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고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 이용한
산골에서 가족과 함께 열여섯 마리의 고양이가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를 담았다. 앞선 고양이 책에서 안쓰러운 길고양이 사진만 담았다면 이번에는 평화로운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가와무라 겐키)는 제목과 같은 이야기를 풀면서 우리 주변에 고양이가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한다. “결국 고양이는 자기보다 먼저 죽고, 그 죽음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야기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슬픔은 불가피한 것이며,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데도 인간은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다.(중략) 인간은 자기는 알 길 없는 자신의 모습, 자신의 미래, 자신의 죽음을 알기 위해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건 아닐까? 어머니의 말이 옳다. 고양이가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 고양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용한에게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이용한 시인의 첫 번째 고양이 책이었던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는 고양시에 살면서 만난 길고양이를 기록한 책이었다. 그의 첫 고양이었던 희봉이에 대한 추억을 언급한 뒤 결혼과 양평으로 이사한 뒤 양평에서 만난 바람이라는 고양이에 대해 말했다.
“바람이는 그 동네 왕초고양이였다. 우리집 동정을 늘 살피고 마루에 올라와서는 당당하게 밥을 요구했다. 바람이는 잊을 수 없는 고양이다. <고양이 춤>이라는 다큐영화에 보면 바람이는 기생충에 감염돼 병원까지 갔지만 끝내 고양이별로 떠났다. 바람이 이후 두 번째 만난 고양이가 달타냥이다. 삼총사의 달타냥과는 상관없다. 아내와 함께 매일 산책하던 달밤에 담을 타는 걸 봤고, 단순히 그 이유로 달타냥이 됐다(웃음).”
『명랑하라 고양이』 『나쁜 고양이는 없다』는 첫 고양이 책에 이은 작품이었다. 이용한 시인에겐 아들도 태어났다. 아들은 덕분에 태어나면서부터 고양이가 아주 익숙한 존재가 됐다. 아들은 달타냥, 바람이, 희봉이, 봉달이, 덩달이 등의 고양이들과 만났다. 그 가운데 시인은 봉달이라는 고양이를 가장 좋아했다. 눈이 오면 고양이는 꼼짝하지 않는데, 봉달이는 달랐다. 드물게 눈을 즐길 줄 아는 고양이였다. 눈이 오면 개처럼 뛰어다니고 눈밭에서 수영하듯 즐겼다. 형제인 덩달이도 함께 눈을 즐겼다. 눈밭에서 봉달이와 경주도 하고 장난을 쳤다.
시인은 고양이가 두 발로 서서 멀뚱히 있을 때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고양이가 가장 귀엽게 느껴질 때라고 설명했다. 허핑턴포스트 미국판과 일본판에 무단으로 실렸던 사진도 보여줬다. 앙증맞은 고양이 모습을 담은 사진은 무단으로라도 쓰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킬 듯했다. 전원주택에서 티타임을 즐기는 듯한, 잡초를 뽑아주는 듯한 포즈의 고양이들도 등장했다.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도 보여준다. 텃밭 배수구에 들어간 새끼 고양이의 모습. 아, 고양이는 도시든 시골이든 늘 우리와 함께 있구나. 고양이 없는 세상, 상상할 수도 없구나.
“하수구 속에 들어간 고양이도 사진으로 찍었다. 하수구 속의 고양이 사진을 찍는 프로젝트를 3개월 정도 진행했었다. 그런데 마을 하천 정비 사업으로 공사 장비가 들어오면서 하수구에 살던 고양이가 떠나면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꽃다지가 핀 하수구 사이로 얼굴을 내민 고양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이용한 시인의 앞선 고양이 책 세 권은, 길고양이를 기록한 책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길고양이를 기록하지 못했다. 고양이 급식소에 한 할머니가 쥐약을 자꾸 넣어서 고양이가 희생당했다. 고양이에게 밥 줄 의욕도 없어지고 자신 때문에 고양이가 희생당한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길고양이에 대한 기록을 접기로 했다. 대신 고양이 여행을 떠났다. 고양이 작가라고 불리기 전에 여행 작가였던 그였기에 고양이와 여행을 접목했다. 고양이 여행의 시작.
