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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설레고 아프고 잠 못 들면서 하는 질문, 사랑이 있어? - 『거짓말』 노희경

글 쓸 때 이것만은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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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절실하게 찾는 것이 ‘위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각자 어디서 위로를 구하고 살아가는지,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참 희한하게도, 노희경 작가를 쳐다보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앉자, 세월이 후루룩 뒤로 물러나 문학소녀 내지 문학 처녀로 되돌아가는 기분이 됐다. 그리고 작가에게 담배는 ‘맛난’ 무엇이었다.

“미혼이라고는 해도 말하자면 그녀도 아줌마 나이건만, 어쩌면 그런 기미는 한 톨도 없고 오로지 젠더를 초월한 ‘작가의 세포’로만 구성됐는지, 감탄하며 보낸 한 시간 반이었다.” 3월 27일 대본집 『거짓말』 발간에 즈음해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4층 대강당에서 있은 노희경 작가와의 만남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저렇다. 1999년 드라마 <거짓말> 방영 당시에 컬트 드라마로 불리며 소수의 열광적인 팬덤을 형성했던 그 아우라가 여전히 기세등등하며, 더 깊어지기까지 한 느낌이랄까. 노희경 작가는 드라마 작가를 형성하기 위해 딱 필요한 정신과 몸만 남기고 다 버린 사람 같이 ‘보였다’. 자그마한 키와 더 자그마한 체구, 여분의 살 같은 건 몸에 붙여 두지 않는다는 확고한 의지를 지닌 듯이 ‘보였다’. 그래서 불필요한 것으로 가득 찬 덩치 큰 필자는 좀 압도됐다. 긴장하고, 자극받았다.


거짓말…… 이게 무슨 위로가 돼

사실은 행사장에서 필자는 좀 소외감을 느꼈다. 많은 기억이 깊이 가라앉거나 머리 밖으로 휘발돼 버려서 당시에 <거짓말>을 보았는지도 기억나지 않고, 보았더라도 기억나지 않고, 두어 해 전부터 몇 가지 사정으로 텔레비전을 없애 버리고 사는 형편이라, 달랑 두 권짜리 『거짓말』을 읽고 간 생 초자로서는 뭔가 일심동체 같이 뭉쳐진 분위기에서 겉도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그들이 사는 세상>에 낀 다른 세상의 사람 같은 기분.

그래서 남의 집을 들여다보는 기분으로 관찰할 수 있기는 한 것 같다.

행사는 미리 독자들이 올린 질문에 대해 작가가 답하고, 현장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담배, 맛있다.”
“연애, 연애 안 하고 뭐 하나. 가족이든, 선후배든, 친구든 누구와도 연애하라. 사랑 없이 살면 팍팍할 것 같다. 사랑은 밥, 고기, 물, 자연과 비슷하다.”
“인물 연구, 우리 엄마만 파도 백 명은 나온다.”
<그들이 사는 세상>엔 그들만 있었다는데, 적절한 비판이다.”


이런 식이었다. 개중엔 길게 답한 것도 있지만 단답형도 많았다. 첫 질문과 대답부터 콕 와 박혔다. 담배라……. 언젠가는 피워 보리라, 하고도 시도해 보지 못한 백 가지 중 하나가 필자에게는 담배다. 매우 평범한 엄마, 주부로 살면서 어영부영 지나왔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맛있다’는 단어에 대해 여러 느낌이 오고 갔다. 참 솔직하고 담백한 사람이라는 느낌, 진실로 연애 지향적이라는 느낌, 그럼에도 외로운가 보다는 느낌, 어울린다는 느낌, 좀 끊으면 어떤가 하는 오지랖 섞인 느낌.

책 속에 그런 대목이 있었다(이날 어떤 독자도 질문했던 내용).

