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한마디> 하명희 작가, 내가 드라마를 쓰는 이유
첫 장편소설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펴내 일상성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편견을 완화 시키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
눈으로 보는 드라마를 넘어, 마음을 여는 드라마가 있다. 2월 24일 막을 내린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이렇게 따뜻할 수 있을까? “행복한 2등이 좋다”는 하명희 작가를 만났다.
누군가 그랬다. 어떤 절망적인 일이라도 그것이 꼭 나쁜 점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는 제목과는 달리, 극단적인 설정이 가득한 드라마다. 바람 핀 남편, 또 다른 모습의 바람을 피는 아내, 남편의 내연녀와 같은 요리 클래스를 듣는 아내, 외도한 매형의 내연녀의 차에 교통사고를 내는 처남. 세상에 나쁜 사람은 다 모아놓은 것 같은데, 드라마를 보다 보면 악역이 없다는 느낌이다. 모든 인물에게 측은지심, 동병상련을 발현한 까닭일까? 아니다. 그들 모두는 매우 평범하고 연약하고 외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좋은 드라마의 기준은 각기 다를 테지만, 가장 보편적인 인간 군상을 그려내는 힘만큼 위대한 것이 없다.
1994년 MBC <베스트극장> 극본 공모에 당선된 후, <종합병원> <사랑이 꽃피는 계절> <사랑과 전쟁> 등을 집필한 하명희 작가. 2012년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로 ‘우결수’ 신드롬을 만들어내고, 지난해 12월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를 썼다. ‘우결수’를 보고 작가의 필력을 신뢰한 PD와 배우들. 매회 대본을 받아 들고는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극중 은진(한혜진)의 아버지 역을 맡은 윤주상은 “인생사, 부부간의 문제를 다루면 칙칙하고, 누구 하나 나쁘게 만들기 마련인데, 우리 드라마는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각 인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려냈다. 결론도 까닭 없이 나오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아픔을 극복하고, 성숙을 통한 해피엔딩이라 더욱 의미 있고 힘있는 결말이었다”라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외도한 남편 ‘재학’으로 분한 지진희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 드라마”라고 평했다. 누군가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두고 ‘불륜 방지 드라마’라고 말한다. 보고 있으면, 도저히 마음이 찔려 불륜을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선악의 양면성, 그리고 성장. 하명희 작가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통해 보여줬다.
종영을 4일 앞둔 날,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하명희 작가를 만났다. 이토록 실감 나는 대사를 쓰는 작가는 어떤 얼굴일까? 올 1월 출간한, 장편소설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는 어떻게 쓰게 된 작품일지, 몹시 궁금했다. 드라마보다는 예능작가다운 달변가, 유쾌한 토크쇼 대본을 쓸 것 같은 목소리였다. 경쾌한 목소리에 오히려 신뢰감이 들었다. 어떠한 일에도 옹색한 변명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상, 하명희 작가의 뭉근한 통찰력의 발신지를 찾아보았다.
이 작품은 인간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사랑을 주고받는 과정에서는 상처 또한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상처는 사랑에 따르는 필수사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사람은 피상적인 관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네 사람은 서로의 세계관에 부딪히며 오해하고, 자신의 세계관에 상대를 편입하려 든다. 그 과정에서 균형 감각은 깨지고, 결국 그들은 홀로 남는다. 그리고 혼자가 되었을 때 그들은 비로서 상대를 사랑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터넷 시대에 관계의 키워드는 고독이다. 피상성에는 고독이 따르기 때문이다. ‘피상적인 소통’으로 인한 관계의 허약함이 이 시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저자의 말 中
드라마는 ‘문화’, 편견을 깰 수 있어야 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 요즘 세상에 쉽게 들을 수 없는 말이다. 현실에서도 듣기 힘든 말을 드라마에서 한다는 것이 새로웠다. 드라마 제목으로 반대는 없었는지, 궁금했다.
너무 교훈적인 제목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지만, 좋다는 사람도 많았다. 15년 전쯤인가? MBC에서 <베스트극장>을 할 때, 최창욱 감독이 던졌던 제목이다. 그 때 너무 좋아서, ‘나중에 작품을 하게 되면 써먹어야지’ 생각했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 덕분에 남편, 아내의 말투가 변했다는 시청자 평도 있었다. ‘불륜 예방 드라마’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바람 피던 친구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웃음). 종방연 때, 본부장님이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이렇게 하면 어떻게 바람을 피워? 여지를 남겨 줘야지”라며, 우스갯소리도 하더라.
불륜의 끝에서 시작하는 드라마다. 등장인물 또한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캐릭터다. 미워할 수 없는 것과는 또 다르다.