이용한에게 고양이 여행
『흐리고 가끔 고양이』는 제주 가파도에서 울릉도까지, 전남 구례에서 강원도 원주까지, 섬과 뭍, 사찰과 공원, 도심과 오지, 수몰 마을과 철거촌, 마을과 거리에서 만난 전국 60여 곳 고양이들의 삶의 현장을 담은 고양이 여행의 기록이었다. 고양이 여행자에게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고양이는 요물이니 없애야 한다는 미신 혹은 편견이었다.
그가 발 디딘 거문도가 그랬었다. 섬에 있던 많은 고양이들이 학살당했다.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자라면 어업에 피해를 입는다는 민원 때문에 섬 고양이 전체가 살처분 당할 뻔도 했다. 동물보호협회 등의 동물단체들이 들고 일어섰고, 거문도 고양이들의 중성화 수술을 해주는 대신 살처분은 하지 말아달라는 협상을 했다. 많은 거문도 주민들은 그렇게 고양이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고양이만 보이면 죽이려고 드는 주민도 있었다.
“거문도에는 어장을 관리하는 고양이가 있다. 그렇게 고양이 도움을 받으면서도 살처분을 해대기도 했다. 어장을 관리하는 고양이도 육지에 오르지 못한다. 그것도 고양이 학대다. 어장에 먹을 것이 뭐가 있겠나. 태풍이 오거나 물고기가 뛰어오르면 물고기를 잡아먹기도 하나, 그 자체로 학대라고 봐야 한다.”
반면 욕지도에는 시인 스스로 ‘고양이 마을’이라고 불렀던 마을도 있다. 책에 이곳을 소개하고 자기 혼자 고양이 마을로 부르겠다고 썼었는데, TV <동물농장>에서 이곳을 고양이 마을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제주도의 한 식당에서 만난 하얀 고양이들에 대한 사진도 탄성을 자아냈다. 양떼구름이라고 불러도 좋을 하얀 고양이들이 모여 있는 사진. 동네의 식당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스무 마리 정도가 하얀 털로 쌓여 있었다고.
그는 그렇게 국내의 고양이 여행을 2년 반 정도 다녔다. 그 사이사이 외국에 나갔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고양이 천국 모로코와 터키, 무심한 듯 느긋하게 공존하며 살아가는 일본의 고양이 섬, 대만, 인도, 라오스 등 고양이라서 행복하고 사람들은 고양이가 있어 행복한 6개국 30여 곳의 고양이를 기록했다. 그가 가장 먼저 보여준 사진은 모로코였다.
도시 전체가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는 모로코의 곳곳에는 고양이가 있었다. 사람과 자연스레 어우러진 풍경은 일상다반사였다. 고양이를 특별히 더 예뻐한 것은 아니나 그 누구도 고양이에게 돌을 던지거나 학대하지 않는 곳이 모로코였다.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 길고양이는 사람을 보면 도망치기 바쁜데, 이곳 고양이는 자기 행동을 하면서 시크했다. 고양이가 사람을 무서워하기는커녕 되레 무시하는 정도?(웃음) 모로코 고양이의 주식은 빵이고 간식이 우유였다. 사료를 주면 좋지만 모로코는 가난한 나라고 사료를 주지 못한다. 대신 빵이 싸다. 가난한 사람도 누구나 빵을 사먹을 수 있는 나라가 모로코인데, 길에서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는 것은 당연한 풍경이었다. 고양이가 있는 자리는 사람들이 피해 앉을 정도다. 고양이와 장난치는 풍경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터키도 고양이 천국이었다. 모로코가 관리하지 않는 천국이라면 터키는 정부에서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할 정도였다. 터키의 고양이들은 외양도 깔끔하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케밥을 들고 공원에 가서 고양이를 자연스레 만났다.
일본 역시 고양이에게 우호적인 나라다. 네코지마(고양이 섬)라 불리는 섬만 열 개가 넘고 정기적으로 배를 타고 섬에 들어와 밥을 주는 사람이 많은 곳이 일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시인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 여러 섬을 돌아다녔는데, 우리나라의 섬은 육지보다 훨씬 더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우리나라의 많은 섬은 고양이를 보면 해코지 하려고 하나 일본의 섬은 고양이에게 해코지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아이노시마라는 고양이 섬은 고쿠라 지역과 후쿠오카 지역 두 개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후쿠오카가 유명하나 고쿠라의 아이노시마가 일본에선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대만에도 허우통이라는 고양이 마을이 있다. 원래 탄광촌이었다가 쇠락해가는 마을이었다. 주민들이 절반 이상 떠나고 집이 비었다. 주민 중 한 명이 마을에 고양이가 많으니 ‘고양이 마을’로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1년 후에 이른바 대박이 났다. 대만의 유명한 블로거가 이 마을을 소개한 덕에 하루 평균 200~300명이 오던 마을은 2000~3000명이 오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쇠락한 탄광촌이 되면서 무너졌던 지역경제는 고양이 덕분에 불같이 살아났다. 허우통은 그렇게 특이한 모델이다.