성우의 엄마 영희가 딸에게 “넌 담배 배우지 마. 몸 상해.” 하자, 성우가 “몸 상하는 줄 알면서…… 엄마도 그만 펴.” 하고, 영희는 “난 필란다. 가끔은, 위로가, 되거든.”이라고 답한다. 그날 밤 깊은 시간에 성우는 혼자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워 보다가 비벼 끄고 이렇게 말한다. “거짓말…… 이게 무슨 위로가 돼.”(pp. 165~166)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절실하게 찾는 것이 ‘위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각자 어디서 위로를 구하고 살아가는지,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참 희한하게도, 노희경 작가를 쳐다보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앉자, 세월이 후루룩 뒤로 물러나 문학소녀 내지 문학 처녀로 되돌아가는 기분이 됐다. 그리고 작가에게 담배는 ‘맛난’ 무엇이었다.

손목 돌아가게 글 써도 즐겁다

많은 질문이 휙휙 지나갔고, 대답도 휙휙 지나갔으며, 꽤 넓은 강당에서 작가의 말이 백 퍼센트 청명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메모를 한 것도, 못한 것도 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친구인 배종옥 씨(<거짓말>의 ‘성우’ 역이었다)에 대한 찬양, 그리고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소회였다.

배종옥 씨는 지금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동숭아트센터 동숭홀, 2010/03/19 ~ 2010/05/23)에서 블랑쉬로 열연 중이다. “배종옥 씨가 연기를 한 지 25년이다. 그녀에게 6년 차 관계자가 ‘지루한 블랑쉬’라고 했단다. 그날 맥줏집에 다 모였을 때 그녀가 말했다. ‘나는 배종옥이다. 나는 내가 잘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배운다. 가르쳐 달라. 그 정도 일로 나는 떠나지 않는다’라고. 정말 멋있지 않은가. 나는 배종옥 씨가 친구인 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노희경 작가는 목소리를 떨어 가며 말했다.

조심스럽게 작가의 마음이 헤아려졌다. 한 분야의 일을 계속하다 보면 ‘다 안다’는 느낌이 드는 때가 있다. 실제로 가장 역동적이고 속도감 있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 자칫하면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너나없이. 그러나 25년 차 배종옥 씨는 그런저런 세월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제야말로 연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에게 ‘다 안다’ 싶은 사람들이 쉽게 입을 대기도 하겠지만, 그러니 어찌 됐든 속도 상했겠다 싶지만 그래도 배종옥 씨는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여전히 타오르며, 그토록 사랑해 주는 노희경 작가 같은 친구가 있으니까.

이어 작가는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했다.

“나는 글쓰기 힘들다는 말을 잘 안 한다. 그런 말 하는 걸 ‘복 나갈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 자리에 오고 싶어 애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엄마 식으로 표현하면 ‘입으로 초사를 떠는 것’이다. 이 일로 먹고사는 게 해결되는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누구나 힘들게 먹고산다. 나는 작품을 쓰면 살이 빠진다. 하지만 이 정도 안 힘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거듭 태어나도 이 일을 하고 살련다. 사람들이 글 쓰는 일이 어렵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데, 그거 다 거짓말이다. 지들끼리 해 먹으려고 하는 말이다.”

마지막 대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말, 그렇겠구나. 청중 중에는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 것 같았고, 글쓰기에 대한 이 말은 청중 속으로 쏙쏙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글쓰기가 쉽겠는가.

“지난달에 2,000장을 썼더라. 손목이 돌아갔다. 업무 강도가 낮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게 스트레스여서는 안 된다. 스트레스를 자랑하는 건 아마추어다. 재미로 받아들여라. 즐기지 않으면 못한다. 내가 40킬로그램이 못 나가는데, 몸무게가 줄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재미없지 않다. 돈을 벌고자 하면 그 정도는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일이 잘 안될 때는 설거지를 하거나 칼을 간다(!). 그리고 속옷을 빨거나 스트레칭을 한다는 노희경 작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글이 안 써진다면서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 친구에게 전화로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다. 계속 썼는데 진척이 안 되더라는 이야기 중 반 이상이 인터넷을 하느라 그런 거더라. 안 쓰고, 못 썼다고 한다. 그렇게는 하지 마라”라고 작가가 말하는데 찔리는 건 또 뭔지.