인간이라는 게 그렇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있는 어떤 한계점이 있다. 부모라든지, 주위 환경이라든지. 그런 것들로 망가질 수 있다. 그래서 운명과 선택이라는 게 공존한다. 드라마라는 건, 이 선택과 운명을 어떻게 씨줄과 날줄로 엮느냐다. 나는 드라마를 문화라고 생각한다. 문화는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는 드라마적 인간들은 완벽한 인간이다. 착하거나 잘났거나. 그래서 감정이입이 단번에 된다. 그런데 실제에서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후진 사람인지 확인하게 되는데, 드라마 속 인물들과 비교하면서 나락에 빠지는 거다. 저런 사람이 될 수 없는 나는 못난 사람이 되는 거다. 그래서 나는 남자 주인공을 왕자 캐릭터로 그리지 않는다. 왕자 캐릭터는 조연으로 주지, 주연으로 주지 않는다. <따뜻한 말 한마디>의 왕자 캐릭터는 민수(박서준)였다. 주인공에게는 사회적 책임감, 아이러니를 반드시 준다.
악역 캐릭터가 너무 분명하게 드러나는 드라마를 볼 때, 불편한 감정이 든다. 모든 사람에게는 나쁜 면만 있을 수는 없는데, 너무 극단적으로 몰고 가니까 현실성이 떨어진다.
대부분의 드라마는 주인공에게 좋은 걸 몰아준다. 그러니까 시청자들은 주인공에게는 열광하고 악역을 두고는 ‘죽여라’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점도 있고 저런 점도 있고, 제각기 결점이 있는데,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니까 인정을 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좋은 사람만 좋아하고 나쁜 사람은 ‘죽여라’라고 댓글을 단다. 이런 현상이 사회를 경직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물을 만들 때, 다양성에 초점을 둔다. 결점이 있지만 아예 밉지는 않은 사람. 우리가 사실 편견 덩어리 아닌가? 문화라는 건 편견을 깨야 하는데, 드라마라는 장르가 편견을 강화시키는 게 많다. 재벌을 그리더라도 인물에 대한 다양성과 편견을 완화시키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가장 욕을 많이 들은 캐릭터가 ‘은진(한혜진)’이였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퍽 이해가 되는 인물이었는데, 드라마에서는 존재하기 힘든 캐릭터이기도 하다.
원래 은진과 같은 인물을 설정하려면, 가난하게 하거나 신랑이 무지 못됐거나 시댁이 힘들게 해서 동정심을 갖게 하는데, 나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불륜을 정리하고 싶었다. 불륜에 대한 사회적, 개인적 정의를 하고 싶었다. 주인공을 동정하게 되면, 그냥 ‘은진’이라는 개인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거지, 불륜에 대한 걸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극중 은진이 시를 읊는 장면이 있었는데, 시청자들이 이 장면을 보고 그렇게 욕을 하더라. “불륜녀한테 시를 읽게 하지 말라”고. 사실, 은진 캐릭터는 『안나 카레니나』 가 모형이었다. 그 시대에는 안나가 자살을 시도했지만, 은진이를 죽일 수는 없으니까 남편 ‘성수’를 붙여서 내보낸 거다. 성수가 은진을 구원해줄 수 있으니까.
성수(이상우)의 변화도 무척 인상 깊었다.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남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인데, 결국 아내 은진을 한 여자, 사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부부는 무한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이너스도, 영도 될 수 있지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 쪽이 넘어졌을 때, 상대가 붙잡아줄 수 있으니까.
등장 인물의 이름이 다 평범하다. 의도한 것 같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사실 ‘나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드라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죄와는 멀리 있다고 생각하고 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형법에는 간통죄가 있기 때문에 불륜을 저지르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민수는 착하게 잘 살다가, 단지 누나의 일에 휘말려 죄를 짓게 되지 않나? 정말 이런 일이라고는 상상해보지 않았는데, 저지르게 되는 인간의 심리? 보통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는,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부부의 속사정은 그 부부밖에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한다. 바람을 피웠다고 하면, 무조건 헤어지라고 한다. 그게 정말 내 일이 되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데.
헤어지라는 것, 말은 정말 쉽다. 외도한 남편, 아내와 헤어지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심정은 오죽하겠나? 사람들이 남의 일은 되게 쉽게 말한다. 그냥 현금지급기로 생각하고 살라고. 하지만 그게 온전한 삶인가? 그렇지 않다. 부부 사이는 정말 불가사의한 관계다. 그래서 무촌 아니면 남보다 못한 존재라고 말하지 않나?
대본을 쓰면서 힘들었을 것 같다. 인물에 감정이입이 심하면 객관성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힘들었다. 인물들의 감정이 너무 세서 죽을 뻔했다. 성수가 경찰서 앞에 우는 장면을 쓸 때는 나도 울었다. 비극성이 강한 인물 ‘민수’를 쓸 때도 힘들었다. 배신은 정말 너무 힘든 일이다. 사람의 영혼을 파괴시키는 일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쓰면서, 인물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드라마는 역시, 희망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 복도 많았던 작품이다. 누구 하나, 연기력이 떨어진 배우가 없었다.
