 들려준다. 글발까지 한 미모 하는 저자는 미술사학 전공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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