시인은 인도 캘거리도 찾았다. 빈민촌인 이 마을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먹을 것도 충분히 챙겨먹지 못함에도 고양이를 먹이기 위해 닭 내장과 물고기 내장을 얻어 와서 고양이를 먹이고 있었다. 시인은 그 장면을 찍어왔다. 그리고 그는 하루 한 끼밖에 못 먹는 사람들이 고양이를 먹이는 측은지심을 생각했다고 전했다. 한국 인민들은 여기 인도의 인민들보다 훨씬 풍족한데도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왜 좋지 않을까 아쉬웠다. 가난한 사람들이 고양이를 보고 웃고 즐거워하는 장면의 사진은 그런 아쉬움을 더욱 진하게 표출하고 있었다.
이용한, 고양이와의 공존모델을 찾아서
“8년 전 고양이 영역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고양이가 우리와 함께 이곳에 살고 있었구나. 그전엔 한 번도 함께 살고 있다는 생각을 못해봤다. 고양이를 몰랐으므로 그들과의 공존을 생각할 기회조차 없었다. 고양이를 만나서 나는 그동안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었다.”(4쪽)
고양이 여행 시리즈에 이어 시인이 여섯 번째로 내놓은 고양이 책이 『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이다. 이 책은 열여섯 마리 고양이의 좌충우돌 알콩달콩, 동화 같고 때로 만화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 슬프거나 불편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시인의 설명이다. 시작은 사소했다.
“한 라이더가 아기고양이 세 마리를 구조해서 역장에게 맡기려던 고양이를 집에 데리고 왔다. 데리고 올 때만해도 입양시킬 생각이었으나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 처음에는 분유를 먹어야 할 정도였다. 한 달 정도 분유를 먹여서 키웠다. 살구, 앵두, 오디라는 이름을 붙였다. 처음부터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오디, 앵두, 살구를 키우면서 들었던 생각은 대만의 고양이마을처럼 고양이와 인간의 공존모델을 작게나마 구현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세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물론 집에는 이미 다섯 마리 고양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순간들을 담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들에게도 고양이는 가장 흔하게 본 동물이자 아주 가까운 생명체가 됐다. 장난꾸러기 아들은, 책에는 아들이 다소 미화됐지만, 고양이 수염도 뽑고 꼬리도 잡아당기는 등 장난을 엄청나게 치기도 한단다. 아들이 고양이를 각별히 아끼는 것은 아니나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보살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인은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시인이 보여주는 고양이 사진마다 독자들은 탄성을 쏟아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미인을 얻는다’는 프랑스 속담은 귀에 솔깃했다. 책 제목이 탄생한 배경도 있었다. 고양이들이 좋아했던 낚싯대가 끊어졌는데 고양이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로 자기네들끼리 놀고 있었다. 그 장면에서 책 제목은 탄생했다. 사람과 16마리의 고양이가 공존하는 세계. 사료비용도 만만치 않고 중성화(TNR)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고양이 없는 세상은 사람 없는 세상보다 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고양이를 필요로 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소설가 로맹 가리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에게는 사랑할 누군가를 줘야 해. 비행청소년이란 개도 고양이도 없는 아이들이야.” 막연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고양이를 필요로 한다. 기승전고양이다. 그리고 인간이 필요로 하는 의식주에다 하나 더 붙이자. 의식주묘.
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이용한 저 | 예담
길고양이들은 사람을 두려워해서 먹을 것을 주려고 다가가면 늘 뒷걸음친다. 늘 불쌍하고 안쓰러운 고양이 사진만 찍던 이용한 시인이 이번에는 슬프거나 불편한 이야기가 아닌 평화롭고 행복한 고양이들의 사진을 갖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국내를 비롯해 세계 다양한 곳들의 길고양이 사진을 찍던 그가 가장 한국적인, 그리고 가장 행복한 고양이들의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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