1순위 배우였던 연기자들이 많이 캐스팅됐다. 한혜진 씨 같은 경우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출연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틀을 깨보고 싶다고 했다. 젊은 여자 배우들은 보통 결혼한 아줌마, 아이가 꽤 큰 엄마 역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광고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니까. 한혜진 씨가 좋은 배우이기 때문에 출연한 거다. 고두심의 연기는 클래스가 달랐다. 감동했다.
김지수의 연기도 훌륭했다. 그래도 ‘미경’이 가장 불쌍한 인물이 아닐까 싶었는데, 마지막 회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미경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면서 행복해진 인물이다.
미경, 재학 커플은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무조건 헤어진다고 생각하고 썼던 인물이다. 그런데, 김지수 씨가 촬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미경이랑 재학이랑 헤어지면 너무 힘들 것 같다고.” 문자를 보고 깨달았다. 한 달 사랑한 사람도 지금 이러는데, 20년을 같이 산 부부는 어떨까? 그래서 이들 부부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결론을 내리는데 힘들었다. 외도를 한 상대와 헤어질 수 없는 분들이 많이 공감하더라.
먹는 걸로 모든 걸 승화하는 재학의 어머니 ‘추 여사’(박정수) 캐릭터도 새로웠다. 마냥 밉다가 나중에는 귀여워지더라. 애잔하기도 하고. 은진의 엄마 ‘나라’(고두심)와의 차별성을 꾀한 것 같다.
의도했다. 처음에 딱 나왔을 때, 정말 ‘나쁜 시어머니’ 같지 않았나? 그런데 사람은 언제나 같을 수 없다. 언제나 착하고 언제나 나쁠 수는 없다. 사람은 입체적이다. 추 여사와 안나(최화정)가 붙는 신을 쓸 때는 정말 편했다. 두 사람이 가벼운 캐릭터라서, 인물 속 대화에 사람에 대한 시선, 편견 등의 이야깃거리를 집어넣었다.
대본을 쓸 때, 감정지문을 거의 쓰지 않는다고 들었다. 배우에게 자유를 주는 대신 그만큼 책임감도 주는 건데, 배우들이 어려워하지 않나?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를 함께했던 이미숙 씨는 “하명희 작가 대본은 머리 나쁘면 못한다”고 했다던데.
예전에 어떤 중견 배우가 술 먹고 그러더라. “감정 지문 ‘슬프게’ 때문에 계속 NG를 내다가 배역에서 잘렸다고.” 그 이후로 웬만하면 쓰지 않는다. 배우는 일단 감성이 뛰어난 사람이다. 캐릭터의 특성을 뽑아내서 자신의 연기에 녹여낼 줄 안다. 감정 지문을 쓰게 되면 배우들은 대본에만 기대서 연기를 하게 된다. 배우들이 생각을 하고 연기를 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시와 수학’의 만남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가 올해 1월에 출간됐다. 써놓은 지는 꽤 오래된 작품이라고 들었다.
2003년쯤인가? 2002년 월드컵 지나고 쓴 소설이다. 1994년에 드라마 공모에 당선이 돼서 일을 시작했는데, 글 쓰는 건 좋았지만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방송국 생리 등이 힘들었다. 드라마는 혼자 써서 되는 게 아니고 협업이니까. 너무 쓰기 싫어서 폐업을 했다. 그 당시 쓰고 싶은 글, 아이템을 정리해놓았다. 소설로 먼저 써야 할 소재가 있고, 드라마로 먼저 풀어야 소재가 있는데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는 책으로 먼저 쓰고 싶었다. 마무리까지 했는데, 2006년부터 <사랑과 전쟁> 집필에 들어가게 돼서, 이제야 책으로 출간됐다.
10년 전 작품을 출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시대감이나 저자의 변화도 있을 테고.
작품 속 주인공들은 PC통신 요리 동호회에서 만난 사이다. 여기에서 말하려는 게 인터넷 시대의 관계의 피상성인데,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소설에 나오는 대사를 <따뜻한 말 한마디>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에서 갖다 썼다. 소설에서 현수가 정선에게 “너, 나 몰래 나한테 약 먹였지?”라는 대사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은영이 민수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소설 속 주인공 ‘현수’는 드라마작가 지망생이다. 저자의 실제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은데.
물론 있다. 방송작가교육원을 다니고 사람을 분석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닮아 있다. 그런데 지금의 내 성격은 달라졌다. 나는 내가 되게 이성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아니다. 상황이, 사람들이 좋아서 이성적일 수 있었던 거다(웃음).