글 쓸 때 이것만은 하지 말라는 게 있단다. 글 쓰는 게 폼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 타이틀에 매이지 말라는 것. 이해는 한다고 했다. 작가라고 폼 좀 잡고 싶은 욕구가 왜 없겠느냐고. 하지만 작가도 노동자라고 했다. 청소하는 분이 그 일로 먹고살듯이, 작가는 자기 재주껏 글을 써서 먹고살 뿐, 노동에 우위가 있다는 생각은 금물이라고 했다. “작가는 벼슬아치가 아니고 직업의 이름일 뿐이며, 오히려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살아남기가 좋은 직업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맞추기 싫으면 마는 거지.”

불륜 이야기가 아트일 수 있는 이유

작가 이야기 중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이런 것이다. 후배들에게 ‘사건’ 위주가 아니라 ‘사람’ 위주로 쓰라고 조언한 것. 스토리 위주로 끌어가려다 보면 소위 막장 드라마로 가기가 쉽다고 했다. 왜냐하면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야깃거리라는 게 한정적이므로. 셰익스피어가 그랬단다. 인류에게 36가지 외에는 이야기가 없다고. 그런데 사람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사건에서도 성격에 따라, 상황에 따라 온갖 감정들이 들고난다고 했다. “사람은 60억 명이 다 다르지 않은가. 나는 사람(성격 혹은 심리) 이야기를 쓰면 글이 더 풍성해진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단순히 글쓰기의 팁일 수도 있지만 그야말로 작가의 가치관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인간에 대한 ‘짠함’이 없이 어떻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써지며, 두고두고 가슴을 울리는 드라마가 나올까 싶다. 책 표지에 이렇게 씌어 있다. “사랑이 그런 거니? 설레고, 아프고, 잠 못 들고 사랑이…… 있어? 내 생각인데…… 사랑은 없어. 사랑은 정말…… 없어.” 하지만 작가는 사랑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보였다’.

친구 하나는 <거짓말>을 그야말로 ‘아트’였다고 기억한다. 도대체, 불륜 이야기가 아트일 수 있을까? <거짓말>은 가정이 있는 사람과의 사랑 이야기니까 쉽게 말하면 불륜이 맞다. 성우와 준희는 은수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내이자 친구이면서 예술가인 한 사람에게 끔찍한 아픔을 주며 자기들의 사랑을 키워 나간다. 그런데도 독자는, 시청자는 셋 모두에게 비슷한 정도의 애틋함을 느낀다.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사람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복수 같은 게 아니라 사랑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일에 복수가 개입될 수 있다고 필자는 믿지 않는다.

‘거짓말 같은 사랑’이 <거짓말>의 속뜻이란다. 모종의 해피엔딩이기는 했지만 사랑이 본질적으로 아프다는 걸 제목에서 드러내고 있다. 드라마 방영에서 한참이나, 한참이나 지나서 나온 대본집이 새삼스럽게 사랑에 대한 환기를 불러일으킨다. 그게 노희경의 힘인가 한다.

작품에서 연기한 현빈과 송혜교의 만남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좋다”고 했다. 하긴 달리 말하기도 뭣하다. 아무튼 ‘작가’라는 상상에 걸맞은 그녀가 멋진 작가로 필자의 뇌리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어느 청중이 “혹시 밥 한 끼 같이할 수 있느냐. 사 드리고 싶다”고 했다. 거기 모인 누구나 하고 싶었을 말. 작가가 뭐라고 했을까?

“스케줄도 그렇고, 성격도 안 따라 준다. 밥 한 끼 먹기가 참 힘들다.” 쿨한 거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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