현수가 소설에서 말했다. 작가는 화술에도 능하고 튈 수 있어야 한다고. 정말 그런가?
작가들이 너무 힘들다. 시달리는 게 너무 많다. 공모전에 작품 하나 당선되고 그게 끝인 작가들도 많다. 창작이라는 게 사람들의 머리가 다 비슷비슷하지 않나. 비슷한 아이템이 나오면 자기 것이 없어지는 거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작가도 많다.
소설을 쓰고 나서, <사랑과 전쟁>을 4년간 집필했다. <사랑과 전쟁>은 자극적인 요소가 많은 드라마 아닌가? 드라마국이 아니라 예능국에서 만드는 프로그램인데, 쓰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없었나?
즐겁게 썼다. <사랑과 전쟁>도 <따뜻한 말 한마디>처럼 말이 되게, 극단적이지 않게, 재밌게 썼다. <사랑과 전쟁>은 대개 드라마를 처음 만들어 보는 PD들이 연출을 한다. 연기자도 인지도가 크지 않은 배우니까, 극본의 힘이 많이 발휘된다. 드라마는 ‘시와 수학의 만남’이라고 생각하는데, 시는 ‘대사’고 수학은 ‘구성’, 즉 보게 하는 힘이다. 감성과 이성이 잘 짜져야 한다. <사랑과 전쟁>은 70분 동안 모든 이야기를 끝내야 하니까, 결혼생활을 10년 한 부부도 70분 안에 모두 담아야 하니까 엑기스만 담아야 한다. 그래서 구성 공부를 많이 했다.
하명희 작가라는 이름이 알려진 건,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 부터다. 데뷔 년에 비해서는 꽤 늦은 편이다. 중간에 쉬었던 시기도 있지만 근 20년간 드라마를 쓴 건데, 결국 <따뜻한 말 한마디> 같은 작품을 쓰고 싶어서 지금까지 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싫어하는 스토리가 출생의 비밀, 얼토당토않은 성공 스토리, 판타지, 신데렐라 스토리다. 이런 것들이 사람들의 정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의 경우에는 우리나라 결혼문화를 지켜보고서,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기획한 거다. 그래서 한 커플의 결혼, 한 커플의 이혼 과정을 동시에 보여줬다. 예전에 <종합병원>을 쓸 때, 어떤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고 자신이 심근경색인 줄을 알게 되었다면서, 생명을 구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방송국에 전화를 한 일이 있었다. 드라마는 감정만을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이렇게 정보 전달도 가능하다. ‘우결수’ 역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결혼문화, 과정들을 현실감 있게 그리면서 어떤 측면에서는 정보도 주고 싶었다. ‘우리 결혼문화, 이대로 가도 좋겠냐’를 묻고 싶었다.
예전에 좋아했던 드라마는 무엇이었나? 김수현 작가의 뒤를 이을 작가라는 평도 들려 오는데.
그건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선생님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영웅 같은 캐릭터가 있다. 난 1등 마인드가 아니다. 행복한 2등이 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쓰지만, 대중과의 접점을 찾고 싶다. 가끔 사람들이 홈드라마는 그만하고 장르물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도 하는데, 나는 장르물이 홈드라마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은진이 했던 말과도 교차되는 것 같다. 남편의 특별한 이벤트보다 아이와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잠을 재워주는 일상이 더 행복하다는.
작품 속에서 사건, 이야기들이 너무 거대해지면서 일상성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는 게 아쉽다. 특별한 게 싫다. 일상적인 것, 사람들이 보기에 별 거 아닌데 별 거인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게 내 지향성이다. 우리 사회는 매일 성공하라고 말하고, 비교하고, 다시 불행해진다. 사람들이 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편견을 완화시키는 그런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싶다. 모두가 드라마를 보는 건 아니지만, 드라마를 보고 삶의 의미를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의외로 많다. 내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고, 발전적인 관계를 꾀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드라마작가는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을 것 같은 편견이 있었는데, 인터뷰를 하고 나니 편견이 사라졌다. 작품의 성공, 실패를 떠나 일상을 누리는 법을 아는 것 같다. 행복해 보인다.
시청률 경쟁,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웬만하면 넘기는 편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가 안 좋아져서 많이 못 먹고, 기분이 안 좋다(웃음). 그동안 방송계에 있으면서 드라마작가로 성공한 사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정말 많이 봤다. 그들이 과연 성공으로 인한 기쁨을 언제까지 누릴까? 결국 사람은 친구랑 가족이랑 사는 거다. 작품이 끝나고 칭찬을 받으면 행복하지만, 그 칭찬 때문에 사는 게 사람 인생이 아니다. 글 쓰는 게 좋다. 많든 적든 세상이랑 원하는 방식으로 소통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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